내 육체야 자네들 마음대로 죽이지만,내 정신이야 어찌하겠는가."
🇰🇷 1974년 01월 17일l박열 의사 서거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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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년 01월 17일< 박열 의사 서거일 > 🇰🇷
• 박열 의사는, (1902.02.03~1974.01.17) 18세의 나이에 일본 동경으로 건너가 흑도회와 흑우회 등 항일 사상 단체를 이끌며 독립운동에 힘 썼습니다.
1923년 관동대지진 당시 조선인학살의 와중에 일왕 암살 계획 혐의로 체포된 박열 의사는,이른 바 '대역사건'의 중심인물로 일본 법정에 섰습니다.
조선 전통 관복을 입고 법정에 선 의사는 당당히 일왕의 죄를 고발하며 굳건한 항일의지를 드러냈습니다.
21세의 젊은 나이에 투옥된 선생은,1945년 10월 27일 홋카이도 변방의 아키다 형무소에서 44세의 중년이 되어 석방되었습니다.
실로 22년 2개월이라는,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최장의 수감기록이 아닐 수 없습니다.
광복 이후에는,일본에서 순국한 3의사 (윤봉길,이봉창,백정기 의사) 의 유해를 발굴해 고국으로 봉환하는 역할을 맡기도 했습니다. 대한민국 정부는 의사의 공훈을 기려 1989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했습니다.
일제의 억압에도 굴하지 않고,조국의 독립을 위해 온몸으로 맞섰던 박열 의사를 기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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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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