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황도의 우울이 무서웠다. 황도는 금방이라도 물러터질 듯한 몸을 하고서 밤을 지새운다. ‘잠이 안 와.’ 황도의 말에 저녁을 너무 많이 먹어서 그렇다고했다. 황도의 숙면이 망가진 지 십수 년이 되었다. 황도는 통조림 회사에 들어가게 될 것 같다고 통보했다. 옆구리 쪽이 눈에 띄게 문드러졌다. 다치기 좋은 상태였으니 그것의 허무맹랑한 말에도 그저 웃어 보였다. 여린 살이었으니까.
황도는 먹기 좋은 때라며 웃어 보였다. 웃을 때마다 흘러내린 과즙에서 짠맛이 났다. 황도는 울고 있다. 나는 황도를 대야에 넣고 더러운 부분을 씻겨냈다. 전부 더럽다고 속으로 생각하다가 그것에게 미안해져 떨어져 나간 조각들을 쓸어 담았다. 황도의 기억이 너덜거리고 있다. 황도의 육질이 치밀했던 건 찰나였다. ‘차라리 통조림이 될 걸 그랬어.’ 황도는 가로등빛이 스민 소파에 기대어, 과거를 곱씹으며 새벽을 난다. 나는 바닥에 이불을 깔고 누웠다. 복숭아향이 거실에 은은하게 퍼진다. 황도가 숨죽여 울고 있다.
황도는 통조림 회사로 갈 채비를 마쳤다. 회사에 가면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거라고 했다. 무엇을 시작해? 황도는 모르겠다고 답했다. 스스로가 통조림이 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고리타분하다고 생각만 했다. 한 번 물러버리면 되돌릴 수 없게 된다고 황도가 말한다. 50년산 황도는 자신의 원산지를 잊었다며 퍽 서글픈 표정을 지었다. ‘여기로 돌아오면 되지.’ 황도는 고개를 내젓다가 나를 세게 안았다. 또 한 곳이 뭉그러지겠지만 황도는 주저하지 않았다. 그렇게 우리의 세월이 황도의 뺨 한 쪽에 남게 되었다. 엄마가 좋아했던 과일이 황도였다는 건 왜곡될 기억들 중에 가장 덜 왜곡된 기억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