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처참했다. 완전히 갈기갈기 찢겨진 모습으로, 검붉게 피칠갑을 한 채 그는 바닥으로 추락했다. 루한의 모습을 본 민석의 두눈이 휘둥그레져서는 그에게 달려갔다. 루한에게 한 발짝 한 발짝 다가갈 때마다 심장이 크게 요동치는 듯 했다. 그러다 민석이 진흙탕위로 완전히 엎어졌다. 뒤에는 인민군 한 명이 그에게 총구를 겨눴고 그 새에 두어번이나 방아쇠를 당겼기 때문이었다. 총알은 민석의 오른쪽 등과 옆구리를 후벼팠다. 민석은 개의치않고 두팔과 다리를 사용하여 루한에게 기어갔다. 어떻게든 그를 가까이서 봐야했다. 어쩌면 최후의 순간이 될 수 있는 지금을, 마지막이나마 필사코 그에게로가 그를 두 눈에 담아야했다.
"루한, 루한!"
거의 눈이 감길 듯 한 루한을 민석이 뺨을 세게 내리치며 그를 불렀다. 울음이 가득 섞인 음성이었다. 루한이 가늘에 눈을 떴을 때, 시야에 가득 담긴 민석을 보더니 희미하게나마 웃음을 지었다.
"민석아, 너는 살아."
"무슨 소리야, 같이 가야지."
루한의 목소리에 잡음이 가득 꼈다. 생명의 신호는 아주 가느다랗고 섬세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그것은 곧 끊어져 완전히 두 세계의 다리를 부셔놓을 것이다. 민석과 루한 둘다 자리에서 일어나지를 못한채 눈빛을 주고받고 있었다. 민석이 루한의 손을 가까스로 잡았다. 루한도 손을 놓지 않으려는 듯 작게나마 힘을 주고 있었다. 민석을 향해 총을 겨눈 인민군은 다른 아군에 의해 전사한 듯 했다. 이 드넓고 을씨년스러운 전장에는 온갖 폭격기 소리와 수류탄이 터지는 소리가 났지만 그런것은 아무래도 상관이 없었다. 루한이 민석의 볼을 만졌다.
"그새 살이 다 빠졌네."
"흐윽, 루한. 제발 조금만 버텨."
루한이 미간에 주름을 잡으며 민석을 염려했다. 민석 역시 루한을 걱정하며 눈물을 지었다. 전장 속 홀로 외롭게나마 펴있던 분홍의 벚꽃나무는 이제 꽃잎이 다 떨어지고 사람들은 더 이상 어여뻤던 벚꽃나무에게 눈길을 주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