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김민석, 김민석." "아니, 그게 아니라.." 종인이가 답답하다는 말투로 고개를 툭 떨궜어. 나는 안절부절 종인이 앞에서 어쩔 줄 모르고 서있고 종인이는 짜증난다는 듯 앞머리를 마구 헤집었어. "야." "..." "너 지금 누구랑 만나는 건," 종인이가 이야기하면서 고개를 천천히 들었는데, 내 뒤를 쳐다보더니 말을 툭 끊는거야. 탁 풍겨오는 안좋은 느낌에 뒤돌아 볼 새도 없이 묵직한 발걸음 소리가 김민석이구나, 했지. 천천히 김민석이 걸어와서 나를 살짝 밀고 종인이 앞에 서더니 종인이 어깨에 감기다 만 압박붕대를 익숙하게 감았어. 내가 반창고 뜯어서 마무리 했더니 김민석이 종인이한테 전투복을 건넸어. "입어." 김민석 말투에서 꾹꾹 참는게 느껴졌어. 나한테는 한번도 보여주지 않았던 말투였는데 이런 자리에서 들으니 기분이 되게 이상한거야. 종인이가 전투복 다 입고 일어섰더니 김민석이 종인이를 한번 쭉 훑고 입을 열어. "김종인, 내가 너 많이 봐줬지." 김민석이 나지막하게 이야기하며 손으로 바닥을 가르켰어. 그 의미를 아는 종인이는 손짓이 떨어지기 무섭게 그 자리에 엎드려버리는데 내가 막 달려가서 잡았어. 방금까지 어깨 안좋다고 치료받던 애한테 엎드리라니 그게 무슨 무식한 소리야. "종인이 지금 어깨 쓰면.." "김종인생도 어깨 두쪽 다 다쳤나?" "..." "충분히 할 수 있다고 보는데." 김민석은 가만히 서있고 종인이가 천천히 나 밀치더니 한쪽 어깨로 몸을 지탱하는거야. 내가 뭐 어떻게 할 수 있는게 없어서 일어선 다음 뒤로 몇발자국 물러났어. 맘같아선 김민석 계급장이랑 내 계급장이랑 바꿔붙인다음에 종인이 일으켜주고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 한쪽 팔로 제 상체 지탱하면서도 한치의 흔들림없는 종인이가 안쓰러워서 발만 동동 구르는데 김민석이 날 쳐다보더니 나가있으라는거야. "나가서 짐 챙기고 있어, 운전병 대기하고 있을거야." "네." "아, 찬열이 파스 하나만 주고..출발하지말고 조금만 대기해." 내가 고개를 끄덕이고 막사에서 나갔어. 괜히 왔어. 아니, 안 올 수는 없었던 거지만..입이 방정이지. 거기서 왜 그런말을 해서는. 김민석은 차 안에서 대기하라는 뜻으로 말한거지만 난 종인이가 걸려서 막사 주변을 계속 맴돌았어. 언제 나오는거야.. "팔 올려봐." "괜찮습니다." "안 올라가지? 올릴 때 많이 아픈가?" 막사 문이 열리는 소리에 얼른 뒤쪽으로 숨었는데, 귀에 꽂히는 익숙한 목소리에 숨을 죽였어. 역시나 김민석은 김종인 팔을 이리저리 만져보면서 한쪽 눈썹을 찡그려. 아까 그렇게 냉철하게 말해놓고도 그 순간이 지나면 다시 마음 약한 사람이 되어버리는거지. 아마 김민석은 김종인 어깨가 나을 때까지 매일매일 종인이 팔을 흔들어볼거야. "가서 배웅하고 와." "..예?" "여자친구 평생 고무신 신겼으면 시덥지 않은 걸로 언성 높이지도 말고." "아.." "서둘러라, 십분 준다." 어, 어, 이럼 안되는데. 나는 막사 뒤에 있는데..발을 동동 구르는데 종인이는 벌써 내가 타고 온 차로 걸어가고 있었어. 어쩔 수 없이 김민석이 걸어가는 뒷모습을 확인하고 종종걸음으로 종인이를 쫓아갔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내 발소리도 못듣길래 뒤에서 손을 살짝 잡았더니, "어, 어.. 종인아." 종인이가 원래 반응이 빠른 편은 아닌데..내가 손을 살짝 쥐자마자 뒤돌아서 나를 폭 끌어 안았어. 순식간에 종인이한테 안긴 나는 슬핏 웃음을 지어보였지. 이래서 연하좋다고 하는건가, 애가 거침없는게 아주 내 스타일이야. "아까 화내서 미안해." "그것만?" "다친 것도 미안해." "그래. 다치면 혼나." 내 말에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이는 종인이 어깨를 톡톡 쳤어. 또 이렇게 다치면 화낼거야. "밥 챙겨먹지? 누구랑 먹어, 요즘은." "너네 없어도 나랑 밥먹을 사람 많거든-, 어제는 세훈이랑 먹었어." "걔 여자친구 있는 거 알지." "야아, 내가 세훈이 잘생겼다고 했지 좋아한다고는 안했다?" 맞잖아. 솔직히 생도대 통틀어서 세훈이가 얼굴로는 일등인 것 같은데. 거기다가 애가 몸매도 끝내줘서 정복을 입으나 전투복을 입으나 옷빨이 산단말이야. 내 말에 심기가 불편한 듯 종인이는 입을 꾹 다물고 입꼬리를 살짝 움직였어. 우리 종인이 뭔가 마음에 안 들때 나오는 표정이지. "조심히 가고..나 훈련 끝나는 주 주말에 외박이야." "음, 그래?" "너도 외박 신청해." "나..할 거 많은데." "할 거 가지고 나와." 아..응..종인이의 강경한 대응에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였어. 내가 상급자야, 쟤가 상급자야? ㅡ "소위니임!" "어머, 찬열아! 일찍 도착했네!" "소위님, 기쁜 소식 하나 있습니다." "뭐?" 점심을 먹고 식당에서 나오는데 생도대에서 찬열이가 툭 튀어나오는거야. 언제 도착한건지, 들어오는 건 보지도 못했는데 벌써 찬열이는 옷도 갈아입고 멀끔하게 씻은 상태였어. 좋은 소식이 있다길래 뭐냐고 물었더니 주변을 슥슥 둘러본 뒤 나한테만 들리게 조용한 목소리로 말해. "..김종인 다음 주 내내 외부 진료 받을 것 같습니다." "어? 왜? 어깨?" "좀 그런 것 같습니다. 아, 아니 막 심각한 건 아니고! 아시지 않습니까, 이번 훈육관님 완-전 깐깐하신거." 기쁜 소식이라더니, 웬 날벼락 같은 소식에 내 표정은 사색이 되어가고 찬열이는 어쩔 줄을 몰라 변명을 마구 해대고 있었어. 그 때 뒤에서 종인이가 저벅저벅 걸어오는게 내 눈에 잡혔지. 어깨를 손으로 툭툭 건드리면서 걷다가 나랑 눈이 마주치지마자 손을 스윽 내리고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걸음을 빠르게 걷는 모습이야. "왜 또 죽을 상이야. 일주일 동안 데이트하고 좋지." 그러곤 박찬열 어깨에 어깨동무를 하면서 근심없는 웃음을 흘려. 근무복 안에 붕대를 감아놔서 한쪽 어깨가 두터워 보이는게 뻔히 티나는 데도 저렇게 아무렇지도 않은 척해. 김종인의 철없는 말에 내가 눈을 흘겼어. 아마 찬열이가 말했던 기쁜 소식이라는 건, 종인이가 외부 진료를 나갈 때마다 나랑 동행하니까 그게 기쁜 소식라는 말이었을거야. 그것도 일주일 내내. "그걸 말이라고해?" "짐은 챙겼어? 점심 먹었으면 바로 나가자." "그래, 정복 입고 보자. 우리?" 정복 입으면 너 꼼짝없이 나한테 높임말 써야되잖아.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어보였더니 김종인도 그 의도를 알아채고 고개를 살짝 숙인채 웃어. 찬열이는 진절머리 난다며 먼저 가버리고, 김종인은 주위를 확인한 뒤 내 손을 살짝 잡았다가 놓았지. "십오분 뒤에 정문 앞." 이게, 상급자한테 명령조야? 종인이 옆구리를 한번 푹 찌르고 뒤돌아서 의무실로 향했어. 옷을 갈아입고, 머리도 다시 다듬은 다음 모자를 꾸욱 눌러썼어. 밖에 바람 많이 불던데, 혹여나 날아갈까 이리저리 잘 끼워 넣었지. 십분이 다 되었나 확인을 하고 종종걸음으로 정문을 향해 걸었어. "바지, 입으라니까.." "여군은 치마지." 이미 도착해서 시계를 보며 나를 기다리고 있던 종인이는 한쪽 눈을 찡그리며 내 치마에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어. 아무래도 얇은 살색 스타킹에 오들오들 떠는 내 종아리가 불쌍했던 모양이야. 규정상 검정스타킹은 안되고, 바지를 입으려니..동복은 바지가 안예쁘단 말이야. "제가 보기엔 바지가 더 예쁩니다." "거짓말! 바지입으면 땅딸보같은데?" "내 눈에만 예쁘면 되는거, 아닙니까?" 음..그렇긴한데. 그나저나, 우리 종인이 이과출신 아니었나..나는 문과출신인데 왜 나보다 말을 잘하는 건지, 왜 항상 내가 말싸움에서 지는 건지. 종인이 옆에서 탁탁 걸었어. 발소리를 톡톡 내며 걷는 내가 웃긴지 내 발을 쳐다보며 종인이는 한 번 웃고. 그러면서 버스정류장 앞까지 도착했지. "아, 날씨 진짜 추워졌다." "추우면 택시 잡겠습," "무슨 택시야! 조금 기다리면 버스와." 이게, 아주. 돈 아까운 줄 몰라요! 길가로 손을 뻗는 종인이의 손을 다시 잡아 채서 차렷자세로 붙여줬더니 또 슬핏 웃어. 얘는 내가 뭐만 하면 웃긴가봐. 그렇게 버스를 기다려서 버스에 올라탔고 종인이는 습관처럼 내 손에서 장갑을 스윽 뺐어. 장갑끼고 손잡이 잡으면 미끌어지니까, 벗고 잡으라는 거야. 그렇게 넘어지지 않게 열심히 버스를 타고 지하철 역까지 와서 내렸지. 고새 손이 시려울까 내리자마자 종인이가 내 손에 다시 장갑을 껴주는데, 바람이 휙 불면서 내 모자가 뒤로 홱 젖혀졌어. "어," "모자 큽니까?" "응, 조금.." "보급 받을 때 안 바꾸고 뭐했습니까." "그러게.." 꼼꼼한 종인이와는 달리 나는 좀 대충대충하는 성격이 있어서 생도생활 때 벌점도 몇번 받고, 보급품같은 것도 잘 확인안하고 받아서 나중에 보면 사이즈가 크거나 작거나하는 일이 다반사였지. 종인이는 뒤로 넘어가려는 내 모자를 잡아채서 다시 머리에 씌워주다가 모자가 많이 크다는 걸 느꼈는지 손가락을 넣어서 이리저리 확인을 했어. 종인이 손가락이 두개나 들어갈 만큼 내 머리에는 큰 모자였어. 깊게 눌러쓴 종인이의 모자 챙 밑으로 눈이 다시금 찌푸려졌지. "무사히 임관한게 신기합니다." 살짝 한숨을 폭 내쉰 종인이는 자기 가방을 열어서 곱게 접힌 손수건을 꺼냈어. 그걸 반쯤 펴서 세모꼴로 접더니 내 모자 안에 덧대고, 꼼꼼하게 다시 내 머리위로 씌웠어. 종인이 손길 덕에 헐렁이는 모자대신 꼭 맞는 모자가 내 머리에 올려졌지. 모자를 몇번 벗었다 썼다 해서 삐져나온 잔머리까지 꼼꼼하게 정리해 준 종인이는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어보였어. "종인이도 조금 있으면 임관하네." "빨리 했으면 좋겠습니까?" "음, 너는?" "하고싶습니다." "나랑 떨어지구 싶나봐-? 그 때되면 나도 재배치받고 너도 부대배치받을텐데." "제가 몇번 얘기했는데." 종인이의 말에 살짝 섭섭함을 느낀 내가 걸음을 늦추며 종인이를 살짝 쳐다보자 보기 드문 개구진 웃음을 지어. 저게, 또 무슨 말을 하려고.. "임관하자마자 결혼할거라고." "..뭐?" "부부는 같은 부대 배치받는 거, 모르십니까?" 이 당돌한 김종인이 다시 훅 치고 들어오는데, 정신을 차릴 수가 없어. 연하는 다 이런가.. ㅡ 아 이거 진짜 쓰기 힘들옹............(징징)오라해서 왔으니까 얼른 봐여! 군인 종인이!!!!ㅡㅡ!!!!츤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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