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숨을 쉬고 집으로 돌아와서 사서 들어온 먹을 것들을 바닥에 펼쳐놨어.
원래 군것질은 티비 보면서 먹어야 제맛이지.
드라마라도 봐야겠단 생각에 리모컨을 찾는데, 또 어디로 굴러 들어간 건지 눈에 보이지가 않는 거야.
요즘 티비에서 부르면 신호 주는 리모컨 이런 거 많이 나오던데 나도 바꿔야 하나…….
슬슬 따뜻해지는 전기장판에 이불을 돌돌 둘러싸고 바닥에 털썩 엎드렸어.
으, 겨울 너무 싫다. 진짜. 사실 여름도 싫지만.
과자를 입안 한가득 넣고 씹으며 아무런 생각 없이 누워있기도 한참.
음료수도 한 병 마시고, 과자도 몇 봉지 까먹고 했더니, 몸이 따뜻해지고 배도 불러오는거야.
그러고 나니까 잊고 있던 심심함이 찾아오길래 리모컨을 찾을까 고민을 했어.
그건 정말 귀찮을 것 같아서 휴대폰이나 해야지 하고 주머니에 손을 넣는데,
"…… ?"
왼쪽 주머니에도, 오른쪽 주머니에도. 바지 주머니에도.
그 어디에도 휴대폰이 없는 거야.
남은 약정, 대략 20개월. 휴대폰 비용 거의 백만 원. 한 달 요금 육만 팔천 원.
우리 방탄 오빠들 동영상과 사진. 메모장. 내 셀카가 잠들어 있는 잠기지 않은 갤러리.
그러니까 지금…… 나 휴대폰 잃어버린 거지?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니까 정신이 확 드는 거야. 몸을 벌떡 일으켰어.
너무 당황스러우니까 울컥하기도 하고. 엄청나게 중요한 건 없지만 멘탈이 무너지니까 이성적인 판단이 안 되더라.
집에 들어오자마자 거실 전기장판 위에 누워서 있을 리가 없는데 괜히 다른 곳도 뒤지고.
그러면서 찾을 생각도 없었던 리모컨도 찾았는데, 왜 휴대폰만 없는 것인지.
"아, 어딨는 거야……!"
마음 편히 가져보려고 해도. 그냥 해롱해롱.
편의점에 두고 온 건가. 패딩이고 뭐고 아무 생각도 안 들고 그냥 가디건만 걸친 상태 그대로 집을 나섰어.
아 눈물 나. 내 심장, 내 분신, 내 휴대폰. 이 정도면 중독인가. 너란 휴대폰에 오벌도즈.
그 와중에 얼굴이 얼어붙을까 봐 빨개진 손으로 연신 눈물을 닦아내며 편의점으로 뛰어들어 갔어.
딸랑, 문에 달린 종이 경쾌하게 울림과 동시에 태형이 내 쪽을 쳐다보더라.
"어서오세, 어?"
내 휴대폰. 제 분신 좀 찾아주세요. 엉엉.
옷은 어디에 갖다 버린 건지 얇은 차림새로 손과 얼굴이 빨개져선 그 자리에 주저앉는 나를 보고 태형이 급하게 카운터에서 나왔어.
그냥 정말 아무 생각 안 나고. 여기 없으면 어쩌나. 어디 가서 찾아야 하나.
이런저런 걱정이 물밀 듯이 쏟아져서 바보처럼 우는데 그에 당황한 건 태형.
"너 울어요?"
아니요. 아니, 예 저 우나 봐요. 어떻게 해. 휴대폰이 없어졌는데. 횡설수설하는 내 등을 연신 쓸어주더라.
아니 온 지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왜 또 와서. 그 와중에 나를 놀리는 태형을 한번 째려보고.
휴대폰 찾아달라고 계속 징징거리는데 태형이 듣고만 있더니 막 웃는 거야.
"휴대폰 찾으러 온 거에요?"
없나 봐. 와, 나 인생 다 살았어. 이제 휴대폰 언제 바꿔. 나 세상과 단절돼서 살아야 하나.
웃지만 말고 찾아보던가 이 멍청아. 태형의 팔을 부여잡고 휴대폰의 부재를 슬퍼하고 있는데,
태형이 내 눈앞에 뭐를 살랑살랑 흔들더라고. 그래서 봤는데.
저거 어디서 많이 본 것 같다.
내 휴대폰이랑 똑같이 생겼네.
"어, 그거 내꺼에요!"
"이게 너껀지 누군껀지 어떻게 알아요?"
씨씨티비 돌려보면 되잖아요. 안돼요, 전기세가 요즘 얼마나 비싼데.
지금 나랑 장난하는 거지. 아닌데요, 제가 또 한 진지하단 말이야.
싸운 지 얼마나 됐다고 오자마자 또 티격태격.
아니 쟤는 왜 남의 폰 가지고 이런대. 빨리 돌려줘, 내가 얼마나 맘 졸였는데.
그러면 셀카 폴더에 너 셀카 몇 장인지 말해봐요. 그럼 너꺼 맞으니까 돌려줄게.
하길래, 곰곰이 생각해봤어.
내가 셀카폴더에 사진이 몇 개 있었더라. 그렇게 많은 건 아닌데.
다행히 폰을 바꾼지 얼마 안돼서.
"스물 세장 있을 거예요."
빙고. 아이처럼 웃으면서 태형이 휴대폰을 돌려줬어.
아까 계산하면서 두고 간 거 나도 늦게 발견했어요. 돌려주고 싶었는데 아무것도 모르니까 기다렸지.
태형이 푸스스 웃으면서 말했어.
그래도 김태형 손에 들어갔다 온 건데, 멀쩡하나 싶어서 이것저것 확인을 하고.
다행히 멀쩡해서 안심하는데, 생각해보니까 또 이상한 게.
"네가 내 셀카 몇 장인지 어떻게 알아?"
"난 이 사진이 그렇게 귀엽더라구요."
내 셀카 중 하나를 따라 하면서 태형이 말했어.
그럼 지금 남의 폰 갤러리를 열어봤다는 소리인가.
경악으로 물드는 내 얼굴은 보이지도 않는지, 그 이후로도 몇 개의 사진을 더 따라 하고.
죽여버릴까. 죽이고 싶다. 살인 충동이 마구 일어난다.
내가 우려하던 일 중 하나가 일어나고 만 거였지. 그래. 내 부주의 탓도 있지만.
쪽팔려서 얼굴이 확 달아오르는 게 느껴졌어.
휴대폰을 급하게 주머니에 넣고 같이 쭈그려 앉아있는 태형을 힘 주어 밀었어.
그랬더니 뒤로 콩 넘어져서 엉덩방아를 찧는 태형. 넘어지자마자 또 소리를 빽 지르더라.
"손님은 왜 자꾸 나 못 괴롭혀서 안달이에요!"
"그럼 남의 폰 갤러리 열어 본 사람은 정상이구요?"
갤러리 그거 누구 건지 확인하려고 볼 수도 있고 그런 거지. 사람이 왜 그렇게 융통성 없이 꽉 막혔대.
지금 거기서 융통성이 나와? 정확한 사고판단 가능할 때까지 알바비 까이고 싶나 본데.
고스란히 씨씨티비에 찍힐 것을 둘 다 알면서도 또 서로의 팔을 붙잡고 싸우기 바빴어.
찾아줘서 고맙다고 보답이라도 하려 했더니 이게 무슨 일이야.
씩씩거리면서 노려보니까 태형이 또 입술을 불퉁 내민다.
저거 또 삐쳤어. 자리에서 일어나자 같이 엉덩이를 털며 일어나는 태형.
근데 솔직히 말하면, 아까 포즈 따라 할 때 찍고 싶긴 했어.
잘생겼어. 확실히. 잘생겼으니까 용서하는 거에요.
한 번 더 찌릿 노려보곤 편의점을 나서려는데 할 말 있는 표정으로 쳐다보더라고.
할 말 있어요? 내가 물어보자 우물쭈물하더라,
"고맙단 말 안 해줄 거에요?"
뭐가요. 턱 끝으로 까딱거리더니, 내가 못 알아들으니까 손가락으로 내 주머니를 가리키더라.
아……. 고마워요. 내가 말하니까 또 배시시.
그러곤 신 난 발걸음으로 카운터로 돌아가길래 나도 편의점에서 나왔어.
휴대폰을 찾고 나니까 다 좋긴 한데.
찬 바람이 그대로 몸에 와 닿아서 저절로 몸이 움츠러들었어.
내가 미쳤지. 그래도 옷은 껴입고 나올걸. 그래도 집이 가까워서 망정이지.
덜덜 떨면서 집으로 향하는데 주머니에서 짧게 진동이 한번 울렸어.
팔짱을 풀고 주머니에 손을 넣어 휴대폰을 꺼내니, 문자가 한 통 와 있길래 열어봤지.
저장 안 된 번호네. 누구지.
[내일도 꼭 놀러 오기.]
위잉. 진동이 한 번 더.
[완전 잘생긴 김태형님 번호. 저장해요.]
얘는 무슨 또 신흥 지랄이야……. 작업 한번 진부하게 거네.
그래도 계속 올라가는 입꼬리는 어쩔 수가 없더라.
잘생긴 알바생이랑 친해져서 나쁠 건 없지. 유후.
---
허니버터칩님, 기화님, 눈설님, 꿍잉님, 뿌링클님, 망상님, 정국아누나가미안해님, 꾹이님, 스웩님,
기린님, 솔님, 민슈가님, 쿠키몬스터님, 이킴님, 비빔면님, 정국친구님, 초코님, 듀드롭님, 태태랑님,
장희빈님, 뽀뽀님, 맑음님, 권지용님, 단미님, 꽃잎님, 버물리님, 취향저격님, 주땡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