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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열!
컴퓨터실 앞에서 누군가가 저를 기다린다는 같은 반 친구의 말에 결국 학교 꼭대기 층까지 올라간 찬열은 그 앞에 서 있는 아이를 발견하고 놀랄 수 밖에 없었다. 저 멀리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아이는 다름아닌 종인이 항상 괴롭히고 다니는 장난감 세훈이었다. 평소에 종인을 많이 무서워했기 때문에 저와는 눈을 마주치지도 못하던 아이였다.
"뭐야? 너가 날 왜…."
"형. 형이 종인이 형이랑 제일 친한거 맞죠."
한껏 울상인 표정의 세훈이 찬열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급한 듯 말을 꺼냈다. 찬열은 세훈에게 뭔가가 있음이 분명하다는 것을 느꼈다. 식은땀을 흘리는 세훈은 눈에 띄게 긴장한 모습이었다.
"그런데, 뭔데."
세훈은 찬열의 대답을 듣고는 고개를 푹 숙여 한참을 고민을 하는 듯 했다. 제 뒤로 무언가를 숨기고 있는지 자꾸만 뒤에서 손을 꼼지락 대고 있었다. 찬열이 그런 세훈에게 궁금한 눈빛을 보내자 결국 한숨을 푹 내쉬더니 뒤로 숨기고 있던 것을 떨리는 손으로 찬열에게 건넸다.
"……."
"제발 이것 좀 종인선배한테 전해주세요. 마음은 감사하지만 죄송하다고 전해주시면…. 무슨 뜻인지 아실 거에요."
빠르게 말을 모두 전달한 뒤 세훈은 빠른 속도로 그 자리를 떠버렸다. 찬열의 두 손에 들린 것은 다름아닌 팝콘이었다. 몇 일 전 종인이 비정상적으로 기분이 좋았던 날 매점에서 샀던 그 팝콘이 분명했다.
찬열은 그것을 깨닫는 순간 엄청난 분노를 느꼈다. 단 한 번이라도 종인이 제게 무언가를 사줬던 기억은 머릿 속에 존재하지 않았다. 심지어 팝콘을 준 그 상대를 제가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제게 말해주지도 않았다. 거기에다가 더 중요한 사실은 둘 다 남자라는 것.
한참 쭈쭈에 미쳐서 빠져 있었을 때, 둘 다 남자인데 말이 되냐며 노발대발 화를 내던 사람이 바로 종인이었다. 이런 식으로 뒤통수를 치는구나…. 찬열은 분노에 가득찬 스텝으로 계단을 내려오다 발견한 쓰레기통에 그대로 팝콘을 쳐 넣어 버렸다. 어떻게든 종인과 세훈을 갈라놓겠다고 다짐하면서.
* * *
희수가 떠난 후 몇일이 지나도록 경수는 종인과 미치도록 어색했다. 용기를 내어 먼저 말도 걸어 봤으나 돌아오는 대답은 언제나 단답이었다. 혹시라도 제게 화나기라도 한걸까싶어 곰곰히 지난 날들을 되짚어 보았지만 전혀, 네버(NAVER) 그런 부분은 없었다. 그렇다면 남는 것은 단 하나. 껴안고 잠이 들었던 것 때문인 것 같았는데, 더 이상 안 볼 사이도 아니고, 그렇다고 가만히 있자니 영원히 어색한 사이로 남을 것만 같아 겁이 났다. 때문에 경수에게는 집에서의 하루하루가 고역이었다. 종인과 마주칠 때마다 옛날처럼 무섭지는 않았다만 기분이 참 이상했다.
그런 경수가 오랜만에 모처럼의 기분 전환을 위해 동창 친구와 약속을 잡았다. 집에 쳐 박혀 있는 몇 일 간 원고는 거의 다 마무리한 상태였기 때문에 한가했던 경수는 영화표가 생겼다며 같이 영화를 보자는 친구의 제안에 아침부터 들뜬 나머지 준비를 다 하고 나서도 시간이 조금 남아 있었다. 심심해서 시간을 떼우기 위해 TV채널도 한 바퀴나 돌려봤지만 죄다 뻔한 불륜 드라마나 아침 드라마들에 결국 TV를 끈 경수는 제 노트북 앞에 앉아 전원버튼을 눌렀다. 인터넷 브라우저를 킨 경수는 정말이지 오랜만에 지식인간에 접속했다.
꽤 오랫동안 잊고 있던 지식인간이었다…. 예전에 제가 남겼던 글들을 읽으며 한참을 킥킥대던 경수는 결국 질문하기 버튼을 클릭했다.
(내공有) 어색한 친구과 화해하기..
비공개 조회수 1
안녕하세요...제가요.. 친구랑 이유없이.. 어색해요..
원래 친하지는 않았지만 이렇게 어색한 사이도 아니었는데..갑자기 왜 이렇게 된건지 저도 잘 모르겠는데ㅠㅠ..
너무 어색한데.. 또 그 친구랑 매일 얼굴을 보는 사이거든요?.. 그래서 불편해 죽을 것 같습니다..
어떡하죠 제발 좀 도와주세여... 내공 겁니다
내공냠냠 꺼져주세요 세륜.
약속시간이 다가오는 탓에 급하게 글을 마무리한 경수는 의자에 걸어두었던 제 겉옷을 걸치고 방에서 충전 중이었던 휴대폰을 들고 나왔다. 친구로부터 출발했다는 문자가 여러 개 도착해 있었다. 마음이 들뜬 경수는 가벼운 마음으로 집 밖으로 나섰다.
집에 도착한 종인은 집 안 불이 모두 꺼져 있는 것을 보고 의문을 품었다. 밖에 장 보러 간 건가…. 현관에서 신발을 벗어 던진 종인이 배가 출출한 것을 느끼고 교복도 벗지 않은 채 부엌으로 가 선반을 열어 보았다. 결국 가스레인지에 불을 올리고 라면 두 봉을 끓이기 시작했다. 사실 물도 제대로 맞추지 못해서 조금 걱정이 되기는 했지만 짜든 싱겁든 배만 채울 수 있으면 됐다.
물을 올려놓고 교복을 갈아입고 나온 종인은 거실에서 살짝 새어나오는 빛을 발견했다. 책상 위에 올려져 있는 경수의 노트북에서부터 나오는 빛이었다. 노트북을 살짝 건드려보니 대기화면으로 띄워져 있던 화면이 시작화면으로 돌아왔다. 저가 오기 전까지 노트북을 하다 전원을 누르는 것을 잊고 나간 듯 했다. 마우스를 이리저리 휘젓던 종인이 갑자기 행동을 멈췄다.
"그래. 얘 하루종일 노트북 잡고 있던데…. 얘도 야동을 볼까."
음흉한 표정을 얼굴 만면에 띄운 종인은 당장에 폴더 수색부터 들어갔다. 내 컴퓨터, 도경수, 내 문서…. 신나게 여기 저기를 뒤져보지만 대체 어디다 꽁꽁 숨겨둔 건지, 아님 정말 없는 건지 야동에 '야' 자도 발견하지 못했다.
아니지. 누가 야동을 야동이라고 저장해 놓겠어? 종인은 다시 부엌으로 돌아가 라면을 다 끓인 뒤 거실 노트북 옆으로 가지고 왔다. 라면을 섭취하며 다시 꼼꼼히 수색을 시작하는 명탐정_종인.JPG. 그러던 중, 종인은 수상한 폴더를 하나 발견했다.
"EBS 인강 동영상…?"
본인의 경험에서부터 우러나오는 직감 상, 이건 100프로다. 라면을 먹던 손을 내려놓고 뿌듯한 표정을 지으며 빠르게 그 폴더를 더블 클릭한 종인은 그 중 가장 용량이 큰 'EBS 03강. 한국사 마스터하기!' 를 클릭했다. 하, 기대된다! 종인은 의자를 살짝 뒤로 빼고 벌써부터 기대에 가득 부풀어 있었다. 검은 화면이 나오고, 그리고…!
'안녕하세요, 여러분! 오늘도 즐거운 하루! 오늘도 변백현 선생님과 함께 즐거운 한국사 공부를 시작해 봐요~'
씨발. 진짜 인강이야? 종인은 개새끼처럼 희멀건 얼굴을 한 인강 선생의 얼굴을 한껏 노려보며 동영상을 꺼버렸다. 설마, 얘 고잔가? 하긴 같이 사는 몇 년동안 외박한 적도 단 한 번도 없었고! 집에 누굴 데려오는 것도 보지 못했고….
종인은 조금씩 경수에 대한 의심이 솟구쳤다. 아냐. 요즘은 인터넷 사이트로 접속해서 보는 새끼들도 많은데 그럴 수도 있어. 종인은 인터넷 브라우저를 열었다. 즐겨찾기로 들어가 열어본 페이지 목록을 눌렀다. 능숙한 솜씨로 오늘 들어가 본 사이트부터 눌러 본 종인은 오늘 들어간 사이트가 온통 지식인간으로만 가득 차 있는 것을 보고 놀랐다.
"뭐야. 박찬열이랑 똑같네. 그 나이 먹고 지식인간이나 하고 앉아있냐…."
종인은 그 중 하나를 클릭해 지식인간으로 접속했다. 자동로그인이 되어 있는 탓에 dodo0112라는 경수의 아이디와 함께 지식인간의 레벨인 지존 등급이 종인에게 털려버렸다. 종인은 마이지식을 눌러 경수가 답변했던 내역을들 모조리 확인했다.
Q : 갈비뼈가 아파요ㅠ 왜 이럴까요
A : 부러졌겠죠
Q : 여친이 헤어지자고 하는데, 붙잡을 방법좀요
A : 고무장갑 끼고 붙잡으면 미끄럽지 않게 잘 잡힐 거에요.
Q : 소녀시대 왜이렇게 이쁜겁니까
A : 그러게요 윤아 짱 윤아 내꺼
하. 이게 27살 성인이 쓴 답변이 맞는지 죄다 유치하고 수준없는 답변들 뿐이었다. 가끔 가다 정상적인 답변들도 있긴 했지만 혼자 이런 답변을 쓰면서 희열(?)을 느끼는 듯 했다. 나름 귀여운 거 같기도 하고…. 종인의 입꼬리가 자꾸만 저절로 올라갔다. 그러고보니 본인이 질문한 글들도 있었다. '쒸프트키까안빠쪄요'부터 시작해서 '저희 집 멍멍이 응가에서 피가 나와요ㅠㅠ'까지. 아빠미소로 한참을 구경하던 종인은 조금 이상한 글을 발견했다. '일진 고등학생 이기는 방법'…? 뭐야, 이거.
로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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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로셔니가 왔써여!!!!!!!!!!!빨리왔쬬!!!!!!!!!!!!!!! 제가 써두겠다고 했잖아요 하하 (찡긋)
오늘도 씹DOG 폭발하는 경수.......그리고 흐뭇해하는 종인이...... 그러나 경수의 지식인간을 발견해 버린 종이니..'ㅅ'..안돼.......안돼......이 둘의 운명은 어찌 될까요......!커밍순!
오늘도 사랑함미다 독자분들 사랑사랑!!!!!!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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