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리가 아파서 그런지 자다가도 몇 번은 깼어. 일단 밤이 아니어서 불을 꺼도 병실 안은 밝았고 4인실이었지만 환자는 나를 포함해서 세명밖에 없었지. 나는 몰랐는데 종대가 이야기해주더라고, 앞에 할머니 한 분 입원해계시고 한명은 자리에 없어서 모르겠다고. 얼마 자지도 못한 것 같은데 나는 불편함에 눈을 떴고 내 옆에는 아무도 없었어. 시간을 보니, 백현이는 일할 시간이고..
커텐이 사방으로 쳐져 있어서 밖이 안보였는데, 딱히 밖을 보고 싶지도 않았기 때문에 그냥 내버려뒀어. 그렇게 멍하니 앉아서 내 앞에 쳐진 커텐을 쳐다보고 있었어. 우리병원 커텐이 이렇게 생겼었구나..하고 4년만에 새삼 커텐을 자세히 관찰하고 있는데 발소리가 저벅저벅 들리더니 누가 내 커텐을 홱 걷어.
"아유, 쌔앰!"
"어, 봄! 오늘 근무 아니지 않아?"
커텐을 걷은 사람은 바로 우리 병동에 몇 달 전 들어온 신규 간호사였어. 어, 저 쟤 분명히 어제 3일 연속 오프라고 좋아라하면서 갔는데. 왜 오늘도 병원에 있지싶어서 반가움도 잠시 질문을 던졌어.
"제가 병원을 삼일동안 쉬려니까, 온 몸이 근질근질거려서 말이에요. 신규는 역시 눈코뜰새 없는 게 매력이죠!"
"에이, 그래도 3일 오프가 얼마나 귀한건데.. 집에서 잠 좀 자지 그랬어."
"쌤, 집에서 노는 것도 힘든 거 아세요? 동생 밥 차려주느니 출근을 하는 게 나아요, 짐덩이 같은 거."
보미 말에 내가 그저 헤헤 웃었어. 아 발랄해. 요즘 병동에 신규가 많아서 분위기가 한층 밝아진 것 같아. 대부분 신규는 좀 주눅들어있기 마련인데 우리 병동은 분위기도 좋았고, 제일 막내임에도 불구하고 보미는 굉장히 밝고 똑부러지는 애였어.
"쌤, 그 레지쌤이 이 병실을 얼마나 들락날락거리시는지..문지방 닳아 없어지겠어요."
"백현이가? 이거 안되겠네.."
아주 혼쭐을 내줘야겠어. 하고 내가 장난스럽게 이야기하자 보미가 호탕하게 와하하하고 웃어. 병동이 조금 한산한지 앉아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보미 주머니에서 삐삐하고 수신기가 막 울려. 신규답게 반사적으로 벌떡 일어나더라고.
"아이구, 가봐야겠어요. 쌤 심심하죠. 퇴근하고 다시 올게요!"
하고 보미가 수신기의 호출음을 껐는데..삐삐하는 소리가 반대쪽 주머니에서도 들리는거야. 어쩐지 소리가 크다했더니 총 두개의 콜이 울리고 있었던 거였어.
"아, 두개였지."
"두개?"
"아, 아녜요. 쌤 그럼 저 가요! 이따 봐요!"
그 때 내가 알아차린거지. 보미가 왜 수신기를 두개나 들고 있나 했더니 한개가 내꺼였던 거야. 그러니까 정리하자면, 내가 오늘 출근을 하다가 사고가 났고 수술을 하고 입원을 하는 바람에 스테이션은 난리가 났었던거야. 한자리가 비는 순간 업무가 마비될 정도로 타격이 크니까. 그래서 보미는 입사하고 처음 받은 3일 오프였음에도 불구하고 나 대신 자리를 채우러 출근을 한거고, 우리 병동이야 내가 출근을 못했단 걸 알지만 다른 병동은 모를테니까..다른 병동에서 콜을 하면 내 수신기가 계속 울릴 걸 예상하고 두개를 가지고 다녔던 거였어. 순간적으로 눈치를 채버린 날 본 건지 보미는 손을 휘저으며 얼른 병실을 나가버렸고 나는 미안함에 몸둘바를 몰랐어.
그렇게 보미가 나가고, 일하는 백현이를 부를 수도 없으니 혼자 휴대폰으로 이것저것 만지면서 놀고 있었어. 계속 포도당을 맞고 있었더니 배도 안고팠어. 백현이가 나 일어나면 마시라고 놓고 간건지 침대 옆에는 물이 든 컵에 곱게 컵받침이 올려져있었어. 그걸 꼴깍꼴깍 죄다 들이키고 혼자 노는데 다리가 막 저릿저릿 아파오는거야. 침대 머리맡에 콜 버튼이 있긴 한데 저걸 누르기도 미안한게, 나 때문에 병동 난리 났을 걸 생각하니..
결국 나혼자 낑낑 대면서 다리를 움직이지도 못하고 휴대폰을 손에 쥐었어. 백현이한테 전화를 할까..말까..계속 고민하다가 다시 휴대폰을 내려놓고 눈을 꼬옥 감았어. 잠이라도 자야지 싶어서 억지로 잠에 들려 노력했는데..아까 그렇게 잠을 자놓고 잠이 올리가 없지. 다시 눈을 뜨고 한참을 지루하게 있다가 점점 심해지는 다리 통증에 눈물까지 그렁그렁 맺히려고 그러는데,
"저어.."
커텐 뒤에서 웬 처음듣는 목소리가 들려. 갑작스러움에 눈물까지 쏙 들어가고 네, 네?하고 대답을 했어.
"어디 아프신가 해서요. 커텐 걷어도 돼요?"
내가 낑낑거리는 소리를 들었던가, 그런데 이 병실에 세명밖에 없다고 그랬는데..내가 커텐을 걷어도 된다고 이야기하자 커텐이 걷히고 나보다 어려보이는 남자애가 쑤욱 들어왔어.
"어, 괜찮아 보이네? 막 아까는 아파하지 않았어요? 근데 어디 아파서 입원했어요?"
"차랑, 빵-."
"빵? 교통사고!?"
"쉿, 병원에서 소리지르는거아냐."
"아, 맞다. 너무 놀라서요. 근데 괜찮아요? 그러고보니까 이마도 그래서 찢어졌구나?"
"너 몇살이야?"
상당히 어려보이는데. 딱 대학생같아보이는 얼굴에 내가 대화를 짤라먹고 물었더니 씨익 웃어.
"몇살같아요?"
"끽해야 스물셋?"
"어, 나 되게 동안인가봐."
"아니야?"
"그것보단 많아요! 근데 저는 왜 입원했는지 안 궁금해요?"
"폐에 구멍나서."
"어, 어떻게 알았지?!"
그냥 찍은 건데. 사실 며칠 전에 차트 쭈욱 훑으면서 기흉환자 한명 수술 마치고 입원해있다는 걸 얼핏 본 것 같았거든. 이십대였고. 남자였으니까..그냥 찍은 건데 얘가 맞았나봐. 정말로 놀랐다는 듯이 눈을 동그랗게 떠. 눈 진짜 크네..
"와..진짜 어떻게 알았어요?"
"폐에 구멍나게 생겼어, 너."
"욕인가? 욕이죠?"
"아닌데?"
"어, 기분 좋아졌다. 그쵸?"
"아닌데? 지금 기분 완전 구려."
"그거 수술 끝나서 그래요. 저도 마취 풀리고 기분이 무지하게 안좋았거든요. 바람쐬면 괜찮은데! 나가요!"
"내가 나갈 수 있을 것 같아?"
내가 웃으면서 턱짓으로 내 다리를 가르켰더니 그게 뭐가 문제냐는 듯이 씩 웃고 커텐 밖으로 나가버려. 뭐, 어쩌자는 거야?
"짜잔!"
그렇게 들어온 남자애는 휠체어를 끌고 들어왔어. 생각치도 못한 상황에 내가 입을 쩍 벌리고 위아래로 훑었더니 얘도 살짝 난감하게 쳐다보는거야.
"어..근데 여기 앉을 수는 있어요?"
생각해보니, 그게 문제였어. 내가 저기에 혼자 올라탈 수 있을런지. 남자애는 내 어깨랑 다리를 번갈아보더니 내 수액팩이랑 수액 줄을 휠체어에 꽂았어. 많이 꽂아봤는지 나보다 더 능숙한 손놀림이야.
"이쪽 어깨랑, 다리만 불편한거죠?"
"어, 그렇긴 한데.."
나에게 확인사살을 하듯 묻더니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두 팔을 휙휙 돌려가며 풀어. 그리곤 어리둥절하게 쳐다보는 내 얼굴을 한번 쓰윽 훑고는,
"으랏챠."
입으로 효과음까지 내면서 나를 번쩍 들어 휠체어 위에 앉혔어. 이 순식간에 일어난 일에 나는 내가 나가도 되는지 의문을 가졌지만..대부분 전신마취가 풀리고 머리가 아프다그러면 바람 쐬는 게 좋다고 하긴 하거든. 사실 나도 바람을 쐬고 싶었고. 스테이션을 지날 때 거기 있는 간호사쌤들이 알아볼까봐 조마조마했는데, 다들 바빠서 그런지 지나가는 사람은 신경을 안쓰더라구. 그렇게 병동을 빠져나와 밖으로 나왔어.
"안 춥죠?"
"응. 근데 나 눈이 잘 안보여."
"눈이요!? 왜요! 흐릿해요?!"
눈이 잘 안보인다는 말에 기겁을 하면서 내 앞에 무릎을 꿇은 남자애를 보고 웃음이 팡 터졌어. 아니, 그렇게 안보인다는게 아니라 네가 낑겨입혀 놓은 패딩때문에 시야가 가린다고.
"..이렇게, 하면. 보이죠?"
"응. 넌 안추워?"
"전 별로 안추워요. 근데..몇살이에요? 왜 나한테 반말해요."
"너보다 많으니까 반말하지. 왜, 기분나빠?"
"그건 아닌데..대학생?"
"대학생같아? 기분 좋네."
"그럼 직장인?"
"그렇지."
내 말에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 남자애가 눈도 안오는데 날만 춥다고 투덜투덜거리며 자판기에서 음료를 뽑았어. 두개를 뽑아서 하나는 내 손에 쥐어주고 하나는 톡 따서 벌컥벌컥 마셔. 요즘 자판기 음료는 따뜻하게도 나오나봐.
"어, 피난다."
"응?"
"어..피!!"
신나게 음료수를 잘 마셔놓고 갑자기 피가 난다며 눈을 있는대로 크게 뜬다음 기겁을 하는 남자애를 보고 나도 덩달아 놀라서 어디, 어디!? 했어. 그렇게 기겁을 한 피의 정체는 남자애의 수액 줄에 역류해버린 피였고 정말 새발의 피 정도는 될까..싶은 그런 양이었어.
"뭐야, 놀랬잖아."
"어, 어떡하지? 피.."
"줘봐."
"안돼요. 이거 만졌다가 피 더나면 어떡해.."
"수액팩 빼서 들고 있어봐."
내 말에 어리둥절하게 쳐다보면서도 하라는대로 수액팩을 빼서 손에 들어. 손등부근에 역류해있는 피를 살살 만져 풀어주고 수액 떨어지는 속도를 살짝 조절하곤 수액팩을 다시 걸으라고 말하니 신기하다는 눈길을 보내.
"우와..뭐예요? 다 들어갔네."
"자꾸 팔을 위로 드니까 피가 올라오지. 그 쪽 손 많이 쓰지마."
"뭐야, 뭐야? 정체가 뭐예요?"
"뭐 같아?"
"간호사!"
내가 간호사처럼 생겼나, 얼굴만 봐도 간호사라는 답이 나오나..한번씩 백현이는 내 얼굴이 천상 간호사라며 좋아 죽곤 했는데 얘도 그렇게 생각하나봐. 내가 긍정의 의미로 웃었더니 맞췄다며 엄청 좋아해.
"와, 대박!"
"이제 들어가. 너 감기걸리면 골치 아파져."
내 말에 순순히 휠체어를 끌고 다시 병원 안으로 들어온 남자애는 계속해서 신기하다며 방방 뛰었어. 역시 대학생이라 그런지 참 발랄해.
짧은 시간이었는데도 이게 붙임성의 힘인지 남자애는 내가 아주 친한 친구라도 된 것 마냥 신나게 이야기를 해댔어. 나도 한번씩 웃으면서 병실로 돌아왔는데, 아..
"어디갔다와?"
백현이가 회진을 돌고 있었던 건지, 아니면 이 병실에 볼 일이 있었던 건지, 나를 보러 왔던 건지..병실에 턱하니 있었고 나는 당황스러움에 눈만 데굴데굴 굴렸어.
"어 쌤! 우리 병실 새로운 룸메이트에요! 수술했다길래 바람쐬고 왔어요!"
"박찬열, 너 내가 나가지 말라고 했지. 말 안들으면 퇴원 안시킨다."
"에이, 쌔앰."
뭐야, 변백현이랑은 이미 안면을 튼 사이였는지 친근하게 말을 건네는 변백현을 보고 나는 잠시 상황정리를 했어. 그러니까, 변백현이 어디갔다오냐고 한 질문을 저 박찬열이라는 남자애는 자기한테 한 줄 안거지. 아, 맞나? 애초에 나한테 던진 질문이 아니었나? 무튼 박찬열은 지금 나랑 변백현의 사이를 아예 모르는 듯했어. 나를 그저 이 병실에 처음 온 환자 취급하고 있었거든.
"너는..."
그런 변백현이 나를 보더니 머리를 헤집으며 인상을 찌푸렸어. 내가 뭘..잘못했나?
"좀 괜찮아?"
내 예상과 달리 내 앞에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서 내 다리를 들어보는 백현이덕분에 나는 적잖이 당황했어. 내가 대답을 하지 않자 고개를 들어서 나를 쳐다보는 바람에 살짝 끄덕였더니 흐릿하게 웃어.
"뭐야..? 둘이 무슨 사이에요?"
"뭐가, 너 얼른 들어가서 안 누워? 세시에 주사 맞는다고 했지. 그 때 돌아다니지 말라고."
"둘이 알아요?"
"씁, 어른들 이야기하는데."
백현이가 장난스럽게 입소리를 내자 찬열이가 이번엔 나를 쳐다봐. 뭐라고 대답해야할 지 한참을 고민하다가..
"나 이 병원에서 일해."
"외과에서?"
"응."
"아, 그래서 외과쌤이랑, 알겠다."
이제야 백현이와 내가 왜 아는 사이인지 납득이 간다는 표정을 지은 찬열이는 순순히 자기 침대로 돌아갔어. 내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변백현은 뭐라 한마디 하려다가 입을 꾹 다물고, 나도 백현이의 도움으로 침대에 돌아갈 수 있었지.
"퇴근한거야?"
"아직, 마지막 환자가 없어져서."
"없어져? 보호자는?"
"방금 돌아왔어."
백현이의 말에 삼초정도 생각한 나는 그 마지막 환자가 나를 지칭하는 단어였다는 걸 깨달았어. 뭐야..내가 피식 웃었더니 백현이가 침대 위에 트레이를 올려놓곤 내 다리를 꽁꽁 감싼 붕대를 찬찬히 풀었어. 딱히 할 게 없어서 붕대푸는 백현이의 손을 쳐다보고 있는데..
"보지마. 휴대폰 하고 있어."
"휴대폰 너무 많이 해서 지루해."
"보면 아파. 눈 감아, 그럼."
"왜, 나도 볼래."
생떼를 부리며 보겠다고 하는 내 말에 백현이는 잠시 망설이는 듯 하더니 붕대를 완전하게 풀었어. 그리고 나는 내 다리 상태를 확인하고 살짝 충격을 받았지.
"아, 안볼래."
수술 직후라 그런지 봉합흔적도 선명하고 여기저기 발라져있는 빨간색 약도 보기 거북했고..평소 보기 힘든 상처들도 많이 보고 처치해왔지만 내 이야기라 또 다른 느낌이었어. 아 또 주책맞게 눈물나려 그러고 목소리가 살짝 떨리기까지 했어.
"오늘 바람도 쐬고. 기분 좋았겠네."
백현이가 억지로 다른 이야기를 끄집어 내기까지 했지만.
"오늘도 응급실 터진 거 알아? 길이 꽁꽁 얼었대."
나는 결국 서러움이 폭발해버렸고 한손으로 눈을 가린 채 눈물을 주륵주륵 흘렸어.
"그래서 정형외과에 병실이 모자랄 정돈가봐. 자기가 좋아하는 도경수 이틀동안 눈도 못 붙였대."
진짜 한두살 먹은 애도 아니고, 자기 다친 거 보고 운다는 사실이 너무 부끄러워서 땅속으로 숨고 싶은 심정이었어.
"도경수는 좋겠네."
백현이는 능숙한 손길로 소독을 하면서 말을 이어나갔어.
"도경수 힘들다는 말에 이렇게 울어주는 사람도 있고."
내 마음이 어떤지 다 알고 있고 내가 우는 이유도 꿰뚫고 있으면서 일부러 모르는척 장난스럽게 다른 이유로 돌려주는 백현이 덕에 나는 더 엉엉 울었어.
보지않아도 느껴지는 그런 손길에 살짝 기대어서 따끔거림을 참아냈고 순식간에 다시 새 붕대를 감아버린 백현이가 조금은 급하게 이불을 덮어줬어.
"다됐다. 아팠지, 이제 뚝."
"아파, 진짜 아파.."
"이마 지금 볼까? 아니면 조금 뒤에 할래?"
"나중에.."
"그래, 나중에 해. 심심했지. 찬열이랑은 잘 놀았어?"
백현이는 괜히 어린애처럼 엄살을 부리는 나를 다 받아줘가며 이마는 나중에 보자고 다독였어. 사실 이마 상처도 난 보지 못한 상태인데, 얼굴에 난 상처라 백현이가 거울을 죄다 숨긴 탓도 있었고 나도 일부러 확인하고 싶지는 않았어. 사실 그냥 잊어버리고 싶은 마음이 더 컸지.
보조침대에 앉아서 다정하게 말을 건네는 백현이를 쳐다보면서 코를 킁킁 훔쳤어. 백현이가 코 풀래? 하고 물었지만 아니라고 고개를 휙휙 저었어. 가까이서 보는 백현이 얼굴은 많이 피곤해보였어. 눈도 살짝 충혈되어 있는 것 같고 방금 벗은 안경 탓인지 코에는 안경자국이 선명했어. 내가 손을 뻗어서 콧대를 살살 매만지자 백현이가 눈을 슬그머니 감아. 진짜 피곤한가봐.
"나 잘래, 같이 자."
"그럼 나 옷 갈아입고.."
"아니, 그냥 자."
"오늘 왜 이렇게 아기가 됐어요, 나 그냥 자?"
응. 고개를 끄덕끄덕거리는 내 대답에 변백현은 어쩌지도 못하고 보조침대에 누웠어. 사실 나는 피곤하지도 않았고 잠은 더더욱 오지 않았어. 오늘 하루종일 잠을 잤고 딱히 한 것도 없었으니까. 그런데 백현이는 내가 잠을 안자면 저도 안잘거구, 여기서 옷갈아입겠다고 당직실로 간 순간 종인이한테 발목을 붙들릴거야. 물론 종인이가 발목을 잡는 건 아니고 변백현 혼자 발목을 잡히는거지. 얘는 김종인이 많이 신경쓰이는지 꼭 옆에서 하나하나 챙겨줘야했거든. 또 종인이가 혼자 책보고 끙끙거리는 게 있으면 옆에 자리잡고 앉아서 하나하나 설명해 줄 애라..오늘은 그냥 푹 재우고 싶었어. 자기도 인턴 때 혼자 잘 버텨놓고, 왜 그렇게 종인이를 마음에 두는 지는 정말 모를 일이야. 종인이가 여자였다면 내가 엄청 질투했을지도 모르지.
소등시간이 되고 병실 불이 모두 꺼졌어. 찬열이는 자는 건지 색색 숨소리가 들려왔고 백현이는 원체 조용히 자는 타입이라 숨소리조차 잘 들리지 않았어. 나도 눈을 꼬옥 감고 잠을 자려고 애쓰고 있는데 백현이가 살짝 일어나는 듯한 소리가 들려.
"자?"
백현이 목소리가 살짝 들려왔지만 일부러 대답을 하지 않았어. 자리가 불편해서 내가 잠들면 당직실로 가려 그러나, 싶었거든. 백현이는 내일도 일을 해야하니까 편한 잠자리가 제일 중요하잖아.
내 머리를 몇 번 쓸어넘기면서 내가 자는 걸 확인한 백현이는 신발을 신고 병실 밖으로 나갔어. 정말 당직실에 가서 자는구나 했지. 그리고 내일 아침에 나보다 먼저 일어나서 옆에 누워있겠지만.
백현이가 나가고 나는 잠이 오지 않아 계속 뒤척이며 찌뿌둥한 어깨를 톡톡 두드렸어. 그 때 갑자기 병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고, 익숙한 발걸음이 내 침대가까이로 걸어왔어. 백현이가 다시 온건가싶어 나도모르게 숨을 죽이고 자는 척을 했지.
커텐까지 열고 들어온 사람은 백현이가 맞았고 작은 트레이가 부딪히는 소리가 났어. 내 눈을 손바닥으로 살짝 가리는가 싶더니 머리 맡의 보조등이 켜지고 빛에 익숙해지게 하려는 듯 손이 천천히 떨어져 나가. 그리곤 조심스러운 손길로 내 이마에 손을 대더니 반창고를 살짝 뜯어내. 그제서야 나는 백현이가 왜 병실을 빠져나갔었는지 알게 되었어. 몇시간 전까지만 해도 무자비하게 봉합하던 애가 이때까지 맘이 쓰였던 건지 제 숨으로 호호 불어가며 소독을 하는데 웃음이 삐져 나오려는 걸 간신히 참아냈지. 새 거즈를 덧대고 반창고로 고정을 하고 나서도 많이 미안했던 건지 이마를 어루만지는 백현이 손은 떨어질 줄을 몰랐어.
"어쩌자고.."
한숨섞인 백현이 목소리가 들리고 굽혔던 허리를 펴는가 싶더니 또 뭐가 달그락거려, 그리고 내 귀에는 굉장히 익숙한 소리가 들렸어. 내가 저 소리만 몇 년을 들으며 살았는데.
턱, 하고 주사캡이 빠지는 소리가 났고 나는 순간적으로 백현이 손을 잡았어.
"밝아서 깼구나. 불 끌까?"
내가 눈을 뜨자마자 백현이는 자연스럽게 주사를 뒤로 숨기며 내 머리를 쓸어넘겼지만,
"나, 좀.."
투정을 부리며 백현이 가운 자락을 잡았는데 백현이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병원복을 살짝 걷어올리고 방금 뜯었던 주사를 곧장 찔러넣었어. 그리곤 예전에 고등학교 시절 백현이가 했던 것처럼 한 손으로는 약물이 들어가는 팔을 잡아서 살살 쓸어주고, 한 손으로는 천천히 약물을 넣었지.
아릿하게 아파오는 팔목에 온 몸에 힘을 주고 바들바들 떠는 사이 깔끔하게 바늘이 빠져나가고 백현이가 소독솜으로 그 부위를 꾸욱 눌렀어. 고등학교 이후로 항생제를 주사받았던 적이 있었던가, 괜히 더 아픈 것 같고 아무 망설임 없었던 백현이가 살짝 서운했어.
"..변했어. 변백현."
"시간 끌면 더 아프니까..많이 아팠어?"
"예전에는 쩔쩔매더니..변했어."
연애할 때는 주사 하나로 쩔쩔매면서 내 팔을 수십번은 잡았다 놨다 했으면서, 이제는 그럴 필요도 없다 이거지. 그 시절 백현이를 무척 좋아했던 나로서는 지금 모든게 서러워지기 시작했어. 감정기복이 심한 탓도 있었고 하루종일 백현이 얼굴을 못봐서 서운한 탓도 있었을거야. 백현이입장에서는 주사를 안놨다가 염증이 생길까 걱정했을 거고, 내가 항생제를 유독 싫어하는 걸 알기 때문에 자기가 주사하겠다고 스테이션에 따로 말을 했을거야. 그 모든 걸 다 알고 있었지만 지금 이 순간의 감정은 생각하는대로 흘러가지 않았어.
"줘, 내가 할거야."
"문지르면 멍들어. 팔 움직이면 아프다며. 내가 잡고 있을게."
"이제 나 아픈 건 신경도 안쓰잖아, 줘."
"내가 신경을 왜 안써. 왜 그래, 응? 내가 아프게 놨나? 내일은 간호사쌤 불러줄까?"
백현이는 정말 영문을 모르는 듯 나를 재촉했지만 서운한 이유 하나씩 나열하는 것도 웃기잖아. 백현이가 내 왼쪽에 있는데, 돌려 눕기에는 오른 어깨를 다치는 바람에 오른 쪽으로 돌려 눕기가 조금 버거웠어. 살짝 낑낑 대면서 백현이가 안보이는 쪽으로 돌아누웠어.
"어, 조심.."
언제 머리맡의 보조등을 끈건지 암흑 속에서 백현이 손이 내 오른 쪽 어깨 밑으로 들어왔고 어디 눌리는 곳이 없는지 찬찬히 확인한 후 살짝 빠져나갔어. 그리곤 내가 돌아눕느라 휙 꼬여버렸을 수액 줄도 풀어주는지 잠시 아무 말 없이 조용했어.
여기까지 난리를 쳐놓고 보니, 내가 백현이한테 정말 못할 짓을 하는 구나 싶은거야. 따지고 보면 백현이가 잘못한 일 하나 없고 내가 오히려 짐덩이가 된 건데 이것저것 내 기분이 안좋다고 일 끝나고 온 애를 들들 볶아댔으니. 하루에도 수십번 바뀌는 기분에 나도 화가 나는데 백현이는 얼마나 어이없을까 싶었어.
"계속 우네, 도경수 방금 자러 들어가던데.."
습관적으로 내 머리를 넘기다 얼굴을 쓸어만진 백현이가 눈물을 알아채고 슬핏 웃으면서 조용히 말을 했어.
"뭐가 그렇게 서러웠어, 응?"
결국 오분도 안되어서 다시 백현이 쪽으로 돌아누운 내가 코를 훌쩍거리며 한 쪽 팔을 벌렸어. 지금 엄청 추할텐데 깜깜해서 다행이다 싶었지. 어둠속이라 제대로 보이진 않았지만 백현이가 고개를 슬쩍 숙이는 걸 보니 웃고있구나,하고 예상했어. 내가 백현이를 안고 싶었는데, 팔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 바람에 오늘도 백현이한테 폭 안겨서 마음 속으로 용서를 빌었어.
"아프니까 아기가 되네."
토닥토닥 어깨부근을 두드리는 손길을 받으며 나른한 느낌에 눈을 살짝 감았어.
"이것도 나쁜 것 같지는 않고.."
그 와중에도 백현이 취향 참..
ㅡ
오늘 좀 길져!? 그쳐!? (답정너)
늦게 와서 미안해요....8ㅅ8...빨리 오고 싶었는데...어디서 끊어야될지...몰라서..
갑자기 댓글 늘어서 뭔가 뭔가..좀...잘 써야될것같은 그런....예전처럼 쓰레기글을 쓰면 안되겠다는..그..런..느낌을..좀 ..받았는데...
오늘은 약간 쓰렉같다눙..ㅎ..담편은 좀 더....신경을....네...
그래도 재밌다고 해주실 여러분...사랑해여....
+ 아그리고!! 예전 글도 댓글을 다 확인하긴 하는데 ! 만약에 제가 17편의 댓글알림쪽지를 하나 타고 들어가잖아요!? 그럼 17편의 댓글 알림쪽지가 다 읽음으로 표시가 되어버려요ㅠㅠ그래서 제가 그 윗 댓글은 모르고 건너뛸때도 있어요..그러니 질문이나 제가 꼬꼭 답댓을 써야되는 그런 댓글은 제일 최신편에 해주시면.감사하겠습니당!!!!ㅠㅠ!!!한번씩 제가 뒤늦게 보ㅏ가지고........흡...멍충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