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쳤나 봐. 문 안 열어?"
"그러니까 어제 카톡 왜 씹어요."
메에롱. 혀를 내밀기까지 하면서 나를 조롱하는 태형이 문 앞에서 알짱거렸어.
지금 손님한테 뭐하는 짓이래. 추워서 덜덜 떨리는 몸을 최대한 패딩으로 감싸고 문을 한 번 더 두들겼지.
하지만 돌아오는 건 혓바닥뿐. 저런 몹쓸……. 어제 정말 일찍 잠이 들었는데, 제 카톡을 씹었다고 저 난리라니.
카톡 두 번 무시했다간 편의점 문 닫을지도 몰라.
"야, 나 추워!"
"왜 반말이세요, 손님."
너 진짜 점장님한테 이를 거야. 해봐도 귀를 막고 고개를 절레절레.
이젠 협박이 씨알도 안 먹힌다. 쟤 왜 저래 진짜. 사춘기인가.
찬 기운을 잘 안 받는 체질 탓에 벌써 머리에 열기가 슬슬 올라오는데, 제대로 장난기가 오른 것인지 들은 채도 안 하는 태형.
그래도 오라고 징징거리기에 이 한 몸 바쳐 여기까지 행차해줬더니, 저러고나 있고.
기분이 나빠 몸을 휙 돌려세우고 다시 집으로 가려니, 뒤에서 문이 짤랑, 하고 열리더라.
저럴 거면서 왜 고집을 부려. 내가 가면 제일 심심해 할거면서.
"속은 좁아서."
답장 안 했다고 문 안 열어준 네가 더 쪼잔하거든. 내가 툴툴거리자 아프지 않게 머리를 콩 한 대 가볍게 치더라.
내 머리는 북이 아닌데. 머리를 살살 문지르자 엄살 부린다고 또 장난 섞인 말이 들려왔어.
그럼 너도 맞아보는 게 어떨까. 그래, 그것참 좋겠다. 나도 너 한번 때려볼래!
내가 해맑게 말하자 급히 계산대로 숨는 김태형이었어. 저걸 누가 스무 살이라고 해. 초등학생이면 모를까.
난 어디 서 있으라고 지금 혼자만 쏙 들어간대. 태형을 따라 계산대에 들어가자 당황하며 나를 밀어내더라.
"야, 야. 여기가 어디라고 들어와."
"너 꺼야?"
"알바는 내가 하는 거지, 네가 아니잖아."
무슨 상관이야. 단골손님한테 이러는 거 아닙니다, 너. 뻔뻔한 내 모습에 두 손 두 발 든 태형이 한숨을 쉬었어.
난 몰라. 점장님한텐 네가 잘 얘기해요. 내가 고개를 끄덕이고 나서야 밀어내는 손길을 멈추고.
천상천하 점장독존. 아마도 이게 김태형의 사고관인 듯했다. 뭐만 하면 점장님, 점장님.
드라마 속 주인공 한강우도 아니고. 내심 둘이 같이 있을 모습이 궁금하긴 하더라. 쟤는 정말 점장님 쫓아다니고도 남을 애였으니까.
근데 계산대가 이렇게 좁았었나, 태형이 헛기침을 두어 번 했어.
여기에 성인 두 명이 들어가 있으니까 당연히 좁지 이 멍청아. 아 잠깐, 어감이 이상해…….
갑자기 찾아온 정적에 서로를 등지고 괜히 헛기침만 하고 있는데, 때마침 교복을 입은 손님이 한 명 들어왔어.
학생인데 머릿결 되게 좋다. 내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리며 속으로 한탄을 하고 있는데 여자가 과자 진열대를 서성이더니 계산대로 오더라.
애초에 나한텐 관심도 없어 보였고, 곧장 태형한테 가서 앞에 딱 서더니,
"여기 허니버터칩 없어요?"
저거 뭔가 익숙한데. 태형의 시선이 나한테 돌아왔어. 올라가 있는 한쪽 입꼬리. 예전에 내 모습을 기억해보란 듯.
쳐다보지 마 인마. 내가 눈치를 주자 피실 흘러나오는 웃음을 겨우 거둬내고 여자한테 말을 하더라고.
"여기는 허니버터칩이 없어요. 재고가 아직 안 들어왔거든요."
"그럼 혹시……,"
"언제 다시 들어올지도 저는 모르구요."
두유노 질문 원천 차단. 나에게 다시 시선을 옮기진 않았지만, 어깨를 으쓱해 보이는 게 칭찬해달라는 듯이 보였어.
나한테도 저렇게 깔끔하게 말해줬으면 좀 좋아. 무조건 없다고만 해놓고선. 치사해. 예쁜 사람이라고 더 잘해주나.
계속 할 말이 있는 듯 계산대 앞을 떠나지 않는 여자의 모습에 흥미를 잃고 휴대폰을 만지작거렸어.
언제 갈려나. 나 여기 김태형 놀아주러 온 건데. 물론 매출 올라가면 점장님이 좋아하시긴 하겠지만, 소비자 입장에선 별 감흥이 없거든.
"뭐, 더 찾으시는 거라도 있으세요?"
여자의 촉이란 게 있잖아. 뭔가 심상치가 않은 분위기에 내 모든 신경이 곤두섰어.
얼른 가라. 네가 찾는 거 여기 없으니까 얼른 나가세요. 저 안 보이시나요. 제가 눈에 안 들어오죠? 그래요, 뭐.
눈에 안 들어와도 봐야 할 텐데. 내가 너 노려볼건데요 손님. 이제부터 좀 째려볼까 하는데.
온몸에서 거부반응이 슬슬 올라오는 게 딱 느껴졌어. 저 여자는 위험하다. 뭔가 노리고 있어.
내 강렬한 시선이 느껴진 것인지 여자가 한번 내 쪽을 쳐다보더니 금방 시선을 돌리더라고. 아니 이년이.
"네, 찾는 거 있어요."
넌 친절하게 답해주지 마, 가 아니고 알바생이니까…… 그래 뭐. 근데 이상한 게, 내가 왜 이러고 있는 지.
왜 괜히 이런 곳에서 경쟁심을 느끼는 거야. 아랫입술을 잘근잘근 물며 상황을 지켜보다가, 속이 뒤집어질 것 같아서 다시 휴대폰으로 고개를 숙였어.
나도 웃기지. 공부에 이런 경쟁심 느꼈으면 좀 좋아. 꼭 이렇게 의미 없는 거에 관심을 둬선.
다시 조금씩 편안해지는 마음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휴대폰 게임을 켜는데, 여자가 당돌하게 말을 꺼냈어.
"저, 오빠 번호 좀 알려주세요."
요즘 어린 애들은 다 저래? 그 당당한 모습에 게임을 실행시키던 나도 정지, 태형도 정지.
아니 나는 왜 정지 상태가 된 거지. 하지만 이미 둘의 대화로 기울어진 온몸의 모든 기능이 말을 듣질 않았어.
사실 궁금한 마음이 큰 것도 있었지마는. 근데 손님, 얘 번호 가져가면 피곤해질 텐데. 아 물론 손님 말고 얘가.
내가 남자 번호 따봐서 알아요. 내 쪽에서 불나도록 연락하거…… 아 갑자기 눈에 습기가 차네.
한참 동안 아무 말도 안 들려오는 우리 쪽이 조금 답답했는지, 여자애의 한쪽 눈이 찡그려졌어.
태형이 잠시 더 입을 다물고 있더니, 평소처럼 웃으며 말하더라고.
"저 폰 없어요."
그럼 오빠가 들고 있는 건 뭐에요. 엠피쓰리인가. 저 장난치는 거 아니니까 알려주세요.
여자애가 재촉하듯 쏘아 붙였어. 아니 쟤는 번호를 얻을 거면 사근사근 말하던가.
우리 태형이는 사근사근하게 말하는 거 좋아한댔는데. 아니 미쳤나 봐 우리 태형이라니. 으, 내가 정신이 나갔나.
"이거 공기계에요."
살랑살랑. 물건을 손에 쥐고 흔드는 게 버릇인지. 여자애 눈앞에 대고 흔들어 보이며 태형이 대답했어.
야, 애 울겠다. 놀리는 것도 아니고. 근데 더 웃긴 건 여자애 쪽이었어.
태형의 손에서 휴대폰을 낚아채더니, 이리저리 만져보다가 패턴이란 장벽에 걸리곤 다시 태형을 쳐다보더라고.
"그럼 카톡 아이디라도 알려주세요. 여기 알람 떠 있는 거 보이는데, 설마 없다곤 안 하겠죠?"
끈질기긴. 태형이 다시 여자애 손에서 휴대폰을 가져오더니, 굳은 표정이 되더라.
나 같아도 조금 화날 것 같기도 한 상황이었지. 아까까지만 해도 묘했던 분위기가 순식간에 살벌하게 변했어.
근데 태형이 얘, 정색하니까 되게 무섭네.
"이 정도 말했으면 알아들어야죠."
데이터 켜져서 카톡 알람 뜬 거 확인했을 거 아니야. 근데 왜 자꾸 물어볼까.
웃는 거랑 정색하는 거랑 갭이 아주 커서 말하는 것도 살벌하게 들렸어.
내가 이 정도인데……. 여자애를 쳐다보니 벌써 울먹거리더라고. 안쓰러운 어린 양같으니라고.
"그리고,"
태형이 왼쪽 문밖을 가리키며 여자애를 똑바로 응시하고, 말했어.
"저 밖에 있는 친구들부터 떼고 와서 얘기하던가."
이렇게 말하면 웃기기는 하겠지만, 난 외모로 판단되는 심심풀이 땅콩이 아니야.
애들 장난에 끼고 싶지 않으니까 알아들었으면 친구들 데리고 너희 동네로 가.
그 교복 여기 꺼 아닌 거 알고 있으니까.
그리고 정적. 여자애가 잠시 머뭇거리더니 빠르게 편의점을 나갔어.
야, 그래도 자라나는 새싹한테 너무 한 거 아닐까. 덩달아 같이 겁을 먹은 내가 조심스럽게 말하는데,
무슨 일이 있었냐는 것 마냥 다시 생글생글 웃는 태형. 그 모습은 흡사 지킬 앤 하이드 같았다고 말할 수 있었어.
"쟤 들어오기 전부터 한참 저쪽에 서서 친구들하고 우리 쳐다보더라고."
여기 동네 아니면 잠깐 왔을 거 아니야. 저 학교 근처에서 본 기억이 없는데.
내가 미쳤다고, 장거리 미성년자랑 재미 보겠어? 게다가 쟤네 가위바위보 했다니까.
그거 할 때 내가 딱, 알아차렸거든. 나 좀 똑똑하고 눈치 빠르지 않냐.
아, 네. 그러구나. 저 근자감은 어디서 나오는 건지 도통 알 수가 없네.
이미 실행 된 지 오래인 게임으로 시선을 돌리는데, 태형이 팔꿈치로 나를 툭툭 치더라.
"근데 너, 질투 안 했어요?"
"내가 왜요?"
에이, 그래도. 옆에서 잘생긴 친구가 번호 따이는 데 좀 질투해야지. 재미없게 그게 뭐에요.
지가 말하고도 웃겼는지 또 웃는데, 정말 대답 할 가치가 없어서.
김칫국 드링킹 하시네 저거 또. 정신연령이 초등학생 아닐까, 하는 나의 궁금증이 왠지 조금 풀리는 느낌이 들었어.
완전히 게임으로 시선을 돌린 나를 옆에서 계속 건드리면서, 징징거리는 태형에 머리가 지끈지끈.
알바를 하고 있으면 제발 일에 좀 집중해줄래. 나 여기 괜히 왔나 봐.
근데 또 은근히 좋아지는 기분에, 옆에서 장난을 걸어오는 태형을 딱히 말리진 않았어.
여자애한텐 미안하지만 덕분에 뭐…… 좋은 구경도 해봤고.
---
허니버터칩님, 기화님, 눈설님, 꿍잉님, 뿌링클님, 망상님, 정국아누나가미안해님, 꾹이님, 스웩님, 기린님, 솔님,
민슈가님, 쿠키몬스터님, 이킴님, 비빔면님, 정국친구님, 초코님, 듀드롭님, 태태랑님, 장희빈님, 뽀뽀님, 맑음님, 권지용님,
단미님, 꽃잎님, 버물리님, 취향저격님, 주땡님, 하얀눈님, 편순이님, 뷔슝님, 빈님, 바보별님, 보름달님, 나침반님, 김태태님, 지렁이님 ♡
글 분량이 많이 짧아보여도, 한 편을 쓸 때 거의 두시간 가량이 걸리는 즉흥 연재 방식이기 때문에 좀 늦을 때가 많아요 8ㅅ8
독자분들의 넘치는 사랑에 하나하나 전부 답글을 달아드리고 있지만 그것도 벅차구, 시간이 그것대로 많이 걸리기도 해요.
그 점에선 제 답글이 짧아도 독자분들이 이해해주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그리고 추가로 암호닉을 신청하셨는데 왜 이번 편에 제가 없죠? 하시는 분들이 가끔 계셔서 하는 말이지만
제가 작품을 먼저 쓴 후, 그 전 글들의 댓글을 확인하곤 해요. 그래서 신작이 올라왔는데 암호닉은 추가가 안돼는 경우가 생기는거죠.
만약 2편 이상 암호닉이 추가가 안된다, 하시면 그 때 말씀해주시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