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지... 어쩌면 좋지...!
1897년, 일본계 은행의 금융 침탈을 막기 위해
최초의 순수 민족자본으로 만들어진 한성은행은
큰 고민에 빠져 있었다.
예금 희망자는 어느 정도 있었지만
대출을 하러 오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던 것이다.
은행도 대출을 통해 이익을 얻기도 하고,
본 목적이 민족 경제 보호와 진흥에 있었음을 생각하면
기능을 반쪽만 한다는 건 퍽 걱정스러운 일이었다.
대금이 부족한데 돈 좀 빌릴 수 있을까요?
그렇게 염려가 쌓여만 가던 어느 날, 역사적이게도
대구에서 한 상인이 올라와 20원을 대출할 의사를 밝힌다.
당시 은행장 월급이 20원이었으니
대강 그 가치를 짐작 가능하다.
우왕! 좋아요, 빌려 드릴게요. 담보만 맡겨 주세요!
담보요? 없는데
그러나 문제는, 상인이 당시 은행에서
대출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잘 몰랐던 것인지,
상인이 은행에 대출로 맡길 담보가 없었던 것이다.
대구에 땅이 있긴 하였으나 땅문서도 대구에 있으니,
왔다갔다하면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릴 터.
그럼 지금 타고 계신 나귀라도 맡기고 가십쇼!
헤헿ㅎㅎㅎㅎㅎ 우리도 대출 해본당ㅎㅎㅎ
그렇게 한민족의 은행이 최초로 받은 담보는
상인이 타고 온 당나귀가 되었다.
당나귀가 과연 20원의 가치를 하였을지는 알 수 없지만,
드디어 대출을 받는 손님이 나온 까닭에
은행원들은 매우 기뻐했다고 한다.
옴냥냥
그러나 손님이 돈을 갚으면 담보를 돌려줘야 하는데
당나귀가 죽어버리면 큰 문제가 될 것은 분명한 일.
그래서 은행원들은 업무에 더불어
당나귀에게 여물을 주고 건강을 관리해 주느라
상당히 애를 먹었다고 한다.
오셨던가, 안 오셨던가? 기억이 안 나네?
다음 상경 때 돈을 갚고 당나귀를 찾아가겠다고 약조했다 하는데,
정말 상환이 완료되었는지는 기록되어 있지 않다.
돈을 제때 갚았다는 이야기가 있기도 하고...
가자 나귀야!
끝내 나타나지 않아서 은행이 나귀를 압류하고
대신 업무용으로 타고 다녔다는 이야기가 존재한다.
역시 동산대출은 자동차로 하는 게 일반적이거든요
한성은행은 흘러흘러 조흥은행이 된 후에
지금은 신한은행에 역합병되어서 이젠 없습니다.
돈이 궁하면 반려동물을 데리고 신한은행에 가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지도
다만 신한은행은 기존 조흥은행의 역사를 딱히 강조하지 않아서,(아마 대등한 합병이 아니라서 그럴지도) 한민족 최초의 은행 타이틀은 사실상 우리은행이 들고 있긴 합니다. (여기는 고종황제가 황실의 내탕금 운용을 위해 설립을 지시한 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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