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출 예약
호출 내역
추천 내역
신고
  1주일 보지 않기 
카카오톡 공유
주소 복사
공지가 닫혀있어요 l 열기
모바일 (밤모드 이용시)
댓글
쇼콘!23ll조회 837l

재능과 반복 | 인스티즈




https://m.khan.co.kr/article/202006160300115#c2b

재능과 반복 | 인스티즈

[직설]재능과 반복

열아홉 살 때는 재능에 관해 자주 생각했다. 글쓰기 수업에서 친구의 글과 내 글을 비교하다가 질투에 사로잡히는 시절이었다. 내가 더 잘 쓴 것 같다며 우쭐해지는 날도 있었지만 다음 주에 친

m.khan.co.kr





열아홉 살 때는 재능에 관해 자주 생각했다. 글쓰기 수업에서 친구의 글과 내 글을 비교하다가 질투에 사로잡히는 시절이었다. 내가 더 잘 쓴 것 같다며 우쭐해지는 날도 있었지만 다음 주에 친구가 써온 새로운 글을 읽다보면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다는 낭패감이 들기 일쑤였다. 수업에서 우리는 정서적으로 엎치락뒤치락하며 매주 한 편의 글을 썼다.

나는 나에게 재능이 있는지 궁금했다. 재능은 누군가를 훨씬 앞선 곳에서 혹은 훨씬 높은 곳에서 출발하게 만드는 듯했다. 재능이 있다면 더 열심히 쓸 참이었다. 만약 없다면 글쓰기 말고 다른 일을 열심히 해볼까 싶었다. 어떤 어른은 나에게 재능이 있다고 말했다. 어떤 어른은 나에게 재능이 없다고 말했다.

스물아홉 살인 지금은 더 이상 재능에 관해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게 된 지 오래다. 꾸준함 없는 재능이 어떻게 힘을 잃는지, 재능 없는 꾸준함이 의외로 얼마나 막강한지 알게 되어서다.

재능과 꾸준함을 동시에 갖춘 사람은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창작을 할 테지만 나는 타고나지 않은 것에 관해, 후천적인 노력에 관해 더 열심히 말하고 싶다. 재능은 선택할 수 없지만 꾸준함은 선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십 년 전의 글쓰기 수업에서도 그랬다. 잘 쓰는 애도 매번 잘 쓰지는 않았다. 잘 못 쓰는 애도 매번 잘 못 쓰지는 않았다. 다들 잘 썼다 잘 못 썼다를 반복하면서 수업에 나왔다. 꾸준히 출석하는 애는 어김없이 실력이 늘었다. 계속 쓰는데 나아지지 않는 애는 없었다.

어쩌다보니 글쓰기 교사로 일한 지 6년째다. 학생 때 글쓰기 수업을 너무 열심히 들은 나머지 결국 글쓰기 교사가 되어버린 경우다. 십대들의 과제를 검사하다보면 수북이 쌓인 원고지들 사이에서 유독 빛나는 한 장을 발견하곤 한다. 다른 것과 똑같은 모양의 원고지인데 유독 그 원고지만 눈에 띈다. 나는 그것이 재능임을 느낀다. 어떤 아이는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는데 놀랍도록 탁월한 문장을 쓴다. 그가 제출한 원고지에서는 휘황찬란한 빛이 나는 것만 같다. 재능의 광채다.

그런 글을 보면 가슴이 두근거리지만 웬만하면 재능이라는 말을 빼고 피드백을 적는다. 그저 너의 글을 읽는 것이 너무 즐겁다고 쓴다. 로맹 가리의 엄마는 어린 로맹 가리의 문학적 재능을 발견하고 기대감에 부풀어 이렇게 외쳤다고 한다. “너는 커서 톨스토이가 될 거야! 빅토르 위고가 될 거야!” 글쓰기 수업에서 나는 아이에게 이렇게 말한다. “너는 커서 네가 될 거야. 아마도 최대한의 너일 거야.” 로맹 가리도 결국 로맹 가리가 되었다. 반복적인 글쓰기와 함께 완성된 최고의 그였을 것이다. 그러므로 아이들에게 그저 다음 주의 글감을 알려주며 수업을 마친다. 얼마나 평범하거나 비범하든 결국 계속 쓰는 아이만이 작가가 될 테니까.

십대 때 함께 글쓰기 수업에 다녔던 친구가 얼마 전 나에게 말했다. 어느새 너는 숙련된 세탁소 사장님처럼 글을 쓴다고. 혹은 사부작사부작 장사하는 국숫집 사장님처럼 글을 쓴다고. 나에게 그것은 재능이 있다는 말보다 더 황홀한 칭찬이다. 무던한 반복으로 글쓰기의 세계를 일구는 동안에는 코앞에 닥친 이야기를 날마다 다루느라 재능 같은 것은 잊어버리게 된다.

요즘엔 원고 마감을 하러 모니터 앞에 앉은 뒤에 한마디를 읊조린다. “생스, 갓.” 나는 종교가 없고 신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지만 이 세계의 어딘가를 향해 감사 인사를 올린다. 써야 할 이야기와 쓸 수 있는 체력과 다시 쓸 수 있는 끈기에 희망을 느끼기 때문이다. 남에 대한 감탄과 나에 대한 절망은 끝없이 계속될 것이다. 그 반복 없이는 결코 나아지지 않는다는 걸 아니까 기꺼이 괴로워하며 계속한다. 재능에 더 무심한 채로 글을 쓸 수 있게 될 때까지.



 
👍
1개월 전
로그인 후 댓글을 달아보세요
 

혹시 지금 한국이 아니신가요!?
여행 l 외국어 l 해외거주 l 해외드라마
카테고리
  1 / 3   키보드
닉네임날짜조회
이슈·소식 현재 난리 난 나솔25기 영자 해명문.JPG243 우우아아03.13 23:59104360 36
정보·기타 ㄱㅅㅎ 갤러리에 올라온 글186 키토푸딩0:38107605 34
유머·감동 제일 무서운게 어느 재벌가문에서 애 태어났단 소리140 참섭03.13 20:38112027 13
이슈·소식 서천 40대女 '묻지마 살인범'은 34세 이지현…경찰 신상공개78 빅플래닛태민03.13 23:3382280 2
유머·감동 [네이트판] 주말마다 집에 찾아오는 아이 때문에 미칠거 같습니다68 기후동행8:3639267 0
힘들게 만든 눈사람을 고양이가 부쉈습니다..1 데뷔축하합니다 03.06 08:49 3441 0
스벅 개졸렬이벤트28 S님 03.06 08:33 34282 0
맥심 제로 슈거 출시.jpg3 sweet.. 03.06 08:33 3729 0
남들은 맛있다는디 내입맛엔 개맛없는 음식 있어??4 가나슈케이크 03.06 08:33 2880 0
듀가나디가 실존..4 30862.. 03.06 08:33 3186 3
입양 공고 중인 꼬까옷 입은 강아지들..x2 sweet.. 03.06 08:28 3116 1
장제원 아들이 공연 중 물티슈에 맞아서 슬픈 팬....twt12 지상부유실험 03.06 07:38 19688 0
밀리 바비 브라운이 나이 들어 보인다 것에 본인 입장 말함3 어니부깅 03.06 07:20 9331 1
간호사와 소방관이 힘든 직업인 이유.jpg4 가리김 03.06 07:18 14335 0
한국인들이 많이 갈아탄 미국 주식 근황...10 31186.. 03.06 07:18 17668 1
지하철에서 주먹 꽉 쥔 남자1 요원출신 03.06 07:18 1768 0
릅신 샤라웃하는 르세라핌.gif1 맠맠잉 03.06 07:18 1258 0
행복주택 거주기간 6년10년으로 늘어남9 성수국화축제 03.06 07:18 12332 1
현재 여행카페에서 난리난 게시글263 삼전투자자 03.06 07:18 154789 2
성공은 운인가? 물리학으로 연구해본 결과 .jpg1 아우어 03.06 07:18 5624 1
난 항상 옷입기전에 차은우로 테스트해봄10 태 리 03.06 07:02 64571 1
라면 국물 리필해 주세요2 아야나미 03.06 07:02 3525 0
요즘 잘나가는 말레이시아 사진작가 Zhong Lin3 수인분당선 03.06 06:57 9205 1
호불호 갈리는 호프집 안주2 차준환군면제 03.06 06:57 1594 0
표지만 보고 억울하게 욕 먹은 로판 주인공7 모모부부기기 03.06 06:46 15770 0
이슈
일상
연예
드영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