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혼여행을 신나게 다녀오고 기를 죄다 뺏겨버린 채로 나는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8시간만에 출근을 해야했어. 백현이는 그런 나를 탐탁치않게 여겼지만, 병동 상황을 뻔히 알고 있는 백현이는 나를 붙잡을 수도 없었지. 변백현은 신혼여행을 다녀온 뒤에도 한번씩 내가 다음날이 쉬는 날이란 걸 알아챈 날에는 작정하고 돌진해버렸고 덕분에 백현이와 나랑은 깨가 쏟아지는 신혼생활을 하고 있었어. 그렇게 내가 일주일 째 일을 하고 있을 시기에 백현이도 다시 출근을 했고 평소처럼 병원에서 매일같이 얼굴을 마주했어. 결혼하기 전과 달라진 게 있다면 심각하게 싸고도는 것과, 병원 사람들이 우리 둘 사이를 전부 알아버린 것 정도였지. "변백현쌤 밥 먹으러 내려가던데?" 가끔 이렇게 변백현이 눈에 보이지 않아도 소식을 들을 수 있었고, "밥 또 안 먹었지. 밥 한 번만 더 거르면 진짜 화낼거야." "먹었거든?" "너 안 먹었다는 얘기 듣고 온거거든?" 변백현도 내 소식을 꿰차고 있을 수 있게 되었지. 그것 때문에 살짝 귀찮아지기도 하고 사소한 말다툼도 많아졌지만 아무래도 예전보다는 좋은 점이 더 많았어. 한번씩 팔불출같은 변백현이 볼에다 냅다 입을 맞추고 도망가기도 하고, 회진을 돌다가 손을 부여잡기도 하고. 그런 사소한 것들이 직장 속의 행복이라고 해야하나..그랬지. "피곤해." "응, 집 갈까?" "너는?" "나는 한시간 뒤에 수술, 가자. 태워줄게." "됐어, 걸어갈게." "너 태워가려고 차 끌고 온거야. 옷 갈아입고 와." 백현이는 어느 순간부터 나를 집에 데려다주는 일에 목숨을 걸었고 절대 나 혼자 집에 걸어가지 못하게했어. 예전같았으면 운동할겸 걸어다니라고 강조했을 텐데, 요즘에는 매일같이 차에 나를 태워오고 태워가곤 했어. 제 근무가 늦어져서 늦게 퇴근해야할 때도 나를 당직실에서 쉬고 있게하거나 짬을 내서 집으로 실어날랐어. 결국 백현이가 가운을 벗어들고 주차장으로 향했어. 졸졸 쫓아가 조수석에 앉은 나는 확 다가오는 노곤함에 눈을 느릿하게 꿈뻑였어. "나 열나나봐, 이마 짚어봐." "음, 그렇네. 집에 가서 한 숨 자고 있어. 맛있는 거 사서 들어갈게." "과일 먹고 싶어." "뭐? 복숭아?" "응." "사갈게. 청소같은 거 하지말고 그냥 자. 내가 가서 할게." 백현이는 내 이마를 한 번 짚더니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얼른 올라가 쉬라며 머리를 쓰다듬었어. 고개를 끄덕이고 얼른 와,하고 인사를 한 뒤 홀로 집에 올라갔지. 백현이 말대로 씻지도 않고 그대로 침대로 들어갔는데 머리도 아픈 것 같고, 열도 계속 나는 것 같아 찬장을 뒤져 감기약을 찾았어. 분명 거기 뒀던 것 같은데..어디갔지, 보이지 않는 감기약에 그냥 물만 한 잔 들이키고 잠을 청했어. 한참을 잤을까, 훅 끼쳐오는 한기에 눈을 슬쩍 떴더니 백현이가 퇴근하고 왔는지 외투를 벗고 있었어. "..끝났어?" "응. 복숭아 사왔어, 먹을래?" "말랑이로 사왔어?" "당연하지. 기다려봐." 옷도 안갈아입고 복숭아를 씻어온 백현이는 침대에 걸터앉아서 복숭아를 깎기 시작했어. "너 진짜 의사긴 의산가봐, 백현아. 그것도 외과의사." "과일 깎을 때만?" "응. 말랑말랑한 걸 어떻게 그렇게 잘 깎지?" 나는 물러서 잘 안깎이던데. 중얼거리는 나를 보며 백현이가 픽 웃었어. 백현이야 원래 섬세한 손기술을 필요로 하는 직업이니까 무른 복숭아 깎는 것 쯤이야 별 일도 아니었지. 나는 손 쓰는 일을 하는 백현이 모습을 제일 좋아했고 덕분에 백현이는 집안에서 자잘한 일들을 많이 맡고 있었어. 바느질도 백현이가 전문이니까, 바느질에 과일깎기에.. "근데, 나 뭐 물어 볼 게 있는데.." 과일을 열심히 깎아 내 입에 하나 물려준 백현이가 엄청난 결심을 했다는 듯 눈을 부릅뜨고 나에게 질문을 던졌어. "복숭아가 왜 그렇게 먹고 싶어? 매일 먹고싶고 그래?" "나 원래 복숭아 좋아하잖아." "그건 그런데..평소보다 더 먹고싶고 그래?" "아니, 그냥 딱히 생각나는 과일이 없어서 그런건데." 왜 복숭아를 물고 늘어지지, 내가 입안 가득 복숭아를 물고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어. "그럼 요즘 유독 피곤하고 그러진 않아? 걷다가 갑자기 눈앞이 깜깜해진다거나.." "아니, 전혀. 피곤한 건 항상 피곤했어. 왜 그래, 갑자기?" "그러면.." "아, 또 뭐!" "이번 달..생리했어?" 백현이의 마지막 질문에 어디 뒤통수라도 때려맞은 듯 멍해졌어. 내 입안에 있던 복숭아 과즙이 턱을 타고 주륵 흐르자 손으로 턱을 닦아준 백현이가 재차 물어댔어. "응? 안했지 않아? 안한 것 같은데. 그치?" ******백현****** 신혼여행을 다녀 온 뒤로 나는 괜히 전전긍긍했어. 평소보다 피곤해하는 모습이 딱 임신같은데, 밥도 평소보다 많이 먹나싶더니 어느 날부터는 복숭아만 찾질 않나..게다가 잠도 많아지고 살도 좀 오른 것 같고. "나 복숭아, 백현아 올 때 사와!" 평소 전화도 잘 하지않는데 하루는 전화까지 해서 복숭아를 사오라는데, 그 때부터 이건 빼박 임신이구나. 했지. 근데 얘는 원래 아이가지는 걸 굉장히 부담스러워했기 때문에 약간 미안한 마음도 있었어. 나야 나 빼닮은 아들이건 딸이건 얼른 보고 싶었지만. 그래서 괜히 일찍 얘기했다간 스트레스만 받겠다 싶어서 자기가 알아차릴 때 까지는 그냥 모른척하기로 했어. 혹여나 집에 있는 약을 잘못 먹을까싶어 약이란 약은 죄다 치워버리고 비타민까지 숨겨뒀어. 그리곤 혼자 전전긍긍 쓰러질까 싶어 매일같이 출퇴근을 함께했지. "백현아아-," 최대의 위기였던 날은..항상 내가 들이대어서 잠못드는 밤을 보내곤 했었는데, 하루는 얘가 먼저 콧소리를 내면서 엉기는거야. 내가 퇴근하고 오자마자, "백현이도 내일 쉬구우..나도 내일 쉬는데에.." 하고 목에 두 손을 감고 입술에 뽀뽀를 쪽쪽하는데, 이거 정말 어떡해야하나 싶었어. 임신 초기에는 잘못하면 위험하다고해서 나도 꾸욱 참고 있었거든. 몸은 이미 허리를 감고 들어안아서 침대로 향하고 있었지만 머리에서는 절대 안된다며 스탑신호를 보내왔어. "아이, 예뻐." "예뻐?" "응, 예뻐." 내가 그냥 거절하면 혹여나 자존심이 상할까싶어 예뻐예뻐해주며 얼굴 곳곳에 입을 맞췄어. 그리곤 터지는 속을 부여잡으며 등을 토닥토닥 두드렸어. 만약에 임신이면, 거의 나는 확정을 지었지만, 그렇다면 정말 해서는 안되는 일이니까..눈물을 머금고 이 시기만 버티자는 심정으로 꼬옥 끌어안았어. 그렇게 나도 몇번의 고비를 넘기고 확신에 확신을 거듭했을 무렵에도 얘는 어김없이 복숭아를 찾는거야. 그날따라 얼굴이 조금 부은 것 같기도 하고. 영락없는 임신 초기 증상인데. 그래서 오늘은 확실하게 물어보자 싶었지. 퇴근을 하고 복숭아를 사서 집에 들어가 꼬치꼬치 캐물었어. 얘가 외과의사같다느니 어쩌니 하는 말도 평소에는 내가 굉장히 좋아했던 말인데 하나도 들어오지 않는거야. 계속 빙빙 둘러대며 묻다가, 결국 돌직구를 날렸지. "이번 달..생리했어?" 하지 말았어라, 늦어지는 것 같다고 얘기해라. 제발.. 내 물음에 멍해진 것 같아 부푼 희망과 기대를 안고 재차 물었어. "응? 안했지 않아? 안한 것 같은데. 그치?" 긍정의 표시같은 표정에 두손까지 모으곤 눈을 반짝이며 쳐다봤는데, "했는데." "어?" "했어, 엊그저께 시작했어." 아... "너 나 임신하라고 기도했지. 정신 나갔어?" "아니, 그게 아니고.." 결국 얻은 건 나를 죽일듯이 째려보며 등짝을 퍽퍽 내려치는 손길 뿐이었어. "안되겠다, 너 앞으로 거실에서 자." "아니, 안되는데.." "나가, 지금부터 여기 얼씬도 하지마." 아....하느님..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제가 불맠을 얼마나 안썼으면...댓글에 드디어라는 단어가 난무하네욯.........(머리를땅에박음)죄송합니다..ㅎㅎ 저 사실 모 하나 부탁드릴거있는데☞☜ 여태까지 읽으면서 제일 기억에남는 장면이나 좋았던 장면! 하나씩만 써주세요!이유는.. 그냥 궁금해서..ㅎ.. 다들 사랑합니당~~~~♥♥
이런 글은 어떠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