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백현은 혼자 헛다리를 심하게 짚은거지. 사실 나도 평소보다 생리가 많이 늦어져서 안절부절 못하고 있긴했었어. 변백현이 내게 묻기 이틀전에 판명이 났지만. 변백현은 그 이후로도 생난리를 쳤어. 임신도 아닌데 왜 밥은 제대로 못먹으며 그렇게 피곤해하는거냐고..의사남편 둔 게 이렇게 피곤한 일인지 몰랐어. 연애할 때랑은 또 다른 맛에 행복할 때도 많았지만 이리저리 부딪히는 일도 많았어. 게다가 변백현은 바빠서 눈코뜰 새가 없었고. "오늘 입술 너무 진한데?" "원래 여자 입술색은 기분따라 바뀌는거야." "그냥 평소 바르던거 발라, 너무 빨개." "내 입술 내가 바르는데, 왜?" "안 지울거야?" 아침부터 현관 문앞에 서서 입술이 진하니 어쩌니 잔소리를 해대는데 확 짜증이 나는거야. 출근길에 자꾸 태클이야, 왜. 내가 인상을 찡그리고 신발을 구겨신으니까 변백현이 정말 안 지울거냐고 되물었어. 어, 내가 단호하게 대답하고 일어섰어. 그러자 변백현은 내 양쪽 볼을 감싸쥐더니 진득하게 입을 맞춰. 쪽쪽쪽, 입술 두들기듯 도장을 찍고선 고개를 틀어서 깊게 입을 맞추는데 이거, 출근전에 무슨 불순한 짓이야. 이러다 늦겠다싶어 내가 변백현을 밀어냈어. "어, 아직 다 안지워졌.." "어디서 개수작이야, 얼른 신발신어." "..자기도 웃고있으면서." "참나.." "좋았으면서." "어,이없어서 그랬거든?" "솔직해지자, 자기야." 그래도 아쉬운지 볼에 가볍게 입을 맞춘 변백현이 밍기적밍기적 신발을 신었어. 무조건 각방이라고 변백현을 거실로 내몰고 잤는데 아침에 일어나보니까 내 옆에서 새근새근 자고있더라구. 나 잘 때까지 기다렸다가 살금살금 들어왔을 생각하니 귀여워서 모른척하고 깨웠었어. 결혼한지 얼마안되어서 그런지 몰라도 집안에서 불순한 짓을 할 때마다 죄짓는 느낌이 들고..막 그래. 가기싫어어, 징징거리는 변백현을 끄집고 병원까지 갔어. 병원에 도착해서도 병동으로 올라가는 내내 병원싫어어, 하고 징징거리는 입을 톡톡 쳐주고 삐뚤어진 넥타이를 고쳐줬더니 우리 진짜 신혼인가봐, 하면서 혼자 쑥쓰러워해. 어휴, 팔불출.. "자기야, 소연이가 나보고 여자친구있냐고 물어봤어." 엘레베이터에서 내려서 걸어가는 내내 변백현은 뭐가 그리 좋은지 연신 웃으면서 말을 걸었어. 소연이는 우리 병동에 길게 입원하고 있는 네살배기 여자아인데, 백현이가 끔찍하게 아끼는 애야. 물론 나도 무척 귀여워하고 있고. "소연이 크면 너랑 결혼한다고 하지 않았어?" "응, 쌤 사실 결혼했어.라고 말할까?" "뭐하러. 애 울겠다." "그럼 소연이가 진짜 커서 나한테 결혼하자고 하면? 그럼 그 때도 이렇게 손 놓고 있을거야? 응? 자기야?" "말도 안되는 소리를 해, 아침부터." "..넌, 내 마음 몰라. 하나도." 그래그래. 그렇죠. 제가 죄인이죠. 또 혼자 토라진 변백현이 입을 삐죽였어. 대체 어느 부분에서 토라진 건지도 모르겠고..알 수 없는 애야, 하여튼. 결혼을 해도 변백현은 내가 병원에서 환자 보호자랑 얘기만 하면 입을 삐죽였어. 오늘은 몰랐는데 빼빼로데이더라구. 아침부터 스테이션에 놓여있는 빼빼로를 보고나서야 알아챘어. 기분 좋게 병동을 돌러 갈 준비를 하고 첫 환자부터 확인을 했지. "얘, 오셨다." "네?" "우리 손자가-, 어휴 말도 말아요." 어제 밤 잘 주무셨냐고 물으면서 커텐을 열었는데 할머니는 연신 웃고계시고 보호자침대에 누워있던 한 남자분이 황급히 머리를 정리하는거야. "어, 보호자분 주무셔도 괜찮아요. 혈압만 재고 갈거예요." 아침이니까, 내가 들어가도 대부분 주무시고 계시거든. 할머니나 할아버지들은 아침잠이 없으시니까 깨어계시고.. 그래서 내가 괜찮다고 말씀드렸는데 아니라면서 서둘러 얼굴을 확인하시는거야. "아이구, 선생님-, 우리 손자놈이 글쎄. 간호사선생이 마음에 든다고," "아, 할머니!" "준다며, 얼른 드려라." 그제야 그 남자분이 침대옆 서랍에서 작은 빼빼로를 꺼내서 주는데, 너무 귀엽고 풋풋한 거 있지. 사실 나나 백현이 나이 정도 되면 빼빼로데이같은거 안챙기거든. 백현이도 100일은 챙기더니 그 다음부턴 서로 날짜도 안셌어. 나는 처음부터 세지 않았지만. 쨋든, 대학생이라고 그러더니, 대학생은 빼빼로데이에 엄청난 의미부여를 하는 나이잖아. 수줍게 건네는 빼빼로를 받아들곤 작게 웃었더니 할머니께서 남자분한테 뭐라고 말이라도 해보라고 하시는거야. "빼빼로 저 오늘 처음 받았어요, 고마워요. 맛있게 먹을게요-." 내 직업이 환자보호자나 환자한테 이것저것 많이 받는 일이 많잖아, 그래서 익숙하게 고맙다고 했더니 또 얼굴을 새빨갛게 붉히는 거야. 아 이거 귀여워서 어떡하지, 주머니에 빼빼로 한통을 넣고 다시 고맙다고 인사한 뒤 다른 환자를 보고 병실을 빠져나왔어. 한시간 남짓한 시간동안 모든 병실을 돌고 스테이션으로 향하는데 변백현이 어디서 나타났는지 내 옆에서 발맞춰 걷는거야. 내가 어? 하면서 쳐다보니까 또 뭐가 그렇게 마음에 안드는지 시선이 정면을 향하고 있어. "빼빼로, 누구한테 받았어?" "오늘 빼빼로 데이래. 너도 몰랐지?" "그래서 이거 누구한테 받은건데?" "604호실에 엊그제 수술하신 할머니알지? 그 환자분 손ㅈ.." "남자?" 변백현은 손자라는 말에 기겁을 하더니 내 주머니에 끼워져있는 빼빼로를 쏙 빼갔어. 내가 달라고 손을 뻗었지만 변백현이 팔을 높이 들어버리는 바람에 나는 그저 씩씩대고 있었지. "아, 원래 이런 거 많이 받잖아, 나!" "어디 결혼한 유부녀가 외간 남자한테 빼빼로를 받아, 압수야." "와..변백현. 넌 주지도 않아놓고 내가 받은 거 뺏기야?" 변백현한테서 빼빼로를 뺏기도 전에 변백현 주머니에서 요란히 울리는 콜에 변백현은 내 손을 한번 쥐어잡고 놓더니 바로 뛰어가버렸어. 변백현 습관 중 하나였는데, 나랑 얘기하다가 저렇게 급하게 뛰어가야하는 일이 생길 때마다 작별인사처럼 손을 꼬옥 쥐었다가 놓고 가곤 했어. 나는 또 그게 왜그리 좋은지, 손이 잡힐 때마다 괜히 내 손을 만지작 만지작. 근데 내 빼빼로는 왜 들고 가는건데.. 그 후로 병동에서 백현이를 볼 수 없었고, 회진시간에도 왜인지 올라오지 않더라구. 무슨 일 생겼나싶어 휴대폰을 들었다가 괜히 바쁜데 전화하는 건가 싶어 다시 주머니에 쑤셔넣었어. 내 퇴근 시간이 가까워지고 백현이는 오지를 않고, 나는 이제 의사쌤한테 인수인계한다고 스테이션에 앉아서 수화기를 들었지. 일단 오늘 응급실에서 올라온 환자 있으니까, 응급실 인계부터.. "네, 외괍니다." "예, 이알 받았어요." "11시34분 올라온 환자 외과에서 신경과 트렌스퍼시켰구요, 또.." "네, 트렌스퍼..또?" "어..통증심하다고해서 모르핀," "네, 모르핀-." 뭐지, 왜 의사 목소리가 이렇게 다정하지..아무생각없이 인계내용 전달하는데 평소 네, 네, 만 하던 전화너머 목소리에서 너무 다정하게 내 끝단어를 되풀이하는거야. 모르핀-,하는데 모르핀이라는 단어가 이렇게 꿀떨어지는 단어였나..싶어서 수화기를 고쳐잡았더니 전화너머에서 푸스스 웃는 소리가 들려. "이제 남편 목소리도 몰라봐요." "..마저 들으세요." "예, 그래야지요. 그래서 모르핀이요?" "네.. 모르핀 2미리 투여했어요. 그 다음은 신경과로 전달 됐어요." "그렇구나.." "그렇긴 뭐가 그렇구나예요. 어딘데 얼굴도 안보이고, 하루ㅈ.." "보고싶었어?" "어디야? 왜 응급실이야?" 왜 또 피터지는 응급실이야, 오늘도 집에 못오는거지. 내 저 한마디에 이런 뜻이 죄다 숨어있다는 걸 간파한 백현이는 조금 늦을 것 같다며 먼저 퇴근하라고 하는거야. 괜히 나까지 기운빠지는 느낌에 알았다고 대답을 했어. 나도 퇴근하려면 아직 많이 남았는데. "밥은 먹고 일해?" "아니이-, 나 배에서 꼬르륵거려.." "왜! 왜 밥도 안먹이고 일을 시켜!" "자기야.." "응, 그래. 왜? 뭐 좀 갖다줘?" 내새끼 밥도 못먹고 노동한다는 말에 내가 발끈했더니 변백현은 푸스스 웃으면서 자기야,하는데 그 목소리에도 힘이 없어. 내 마음 와르르 부서지고 진짜 뭐 빵이라도 사다줘야하나 계속 고민하고 있는데 백현이가 큰 결심을 한 듯이 말을 내뱉어. "나..퇴근하고 가면 고등어조림 해주세요." "고등어..조림?" "나 일주일 전부터 고등어 조림 먹고싶어서..어, 어. 자기야 나 끊을게? 이따 집에서 봐!" 수화기에 대고 쪽쪽 뽀뽀소리를 낸 변백현은 급하게 전화를 끊었어. 나는 수화기를 내려놓고 고등어조림..고등어조림..하고 곱씹었지. 내가 사실 요리에는 정말 소질이 없는데, 그래서 백현이가 요리할 땐 진수성찬이고 내가 요리할 땐 계란요리가 전부였어. 그래도 백현이는 자기 퇴근하고 집에 왔을 때 찌개냄새 나는 게 그렇게 좋다고 해맑게 웃었었는데, 고등어조림이라니... "쌤, 혹시 고등어 조림 하는 법 알아요?" 결국 옆에 앉아서 카트 정리하던 쌤한테 물어봤더니 조근조근 설명해주시는거야. 그걸 열심히 외웠다가 퇴근 길에 고등어 세마리를 샀어. 집에 도착해서 어째어째 인터넷도 뒤져가며 고등어를 조글조글 조렸어. 잘 된 것 같기도하고.. 간을 봤더니 괜찮은 것 같은데..백현이가 9시쯤에 퇴근할 것 같다고 그래서 시간을 맞춰 요리를 끝냈지. 식기전에 와야할 텐데. -고객님이 전화를 받을 수 없어 잠시후.. 이런 망..변백현은 10시가 넘어도 전화를 받지 않았고 고등어조림은 식어갔어. 어쩔 수 없지, 이따 오면 다시 데워서 줘야겠다싶어 식탁위에 널부러져서 기다렸어. 화장도 지워야하고, 옷도 갈아입어야하는데.. 생선요리 하나 했다고 힘이 죽 빠져서 눈이 스르륵 감겼어. 시간은 열두시가 넘어가고 있었고 여전히 연락은 이어지지 않았어. ㅡㅡㅡㅡㅡㅡㅡㅡ (+) 수능이가 끝났어요..! 제가 수능 본 게 엊그제같은데ㅠ0ㅠ..다들 수고하셨습니다~ 이건 제가 수능 보기전에 굉장히 위안을 얻었던 글! 지금도 가끔 읽으면서 중간고사 망치고 기말 망쳤을 때 합리화 쩔게 해용..ㅎㅎㅎ.. 마지막 문장이 정말 와닿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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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10년 전에 썼던 글인데 수능 치른 친구들에 게 다시 보여주고 싶네요^^ 20살때 세상은 승자와 패자, 둘로 갈라진다 붙은 자와 떨어진 자. 이 두세상은 모든 면에서 너무나 도 확연히 차이가 났다. 한쪽은 부모님의축복과 새옷,대학이라는 낭만과 희망이주어졋고 다른 한쪽은 비로소 깨달은 세상 의 무서움에 떨면서 길거리고 무작정 방출되어야 했다. 부모님의 보호도, 학생이라는 울타리도 더 이상은 존재하지않았다 철없던 청소년기의 몇년 이 가져다주는 결과치고는 잔인할정도로 엄청난 차이였다. 나는 비로소 내가 겨우 건너온 다리가 얼마나 무서운 다리였는지 확인할수 있었고, 그 후론 승자팀에 속한 것을 다행스럽게 생각하며 그 사실을 즐기느라 시간가는줄 몰랐다 정말 나의 20살은 이렇게 승리의 축제로 뒤덮였 고, 나는 내 장래를 위한 어떠한 구상, 노력도 하 지않았다. 나의 20살은 이렇게 친구,선배,술,여 자,춤으로 가득 찼다. 나는 세상이 둘로 갈라졌으 며 나는 승자팀이기에 이제 아무 걱정없이 살면 되는줄 알았다. 하지만 그로부터 7년후 나는 놀라운 사실들을 또 목격하게되었다. 영원할것만 같았던 두개의 세상 이 엎치락 뒤치락 뒤바뀌며 그 두세상이 다시 네 개의 세상으로, 8개의 세상으로 또 나누어져 가 는 것을 볼 수잇었다. 대학에 떨어져 방황하던 그 친구가 그 방황을 내용으로 책을 써 베스트 셀러 가 되는가 하면, 명문대를 나와 대기업에 취직했 던 친구가 구조조정으로 실업자가 되기도하고, 춤 을 추다 대학에 떨어진 친구가 최고의 안무가가 되기도 하며, 대학을 못가서 식당을 차렸던 친구 는 그 식당이 번창해서 거부가 되기도했다. 20살 에 보았던 영원할 것만 같던 그 두 세상은 어느 순간엔가 아무런 의미도 영향력도 없는 듯 했다. 20살, 그것은 시작일 뿐이었다. 20살 전에 세상 이 계속 하나일 줄 알고 노력하지 않았던 사람들 이 좌절했듯이, 20살에 보았던 그 두가지 세상이 전부일거라고 믿었던 사람 또한 10년도 안되어 아래 세상으로 추락하고 마는 것 이다. 반면 그 두가지 세상에 굴하지않고 자신의 소신과 꿈을 가 지고 끝없이 노력했던 사람은 그 두개의 세상의 경계선을 훌쩍 뛰어넘을 수 있었다. 지금 20살 여러분들은 모두 합격자, 아니면 불합 격자의 두 세상 중 하나에 속하게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승자는 자만하지 말것이며, 패자는 절망하 지 말아야 할 것이다. 20살에 세상이 둘로 갈라 지는 것을 깨달았다면 7~8년 후에는 그게 다시 뒤바뀔수도 있다는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20살 은 끝이 아니라 시작에 불과하다는 것을 잊지말아 라. 일찍 출발한다고 반드시 이기는것이 아니며 늦게 출발한다고 반드시 지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명심 하기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