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똑같은 꿈이었다. 찬바람이 부는 어느 산에서 내가 죽는 꿈. 나는 피가 흐르는 손으로 나를 품에 안고 내려다보고 있는 어떤 남자의 얼굴을 쓰다듬고 있었다. 며칠째 같은 꿈이 반복되고 있었다.
오늘도 땀에 흠뻑 젖은 채로 꿈에 서 깬 나는 탁상 위 시계를 쳐다보았다. 오늘도 글을 쓰다 거실 탁상에서 잠든 것 같았다. 시계는 어느덧 새벽 3시를 훌쩍 넘긴 시간이었고, 어두컴컴한 집안에서 홀로 불 켜진 노트북에는 내가 쓰다만 글이 남아있었다. 어차피 지금 다시 글을 쓴다 하더라도 제대로 안 써질 것이 뻔하기에 나는 탁상의 담배를 집어 들고 현관 밖으로 나섰다. 담배는 작년 여름 글이 안 써질 때부터 태우기 시작했다. 끊으라고 매일 잔소리를 하는 친구들이 있지만, 글이 막힐 때면 나는 자연스럽게 담배부터 찾기 시작하였다.
어느새 봄이 성큼 다가왔다. 서늘한 바람이 불어온 몸을 감싸고 다니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따스한 바람의 냄새가 내 코끝을 스쳐 지나가는 새벽이었다. 원룸 빌라 공동현관 앞에서 쪼그려 앉아 하늘을 바라보면서 담배를 태우고 있는데 누군가 내 앞에 멈춰섰다.
- 또 나와계시네요.
같은 빌라에 사는 간호학과 2학년 김요한이었다.
- 담배 좀 그만 피우라니까요. 건강에 안 좋아요. 그리고 새벽에 혼자 이렇게 나와 있는 것도 위험하고요.
- 알았어, 알았어. 안 피면 되잖아. 그건 그렇고 너는 왜 이 시간에 밖에 있냐?
- 아, 과제때문에요...
김요한의 잔소리에 나는 어쩔 수 없이 담배를 지져 끄고는 몸을 일으켜 세웠다.
- 먼저 들어가. 난 편의점에서 음료수나 사서 들어가야겠다.
- 같이 가드릴까요?
- 아니 괜찮아. 뭐 얼마나 멀다고. 나중에 보자
- 네. 선배.
김요한을 먼저 빌라 안으로 들여보내고 편의점으로 가는 골목길 앞 전봇대에서 다시 담뱃불을 붙이며 하늘을 보았을 때, 갑자기 김요한과 나의 첫 만남이 떠올랐다.
2주 전, 같은 교양 수업을 들으면서 친해진 승우와 점심을 먹고 있을 때였다.
- 아, 박교수님 교양 과제 죽을 것 같아.
- 그러니까 누가 맨날 자래?
- 재미없는 걸 어떡하라고? 그리고 뭔 짧은 수필이야. 난 전공과제만으로 벅차다고….
- 하긴 그렇긴 하지.
- 그래도 넌 과제 할 만하겠다? 문창과 수석이잖아요. 그러지말고 나 좀 도와달라니까...
- 일단 가이드라인부터 잡아서 가지고 오세요.
점심을 먹으면서 교양 과제 얘기를 하고 있을 때였다. 한창 과제를 도와달라고 나한테 죽을상을 지으며 부탁을 하던 승우가 문을 열고 들어온 손님한테 아는 체를 했다.
- 어? 김요한!!
문을 열고 들어온 남자는 승우의 인사소리에 놀랐는지 잠깐 멈칫하다가 우리 테이블로 다가왔다.
- 안녕하세요. 형
- 응, 안녕안녕. 너 점심 먹으러 왔어?
- 네. 얼른 먹고 가보려고요
- 아하, 그래 맛있게 먹고 가~
- 네. 형도 나중에 봬요.
승우와 짧게 인사를 나누던 찰나, 나와 김요한은 눈이 잠깐 마주쳤고, 그때부터 난 알 수 없는 감정에 휩싸였다. 마음 속 한 귀퉁이에서 작은 파도가 치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22년 평생 단 한번도 느껴보지 못하였던 그런 느낌. 그리고 작은 파도는 점차 커져만 갔고, 그 짧은 시간동안 내 마음과 머릿속을 일렁이게 만들었다.
- 야, 너 갑자기 왜 울어? 어디 아파?
아, 나도 모르게 울고 있었나 보다. 어느새 내가 감당할 수 없을 만큼의 감정이 갑자기 물밀 듯 밀려왔고 감정은 흐르다 못해 넘치기 시작했다.
- 아니야, 아니야. 갑자기 왜 이러지?
- 너 요즘 무리해서 그런 거 아니야?
- 모르겠네....
- 너 진짜 괜찮지? 힘든 거 있으면 언제든 말해.
- 알겠다고. 이제 일어나자. 우리 교양까지 20분 남았어.
흐르는 눈물을 소매로 문질러 닦고 일어나 교양 수업을 들은 후 감정의 원인을 찾으며 우리 집 공동현관 앞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을 때. 김요한이 문을 열고 나왔다. 김요한을 흘끗 본 나는 계속 담배를 피우면서 서있었고, 말을 먼저 꺼낸 건 김요한이었다.
- 아까 승우형이랑 같이 점심 드셨던 친구분 맞으시죠?
- 아, 어. 너 이름이 요한이었던가? 김요한?
- 네. 승우형 후배요.
- 아 난 승우 친구 성이름. 너 여기 살아?
- 네. 혹시 선배도 여기 사세요?
- 응. 우리 자주 마주치겠네.
- 아.... 그렇겠네요.
- 그래. 난 먼저 들어갈게
- 네. 선배.
그렇게 김요한과의 대화를 끝내고 공동현관 문을 열고 들어오는 순간 나는 다시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분명 슬픈 감정도 아닌데 왜 눈물이 나는지. 아까부터 올라오는 일렁임의 원인을 난 찾지 못하였다.
그리고 그날부터였다. 내가 똑같은 꿈을 꾸기 시작한지.
안녕하세요. 연꽃처럼 입니다. 오늘 새벽에 올린 '붉은 실' 후속작 느낌으로 한번 글을 써봤습니다.
붉은실의 현대판 버전이라 생각하시면 될 듯 싶네요.
부족한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