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죽고 싶다며 차도에 뛰어들었던 수의 뒷모습은 오랜 잔상으로 남아 있다. 신호가 바뀌는 찰나에 그녀의 손을 잡아당겼다. 엉망이 된 수의 얼굴을 볼 자신이 없어 품 안에 가두었다. 그녀는 온몸을 떨며 울었다. 아니, 눈물이 고인 채 고개를 젖혀가며 웃어댔다.
적절한 때에 울지 못하는 그녀는 어떤 아픔을 먹고 자랐을까. 어릴 적 먹고 자란 감정이 어른을 만들어 낸다는데, 수는 누군가의 눈물만 먹고 자란 것 같았다.

돈 좀 빌릴 수 있을까?
뻔뻔하게 요구하면 좋으련만 안 보이던 정수리를 보이며 고개를 숙인다. 태어나 처음으로 본 사람이자 엄마, 그리고 여자.
나는 엄마의 양분을 먹고 자란 파렴치한 아이였다. 엄마는 어디서든 고개를 숙였다. 튀어나온 목뼈는 몸을 굽히고 있는 그녀의 오랜 습관으로 생긴 흔적이었다. 자식이라면 어떻게든 무릎 꿇고 보는 미련한 사람이었다. 내게 과분한 엄마였지만, 그녀를 닮고 싶진 않았다. 엄마를 수식하는 단어들은 모두 가엾고 하찮다.
저 여자는 무엇을 위해 열심히 살아가는 걸까.

녹색 페인트를 칠한 옥상엔 코끝을 자극하는 냄새가 났다. 우리는 들고 온 돗자리를 깔고 누웠다. 어때? 나는 물었고 찬영은 옅게 웃었다. 매번 그는 미소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녀의 입꼬리에는 지난 여름이 걸려 있었다. 미세먼지 하나 없는 밤하늘에는 별이 잘 보였다. 하나를 보면 둘이 보였고, 둘은 보면 셋이 보였다. 머리맡에 놓인 휴대폰에서는 듣기 좋은 팝송이 흘러나왔다.뜻 모를 영어는 사랑을 노래하는 듯 했다. 그녀는 몸을 돌려 나를 바라보고 흐트러진 앞머리를 정리해줬다. 이게 네가 말한 우정이냐 물어보는 얼굴이었다.

첫사랑을 묻는 질문에 열아홉이 떠올랐다. 나는 그 애를 좋아한 걸 부끄러워 했다. 모두 남자를 좋아할 때, 나는 여자를 좋아했다. 우정이라는 단어 안에 할 수 있는 모든 걸 했다. 십대 여자들의 우정으로는 못할 것보단 할 수 있는 게 더 많았다. 손을 잡고 포옹을 하고 우정 반지를 맞췄다.
늦은 밤까지 전화를 하며 서로의 새벽을 갉아먹었다. 토끼 이빨을 보이며 웃는 그 애는 여전히 내게 첫사랑에 대해 묻고, 나는 적당히 웃어 넘기는 법을 익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