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자리가 바뀌어서 그런지 나는 깊에 잠에 들지 못했어. 중간에도 몇 번을 깼었는데 그 때마다 백현이는 세상모르고 잘 자더라구. 세번째 깼을 때는 애가 얼마나 정신없이 자는 지 고개까지 보조침대 밖으로 떨구고 자길래 안쓰러움 반 우스움 반으로 머리를 제대로 올려줬어. 한 손으로 올리려니 그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어.
그렇게 나는 살짝 옅은 잠에 빠졌을 때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잠에서 깼어. 꿈틀거리면서 백현이가 있을 보조침대 쪽으로 손을 내려 뻗었더니 백현이가 부드럽게 손을 감싸잡아와. 아직 있구나.
"나 일 하고 올게요, 더 자고 있어."
"..어느른 며씨에 끝나아.."
"목 말라? 어디 봐, 물 좀 먹고 자자."
어제 수술을 한 탓인지 목이 건조해 목소리가 쩍쩍 갈라졌고 가운을 막 챙겨든 백현이는 손에 든 걸 죄다 내려놓고 내 등을 받쳐 일으켰어. 아, 일어나기 힘든데. 얼굴을 살짝 찡그리며 일어난 내가 입을 슬쩍 벌렸더니 턱을 한 손으로 받치고 입가에 컵을 갖다 대줘. 꼴깍꼴깍 물을 마셨떠니 푸스스 웃은 백현이가 다시 자라며 이불을 덮어줬고 나는 손을 살짝 빼서 흔들어줬어.
ㅡ
"이 쪽으로 돌리면 아프세,"
"아프죠 당연히! 그 쪽같으면 안 아파요? 붕대로 칭칭 감아놨는데 그게 어떻게 안아파?"
"...환자분한테 물었는데요."
"아니, 딱 봐도 모르냐구. 어제도 아파서 막 우는 소리 내가 다 들었는데!"
"그냥.. 선배님 불러드릴까요?"
나는 아침부터 종인이와 찬열이가 목청 높여 싸우는 걸 지켜보고 있었어. 찬열이는 아침식사를 같이 하자며 식판을 들고 내 침대로 건너왔고 나도 심심했던 터라 같이 아침을 먹었지. 그리고 찬열이가 식판을 내 것까지 치워 준 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종인이가 들어온 거야. 백현이가 많이 바빴던 건지, 아니면 일부러 종인이만 보낸 건지는 모르겠는데 여튼 종인이 혼자 왔어. 그렇게 종인이가 내 다리 붕대를 살짝 풀더니 이쪽 저쪽으로 돌려보며 아프냐고 묻는데, 찬열이가 갑자기 성을 냈던거야.
"아, 그냥 변백현쌤 부르라니까요! 그 쌤은 엄청 다정했는데, 이 쌤은 별로야. 완전."
"박찬열, 너 왜 그래. 종인이한테.."
"누나도 솔직히 변백현쌤이 더 좋잖아요. 생기기도 그 쌤이 훨씬 나은데. 거기다 이 사람 인턴이잖아요."
"너 진짜 왜 그래? 종인아, 나 다 괜찮은 것 같아. 가도 돼."
내 말에 종인이는 꾸벅 고개를 숙여 인사하곤 나가버렸어. 기분이 많이 안 좋아보이는데, 무슨 일이 있었나..
종인이가 나가고 나는 찬열이 등을 마구 때리면서 왜 그랬냐고 눈을 흘겼어.
"너 애도 아니고 왜 이래? 변백현도 몇 달 전까지 인턴이었거든?"
"아, 변쌤이랑은 다르죠! 아, 근데 누나.."
"말 돌리지마. 너 한 번만 이유없이 종인이한테 그러면 혼날 줄 알아."
"아, 아 들어봐요!"
진짜 할 말이 있다는 듯 귀를 내어보라는 제스쳐에 살짝 고개를 가져다 댔더니 한다는 말이..
"변백현 쌤이랑..뭐 있죠?"
"..큽!!!"
"뭐 있네! 내가 딱 보자마자 낌새가 왔죠."
찬열는 제 말에 목에 사레가 들려서 켁켁거리는 내 등을 탁탁 쳐주면서 다 알고 있다는 표정을 지었어. 사레가 심하게 들린건지 좀 처럼 정신을 못차리고 계속해서 기침을 하는데 찬열이는 혼자 엄청 진지하고 흥미로워보여.
"우리가 어제 바람 쐬고 딱 들어왔잖아요, 근데 변쌤 표정이 엄청 묘했다니까요?"
"뭐, 뭐가..난 모르겠던데."
"아니 그게. 걱정이랑 약간의 질투? 아냐, 질투라기 보다는. 어쨌든 묘했어요. 그냥 병원 동료를 보는 그런 눈빛이 아니었단 말이야."
"당연히 걱정은 하지, 동룐데."
"들어봐요. 거기까지는 내가 이해를 하겠는데..어제 누나가 변백현 쌤을 그냥 동료처럼 소개했을 때 있잖아요."
"어..아, 응."
"그 때 변쌤이 누나 발 만지고 있다가 갑자기 손을 멈췄다니까요. 자기를 뭐라고 소개할 건지 신경이 쓰였던거지."
거기까지 듣고나니 점점 이야기는 내 쪽으로 흥미로워졌어. 찬열이는 아마 자기가 엄청난 걸 발견한듯, 백현이와 나 사이의 큐피트가 되어줄 것처럼 열의에 불타있었지만 나는 그런 찬열이를 보는게 너무 재미있었지.
"그리고 어제 밤에 변쌤이 주사 놔줬죠? 그리고 누나 막 삐지는 것도, 저 다 들었거든요."
"...너는 그 때까지 안자고 뭘 했길래, 그걸.."
"말소리는 웅얼거려서 잘 안들렸고, 그 때 뭐라고 한 거예요? 쌤이 주사 잘못놨다고 그랬던 것 같은데."
"그냥, 뭐.."
"변쌤이 주사 잘못놔서 누나가 삐진거죠? 애도 아니고, 다 큰 어른이 뭐 그런 걸로 삐지고 그래요. 뭐..원래 연애할 때는 어려지는 거니까. 이해해요!"
내가 어제 백현이가 바로 주사를 찔러넣었다고 한참을 투정부렸었잖아. 그걸 찬열이가 들었나봐. 내가 토라지고 나서 백현이가 자기가 잘못놓은거냐고, 많이 아팠냐고 하는 말을 듣고 찬열이는 정말로 백현이가 주사를 잘못놔서 내가 아파했던 걸로 이해를 한거고. 다행히도 내가 울컥해서 말을 웅얼거린 탓에 내 말은 제대로 못알아들은 듯 했어. 뭔가 조금 민망하기도 한데 찬열이 시점에서 보는 우리가 너무 흥미로워서 나는 잠자코 맞장구를 쳐주고 있었어.
"아, 그리고 내가 잠들어서..그 뒤는 못들었어요."
정말로 아쉬워하는 듯한 찬열이는 침대에 머리를 박고 마구 문질렀어.
"아, 이거 말고 뭐 할 말이 있었는데.."
한참을 가만히 생각하던 찬열이가 아!하고 고개를 퍽 들더니 눈을 초롱초롱하게 빛내면서 나를 쳐다봐.
"일단, 이것부터 얘기해봐요. 누나는 쌤 어때요?"
"그건 왜?"
"아, 그래야 내가 뭘 더 이야기해주든지 하죠! 괜히 삽질할 수도 있잖아."
"음.."
"뭘 고민해요? 솔직히 변백현쌤이면 완벽한 거 아닌가? 잘생겼지, 성격 좋지, 다정하지. 거기다 외과 의사야."
"그래?"
"그 쌤은 지인짜루. 다정함이 몸에 배어있어요. 나한테는 조금 격하지만."
"그래, 괜찮지. 그 정도면."
애써 태연한 척 고개를 슬쩍 끄덕였더니 찬열이가 다시금 나를 재촉해와.
"괜찮죠? 솔직히 누나도 마음 있죠?"
"조금?"
"끝났네, 끝났어. 그냥 만나요! 변쌤은 누나 백퍼 좋아한다니까요?"
"그건 모르는거다? 걔는 원래 다정하잖아."
"환자한테 다정한 거랑, 누나한테 다정한 거랑 차원이 다르죠. 아, 답답해."
찬열이가 급기야 자기 가슴까지 퍽퍽 치면서 답답해하기 시작했어.
"어이구, 가슴 째 놓고 가슴을 치면 어떡해. 재수술할래?"
"이게 문제가 아니라, 어제 누나 잠들고 나서 쌤이 미안하다고 한 건 들었어요?"
"어? 미안?"
"당연히 못들었지. 그렇게 세상모르고 자는데. 그러니까 쌤 마음도 모르지!"
"아니 무슨.."
"저도 새벽에 깨서 들은거예요. 그 때까지 그 쌤이 안 잔건지, 쌤도 자다 깬 건지는 모르겠는데. 미안하다고 했어요, 쌤이."
순식간에 들이닥친 사실에 내가 벙져서 말 없이 찬열이를 쳐다봤어. 찬열이는 이거다 싶었는지 그 틈새를 치고 들어와.
"아니 무슨, 주사 좀 잘못놨다고 그렇게 미안해하는 사람이 어디있어. 목소리에서는 꿀이 뚝뚝 떨어지는데..내가 다 반할 뻔했어요."
찬열아, 너는 모르겠지만. 걔가 오전에 나한테 조금 미안할 짓을 하긴 했는데. 그건 그렇고..나는 백현이가 그렇게까지 마음에 담아둘 거라곤 생각을 못했거든. 백현이 성격에 자다 깰 성격은 아니고 아마 그 때까지 잠을 못 잤던 걸거야. 내가 굉장히 뒤척이다 잤으니 백현이는 아마 상당히 늦게 잤을 텐데. 뭐 때문에 늦게까지 잠을 안잤던 건지는 모르겠는데 내가 괜히 밤에 투정을 부려서 백현이 마음을 불편하게 한 건가, 살짝 자책감이 들었어.
"걱정 마요, 쌤은 백퍼 누나 좋아하니까. "
살짝 심각해졌다가, 확답을 내리는 찬열이 말에 나는 다시 웃음을 터뜨렸어. 이런 찬열이가 우리 둘이 결혼한 사이라는 걸 알면 어떤 기분일까, 하고 생각했지. 배신감을 느끼려나.
"그래, 걱정 안해. 그건 그렇고 너 종인이한테 왜그래?"
"종인이요? 그 인턴?"
"그래. 종인이가 뭐 잘못했어? 인턴이라서 실수도 하고 그러는거야.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닌데 너 그걸로 마음에 담아두고 그러면 못쓴다? 젊은애가.."
"저 그런 걸로 마음에 담아두는 사람 아니거든요. 그리고 실수는 아침에 피 뽑아간 간호사가 더 많이 했지, 뭐."
"누가?"
내가 핀잔을 줬더니 자기 그런사람 아니라며 입을 삐죽 내밀고 툴툴대. 뭐가 있긴 있는 것 같은데. 그나저나, 채혈로 실수할만한 간호사면 신규일텐데. 우리 병동에 신규가 보미랑,
"..저, 선배님."
"어, 이 간호사.."
그래, 초롱이. 초롱이가 커텐을 걷고 들어왔는데, 찬열이가 반사적으로 손가락으로 초롱이를 가르켜. 아마 아침에 채혈해간 간호사가 초롱이었나봐. 그 손가락에 초롱이는 저격을 당한 듯 고개를 퍽 숙였어.
"어, 괜찮아 괜찮아. 그럴 수도 있지. 찬열아. 너 사람 그렇게 몰아세우면 못쓴다? 응? 젊은 애가!"
"어, 아닌데. 저 진짜 괜찮았는데.."
"아이구, 초롱이 또 울려그러네. 눈물 뚝!"
애가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고이기 시작하는데 그 순간 찬열이는 완전히 나쁜놈이 되어버렸지. 찬열이는 당황한건지 손을 막 내저으며 아니라고 변명을 시작해.
"아니, 진짜로 괜찮아요! 제가 통증을 잘 못느끼는 사람이라 하나도 안 아팠어요. 그리고 막 약하신 분한테 실수하는 것보다는 저 같은 사람한테 실수하는 게 낫죠! 그쵸? 저..울지 마세요."
애가 정말 미안한지 말끝을 흐리는데 그 말을 듣고 초롱이는 눈물을 두번 똑똑 흘렸어. 찬열이 입장에서는 정말로 위로를 하려고 건넨 말이었는데, 초롱이가 들을 때는 자기 실수를 콕 찝어서 얘기한 꼴이 되어버렸으니 그럴 만도 하지. 그래도 이제 울음 참는 법을 좀 배운 건지 바로 눈물을 닦고 헤,하고 웃어보이는데 이제 병동에 조금씩 적응해가는구나 싶어서 뿌듯했어.
"헤, 또 울었어.."
"아이구, 밥은 먹었어?"
내 말에 초롱이가 고개를 슬쩍 저으면서 바빠서 아직,하고 조용히 이야기했는데 그 말을 들은 찬열이가 벌떡 일어나더니 분개를 해.
"아니! 이게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짓인데, 밥을 안 먹고 일을 하는 게 말이나 되는 거예요!?"
뭐야 얘..갑자기 화를 내는 찬열이를 보고 초롱이는 겁을 먹은 듯 살짝 움추러들었어. 그걸 보고 찬열이도 아차 싶었는지 바로 자리에 앉으면서 아니, 그러니까..밥은 먹고 하자는 거죠. 하고 마무리를 지어. 아까 내 아침식사 챙길 때도 그랬는데 상당히 밥에 예민한 아이같았어.
"선배님, 저 근데.."
"응?"
"저.."
"응, 말해. 왜?"
초롱이가 뭔가 할 말이 있는 것 같긴 한데. 자꾸 망설이는게..
"저, 선배님 채혈..해 가야 하는데.."
아..
"죄송해요.."
"아, 아니야. 괜찮아. 잘 할 수 있지?"
나도 바늘 무서워하는 사람인데..김종대가 항상 나보고 넌 하루에도 몇 번을 주사바늘 드는 애가 왜 자기가 주사맞는 건 그렇게도 질색하냐고 그랬었거든. 그럴 정도로 나는 내 직업이랑 안 맞게 주사를 싫어했고, 채혈이면 더더욱 싫어했어. 그게, 바늘을 꽂고 피를 뽑는 과정에서 바늘이 흔들리는게.. 정말 끔찍하단 말이야. 하지만 초롱이는 신규였고, 신규가 채혈을 할 때 안정적이길 바라는 건 너무 큰 기대였지. 게다가 내 혈관을 찾을 수 있긴 할까..
"이번에는 실수 안하고.."
"그래, 응. 긴장 풀고해."
"네.."
벌써부터 자신감이 없는데 내가 더 기죽일까 싶어 두근거리는 심장을 부여잡았어. 아, 백현이가 왔으면 좋겠다. 차라리 백현이가 왔으면 정말 좋겠다..
"누나가 좀 알려주면 되지않나? 누나도 간호사라면서요."
"아, 응. 그래. 초롱아 내가 봐줄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내가 봐주긴 뭘 봐줘, 팔에 고무줄 묶은 순간부터 눈 앞이 흐릿해서 바늘 끝도 제대로 안보이는데. 난 원래 내 팔에 바늘 들어가는 걸 눈뜨고 못보는 사람이란 말이야..
초롱이는 나를 철썩같이 믿고 바늘을 뽑아서 내 팔에 가져다 대는데,
"저기, 박초롱 선생님."
그 때 구세주처럼 커텐을 열고 종인이가 나타났고 초롱이는 살았다는 표정으로 종인이를 쳐다봤어. 나도 종인이를 보고 한숨 돌렸지.
"제가 조금 도와드릴까 해서.."
"아..선배님이 도와주신다고 하셨는데.."
"제가 도와드릴게요."
초롱이의 말에 나를 한번 스윽 본 종인이가 고개를 숙이고 슬쩍 웃었어. 종인이는 알거든, 내가 주사를 극도로 싫어하는 걸..백현이 앞에서 난리치는 걸 종종 봐왔으니까. 괜히 민망해져서 시선을 피해버렸어.
"혈관 먼저 찾아서 대 보세요."
"여기 같은데, 터질까봐 못 찌르겠어요.."
"이 정도는 괜찮아요. 떨지 말고 넣으면 돼요."
"아.."
"떨리나 보네, 제가 잡아줄테니까.."
긴장해서 차가워진 초롱이 손 위로 종인이 손이 닿는 건지 따뜻한 손길이 느껴졌고 금방 안정을 찾은 바늘은 제 길로 들어간 듯 했어.
"됐다, 당겨요."
쟤네 둘 저러고 있는 거 보니 예전에 백현이랑 연애할 때 생각도 나고. 확실히 종인이가 받쳐주고 초롱이가 통을 교체했더니 흔들림없이 잘 마무리가 됐어. 덩달아 긴장했던 나도 긴장을 풀고 초롱이도 긴장이 풀리는지 헤헤 웃고. 종인이는 옆에서 아빠미소 짓고 서있고. 쟤네 둘은 아직도 진전이 없는 건가, 둘이 말하는 말투를 보아하니 아무 일도 없었나봐. 우리 결혼식 때 손붙들고 뛰어오길래 뭐라도 있나 했더니.
그렇게 우리 초롱이랑 종인이는 병실을 나가고 찬열이는 뭐가 마음에 안든다는 표정으로 또 뚱해있어. 종인이가 들어오기 전까지만 해도 괜찮았는데, 역시 종인이가 마음에 안들어서 그런건가.
"너 진짜, 종인이가 너한테 뭐 잘못했어?"
"뭐가요."
"어머, 얘 봐라. 너 지금 나한테 화내?"
"아니거든요."
"아이구, 그래요. 우리 찬열이 뭐 때문에 이렇게 삐져있을까?"
"애들한테 쓰는 말투 하지마요."
"그럼 니가 애 같은 짓을 하지마."
"아, 몰라."
씨잉, 하고 다시 침대에 고개를 퍽 박은 찬열이가 자기 머리를 마구 헤집었어. 얘도 변백현이랑 습관이 똑같네. 나도 습관처럼 백현이한테 하듯 흐트러진 찬열이 머리를 스윽스윽 만져서 정돈했어.
그때 누가 커텐을 똑똑 두드려.
"계십니까?"
장난기 가득한 김종대 목소리야. 그 소리에 엎어져있던 찬열이가 고개를 들었고 커텐 안으로 김종대가 들어왔어. 자동적으로 나는 김종대의 손에 시선이 갔고,
"사왔어, 사왔어. 친구 들어오자마자 손부터 확인하는 거 봐."
"역시, 김종대. 출근은?"
"나이트 끝내고 집에서 좀 자다가 왔지. 근데, 누구?"
김종대가 손에 들린 주전부리를 침대 옆에 내려놓으며 찬열이를 보고 물었고 찬열이는 살짝 일어나서 인사를 했어.
"응, 나랑 병실 같이 쓰는 애."
"와, 뭐야? 변백현이 보면 뒤집어지는 거 아냐?"
"무슨. 너는 좀 생각을 해도.."
"잘 들으세요, 김간. 누누히 말하지만 4살차이는 궁합도 안 보는 게 아니라 그냥 철컹철컹이야."
예전에 대학다닐 때 나보다 네살 많은 복학생 선배가 나한테 조금 치근덕댄 적이 있었는데, 그 때 김종대가 그 선배한테 했던 말이야. 선배, 4살 어린애한테 이러시면 경찰서 가셔야죠. 애가 싫다는데. 하고 쐐기를 박았었지.
"얘, 너 이러고 있다가 이 병동 레지던트한테 들키면."
"저도 알아요! 둘이 그렇고 그런 사이, 맞죠?"
"그래. 잘 아네. 얼른 침대로 썩 돌아가. 투약시간 다 됐다."
니가 우리 병원 투약시간은 또 뭐하러 꿰고 있는 건데..무튼 김종대의 등장으로 찬열이는 눈치껏 자리를 비켜주는 듯 자기 침대로 돌아갔어. 투약시간이라는 말에 귀신같이 자기 침대로 가는 걸 보아하니 쟤도 평범한 환자랑 다를 바 없긴 한가봐.
"우와, 김종대 왔으니까 바람 좀 쐬러가자. 답답해."
"그래, 약 받고 가."
"나 점심 사줘."
"병원 밥은?"
"미음 나오는데, 맛이 없어."
"미음이니까 맛이 없지. 속 괜찮아?"
"응. 나 호박죽 먹고싶은데."
"회진은 돌았어?"
"응. 아침에 인턴이 보고 갔어."
그래, 그럼 가서 죽 사먹자. 하고 흔쾌히 김종대는 허락을 했어. 변백현이랑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김종대는 내가 하자는 일에 딱히 구속을 하지 않는거? 학창시절에도 가을만 되면 검정스타킹을 신으라고 난리를 치는 변백현과 달리 김종대는 얼어죽어도 니가 얼어죽지 내가 얼어죽냐는 마인드였어. 변백현보다 훨씬 융통성이 있는 애기도 했고.
"대신 감기걸리면 변백현 난리나니까. 패딩 입고 나가."
"패딩 없는데."
"이거 입고."
자기가 입고 있던 패딩을 벗어서 내게 건넨 김종대는 침대 옆의 옷장을 열어서 백현이 후드집업을 꺼냈어. 내가 여기 입원해있다 보니 백현이 옷들이 몇개는 병실에 들어있었거든. 좀 추울 것 같은데. 어떻게든 되겠지 싶어서 나는 김종대가 끄는 휠체어 위에 앉아 신나게 한 쪽 다리를 들썩였지.
오늘도 여전히 바쁜 스테이션을 지나, 찬바람이 부는 밖으로 나갔어. 아, 오늘은 좀 춥네.
"패딩 주머니에 장갑있어. 그거 끼든지 주머니에 손을 넣든지 해라. 아까보다 더 춥네."
"장갑을 니가 껴, 나는 어차피 손 안 빠져나와."
패딩 소매가 긴 탓인지 손이 패딩 속에 있어서 따뜻했고 휠체어를 끄는 김종대에게 장갑을 건넸어.
"호박죽?"
"콜!!"
"신났네, 신났어."
병원 정문 앞에 있는 죽집으로 김종대는 발길을 옮겼고 강추위에 패딩 모자까지 눌러쓴 나는 따뜻한 죽집으로 들어서자마자 모자를 벗으며 숨을 뱉어냈어. 아, 따뜻하다.
김종대가 호박죽을 시키고 금방 따끈따끈한 호박죽이 내 앞에 놓여졌지. 얼마만에 먹는 음식이야..맨날 미음만 먹다가. 내가 호박죽을 뜨면 김종대가 그 위에 김치랑 고기같은 걸 올려주고. 나는 넙죽넙죽 먹기만 했지. 그렇게 눈 깜짝할 새에 한그릇을 뚝딱 비우고 부른 배를 문질렀어.
"이제 좀 배불러?"
"응, 아. 이제 사람 사는 것 같네."
"그 먹보가 이틀 내내 미음만 먹었으니. 많이 참았다."
"이제 갈까, 백현이 퇴근시간도 됐고."
시간을 보니 백현이가 퇴근할 시간이야. 아침에 네시쯤 퇴근한다고 그랬던 것 같은데. 꿈이었나. 무튼 네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이라 얼른 병원으로 가자고 김종대를 재촉했어. 내 말에 알겠다며 대답만 네에, 네에. 하곤 천천히 휠체어를 끌어. 조금 춥긴 했지만 그래도 오랜만에 쐬는 바깥 바람에 나는 얼굴을 다 내놓고 공기를 훅훅 들이마셨지.
"얼굴 집어 넣어라. 감기걸린다."
변백현 같았으면 정말로 내 머리에 모자를 뒤집어 씌우고 목도리를 둘둘 감았을 테지만, 김종대는 말만. 그리고 픽 웃고 말아. 그렇게 병원으로 다시 돌아오고 엘레베이터를 타고 병실로 올라갔어.
병실 입구에 도착해 김종대가 문을 옆으로 밀려고 휠체어를 잠시 세워놓고 문을 옆으로 밀었는데,
"어, 변백현?"
백현이 머리가 잔뜩 흐트러진 채로 병실에서 뛰어나와.
"너, 어디!!"
"어?"
"어디, 어디갔었어. 왜 말도 안하고 사라져? 너 진짜.."
"왜 화를 내..한 시간도 안 있었는,"
"야, 김종대. 너는 왜 전화를 또 안받고. 밥은 또 왜 안먹여? 밥을 먹어야 약을 먹을 거 아니야, 그걸 둘 다 몰라서 그래?"
"김종대한테는 왜 그러는데? 그냥 바람 쐬러 갔나보다 하면 되지 넌 뭘 또 그걸 가지고 새삼스럽게 난리야. 그리고 밥은 방금,"
"미안, 미안. 변백현. 조금 있다 먹인다는 게 이렇게 됐네. 화내지 말고, 애 울겠다."
방금 밖에서 죽 먹고 왔다고 반박하려 했는데, 김종대가 내 등을 살짝 치더니 조용히하라는 신호를 보내와. 미안하다고 먼저 선수치는 김종대 옆에서 나는 이해가 안간다는 표정으로 변백현을 쳐다봤어.
"수액 줄은 다 꼬이고. 주사시간에 나가서 소염제는 맞지도 않고. 너 그러다 덧나서 흉지게 둘거야? 올라와, 빨리."
"..올려줘."
변백현이 다다다 쏘아붙이는 바람에 고개를 퍽 숙인 내가 김종대 팔을 잡아 끌면서 올려달라고 말했더니 변백현이 허리를 굽혀서 내 팔을 잡아와.
"너 말고, 김종대."
"또 고집 피운,"
"김종대, 빨리."
변백현은 다시 허리를 펴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고 눈치를 슬금슬금 보던 김종대가 내 팔을 한쪽 어깨에 걸치고 다리를 받쳐서 침대로 올려줬어. 변백현은 안그래도 엉망인 머리를 다시금 헤집으며 답답함을 표출했고 나는 침대 위의 트레이를 보고, 아니 그 위의 주사와 앰플을 보고 경악하며 변백현을 쳐다봤어. 아니, 왜 두개나 돼?
"그러게 누가 약 시간 거르래?"
변백현의 저 한마디에 나는 오기가 생겼고 앰플을 따고 주사기에 약물을 집어넣을 때까지도 입을 꾸욱 다물었어.
"야, 변백. 소염제는 수액에 믹스하는 게 낫지 않냐. 안 그래도 바늘 싫어하는 애한테."
"어느 세월에. 거기다 믹스하면 언제 들어갈 줄 알고."
여전히 딱딱한 변백현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나는 살짝 긴장을 했고 변백현은 내 팔을 잡았다가 그걸 느낀 건지 한숨을 푹 내쉬었어.
"힘 풀어."
변백현의 무책임한 발언에 나는 억지로 억지로 힘을 뺐고 그래도 마음에 안 든 건지 한 손으로는 내 손을 포개 잡고 한 손으로는 팔을 주물러. 말투와는 다르게 따뜻한 손에 나는 슬며시 마음이 풀리려 했고 변백현은 여전히 입을 꾹 다문 채였어.
두어번 더 주물러 준 변백현이 주사를 톡톡 손가락으로 몇 번 튕긴 뒤 캡을 잡아 뺐고 그 모습을 나는 너무 보고 싶었지만 자존심이 있기에 시선을 피했어. 소리로만 만족한 내가 손 끝이 점점 차가워졌고 주먹을 꼭 쥐었어.
내 반대 쪽 손은 김종대가 잡아주고 있었기 때문에 그 쪽 손에 온 힘을 모아 꽉 쥐었더니 김종대가 푸스스 웃으면서 손등을 쓸어내려와. 그 사이 변백현은 내 팔을 소독솜으로 문지르다가 손톱으로 한 번 누른 후 바늘을 찔러 넣었고 어제 맞은 경험이 있어서 그런지 나름 잘 참아냈어. 아무리 생각해도, 염증 관련된 주사는 너무 아파.
"어느 쪽."
"..어?"
"반대 쪽 줘봐."
아, 다른 주사는 어디 맞을 거냐고 묻는 거였구나. 내가 어벙벙하게 쳐다보자 변백현은 내가 고통에서 정신을 차리지 못한다고 생각했는지 멋대로 반대 쪽 손을 잡았어. 너, 화는 뭐같이 내고 손은 왜 그렇게 다정하게 잡는 건데.
결국 두 쪽 다 주사 구멍을 뻥뻥 뚫어 놓고 나는 정신이 반 쯤 나갔어. 오른 쪽 팔이 더 아픈 것 같기도 하고. 아닌가. 왼쪽인가..
"기다리고 있어. 어깨도 봐야하니까."
변백현이 다 쓴 앰플과 주사를 챙겨서 병실을 빠져나갔어. 그제야 김종대와 나는 말문을 트고 변백현을 까기 시작했지.
"숨 막혀 죽는 줄 알았네. 쟤 왜 저렇게 예민해."
"명불허전 변백현 아버님. 어휴, 간쫄려. 변백현 밑에 있는 인턴이 다 불쌍하다."
"야, 몰라서 그렇지. 쟤 지 직속 인턴한테 꿈뻑 죽어."
"여자?"
"여자면 내가 가만 뒀겠냐."
"그럼 그렇지. 야, 그리고 죽 먹은 거 얘기하지마. 더 화낼라."
그렇게 신나게 입을 털고 있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변백현이 빨리 돌아왔어. 병실로 들어서는 발자국 소리에 김종대와 나는 다시금 입을 다물었지. 변틀러 오셨다, 야.
ㅡ
하이고! 별 내용도 없는데 길기만 길어서..괜히 기대만 높이고..그져..머리박을게요..
사실 글 올리면 자꾸 렉이 먹어서 한 일분 있어야지 제가 제 글을 볼 수 있는..그런..나도 내 글을 못보고 있는데 댓글이 달리는 ..그런..아이러니한..
다들 일등에 목숨을 거는게 왜이리 씹덕스러운지..
아 그리구 암호닉요...8ㅅ8..막 신청하고 떠나셔도..돼요..네..근데..제가 지금 정리를 안하고 있어서..
그래도..그냥 저 누구예요!!!하고 막 들이미셔도 괜찮아요 어차피 눈에 익숙해지는게 중요한거죠!? 그쳐!? 아님말궁.
60화에서는..한번 정리를 하지 않을까...저도 양심이라는 게 있으니...(암호닉 받을거라고 말한지 한달도 더 지났음..)
오늘 1~57 중에서 젤루 긴 화임!!!!!진짜로!!!!내가 다 알아!!
근데 내용은 아무것도 없져. 뭘 읽었나 싶죠..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그래도 칭찬해조여 (답정너)
그럼 안녕!!*^^*요즘 이 이모티콘 맛들륌 글 안에 쓰려던 거 누르고 눌러서 참아쑴.
+아, 예전에 나왔던 여주후배 신규가노사=초롱이! 맞아요! 사실 초롱짱 염두에 두고 썼는데 이름을 쓸까말까 하다가 결국 이야기가 헷갈릴까봐 끌어왔어요! 예 맞습니다 저 에핑더쿠ㅎ처자들이...이쁘더라구요.....(먼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