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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이나 경수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희수가 으하하하 하고 크게 웃어버렸다. 오랜만에 연락을 한다 싶더니만 하는 말이 고등 학생들 상대로 겁을 좀 줘달라니. 한 1달 정도는 한국에서 더 머무를 생각이었기 때문에 경수의 부탁은 그리 어려운 부탁은 아니었다. 그리고 사실은 조금 재미있을 것만 같기도 했다. 경수를 안절부절 못하게 만드는 싹수 노란 고딩들이 과연 어떤 놈들일지.
도희수, 희수는 경수의 친형이었다. 다소 여성스럽고 예쁜 이름과는 상반되는 외모를 가진 희수는 학창시절부터 동네에서 알아 주는 날라리였다. 몸집이 작고 아담한 경수와는 달리 거의 190에 가까운 거구에 떡 벌어진 어깨와 조각같은 외모로 주위에는 언제나 여자들이 끊기질 않았었다. 심지어 공부를 비롯한 운동, 미술 등 어느 한 가지라도 빠짐없이 뛰어난 재능을 보였었다. 덕분에 희수는 또래 남자아이들과 동생 경수의 우상이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희수는 캐나다로 유학을 떠났고, 그로부터 몇 년이 흐른 지금은 그 곳에서 번듯한 회사에 취직해 지내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 전, 휴가 차 한국으로 오게 됐는데 경수에게 연락을 받고 지금 경수를 마주하고 있는 것이었다. 고등학생과 동거 중이라는 얘기는 들었지만, 이렇게 경수가 잡혀 살고 있을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너는 어렸을 때도 그렇게 찌질하게 지내더니 커서도 그러고 사냐."
희수의 장난섞인 말에 경수는 울상을 지었다. 옛날에도 또래 아이들에게 괴롭힘을 당할 때마다 희수가 나타나 경수를 도와주곤 했었다. 씨, 요즘 애들이 얼마나 무서운 줄 알고 그런 말 하냐! 경수가 조그만 목소리로 투덜대자 희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그래. 요즘 애들 무섭더라.
"말로 해도 안 되니까 그런 거야. 내가 오죽하면 형한테 이런 부탁을 하겠어? 참는 것도 한 두번이지, 애들이 끝을 모르고 덤빈다니까!"
"알았어, 알았어. 딱 3일만이야."
희수의 말이 끝나자 경수가 희수의 두 손을 붙잡고 환호했다. 이제 됐다! 희수 형 개짱!
1 ROUND : [ 첫 대면, 그리고 코카콜라 ]
헐. 방과 후, 평소와 다름 없이 찬열과 함께 집으로 들어선 종인은 바로 제 눈 앞에 서 있는 경수의 모습에 그만 입을 떡 벌리고 말았다.
"머, 머리…."
투 블럭 컷…? 남정네들의 남성미를 한층 부각시켜준다는 그 댄디함의 결정체인 그 헤어 스타일? 게다가 항상 입고 다니던 체크 남방과 츄리닝 바지는 어디에 버리고, 아디다스 유로파 져지에 다리에 쫙 달라붙는 스키니진을 입고 있었다. 경수는 주머니에 손을 찔러 놓은 채 다리를 달달달 떨며 종인과 찬열을 쳐다보고 있었다. 항상 끼고 다니던 동글동글한 뿔테 안경은 어디로 갔는지 온데간데 없었다.
"왔어?"
그리고 종인과 찬열을 더 당혹스럽게 만든 것은 경수의 뒤로 갑자기 나타난 희수였다. 키는 더럽게 크며 샛노란 금발 머리에 잔뜩 구겨진 표정에서부터 '나 졸라 쎄다.' 라고 말해주는 듯 했다. 종인은 제가 집을 잘못 찾아온 건가 싶어 집 안을 빠르게 다시 한 번 둘러보았지만 거실에 보이는 쇼파와 벽에 걸려 있는 시계. 하늘색 벽지…. 분명 종인의 집이 맞았다. 그런데, 대체 왜? 분명 어제까지만 해도 경수는 저를 쳐다만 봐도 덜덜 떨어댔었다.
"우리 친형이야. 도희수. 3일 동안만 여기서 같이 지내기로 했어."
뭐야. 나한텐 한 마디 말조차 한 적도 없는데 우리 집에서 저 사람이랑 같이 지내야한다고? 종인은 심기가 불편해져 인상을 살짝 찌푸렸다.
"불편하면 바로 바로 말해라. 인상 피고."
희수가 종인에게로 몇 발자국 더 다가오며 말했다. 분명 말투에서부터 날이 서 있었다. 찬열은 희수의 뒤에서 풍겨나오는 아우라에 살짝 뒷걸음질을 쳤다.
"쭈, ㅉ…. 아, 아니. 경수형. 머리랑 오, 옷. 왜…. 그…."
찬열이 경수에게 손짓 몸짓을 섞어가며 힘겹게 말을 꺼내자 경수는 어이없다는 듯 피식 웃었다.
"씨발. 뭐. 꼽냐?"
헐. 우, 우리 쭈쭈가 변했어…. 마, 말도 안 돼.
"아, 아니요. 조, 종인아. 나 오늘 제사 가야되서 먼저 가 본다. 안녕히 계세요."
찬열은 요 뭐시기라는 세례명도 가지고 있는 충실한 기독교인이었지만, 제사를 핑계로 이 상황을 벗어나려고 했다. 찬열은 경수와 희수에게 90도로 꾸벅 인사를 하곤 현관으로 달려가더니 대충 신발을 꾸겨 신은 채 순식간에 집을 나가버렸다. 경수는 그런 찬열이 제게 쫄은(?)것이 확실하다고 자부하며 실소를 터뜨렸다. 뭐야, 박찬열 별 거 아니잖아. 찬열의 다급한 뒷모습을 본 경수는 근거없는 자신감들이 펑펑 샘솟는듯 했다. 하지만 정확히 따지자면 찬열은 경수에게 쫄았다기보다는 바뀐 경수의 모습에 충격을 받은 것이었다. 순수하고 깨끗하고 맑던 쭈쭈의 입에서 그런 쌍욕이 나왔으니 그럴만도 했다.
한편, 서로를 노려보며 기싸움을 하던 종인과 희수는 결국 희수가 시선을 거두어 찬열이 나간 현관문을 쳐다봄과 동시에 끝이 났다. 희수는 고개를 두어 번 돌리더니, 기지개를 키며 쇼파에 앉았다. 종인은 여전히 희수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만 야리고. 그러지 말고, 물이나 좀 떠 와봐."
처음부터 너무 세게 밀고 나가는 희수에 당황한 경수는 눈에 띄게 움찔했다. 안 그래도 심각한 다혈질인 종인이었다. 희수가 조금이라도 더 종인을 자극하면 정말 큰 일이 날 것 같았다.
"혀, 형! 우리 영화 보러 갈까? 오랜만에. 나 보고 싶은 영화 있었는데…."
경수가 희수가 앉은 쇼파 바로 옆에 앉아 팔짱을 끼며 급하게 말을 꺼냈다. 희수는 그런 경수의 의도가 빤히 보여 씨익 웃으며 대답했다.
"그래. 대신 저 고딩도 데려가."
대체 난 왜 이 덩치들 사이에 껴 앉아 있어야 하는 걸까. 대체 누구와 콜라를 나눠 마셔야 하는 걸까. 좌 도희수, 우 김종인. 영화가 시작된지 30분 가량이나 흘렀으나 양 옆에서 느껴지는 살기에 경수는 도통 영화에 집중을 할 수가 없었다. 영화를 함께 보러 가자는 희수 형의 제안에 경수는 종인이 당연히 거절할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예상 외로 종인은 알겠다며 흔쾌히 대답하곤 제 방으로 쏙 들어가 버렸다.
김종인을 데려가잔 말은 왜 꺼내서 나를 이렇게 곤란하게 만드는 걸까. 애초에 희수 형을 끌어들인 것 부터가 잘못인가.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고, 안 하는 것만 못한 일이었다. 왜 영화를 같이 보자곤 해서!
경수는 지금 1분 1초가 긴장의 연속이었다. 게다가 너무 긴장을 한 탓인지 목이 점점 타오기 시작했다. 왜 콤보에는 콜라가 2개뿐인가! 경수는 이런 일이 일어날 것이라곤 전혀 예측하지 못했던 본인을 자책했다. 희수 형과 김종인. 김종인과 희수 형. 희수 형과 김종인….
한참이나 내적갈등을 하던 경수가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이럴 땐 척척박사님께 도움을 받는 것이 가장 현명한 선택일 거야. 이게 내 최선이야. 결국 둘 중 누구도 선택하지 못한 경수는 속으로 척척박사님을 불렀다.
코,카,콜,라,맛,있,다,누,가,누,가,먹,을,래,딩,동,댕,동,척,척,박,사,님,알,아,맞,춰,보,세,요,커…피…잔….
드디어 영화 내내 팔짱만 끼고 있던 경수가 팔짱을 풀렀다. 그와 동시에 두 남자의 시선이 경수의 손을 향했다. 그리고 그 손은.
"……."
희수의 콜라에게 닿았다. 종인과 희수는 희비가 엇갈렸다. 경수는 목이 심하게 탔는지 한참동안이나 입에서 콜라를 떼지 않았다. 그런 경수를 보며 종인은 제 콜라에 꽂혀져 있던 노란 빨대를 뽑아 바닥에 던져 버렸다. 씨발, 이게 뭐라고 이렇게 성질 나는 거지!
집으로 돌아 오는 길 내내 종인은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경수는 미안했는지 계속해서 종인에게 말을 걸었지만 종인은 경수를 쳐다도 보지 않았다. 희수의 그 능글능글한 표정과 몸 전체에서 흘러져 나오는 승자의 여유 따위도 보고 싶지 않았고. 이게 뭐라고 영화 시작부터 희수와 눈치 싸움을 했는지에 대한 회한이 몰려왔다. 가뜩이나 자존심이 센 종인이어서, 더욱 그랬다. 경수가 희수의 콜라에 입을 댄 이후로 영화에 집중은 개뿔, 홀로 화를 식히느라 영화의 내용은 하나도 기억나지 않았다. 물론 경수도 미안한 마음에 영화에 집중하지 못하기는 마찬가지였지만.
또 평소엔 그렇게도 제게 쩔쩔 매던 경수에게 배신을 당한 기분이었다. 사실 몇 년을 같이 살면서 경수에게 형이 있는지 조차도 오늘 처음 안 사실이었다. 내가 그 동안 경수에게 그렇게도 관심이 없었나.
집에 도착하자마자 종인은 제 방에 들어가 문을 잠그고 침대에 누웠다. 핸드폰을 꺼내 보니 찬열에게 문자 몇 개가 도착해 있었다.
[야]
[어떡해 도경수 왜 저래]
[야야 대답좀;;]
[진심 정떨어지려고함]
[야ㅑㅑ야 씹냐ㅡㅡ]
씨발. 기분 개 더럽네. 종인은 그대로 핸드폰 전원을 꺼버렸다. 썅. 내가 어떻게 알아, 도경수 왜 저러는지. 알면 이러고 있겠냐.
1 라운드는 김종인 완패.
로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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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로션입니다. 먼저 이렇게 오랜 시간동안 독자님들께 말 한마디 없이 잠정적으로 연재를 하지 못했던 점에 대해서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ㅠㅠ.. 여러가지의 개인적인 사정과 바쁜 일상 속에서도 언제나 글을 다시 써야한다는 생각은 해왔지만 조금씩 길어지는 듯한 공백기에 심리적인 부담감이 너무 컸습니다.. 어찌보면 이런 것들도 다 변명이겠죠. 그냥 죄송스런 마음일 뿐입니다. 사실 이렇게 다시 글을 올리는데도 큰 용기를 필요로 했습니다.. 독자님들이 다시 돌아온 저를 반겨주실지도 의문이었고, 기억이나 해 주실지 걱정도 많이 됐습니다. 저를 찾으시는 분들이 아직 있으시다면! 단 한 분이라도 계시다면 다시 연재하겠다고 마음 먹었습니다..! 저를 이렇게 마음 먹게 해주신 분들, 모두 감사드려요!ㅠㅠ..(누구신진 다들 알고 계실거라고 생각해요..) 시간 짬짬히 내서 열심히 좋은 글 쓰겠습니다! ㅠㅠ.. 성실연재를 약속해 놓은 채 이런 식으로 독자분들을 기다리게 하고, 제가 한 말에 대해 책임지지 못한 점 다시 한 번 사과드립니다ㅠㅠ..! 부디 용서해 주세요!.. 이런 못난 글 좋아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ㅠㅠ..
앞으로도 더욱 좋은 작품으로 찾아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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