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지내오?
당신이 사는 세상에는 꽃비가 내리고 있기를 바라오. 아직 내가 사는 세상에는 꽃비가 내리지 않고 있소. 하지만 곧 꽃비가 내릴 것 같소. 오늘같이 달이 밝은 날에는 그대 생각이 많이 나는 것 같소. 당신을 잊으라고 하였던 당신의 마지막 말을 난 오늘까지도 지키지 못하고 있소. 하루하루가 지날수록 당신이 잊히기보다는 더욱더 뚜렷해 지는 것 같소. 당신이 가지고 왔던 붕대와 의약품, 우리 단원들이 다쳐 올 때마다 그 누구보다 슬퍼하던 당신의 표정, 꼼꼼하게 우리의 상처를 치료하던 당신의 손. 어느 것 하나 내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고 더욱더 뚜렷해 지고 있소. 난 오늘도 독립을 위해 한 걸음을 옮기고 왔소. 하지만 다치지 않기로 당신과 약조했던 것은 지키지 못한것 같소. 나중에 내가 당신이 사는 세상으로 가거든 나를 많이 미워하진 말아 주오.
매일매일 전쟁같은 하루를 보내고 홀로 복귀할 때면 항상 마을 어귀에서 날 기다리던 당신의 모습이 그리워 혼자 울기도 많이 울었오. 그대가 먹고 싶다고 한 사과 갖다 주지 못한 내 처지가 너무 비통하여서. 나와 같이 큰 나무 아래서 낮잠을 자고 싶다던, 그런 작은 바램조차 들어주지 못한 내가 너무 못나서. 그럴수록 당신이 너무 보고 싶어서 이 긴 밤이 끝나지 않는구려. 긴 밤을 홀로 지새울 때면 난 늘 하늘을 보오. 사무치게 그리운 당신의 얼굴을 생각하며 하늘을 볼 때면 먼저 간 당신이, 당신의 세상에서 나를 내려다 보고 있을 것만 같소. 나중에 내가 당신의 세상으로 가거든 지친 나를 위해 당신의 품을 한번만 내게 내어줄 수 있겠오?
그 어느 때 당신이 이야기해주는 붉은 실의 이야기가 생각나오. 인연으로 묶인 자들의 새끼손가락에는 보이지 않는 붉은 실이 연결되어 있다고. 만약 당신과 내가 인연이라, 우리의 새끼손가락에 붉은 실이 매어져 연결돼있다면, 그때는 당신과 내가 바라던 독립된 조국에서 만납시다. 차가운 바람이 아니라 따뜻한 햇볕이 내리쬐는, 피가 흩날려 유혈이 낭자한 땅이 아니라 아리따운 꽃잎이 흩날리는 조국의 땅에서 우리 다시 만납시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전쟁터가 아닌 큰 나무가 자리한 마을에서 조촐한 혼례식을 올린 다음 아무 근심 걱정없이 그렇게 살아갑시다.
잘 지내오? 당신이 사는 세상에는 꽃비가 내리고 있을 것 같소. 나도 곧 그런 세상에서 당신을 떠올리겠소. 많이 보고싶소.
-청명한 달빛 아래서 김요한-
독립운동을 하던 글을 쓰는 청년 김요한 X 독립운동단체에서 병자를 치료하던 간호사 성이름
갑자기 새벽에 아련한 분위기의 요한이가 생각나서 끄적여본 글입니다. 많이 부족한데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