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정말로 그 일을 하기로 마음을 먹고 난 후부터 정말 입에 올리기도 부끄러운 유치한 나의 질투가 시작되었다. 잘 보이지는 않아도 전보다 부른 김진아의 배를 볼 때면 끌허오르는 질투와 분노를 참을 수가 없었다. 초록창에 '임신 금기음식' 을 검색해 나온 음식들을 김진아 몰래 음식에 갈아넣기도 했다. 나에게 있어서는 그 아이가 없어주어야 했다. 나중에 죽는다면 나는 당연히 지옥을 가야하겠지만 지금은 지금인 만큼 천국을 가지고 싶다. 그 천국이 송민호지만. 몸을 차게한다는그런 음식들은 모두 갈고 빻아서 넣고 별의별 짓을 다해 넣었다.
"진아야, 너 임신하면 한의원 간다하지 않았어?"
"아, 맞다. 보약 지어와야 하는데. 까먹고 있었다. 고마워, 태현아."
오늘 김진아의 스케줄이 없었다. 지금은 오전 11시, 김진아는 슬립을 입은 채로 물이 담긴 컵을 들고 소파에 털썩 앉았다. 날씨도 좋겠다, 어제 마사지를 받아서 피로도 풀렸겠다 김진아는 절로 콧노래가 나오는 모양이다. 항상 태교 때문에 듣는 클래식을 흥얼거리고 있었다. 질리지도 않나. 고운 목소리가 온 집에 울려퍼졌다. 김진아는 내 말에 신이 나 자기 방으로 돌아갔다. 슬리퍼를 차박차박 끄는 소리가 나더니 잠깐 멈추었다가 그 소리가 점점 커졌다.
"태현아-!"
"어, 왜."
혼자 이제 드디어 가는 구나- 하면서 실실 쪼개고 있는 거를 들킬 뻔했다. 살짝 고개를 돌려 한숨을 휴 뱉었다. 아무렇지도 않다는 척을 하며 태연하게 굴었다. 김진아도 뭔가 살짝 이상한 걸 느꼈는지 고개를 갸우뚱하다가 기쁨이 잔뜩 묻어나는 얼굴로 말했다.
"한의원에 전화해서 양현석 원장님 시간 좀 비워달라구 해주라."
"그래. 안 그래도 마침 내가 전화하려던 참이였어."
"나 옷만 입고 나가자. 후딱 하고 다시 나올게."
나는 바로 주머니에 있던 전화기를 꺼냈다. 배터리는 99%. 주소록의 가장 윗단에 있는 '양현석' 이라는 이름으로 전화를 걸었다. 얼마의 신호음이 흐르고 상대편의 목소리가 들렸다. 저에요, 대충 양현석도 알아들었는지 목소리가 살짝씩 떨리는 게 들렸다. 더듬더듬거리며 헛소리를 짓껄이는 꼴이란.
"제가 보낸 돈은 확인 잘 하셨어요?"
"아.... 아, 돈... 네... 화, 확인했습니다..."
"오늘 갈거에요. 아니, 지금 갈 거에요. 그러니까 시간 비워두시고 저랑 한 약속 잊지 마시고."
뭐라뭐라 말하려고 하는 양현석의 목소리가 자증이 나 그냥 핸드폰의 배터리를 분리했다. 다시 고무장갑을 끼고 하얀 싱크대에 남아있는 접시를 잡았다. 김진아가 말한 '후딱'은 적어도 30분을 뜻할 테니까. 내가 오자마자 김진아가 임신을 해버려서 많이 보지는 못했지만 임신을 안 한 상태에서도 김진아는 옷만 갈아입어도 될 거를 처음부터 다 씻고 치장을 했다. 그러니까 그렇게 오래 걸릴 수 밖에. 뽀득뽀득 수세미에 세제를 묻혀서 접시를 깨끗하게 닦았다. 싱크대에 가득 찬 접시들과 식기도구들이 하나하나씩 없어지기 시작했다. 싱크대 한 편에 반짝이는 접시들로 가득했다.
접시만 해도 대충 25개가 넘었다. 가장 처음으로 씻은 접시 하나를 잡아 올렸다. 아, 그 전에 고무장갑을 벗어 탈탈 털어내는 것도 잊지 않고. 반짝반짝 빛나는 이 비싼 접시를 찬찬히 살펴보았다. 대충 시간은 30분 정도가 지나있었다. 나는 그 접시를 가지고 베란다로 나가서 빨간 꽃, 노란 꽃이 흐드러지게 핀 화단 쪽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접시를 든 팔을 높게 들었다. 쨍그랑-! 접시를 세게 화단을 향해 집어던졌다.
김진아가 아끼는 화단이다. 김진아가 어서 이 접시처럼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김진아가가장 아끼는 곳을 망쳐버렸다. 다, 망쳐버렸다. 던지면서 뭔가에 쓸렸는지 검지손가락에서 피가 흘러나왔다. 대충 피를 빨아먹고선 다시 집 안으로 들어갔다.김진아는 그새 준비를 다 했는지 거실 소파에 앉아 발장난을 치던 중이었다. 핑크색 임부복을 이쁜 아리따운 외모의소유자인 김진아는 누가 보아도 예쁘다- 하는 감탄사가 절로 나올 모습이였다. 저 여자는 어떻게 된 게 임신을 해도 살이 안 쪄, 살이.
"가자, 우리."
"그래, 가자."
미리 준비시켜놓은 차 문을 열었다. 김진아는 가슴을 가린 채 차에 조신하게 올라탔다. 저게 김진아를 사랑하게 되는 이유인가 싶기도 했다. 나는 운전석에 올라타 핸들을 잡았다. 그리고 나와 김진아의 싸운의 판도를 확 바꾸어줄 그 곳을 향해 갔다. 가는 내내 황량한 적막이 흘렀다. 나중에 치고박고 싸우고 내가 아닌 다른 한쪽이 지겠지만 지금은 나쁘게 지내어서 좋을 것 없으니까. 어색한 분위기를 풀어보고자 라디오를 틀었다. 마침 나오고 있던 음악이 시끄러운 락 음악이였다. 인상을 찌푸리는 김진아의 얼굴을 한 번 보고 라디오의 채널을 바꾸었다. 잔잔한 음악이 흐르고 한뜩 올라간 어깨가 추욱 내려갔다.
하늘은 곧 아이가 죽을 거를 아는지 갑자기 어두컴컴해졌다.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탁탁탁탁 빗방울이 차에 닿는 소리가 경쾌한 음을 만들어냈다. 와이퍼로 유리창을 닦아내며 열심히 페달을 밟아간 곳은 양현석이 있는 한의원이였다. 나는 진아의 차문을 열어주었다. 김진아는 차에서 내리더니 먼저 건물 안으로 들어가 엘레베이터 버튼을 누르고 그 앞에 섰다. 나는 한 번 와보았지만 처음 온 것처럼 김진아의 뒤를 졸졸 따라갔다.
"태현아, 여기는 처음이지?"
"응. 처음 와보네. 확실히 상류층 사람들은 병원도 좋은 데를 다니는 구나. 나는 한의원 가면 허름한 동네 한의원 가는데."
"여기 원장님 잘해. 나중에 들릴 일 있으면 내 이름으로 여기 와도 돼."
그래. 벌써 한의원 입구였다. 자동으로 열리고 간호사들이 김진아를 알아보고 우리 둘을 향해 모두 인사를 했다. 간호사가 양현석을 부르러 갔고 곧 양현석이 헐렙벌떡 뛰어나왔다. 한의원을 싹 비웠는지 우리 둘과 직원들 빼고는 아무도 없었다. 김진아는 진료실로 들어가고 의자에 앉아 양현석을 기다렸다. 의사들의 트레이드 마크, 흰 가운을 입은 채로 양현석이 들어와 의사 명패 뒤 의자에 앉았다. 성격 급한 김진아가 먼저 소매를 걷고 팔을 양현석에게 주었다. 양현석은 이제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김진아의 행동에도 김진아의 손목을 잡아 진맥을 짚었다. 한참을 진맥을 짚으며 골똘히 생각하는 듯 하더니 입을 열었다. 어차피 너도 애 죽이는 거에 동참할 거면서, 멋있는 의사인 척 하기는.
"아기는 굉장히 건강해요. 산모 몸도 양호한 편이구요. 약 지으러 오신 거 맞죠?"
"네네, 요즘 기력이 조금 쇠해진 것 같기도 하고 그래서."
"진아 씨 체질 적어놓은 차트 있으니까 제가 나중에 진아 씨 옆에 계신 분 통해서 저희가 약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김진아는 양현석의 말이 끝나기 전에 일어나서 밖으로 걸어나갔다. 간호사들 하나하나에게 인사를 하며 밖으로 나갔다. 나는 앉아서 뻥져있는 양현석을 아래로 내려다보았다. 내가 지을 수 있는 가장 차가운 시선을 보냈다. 양현석은 내심 양심에 찔렸는지 고개를 숙였다. 저멀리로 간 김진아에 조용히 목소리를 내리깔고 말했다. 알아서 잘 처신하세요, 일만 잘하면 돈은 더 보내드릴 테니까.
***
어느새 눈을 떠보니 벌써 집안이였다. 왠지 모르게 나도 양심에 찔리면서 내가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하고 있는 것 같아 뭔가 불안했다. 불안감이 나를 휩싸고 돌았다. 나는 침대에 누워 오늘 온 연락들을 하나한 확인했다. 그냥 평상시에 톡으로 얘기하던 강승윤의 톡도 있었고 그냥 어쩌다가 한 번 술 마시는 친구의 문자도 와있었다. 핸드폰 들고 사는데 내가 정신이 없어서 요새는 확인도 못하고 그러네. 송민호가 들어오는 도어락 소리에 나는 슬리퍼를 신고 다다다다 뛰어나갔다.
기쁜 마음으로 달려나가보니 김진아가 벌써 송민호의 품에 안겨있었다. 정말 심장이 저 바닥으로 떨어지는 느낌을 알 수 있었다. 이게 그 드라마나 영화에서 나오는 그거구나. 소설 속에서 말하는 망치로 내 뒷머리를 때린다는 그느낌이구나. 송민호는 김진아를 품 안에 안은 채 나를 쳐다보았다. 무언가를 나에게 말하고 있는 것 같은데 그 말을 읽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나는 쓰린 가슴을 안고 뒤돌아 내 방으로 들어갔다. 살짝 뒤를 돌아 송민호를 보니 송민호는 내 뒷모습을 계속해서 시선으로 쫓고 있었는지 나와 눈이 마주쳤다. 계속 보고 있다가는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아 어서 그 자리를 피했다.
송민호가, 제발, 송민호가 내 방으로 와주기를 기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