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2010년 3월 16일
하루마다 일기를 쓰는 습관이 점점 무너져 가고 있다. 물론 애초에 확 지킬 생각은 없었지만, 그 사이에 나에겐 친구라고 부를만한 사람이 생겼다. 그 아이를 위해서 잘 웃고, 일부러 대화를 이어나가려는 노력은 딱히 하지 않았지만, 어쩐지 자연스럽게 어울리게 되었다. 등교를 하면 자습시간 전 호원이가 거의 항상 비어있는 내 앞자리로 온다. 그러면 조용히 책을 건네주고, 둘 다 말도 없이 조용히 책을 감상한다. 곧 종이 울리면 호원이는 그만- 이라는 소리를 내며 내 책을 덮고, 나는 책 읽은 곳 까지 표시를 해두며 호원이를 보낸다. 나머지 쉬는 시간은 보통 호원이가 원래 어울렸던 애들과 놀기 때문에 조용히 창 밖을 감상하거나 소유하고 있던 책을 읽거나, 잠드는 걸로 시간을 떼운다. 원래 혼자있었을때는 딱히 외로움을 생각할 겨를도 없었으며 당연했으나, 친구가 생기고 나서는 조금 외로울때가 있었다. 단체, 혹은 조별 과제등을 내줄때 혼자 겉도는 느낌이 돌때, 분명히 조별 끼리는 소통을 하고 있는거 같은데 내 카톡방에는 초대 알림이라던가 아무것도 없을 때, 아무렇지 않게 사전답사 다녀온 얘기를 할 때, 나는 근처에도 가보지 못했는데 경험담 등을 늘어놓을 때.
친구가 생겼어도 여전히 나는 혼자였으며, 호원이는 고등학교 2학년이라는 핑계로 곧 바쁨을 자처하여 나를 챙길 시간은 없었다. 그냥, 아침마다 조용히 와서 책을 건네주는 것만으로도 나는 위로가 됐다. 차분한 모습으로 앉아, 집중하며 내 앞에서 책을 읽어주는 것만으로도 나에게는 안정감이 들었다. 그래서, 그 시간이 가장 좋았다.
일주일이 훨씬 지났음에도 반장은 절대 선생님과의 약속을 지킬 생각이 없었나보다. 그래서 난 조용히 계속 하교했고, 가끔 학원에 가는날이면 조용히 종례가 끝나자마자 계단을 내려왔다. 남우현은 나랑 눈이 마주쳐도 오로지 피할 생각만 했고, 우연으로라도 눈이 마주치기 싫었던 나는 그냥 어쩌다 남우현과 눈이 마주치면 고개를 떨궜다. 그때 만나야된다고 한사코 난리를 피워댔던 여자친구하고는 헤어진 모양이었다. 딱 하루, 남자애들이 남우현만 보면 위로를 해줬을때가 있었으니까. 그때 감인지 뭔지는 모르지만, 그냥 남우현 표정으로 딱 알 수 있었다. 유치한 복수심일지 모르지만, 괜히 잘됐다. 라는 느낌이 들어 책 읽다가 몰래 미소를 지은적이 있었다.
아침 등교 후, 조용히 자리를 정리하고 앉아있는데, 언제나처럼 호원이가 책 두권을 들고 자리로 왔다. 눈을 마주치니 호원이 넌 오늘 이거, 라면서 책을 내려줬다. 어째 항상 가져오는 추리소설 처럼 꺼멓고 어두운 표지가 아니라 상큼한걸 보니 색다른 소설인 듯 싶었다. 잘못 가지고 온건가? 내내 응시하니 호원이가 당황한 듯 변명식의 어투로 말을 늘어놓았다.
ㅡ 아니, 요즘들어 엄마가 추리소설 책 몇권 사라지는거 눈치채서.. 두권 뽑아오면 딱 들킬까봐, 한번도 안 읽었어? 줘, 그럼 내가 읽고.
ㅡ 아냐, 읽을게.
그렇게 살짝 열어놓은 창문 틈 사이로 밀려오는 서늘한 봄바람과 함께, 우리의 아침 독서시간이 시작되었다.
' 깜짝 놀랐다. 아이들이 나를 가둬 둔 것 같았다. 그렇게 나쁜 이미지로 하락한 건 아닌거 같았는데…. 부자라고 소문났던 아이를 꼬셨다는 안 좋은 소문들이 돌고 있는것 정도는 알고 있었는데, 이렇게까진 아닐 것 같았는데.. 억울함과 당황스러움을 모두 겪어 순식간에 눈물이 흘러나왔다. 그렇게 밖에서 잠겨버린 문을 한참이나 쳐다보는데, 누군가 덜컥 거리는 소리를 내며 문을 열었다. 그 앞에는 현우가 서있었다. 헉헉 숨소리를 내며 뛰어온 모습이 걱정됐다는 모습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게 해줬다. 내가 그래서 티내지 말자 했잖아! 화를 내는 모습에 더욱이나 억울해져 아이처럼 울었다. 그럼 너가 좋은데 어떻게 해! 내가 거짓말이라도 해야 돼? 여자애들의 질투에 의해 꿋꿋이 이겨내는 모습이라도 보여줘야 해?!, 어?! 울먹이는 소리가 섞여 뜻은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다……. '
아무래도 표지에 걸맞게 부자 남자주인공과 가난한 여자주인공이 사랑을 이어나가는 스토리정도 되는 듯 싶었다. 지문이고 대사고 뭐고 완전 유치하잖아, 요즘 여자들은 이런거에 환장하는건가? 여자가 엉엉 안겨 우는 것 부터가 좋아하는 소재인건가, 아니면 남자애가 완전 사기캐릭터라 그러는건가, 평소와는 조금 다르게 얼굴을 찌푸리고 책장을 넘겨나가자 호원이가 신경이 쓰였는지 독서할 땐 각자 건드리지 않기로 한 무언의 룰을 깨고 먼저 입을 열었다.
ㅡ ...그렇게 재미없어?
ㅡ ..아니, 딱히 그렇다기보단.. 조금 유치해.
그런 소설이 다 그렇지 뭐, 호원이의 말 뒤로 바로 수업 시작 종이 치고.
내 손에 잠깐 머물렀던 유치한 핑크빛 로맨스 소설책은 곧 기억속의 핑크빛이 되어 사라졌다.
**
아침부터 두통끼가 약간 있긴 했지만, 5교시까지 가게 될줄은 몰랐다. 수업시간에도 몰래 잤는데, 보건실에도 잠깐 있어봤으나 달라지는게 없었다. 점심시간이 끝나고 바로 5교시인 체육시간을 준비하기 위해 체육복으로 갈아입고 아이들은 대부분 체육관으로 향해있는 상태였다. 끼리끼리 모여서 '야 임마, 빨리 안오고 뭐해!' 라는 말을 내뱉으며 신나게 뛰어가는 모습에 나 역시 조용히 뒤따라 걸어갔다. 한번 두통약을 더 먹어볼걸 그랬나, 지끈지끈한 머리를 짚고 가는데 뭐가 그렇게 좋은지 해맑은 아이들은 체육관까지 달리기 시합을 하기도 했다. 수업종이 치기 직전이었으므로 나도 조금은 빠른 걸음으로 체육관 문을 열었다. 널찍한 갈빛 바닥에 전용 체육관 신발을 신은 채 돌아다니는 아이들이 멀리서도 잘 보였다. 학기초인데도 어색한 분위기 라기보다는 몇번 많이 친해졌던 아이들처럼 보였다. 좋겠네, 조용히 쳐다보다가 나는 곧 수업준비를 하고 있는 체육선생님한테로 조용히 다가갔다. 조용히 장부표를 작성하고 있는 선생님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자 체육선생님도 낌새를 눈치챘는지 먼저 나에 대한 상태를 물었다.
ㅡ 어, 왜, 어디아파?
ㅡ ...두통이 조금 심해서요, 이번 시간만 쉬어도 될까요?
선생님은 바로 고개를 끄덕였고, 사실 그렇게 쉴만한 정도는 아니었지만 나 역시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창고 가까이로 다가갔다. 바로 앞 단상에 선생님이 올라가서 스고, 그 앞으로 정렬해서 서있는 아이들이 멀리서 보였다. 체육관 입구 근처에 앉아있는 나와 정반대에서 열심히 체조를 하는 모습을 보자니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그 와중에도 호원이는 계속 열심히 따라했고, 남우현은 하는 시늉만 했다. 반장치고는 꼼꼼한 편도 아니구만, 조용히 앉아서 쳐다보고 있으니 아이들이 어색하게 따라하는 모습에 웃음이 나왔다. 곧 체육관 몇바퀴를 돌고, 몇몇 남자아이들은 나를 보면서 수군거렸다. 뭐가 아프다고 쉬는거야? 하는듯한 말투에 솔직하게 신경쓰였다. 눈에 띄면 띌수록 아이들이 더 하기싫어할 것 같았다. 그래서 조용히 바로 뒤에 있는 창고로 몸을 숨겼다. 어둡고 캄캄하지만 그렇게 까지 춥지는 않고, 매트도 깔려있는 걸 보니 자기에는 딱 좋은 장소였다. 그렇게, 아주 약간 차가운 매트에 몸을 뉘였다.
그리고 잠깐 눈을 감았다 떴다고 생각한게 큰 폐인이 되었다. 곧 벌떡 일어나서 아, 끝났나? 끝인사는 같이 해야하는데 하고 일어섰던게 흠이었다. 마지막으로 '개새끼야 같이 가자고!' 하고 들린 대사를 끝으로 체육관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이러다 수업시간에 늦으면 큰일인데, 바깥으로 보이는 상황으로는 체육관 불이 꺼져있었다. 아무래도 그 바로 다음시간에는 체육수업 일정이 잡혀있지 않은것 같았다. 다행이다, 누가 들어왔는데 쪽팔리게 창고에서 나오면 큰일이잖아. 수업시간에 조금이라도 늦을까 문을 잡았는데, 문은 열리지 않았다. 수업이 없으니 체육선생님이 그냥 잠그고 교무실로 돌아가신 듯 싶었다. 갑작스러움에 문을 마구 열려고 흔들어보지만 밖에서 굳게 잠긴 문은 열리지 않았다.
ㅡ .....?
잠겼어? 아, 씨발.. 한숨이 그대로 나왔다. 체육복 주머니 속에 위치한 핸드폰을 꺼냈다. 누구의 번호도 알고있지 않았다. 유일하게 친했던 호원이 조차도 핸드폰 번호를 교환한 적이 없었다. 그저 학교에서만 조용히 얘기하고 책을 공유했던게 다였으니까. 절망스러움에 한숨을 내쉬고 다시 앉았다. 어차피 이렇게 가느니 그냥 다음 수업이 있기까지를 기다릴까, 몰래 나가면 되잖아, 근데 오늘 하루 안으로 수업이 없으면? 오만가지 생각이 다 떠올랐다. 아, 애초부터 아이들 눈에 띄인다고 창고 들어가겠다는 생각을 한게 잘못이지. 연락할 사람도 없고, 하는 게임도 따로 없고, 조용히 핸드폰 화면만 껐다가 켰다가를 반복하다가 에라 모르겠다. 하는 심정으로 매트에 다시 누웠다. 이대로 그냥 쭉 자고 싶다.
몸을 뉘이고, 몇분정도 지났을까, 다시 짤막한 잠에서 깨어났다. 그 원인은 체육관 문을 여는 소리 였다. 뭐야, 7교시부터 다시 수업인가. 하고 체육선생님이 열어줄때를 기다리고 있는데, 생각보다 다급한 몸놀림이었다. 설마 체육선생님이 내가 여기있는걸 눈치챘나? 하고 몸을 일으킬려는데, 누군가 급하게 창고 문을 열었다. 금세 어두컴컴한 곳에서 환한 빛이 새어들어왔다. 그 앞에는, 평생 볼일 없다고 생각했던 2학년 11반 반장이 서있었다.
ㅡ 야, 헉, 헉.. 너 죽을래?... 후..
ㅡ ......아..
ㅡ 아니 창고에 들어가긴 왜 들어가? 너 진짜로 병신 아냐? 신경 못쓴 나도 병신이지만, 그리고 아프면 임마, 보건실가서 잔다고 해야지 창고에서는 왜 자? 그거 하나도 체육선생한테 말 못하냐? 너 입이 없어? 말 없어서 꼼꼼한 성격일줄 알았더니 완전 애가 덜떨어져서는.. 아 빨리 나와!!
잔뜩 뛰어왔는지 5교시 체육 후 벗지도 않은 체육복이 땀에 쩔어있었다. 누워서 밀려 내려갔던 안경을 추키고 재빨리 벌떡 일어서서는 창고를 나섰다. 후, 후, 하고 숨을 반복적으로 내쉬는 걸 보니 정말 빨리 뛴 듯 해보였다. 더울것 같아서 옆에서 손으로 부채질을 해주니 남우현이 손을 밀었다. 빨리 나와, 문 잠그게. 퉁명스러운 말에도 그저 고마움만이 남았다. 정말로 내일까지 있어야 하는건가, 하고 엄청 고민했는데. 핸드폰 화면만 껐다가 켰다가. 연락 못해서 바보가 된거 같았는데. 앞으로 먼저 화난듯이 걸어나가는 남우현은 어지간히 체육복을 흔들어댔다. 부채질 해줘도 치우라고 난리더니, 아무리 말을 퉁명스럽게 했더라도, 어쨌든 고마워서 말이라도 하려 했는데, 조용히 걸어가는 도중 남우현이 먼저 말을 꺼냈다.
ㅡ 너 교무실에서 한 말 다 들었지?
ㅡ ....응
ㅡ 그 일, 한번 도와줬다고 그 때 일이 다 풀린줄 알아? 반장이라고 착한척 좀 하려했는데 너한텐 안 해 새끼야. 답답해서는, 이렇게 화라도 안내면 말을 안하니까, 알았냐?
남우현은 뻔뻔한 목소리로 의외의 답을 내놨다. 지금 내가 대놓고 상처 받았는데 앞으로도 그렇게 할거란거야 뭐야?, 어이없음에 그저 뒤로 쫄쫄 따라가며 등에대고 노려보는 것만 시전했다. ㄷ자 모양으로 건설되어 있는 학교 바로 앞에는 교단과 널찍한 운동장이 있었고, 체육관과 학교 사이에는 농구장이 있었다. 얼마전 콘크리트 바닥에서 고무 바닥으로 교체한 후 부드러운 농구장이라는 별칭을 얻게 된 농구장 한가운데를 둘이 걸어가는데도, 우리는 조용했다. 그저 발끈해서는 마구 걸어가는 남우현의 뒷모습을 쳐다보는 내가 있었고, 그리고 내 옆에는 조용하게 나를 어루만져주는 봄바람이 있었다. 거의 학교 뒷문 근처에 다다랄 즈음, 남우현은 뒤를 졸졸 따라오는 나를 새침한 여자아이마냥 뒤돌며 응시했다. 여전히 허공을 보듯 초점없는 눈으로 남우현을 쳐다보자, 남우현은 나에게로 조금씩 조용히 다가왔다. 그리고 악수형태의 손을 내밀었다.
ㅡ ...그렇다고, 너한테 그렇게까지 상처를 줄 생각은 없었어.
그 순간, 아까 아침에 호원이와 읽고 머릿속에서 날려보냈던 핑크빛 표지의 로맨스 소설이 생각났다. 이런거 완전히 유치한데..
ㅡ 미안하다. 너 욕한거, 진심은 아니었어, 그냥.. 너가 너무 냉정해서 나도 화가 나서 우발적으로..
ㅡ ...알아..
봄바람이 다시 내 볼길을 어루만졌다. 학교 규정에 따라 까맣게 염색했던 머리가 휘날렸다. 동그란 안경 사이로도 봄바람이 스며들었다. 이상했다.
나 어떡하지, 남우현이 좋다.
**
교실에 들어오니 아이들의 시선이 되려 집중되었다. 몇몇 웃음을 참는 아이들도 보였다. 이 상황이 그래, 좀 쪽팔릴만 한데, 몇몇 아이들은 신경도 안 쓴다는 듯 수업을 시작하자며 재촉했고, 아까 봄바람과 겹쳐 보였던 남우현은 말도없이 조용히 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순간적으로 아까 모습이 자꾸 머릿속에서 재생되고 있었다. 정말로, 정말로 어떡하지? 국어 책을 펴고 옆에 필기 공책을 펴놓는 그 순간까지도, 아까 그 장면이 반복해서 재생되고 있었다. 저번에도 한번 말했듯이, 내가 여자에 늦된건 알고 있었다. 성에 관한 모든것들도 잘 파악하지 못했다. 그것보단 살기에 바빴고 상처받지 않으려 노력했으니까. 분명히 이 감정에 대한 시작이 나를 망쳐놓을 걸 알고 있었다. 남우현은 여자친구에 일가견이 있어보였고, 그리고, 또 나같은건 한심하다고 생각하고 있을테니까. 국어책을 펴고, 기계처럼 선생님이 칠판에 써주는 모든 필기거리를 적으며 집중하려 계속 노력했다. 제일 좋다는 펜을 사서 필기감을 즐기고 있는데도, 그래도, 그래도 떠나지 않았다. 어떡하지, 나. 그렇게 습관적으로 남우현한테로 시선이 옮겨졌는데, 그 순간.
ㅡ .....
자연스럽게 눈이 마주쳤다. 남우현은 턱을 괴고 이쪽을 뚫어지게 응시하고 있었고, 나는 조용히 놀란 눈으로 남우현을 쳐다보고 있었다.
얼마 전 같았으면, 금세 눈을 깔았을텐데, 그 때는 어쩐지 그냥 쳐다보고 싶었다. 순간, 국어선생님의 호통이 들려왔다.
ㅡ 남우현! 수업시간에 칠판 봐야지 어딜 자꾸 쳐다봐!
ㅡ 잠깐 시계 본거였는데..
남우현은 서운하다는 듯 조용히 투덜거렸다. 시계 본 거였구나, 순간적으로 내 바로 왼쪽 위 벽에 위치한 시계가 생각났다. 지금 내가 또 무슨 생각을 하는걸까, 근데, 이런거 괜찮을까? 분명히 안될텐데, 머릿속은 벌써 상황파악과 진위파악이 다 끝났는데 심장만 모르는 거 같았다. 그래서, 빨리 해답을 알려달라고 요동치고 있는 것 같았다. 또 일부러 남우현이랑 눈이 마주칠까봐, 고개를 책상에 박고 칠판만 왔다갔다 응시하면서 필기만 열심히 했다. 그게 6교시의 기억이었다.
학교가 끝나고, 아이들은 또 끼리끼리 모여서 갈준비를 하고, 청소당번들은 가방을 맨 채 설렁설렁 바닥을 쓸어댔다. 담임은 잔소리를 하며 제대로 쓸으라며 몇 명에게 호통을 내렸고, 눈치를 보다가도 아이들은 또 설렁설렁 쓸어댔다. 나는 조용히 의자를 올리고 가방을 메는데, 아까 아침에 봤던 소설이 순간적으로 생각났다. 아침에는 분명히 유치하다며 얼굴을 찡그렸을 터인데. 나는 끝쪽에서 아이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호원이한테로 조용히 다가갔다. 곧 눈치를 보다가 어깨를 톡톡 두드리자 호원이가 고개를 돌려 의외라는 듯이 나를 쳐다보았다. 아침에 책 볼때만 서로 얘기하던 룰을 이번에는 내가 깨먹고 있었다. 호원이가 시끄럽던 남자애들과의 대화를 중단하고 조금 멀찍이에서 기다리고 있는 나에게 다가왔다. 웬일이야 ? 라는 두서가 먼저였다.
ㅡ ..아까 봤던, 그 로맨스 소설.. 아직 가방에 있어?
ㅡ 뭐야, 아깐 유치하다며, 그래도 은근히 재밌었나보네?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곧 호원이는 가방 문을 열어 핑크빛의 로맨스 소설책을 건네주었고, 나는 조용히 받고 잘가, 라는 뜻의 손인사를 건네주었다. 호원이도 어, 하는 짧은 단어와 함께 손을 흔들어주었다. 가방에 로맨스 소설책을 넣고, 뒷문으로 교실을 빠져나왔다.
그렇게 복도 창문으로 하교 하는 아이들을 잠깐 쳐다보니, 그 사이에 남우현 무리가 있었다. 중간에서 신나게 떠들고 있는 모습에, 나는 조용히 그 모습을 쳐다보다가, 이내 바로 앞 계단으로 자취를 감췄다.
@ 어제는 술을 마셔서...그만..... 다음주에는 딱딱 맞게 올릴게여...
@ 항상 감사합니다 헤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