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1 INFINITE ONLY Track List 01 : Eternity (부제 : 41일) 오늘 회식이다, 코치의 한 마디에 연습장에 있던 선수들이 들썩였다. 으레 있는 일이건만은 항상 같은 한마디에도 변함없이 어린애들처럼 좋아하는 선수들의 모습에, 코치의 얼굴에도 작은 미소가 일었다. 이 날을 얼마나 기다려 왔던가, 간만의 회식에 열광하던 선수들은 이내 무리에서 동떨어져 조용히 웃고 있는 한 남자에게로 일동 다가갔다. "역시 김양갱, 고맙다." "우리 팀 회식은 다 네 손에 달린거 알지? 고마워." "아니에요. 고생은 다같이 했는데요, 뭘." 모두들 성규에게로 다가가 어깨를 한 번씩 두드려주자 성규가 옅은 미소로 답했다. 태릉 양궁팀의 회식의 대부분은 온전히 성규가 일궈낸 결과였다. 묘하고도 새침한 표정으로 차분하게 과녁의 정중앙을 막힘없이 맞추는 성규의 모습에 팀원들은 성규를, '김성규 양궁 공주'를 줄여서 '김양공'으로 불렀었다. 그러던 후에 어느 회식에서 술로 인해 발음이 완전히 뭉개진 팀원이 성규를 '김양갱'으로 부른 이후로, 성규는 김양갱으로도 불리게 되었다. 김양공이라 부르든 김양갱이라 부르든 성규는 신경 쓰지 않고 부름에 어디든 다 답해 주었다. 하얀 얼굴 위의 얄쌍한 눈과 붉은 입술을 조금 휘은 채로 웃는 모습은 신기하게도 보는 사람들을 기분 좋게끔 만들었다. 하지만 성규는 조용했다. 아니, 조용하다고 표현하는 것보다는 신비주의라 하는 것이 더 알맞았다.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양궁 이외에 무슨 일을 하고 다니는 지 등 자신에 관한 이야기들을 무서울 정도로 일체 하지 않았다. 팀원들이 알아내려고 해도 예의 항상 짓는 그 미소로 답할 뿐이었다. 처음에 성규에 대해 알아내기 위해 애를 쓰던 팀원들도 1,2년이 지난 이후로 제 풀에 지쳐 대답 않는 성규를 그러려니 해주었다. 쓸데 없을 정도로 지나친 신비주의, 그냥 선수라고 하기에는 보통 이상의 외모, 세계 1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양궁 실력까지, 왜 팬클럽도 있는지 쉬이 이해가 될 만한 그런 사람이었다. 막내가 아님에도 막내에 버금가는 사랑을 받고 있는 성규를 질투하는 팀원들도 있을 법 했지만, 모두들 티를 내지 않았다. 성규를 대놓고 싫어하기에는 대단한 용기가 필요하리라는 걸 암묵적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리라. 회식의 장소는 빠르게 정해졌다. 항상 가던 장소 중의 하나인 고깃집으로 가기 위해 팀원들은 연습하느라 어질러 놓은 각자의 짐들을 하나둘씩 싸기 시작했다. 성규도 마찬가지로 제가 남겨 놓은 연습의 흔적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과녁에 꽂혀 있는 무수한 화살들을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속도로 뽑아 내었다. 10점, 9점에 빼곡하게 꽂혀 있는 화살들은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감탄을 자아낼 만했지만, 성규의 표정 위엔 아무것도 없었다. 성규가 마지막 화살을 뽑아냈을 때 성규의 주머니에 작고 규칙적인 진동이 일었다. [남우현] 액정 위에 뜬 이름은 이미 예상한 이의 것이었다. 수신 전화가 끊길세라 성규가 통화 버튼을 누르고 핸드폰을 귓가에 갖다 대었다. "어." [오늘 회식이야?] "응." [어디로?] 우현의 물음에 성규가 팀원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이미 팀원들은 모든 준비를 거의 다 마쳐가는 상태였다. 이러다 저 혼자 늦을 게 뻔했다. 또 팀원들은 저를 기다리겠지. 거기까지 생각이 마치자, 성규가 급하게 '이따 문자줄게.' 라는 말과 함께 우현과의 통화를 끊었다. 화살들을 정리하고, 활도 제자리에 놓고, 제 짐을 차곡차곡 정리했다. 빼곡히 모여있는 캐비닛 안에 고이 모셔져 있던 평상복들로 갈아입고 나니, 모든 팀원들이 비슷한 시각에 준비를 마친 것 같았다. 다 모였으면 가자, 팀장의 말에 모두들 바삐 걸음을 옮겼다. - "양갱은 진짜 애인 없어? 너 그러다 좀 있으면 결혼할 시기 놓친다니까." "에이, 저는 아직…" "아직, 아직 하다가 진짜 놓쳐." "태릉에도 이쁜 애들 많잖아. 리듬체조부만 가도, 어유, 얼른 골라." "제가 고를 처지는 아니죠." "복에 겨운 소리하고 있네. 너 좋아하는 애들도 많을걸?" 주변의 보챔에 성규가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다들 점차 술기운이 오르는 건지, 대화 주제가 바뀌는 속도가 빨랐다. 어느 한 주제를 길게 이어나가지 못하고, 이 사람 얘기했다 저 사람 얘기했다, 집중력이 빠르게 떨어지고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성규의 애인 여부에 대한 얘기도 잠깐 스쳐지나가는 주제 중 하나가 되어버렸다. 애인이라…… 성규는 그런 존재를 그렇게 달갑게 여기지 못하였다. 누군가의 생활을 모두 알고, 제 생활에 대해 낱낱이 알려주는 것이 큰 부담이 되었을 뿐더러 그럴 자신도 없었다. 함께 데이트를 하며 웃고 떠드는 시간에, 양궁을 좀 더 연습해서 실력을 향상시키는 것이 더 나으리라, 하는 생각이기도 했다. 결혼도 마찬가지였다. 아직 결혼 적령기도 아니었으며 주위의 어떤 여자를 만나 결혼을 하더라도, 이런 제 소신이라면 쉽게 헤어지게 된다는 것을, 성규는 잘 알고 있었다. 그렇게 여자에게 상처주고 원래의 무(無) 상태로 되돌아오기까지의 시간을 버리고 남들이 좋지 않은 시선들을 받아내는 것보다는, 계속 혼자인 게 훨씬 나았다. 무엇보다 사랑은 영원할 수 없었다. 아직도 선명히 남아있는 어린시절의 부모님에 대한 기억은, 성규에게서 사랑이란 감정을 앗아갔다. 제 주제에 무슨 사랑타령은, 자조한 성규가 쓴 소주를 목에 넘겼다. 다른 종목에 비해서 큰 운동을 요구하지 않는 양궁이라 하여도, 운동 선수들 답게 각종 음식들과 술잔이 비어지는 속도는 빨랐다. 이미 벽에 기대 수면을 하는 팀원들도 있었다. 진즉 성규는 자신이 한계치가 머지 않았음을 느끼고, 술 대신 물만 계속 들이키고 있었다. 테이블에는 성규를 포함한 6명만이 붉어진 얼굴을 하고 계속 버티고 있었다. 얼른 누군가가 '일어나자.' 한 마디만 하면 좋을텐데…. "아이, 지금 몇 시야…." "헤에- 지금은 11시 27분! 27분입니다아." "27분? 11시?" 식당의 시계를 확인한 한 팀원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자고 있는 팀원들을 막무가내로 깨우고, 술 취해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 팀원들의 등을 두드렸다. 버스 끊기겠다, 얼른 가자. 성규도 그에 자리에서 일어나 팀원들을 챙겼다. 성규를 포함한 비교적 멀쩡한 팀원들이 헤롱거리는 팀원들을 부축하면서 식당 밖을 나섰다. "김성규." 자신을 부르는 익숙한 목소리에, 성규가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성규의 시선 끝에는, 식당 출입문 옆의 벽에 기대어 있는 우현이 있었다. "어떻게 알았어?" "… 너네 팀 여기 자주 오잖아." "너… 이 근방 음식점 다 돌아다녔어?" 어? 아니야. 여기가 첫번째였어- 성규의 눈을 피하며 말하는 우현의 눈동자에는 떨림이 가득했지만 성규의 눈동자는 땅바닥을 향했다. 우현의 발치에 놓여 있는 담배꽁초 서너개, 성규의 시선따라 우현도 시선을 옮기자 여과 없이 드러나는 기다린 흔적에 우현이 성규를 보챘다. 얼른 집 들어가자? 나 차 가지고 왔어. 우현의 말에 성규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문자 왜 안 보냈어?" "맞다, 까먹었어." "그 분도 태워." "…어?" "너 태릉 가는거 아니었어? 부축하고 있길래 같이 태릉가는 줄 알았는데…" "…… 너네 집 가자." 성규의 말에 성규와 우현의 시선이 동시에 얽혔다. 우현의 동공이 세차게 흔들렸다. 성규가 자신에게 한쪽 팔을 어깨에 두르고 있는 팀원을 위해 마침 제쪽으로 오고 있는 택시를 잡았다. 태릉이요. 거스름돈은 안 주셔도 되요. 그렇게 팀원을 보낸 성규가 우현의 차를 향해 걸어갔다. 얼른 가자. 어?어… 성규의 말에 어버버- 대답한 우현이 운전석에 올라탔다. 아직 움직이지 않은 차 안을 채우는 묘한 기류에 성규가 피식- 웃었다. 출발 안 해? 아, 어, 가야지. 성규가 피곤한 몸을 창문에 기대었다. 아무 생각 없이 창 밖을 보는 도중에, 저를 흘끔흘끔 쳐다보는 우현의 시선이 꽤 여러번 느껴졌다. 우현은 펜싱 선수였다. 성규와 마찬가지로, 태릉에서 훈련하고 각종 대회에도 출전하였다. 성규가 양궁계의 공주라면, 우현은 펜싱계의 왕자같은 존재였다. 이미 세간에도 성규와 우현이 절친이라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어, 성규와 우현의 동반 출연을 원하는 예능 프로그램이나 CF가 많았고, 많이 출연해왔었다. 그러나, 우현에게는 성규는 친구 이상의 존재였다. 우현과 성규 모두 일찍이 국가대표를 준비해온지라, 훈련과 연습 때문에 중학교 때부터 자주 결석하였었다. 그래서 우현은 중학교 1학년 때 같은 반이 된, 자신과 비슷한 성규에게 동질감을 느꼈었다. 그러나 성규는 다른 친구들과는 묘하게 달랐었다. 무서울 게 없고 깨발랄한 남학생이기 보다는, 다른 학생들과도 잘 어울리면서 항상 침착하고 흐트러짐이 없었다. 묘하게 선이 그어져 있는 느낌, 거기에 이끌려 우현은 성규에게 친한 척을 하기 시작했고, 그렇게 같은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를 지내온 결과, 성규는 자신의 상당히 큰 부분이 된 우현을 인정해야만 했다. 그러나 우현은 성규에 대한 자신의 남다른 감정을 지각했다. 그냥 문득 어느날, 우현 자신이 성규를 좋아하고 있다는 것을 실감했을 뿐이었다. 고백도 못해본 것은 아니었다. 성규는 눈치가 빠른 사람이었다. 제가 그런 감정을 갖고 있다는 걸 성규가 눈치채고 있다는 것을 우현도 어느 정도 느끼고 있었다. '잘 모르겠어. 우현아, 나도 너 좋은데 사랑은 아니야. 미안한데… 난 사랑 안 믿어.' 다른 날과 다름 없이 제 고백에 무덤덤하고 침착하게 말한 성규에, 우현은 수긍할 수 밖에 없었다. 성규라면 우현의 고백을 받아주지 않고도 남을 사람이었다. 우현은 성규의 대답에 웃지도 울지도 못하였다. 그냥 그 다음날 부터 아무렇지 않은 척, 다시 성규에게 인사하였고, 성규 역시 그랬다. 이후 첫섹스도 다 술김이었다. 우현이 펜싱 대회에서 메달을 딴 날, 우현은 팀원들과의 회식을 1차로, 집에서 성규와 2차로 술을 더 마셨다. 2차로 뛰는 우현이 진탕 취하는 것은 물론이고, 술에 쎄지 않은 성규 역시 그 날따라 유독 더 취하였었다. 우현은 술김에 더 이뻐 보이는 성규에게 무작정 입술을 부딪혔고, 아무런 저항없이 페이스를 맞춰주는 성규에 그만 일을 치르고 만 것이었다. 미안해 어쩔 줄 모르는 다음날의 우현과 달리, 성규는 괜찮다며 웃어보인 것이 다였다. 그 이후로, 자주는 아니지만 가끔 우현은 성규를 안았고 성규 역시 우현에게 몸을 맡겨왔다. 구차한 변명일지 몰라도, 성규는 나름의 위로였다. 마음을 돌려받지 못한다는 것, 그에 대한 상처가 얼마나 큰지 일찍이 알고 있던 성규였다. 그래서 우현에게 미안했다. 어쩌면 우현에게 더 잔인한 처사일지도 모르지만, 성규는 마음대신 몸이라도 우현에게 주고 있는 것이었다. 그 뒤에 오는 쾌락은, 우현과 성규에게 덤과 같은 것이었고. 성규가 고개를 돌려 우현을 쳐다보았다. 우현은 잘생겼었다. 현실에서 이렇게 잘 생긴 사람을 우현외에 본 적이 없었다. 이토록 잘 생기고 능력도 좋고 미래가 창창한데, 저한테 묶여있다니. 우현에 대한 안쓰러움으로 성규가 조용히 눈을 감았다. - 불투명한 커튼 사이로 비친 햇빛이 성규의 눈가를 간지럽혔다. 협탁에 놓여 있는 탁상 시계로 눈을 흘기니, 지금 출발해도 훈련에는 한참 늦을 시각이 보였다. 어제는 간만의 회식이었을 뿐더러 회식의 주인공은 저였으니 조금은 늦어도 괜찮겠지, 평소에는 잘 하지도 않던 자기 합리화를 하며 몸을 일으킨 성규가 눈을 서너번 꿈뻑였다. 간밤의 격한 관계로 허리에 통증이 몰려왔다. 이쯤이면 익숙해질만도 한 고통이었는데, 도저히 그렇지가 않았다. 고개를 돌리니 창문쪽으로 몸을 틀어 누워있는 우현이 보였다. 뒷모습만 보아도 그려지는 얼굴에 성규가 조용히 웃었다. 잘 생기고, 능력도 좋은 녀석이 왜 저한테 얽매여 있는 건지… 성규가 소리 안 나게 이불 밖으로 몸을 꺼냈다. 씻지도 않고 잔 몸이 찝찝하긴 했지만, 우현의 집에서 샤워했다가는 우현이 깰게 분명했다. 불편하더라도 태릉에서 샤워하지, 뭐. 성규가 바닥에 떨어진 제 옷을 주섬주섬 주워 입었다. 같은 차림으로 들어가면 선배들이 뭐라 할려나, 집에 들려야 하나. 아무도 모르게 운동복으로 갈아입을 수 있겠지? 잡다한 생각을 하다보니 옷을 입는 성규의 행동은 금새 마무리가 되었다. 방문으로 걸어가려 발을 떼어낼 때, 문득 여직 누워있는 우현이 떠올랐다. 성규가 조심스레 침대에 걸터 앉았다. 우현은 제게 과분했다. 저를 향한 우현의 사랑 역시 과분했다. 고백을 받지도, 내치지도 못하고 가만히 아무 말 않는 저를 이렇게까지 사랑해줄 사람은 인생 전체를 아울러 우현밖에 없을 것이었다. 우현은 제게 있어서 한없이 고맙고 미안한 존재였다. 그러나 더 이상은 아니었다. 돌려받지도 못 하는 사랑을 하는 우현을 이해할 수 없지만 싫지는 않았다. 오히려 이런 애매한 마음을 알아주는 우현이 고마웠을 뿐. "우현아," "……." "고마워, 내 옆에 있어줘서. 넌 내 사람 중 마지막이야. 앞으로도 그럴거야." "……." "근데 사랑은 잘 모르겠어. 너가 아니더라도 나한텐 사랑은 없어." "……." "그래도 너만 괜찮다면 우린 영원할거야. 계속 닿아있을거야." 이윽고, 조용히 방문이 닫히는 소리가 났고, 우현이 느릿하게 눈을 떴다. 성규도 아마 저가 일찍이 깨어있었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을 것이었다. 설령 모른다 하여도 성규의 말에는 변함이 없을 것이라는 걸 우현은 알고 있었다. 슬펐다. 성규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성규가 자신을 사랑하지 못한다는 마음이 이해가 되어서 슬펐다. 성규가 한 말도 일부러 저에게 상처주려는 의도가 아니라, 그냥 자신의 진심을 솔직하게 표현한 것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자신이 사랑해주지 못 하더라도 떠나지 말고 계속 옆에 있어 달라는 말을 서툴게 한 것일 뿐인데, 막상 들으니 가슴이 아려오는 것을 어찌할 수가 없는 터였다. 그래, 짝사랑도 사랑이라 했다. 저만 괜찮다면 영원할 이 관계라면, 저 혼자만 삭히면 될 외로움과 아픔이었다. 다시 감은 우현의 두 눈 사이로, 눈물이 흘러내렸다. 정말 오랜만이에요. 이제 다시 규 륀느 ON 입니다 ㅎㅎ 트랙리스트 하기에는 조금 늦은 감이 없지 않아 있지만 그래도 제 욕심에 덜컥 써버렸네요. 트랙리스트 완료하고 너나템으로 돌아갈게요. (Eternity를 조금 다르게 쓰고 싶어서 제 최애곡인 41일의 분위기를 끌어왔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댜♥ +) 블로그 '41일의 천국' 오시면 생략된 수위씬을 볼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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