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 [오늘 왠만하면 성규씨 데려 오지마 - 이호원 08:52 AM] 호원의 간단한 문자는 아침을 번잡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우현은 이유도 모르는 채 따라 가겠다는 성규를 성열과 명수에게 맡겨야 했고, 성규는 급 시무룩해졌다. 이호원이 아무리 친구고, 쓸데 없는 드립을 치는 경우가 많다 하더라도, 특히 업무부분에선 엄격하고 어쩌면 우현보다도 공적이었다. 그니까, 그가 이러한 문자를 보냈다는 것은 진짜 심각한 이유가 있다라는 것을 의미했다. 게다가, 문자를 보니 성규랑 관련된 일이 틀림없었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점점 더 깊어지는 우현의 표정에 따라 성규의 고개는 더 숙여져만 갔다. 따라가고 싶다고 투정 부리고 싶은데 전혀 그럴만한 분위기가 되지 않았다. 그리고, 우현을 더 걱정시키고 싶지 않기도 하고. 번잡했지만, 조용한 아침이었다. 어제의 시끄러운 아침, 그 다음은 평화의 연속이었다. 그냥 둘이 소소한 얘기를 나누면서 티비도 보고, 케이크 촛불도 끄고, 먹고. 그냥 어느 사람의 평범한 일상과 다름이 없었다. 근데 오늘 아침은 그 느낌부터가 달랐다. 불안감, 꼭 무슨 일이 일어날 것 같다는 불길한 예감이 몸 주위에 끼쳐왔다. “성열이랑 명수랑 잘 놀고, 응? 이따 데리러 갈게.“ “.. 아저씨도, 조심히 다녀오세요.“ 조심히, 어쩌면 지금 상황에서 꼭 필요한 말이었다. 우현은 내색하지 않으려 했는데도, 대답하는 성규의 어투를 보니, 제 표정에 심란한 마음이 드러나있는 것 같아서 성규에게도 미안했다. 별 일 아니겠지, 라고 넘겨짚고 싶은데 생각만큼 되지 않았다. 분명 호원이라면 기업 인수도 다 되어 있을 텐데. 성열과 명수는 성규 좀 봐달라는 말에 아침인데도 선뜻 허락을 내줬다. 딱히 둘다 바쁘지 않은 듯 했다. 다음에 밥 한번 쏘겠다는 약속을 걸긴 했지만. 이리 됬든, 저리 됬든 일단 회사는 가야 했다. 무슨 일인지 확인해야 하는 것이 급했고. 그냥 가기는 아쉬워 뾰루퉁한 성규의 입술에 살짝 입을 맞추고 아랫입술을 약하게 빨았다. 입술만 맞대었을 뿐인데, 기분 좋은 성규의 향이 훅 끼쳐왔다. 무거운 마음이 일부분 내려가는 듯 했다. “갔다올게. 핸드폰 잘 갖고 있어, 연락할게.“ “네...“ 정말 가기 싫다. 현관문을 닫고 주차장에 내려가 운전석에 앉으니 다시금 초조함에 잠식되어 가는 것 같았다. 벌써, 성규가 보고 싶었다. 저가 사장실로 들어오자 호원이 저의 출근을 보고 그대로 따라 들어왔다. 무슨 일인데, 급하게 나간 말이 저의 조급함을 여실히 표현해주고 있었다. 호원의 손에는 종이 한 장이 들려있었다. 제발, 아무 일도 아니길. “일단 진정하고 들어.“ “알았어. 뭔데.“ “그.. 성규씨가.. 일하던 그,“ “어, 그래, 거기.“ 호원의 말에 우현의 미간이 확 구겨졌다. 아직도, 그 곳에 무언가 남아있던가. 분명, 그 곳과의 연결고리는 이제 없어진 것 같았는데, 다시금 연관되는 꼴에 조급함과 동시에 성규에 대한 안쓰러움이 몰려왔다. 한숨만 내뱉는 우현에 호원이 살짝 눈치를 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성규씨의 민감한 부분이니 우현 앞에서 얘기 꺼내기가 애매했기 때문이리라. “그래, 거기. 여튼 거기에서 옛날에 성규씨 고객들이 많았나봐... 근데, 지금 거기에 성규씨가 없는데도 계속 고객들이 성규씨 찾는 거 같더라고...“ “그래서?“ “근데, 문제가.. 아침에 확인해보니 어제자로 3천 다 들어와있더라.“ “뭐? 근데 기업 인수 다 한거 아니였어?“ “그렇긴 한데, 어제 그 성규씨 아버지 분이 전화왔어. 3천 다 갚았으니, 성규씨 돌려달라고.“ 기업 인수가 다 되었다는 말에 안도감을 되찾은 듯 하다가 전화가 왔었다는 말에 우현의 미간이 약하게 구겨져갔다. 뻔뻔하게 돌려달라니, 어떻게 아버지란 사람이 아들을 그런 취급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아들의 인격과 인권을 싸구려 창촌에서 몇 장 안되는 종잇덩어리와 맞바꾸어 먹다니. 지독하게 지독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호적 바로 아래에 위치한 가장 가까운 혈육인데. 언뜻 호원의 문자가 이해되었다. 성규가 이 말을 들으면 슬퍼할 것이 분명했다. 단순한 슬픔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극도의 두려움과 불안감,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오는 괴리감과 좌절감, 혹은 그 이상. 무너지는 성규의 모습이 눈 앞에서 보여지는 것 같아 숨이 턱 막혀왔다. 절대 성규가 다시 돌아가는, 그런 일은 일어나선 안됬다. 그나마, 제일 안심이 된 건, 기업 인수는 다 되었다는 것이었다. 다소 성급하게 내린 결정치고는 확실한 결과였다. 저와 성규가 염려했던 만큼, 심각해 보이지 않아 다행이었다. 그 사람이 3천을 갚든 8천을 갚든, 모두 제 돈이었다. 돌고 돌아, 결국 제자리인 곳에서 허우적대는 꼴이 퍽 웃겼다. 아들을 그렇게 이용했는데, 고작 별것 아닌 제 손에서 놀아나다니. 성규를 그렇게 고생시킨 것에 비해, 비교도 안 되는 조그마한 조롱에 불과했지만, 느껴지는 쾌감은 꽤나 쓸만했다. 문득, 성규가 보고 싶어, 외운 성규의 번호를 망설임없이 눌렀다. “아, 일단 알았어, 가 봐.“ “어. 오늘 일정은 메신저로 보낼게.“ “응.“ 가만히 서있던 호원을 내보내자 지루하게 반복되던 연결음이 달칵 거리는 소리와 함께 끊기고, 그토록 듣고 싶었던, 들어도 질리지가 않는 얇은 목소리가 귓가를 채웠다. 어, 아저씨! 밝게 대답하는 목소리에 저절로 입가에 미소가 띄어졌다. 새삼, 자신이 팔볼출이었음을 다시 깨달았지만, 올라가 있는 입꼬리만은 내릴 수가 없었다. 성규의 목소리 뒤로 남우현이야? 남우현? 하고 방정 맞게 묻는 성열의 목소리와 뭐가 그리 웃긴지 깔깔대는 명수의 웃음소리도 들렸다. 셋이 잘 놀고 있는 것 같아, 마음이 가벼워졌다. 하긴, 학창시절부터, 엄청난 친화력을 자랑하던 둘에게는 어려운 일도 아니었겠지만. “뭐하고 있어?“ “음, 그냥... 성열,“ “야, 남우현.“ “... 성규 바꿔.“ 잘만 얘기하다 갑자기 들리는 성열의 목소리에 기분이 확 가라 앉았다. 어, 어, 성열이형! 당황한 성규의 목소리에 아직까지도 쳐웃고 있는 명수의 웃음소리가 성열의 장난스런 말과 함께 들려왔다. 으.. 이성열.. 꽤 낮은 목소리로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아랑곳하지 않는 성열은 계속 재잘거렸다. 그러나, 그 내용은 다시금 저의 기분을 기쁘게 해주는데 충분했다. “야, 꼬맹이 왜 이렇게 귀엽냐?“ “... 내꺼라서.“ “아, 씨, 너 자꾸 솔로 염장 지를래? 아,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내가 아까 꼬맹이한테 너 어디가 좋냐 했거든?“ “서, 성열이 형!“ “김명수, 쟤 입 막아.“ “근데,“ 꽤나 상투적인 질문인데도, 성규의 대답이 궁금했다. 진심으로 대답이 궁금한게 첫번째 이유고, 스피커를 통해 성열의 말에 애절하면서도 당황한 성규의 목소리가 흘러나온게 둘째였다. 그게 또 귀여워서 괜시리 이번만은 놀려주고 싶었다. “얘가 뭐라고 했는지 알아? 다 좋대. 어메이징그러 그래서 내가 하나만 고르랬더니, 어후 진짜, 그냥 너라서 다 좋대. 근데 이 징그러운 말을 얼굴 빨개진 채로 우물우물거리면서 말하는데, 너 얘랑 왜 사귀는지 알겠더라. 졸라 귀여워.“ 성열의 조잘조잘 대는 속도가 빨랐음에도 모든걸 이해할 수 있었다. 아까만큼, 어쩌면 아까보다도 입꼬리가 더 올라간 것 같았다. 머릿속에서 자동적으로 재생되는 성규의 모습이 저를 흐뭇하게 만들었다. 분명, 얼굴과 귀가 홍당무가 된채 고개를 숙이면서 입은 우물우물, 말은 조곤조곤 내 뱉었겠지. 그려지는 모습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졌다. 남에게 듣는 애인 칭찬이 이렇게 좋을 줄은 몰랐다. 아까 회사 오기 전의 심각함은 온데 간데 없이 사라져 버렸다. “너네 어디야.“ “어디긴, 내 사무실이지.“ “일 없어?“ “급한 건 없어. 명수도 그렇고, 왜?“ “성규 일로 보내.“ “나? 나 보고 하는 소리야?“ “어.“ “미, 미쳤어? 니 회사 조온나 멀잖아! 시간 낭비야, 안 가, 아니, 못 가. 끊어,“ “... 성규 좀 챙겨주고.“ “안 그래도 김명수가 니놈 빙의해서 챙겨주고 있다. 끊어, 빠염.“ 정말이지, 너무나도 성열스러운 말에 피식 웃고 핸드폰을 테이블 위로 내려 놓았다. 앞에 가득 쌓여 있는 결재 서류들을 체크하려 해도 생각만큼 집중이 되지 않았다. 그냥 너라서 다 좋대, 기분 좋은 말이 머릿속에 BGM으로 깔려 저를 속수무책으로 만들고 있었다. 더욱, 성규가 보고 싶어졌다. “다 한거야?“ “어, 오늘 스케줄 끝. 바로 집 갈거지?“ “응. 넌?“ “나도 곧.“ 밀린 업무들을 하면서 몇 번이나 저를 스스로 채찍질했는지, 일을 다 끝낸 지금 시각은 고작 오후 6시 26분이었다. 점심도 간단히 해결하며, 일을 다 끝낸 이유는 성규와의 저녁에 있었다. 성규를 만나기 전에는, 호원과 구내 식당에서 저녁을 해결했었지만, 지금은 달랐다. 물론, 저번의 아침으로 보았을 땐, 성규가 어느 정도 요리를 잘 한다는 것 즈음은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오히려 제가 더 성규에게 요리를 해주고, 같이 식탁에 마주 앉아 밥을 먹고 싶었다. 아직 이른 시간이긴 하지만, 혹시나 성열과 명수랑 저녁 먹었을까봐 성규에게 문자를 보냈다. 그리고, 답장이 곧바로 왔다. 성규가 아닌, 성열에게. [퇴근하냣? 명수네 집으로 와랏. 넷이 저녁 먹자 - 이성열 06:32 PM] [지금 김명수 집? - 06:32 PM] [ㅇㅇㅋ 꼬맹이랑 명수가 밥함ㅋ 둘이 졸라 다정하니까 빨리 와ㅋ 꼬맹이 뺏길라ㅋㅋ - 이성열 06:33 PM] [김명수 혼자 밥하라고 해] 성열의 문자에 빠르게 겉옷을 껴입고, 가방을 챙겼다. 당연히, 성열이 장난으로 오버한다는 것임을 알고 있지만, 괜한 마음에 최대한 빨리 집을 가고 싶었다. 급한 걸음으로 사무실을 빠져 나가려 할 때, 다름 아니게 들려온 건 호원의 목소리와 귀를 울리도록 시끄럽게 열리는 문 소리였다. 그토록 요란하게 문을 열고 들어와 마주한 건, 절대 낯설지 않은 얼굴. “저, 이러시면 안,“ “김성규, 내놔.“ 성규의 아버지였다. 우현의 얼굴은 급속하게 식어, 차가운 무표정을 띠고 있었다. 40대 후반의 표독한 얼굴은, 그 전에 존댓말을 쓰며 빌빌 기던 모습과는 조금 달라져 있었다. 언젠가 이런 일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그게 오늘일 줄이야. 성규와의 저녁은 더 늦어지겠지만, 확실히 오늘 성규를 회사로 데려오지 않은 건 운이 좋았다. 만약, 성규가 있었다면, 으, 상상도 하기 싫었다. “3천, 갚았어. 그러니까 김성규 돌려줘.“ “...“ “얼른!“ 어지간히 급한 모양인 듯 했다. 성규의 부재로 인한 매음굴의 수입 손실이 장난이 없었겠지. 그러나, 겨우 그런 합리화따위 조금도 성립되지 않는 이유로 성규를 돌려주는 자비는 우현에게 없었다. 더불어 성규를 돌려주고 싶은 마음도. 시리도록 차가운 무표정을 띤 우현이 정적 속에 또각 또각 구두 소리를 내며 성규의 아버지 앞에 섰다. “당신이 갚아야 할 돈, 이자 합쳐서 8천, 그리고 내가 성규 데려가면서 갚으라고 했던 돈이 3천이야.“ “그, 그래서 갚았잖아!“ “자기 가게 수입은 머리가 잘 돌아가면서, 이런데는 젬병이신가봐? 내가 3천 갚으면 성규 돌려준대?“ 낮은 목소리가 조용한 사무실을 울렸다. 아까 당당하고 뻔뻔했던 모습은 어디갔는지, 우현의 말에 말을 더듬거리는 꼴이 거슬렸다. 돈에 눈이 멀어 아들까지 팔아 먹는, 더러운 인간과 같은 공간에서 상종조차 하기 싫었다. “적어도 8천을 갚고서 성규를 돌려달라고 해야 말이 되지. 안 그래?“ “... 그, 걸레같이 더러운 애가 뭐, 뭐가 좋다고!“ 우현의 눈이 순간 번뜩였다. 더이상, 용납할 수 없었다. 처음부터 제가 이긴 싸움이라 이런 쓰잘데기 없는 데에다 감정 소모까지 하고 싶진 않았는데. 머리 속의 핀트가 어긋나는 것을 겨우 억누르며 우현이 이내 말을 이었다. “당신 아들이야. 더럽다고? 그렇게 만든 당신은 깨끗해? 다른 사람도 아닌 아들을?“ “내 아, 아들이야, 니가 상관,“ “있어, 지금 내가 데리고 있으니까. 저번에 내가 물었잖아, 정말 아들로 키웠냐고. 그리고, 당신은 이런 말할 자격 없어. 왜냐고?“ “...“ “당신이 갚았다고 생각한 3천, 그것도 내 돈이거든.“ 우현의 말을 이해한 성규의 아버지의 얼굴이 급히 창백해졌다, 다시 빨개졌다. 그리고, 이 상황이 창피한지, 자리를 박차고 쿵쾅쿵쾅 발을 굴리며 사무실을 나갔다. 순식간에 일어난 상황에 우현이 한 숨 쉬고, 아려오는 머리를 짚었다. 정말로, 성규가 간절했다. 심란의 끝을 달려가는 제 마음을 해결해주는 건, 오직 성규뿐이니까. 오래 기다리셨죠ㅜㅠ 퓨ㅠ 사실 이번 편이 역대급으로 쓰기도 어려웠고 귀찮고ㅠㅜ 연말 끝나서 한가할줄 알앗능데 연말이 더 바뻐ㅠㅠ 그리고 전 수위랑 맞나바여..ㅋ 없으니까 힘들다. 수위 쓰는게 더 쉬운데!! 쉬벌, 외전 생각하고 잇능데 진짜 63빌딩을 방앗간으로 만들 떢떢떢만 엮을 테야. 읽어주셔서 감사하구, 암호닉 계속 받아여~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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