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고백
소개팅을 받기로 했다. 학벌도 꽤 괜찮고, 용모도 꽤 봐줄만하고. 타쿠야가 주선자로서, 미리 사진을 받아 보았는데 - 솔직히 누구와 다르게 아주 괜찮더라. 대학에 간 이후로 남자 한번 사귀지 못했다고, 줄리안이 타쿠야에게 떠들었나. 여튼 그래서, 타쿠야는 깜짝 놀라는듯한 목소리로 - 아직도 애인을 못 만났어요? 라 다짜고짜 전화하더니. 이내 한숨과 함께 그럼 내가 소개시켜줄게요. 라고, 다짜고짜 상대 남자를 알려주며 소개팅, 일주일 후에 잡아뒀어요. 라고 후에 너무 고마워 울지나 말라고 낄낄 웃었다. 참, 뭔가 지금 소개팅을 받고 싶지는 않은데 말야.
이때 기욤 씨가 문자로 뭐라고 말한다면 안 받는다고 바로 단호하게 거절할 수 있었을 텐데. 이 사람은 여전히 답이 없었다.
나름의 소개팅이니 상대방에 대한 예의로서 - 옷은 단단히 차려입기로 마음먹었다. 정장도 반듯하게, 넥타이는 과하지 않고 무난하게. 미소는 또 환하게, 이빨에 뭐 끼진 않았나 확인까지. 완벽한 것 같아, 뭐 그래도 간만의 소개팅이니까, 그래 진짜 간만의 소개팅이니까. 이렇게 꾸며봤자 나쁠 건 없을 것 같다.
- 어차피 그에게 연락도 오지 않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걸음을 옮겼다. 상대는 젊은 나이에 돈더미에 오른 젊고 유능한 CEO. -라 하던데. 와 CEO라니, 스케일이 너무 커진 거 아니야. 타쿠야에게 나 긴장된다는 걸 표현하며 말하기도 했지만. 타쿠야는 아니 괜찮다고, 그렇게 딱딱한 사람이 아니어서 자신과 친해진 것 아니겠냐고. 그렇게 말을 해와, 단번에 이해할 수 있었다. 하긴, 너랑 친해질 정도면. 그렇게 딱딱한 사람은 아니겠구나. 라면서.
[아직 장소에 도착 못했어요? 지금 마크형은 도착했다네요 - 타쿠야]
아. 이런. 조금 여유 있게 옷을 입으면서 늦장 부리다 결국 늦었다. 조금 걸음을 빨리해 장소로 들어갔는데, 아무래도 이름이 마크일법한 사람은 없어. 외국인, 외국인. 어디 외국인 없을까 얼굴을 둘러보니 - 아 저기. 외국인 한 명 있다. 저 사람이 마크구나.
한국에서 이 시간에 우연히 커피 마시고 있는 외국인이 어디 있겠어. 그를 툭툭, 치고. 혹시 이번에 소개팅 받으시러 온 -이라. 먼저 운을 떼니, 그는 아 아아. 반가워요. 마크입니다. 하고 손을 내민다. 나도 반가워요. 타일러 라쉬라고 해요.
“타일러씨, 여기 앉아요. 제가 음식 먼저 주문했어요.”
혹시나 해산물 못 먹는 건 아니죠?. 라 웃는 마크 씨에, 아니 잘 먹어요. 라고 손을 휘휘 저었다. 제가 먼저 계산했습니다 - 하고 지갑을 들어 보이며 그는 천진난만하게 웃는다. 굳이 그러시지 않으셔도 됐었는데. 역시 CEO라 돈을 잘 벌어서 그런가. 어제 괜히 돈뺀것같아.
쭉 훑어보니 돈을 잘 번단 소리는 정말 사실인가 보다. 양복도 쭉 빼입고, 얼굴도 귀티 나게 생겼어. 마크 씨는 얼굴이 참 잘생겼네요.라고 칭찬부터 하니, 그쪽에서는 에이 타일러씨가 훨씬 귀여운걸요.라며 대답해온다. 매너도 좋은 것 같아. 성격도 좋고. - 꽤 괜찮은 남자로 보인다. 상대 남자의 그.
또한 가지고 있는 지식도 얼추 맞는 듯 보였다. 원래 서로 아는 게 맞지 않는다면 그렇게 불편할 수가 없는데. 이 사람은 어느 정도 똑똑한 사람으로 보여. 괜히 이야기를 하다 보니 - 여자들도 아닌데 두세 시간이 훌쩍 지나가더라. 음식은 이미 다 먹은 지 오래였는데 괜스레 이 의자에서 엉덩이를 떼기가 싫었다. - 우리 둘이 제대로 된 이야기를 나누고, 서로를 알아가기엔 하루라는 시간이 너무 짧은 것 같아요. 그가 웃으면서 말했을까, 따라 웃어 보이려는 그 순간에 - 바지춤에 진동이 느껴져서. 잠시만요, 하고 그에게 양해를 구한 후 손을 가져다대었다.
[타일러씨 오늘 저와 카페 가보지 않을래요?, 친구가 하는 곳인데. - 기욤 패트리씨]
이미 늦었네요 이 사람아. 근데 단호하게 거절할 수는 없어, ‘죄송해요. 바빠서요~’ 라 급히 답을 보낸 후에, 다시 마크 씨를 바라보았을까, [바쁘시면 어쩔 수 없고요 ㅠㅠ] 라는 그의 답장이 보인다. 그러니까, 소개팅하기 전에 제안을 하지 그랬어요. 그랬다면 바로 달려갔을 텐데 - 괜히 그의 문자를 보고 마크 씨를 바라보니. 마음이 참, 착잡해진다.
“타일러 씨는 혹시 꿈이 있어요?”
꿈, 꿈이라. 괜히 꿈 하니까 최고령 프로게이머나 하고 싶다고 하던 그의 생각이 난다. 나도 모르게 프로게이머 - 라고 중얼였는지. 마크씨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 프로게이머요?. 라 물어서. 아니, 아니 아니, 아무것도 아니에요. 라 대답 후에 그를 바라보았을까. 타일러 씨는 뭔가 그런 거랑은 안 맞는 것 같다고. 그가 손을 모으며 미소를 지었다. 그렇지, 나랑 프로게이머는 진짜 안 맞지. - 포커도 물론이고.
그런데 왜 그 말이 그렇게 좋게 느껴지지 않는지는 모르겠다.
잠시 정적이 흘렀다. 아마 만난 후 모든 게 잘 맞았던 그와의 첫 번째 정적이었을 것이다. 그는 이야기를 이끌어 나가려고, 애를 썼지만. 난 왠지 대답해주고 싶은 기운이 없었어. 가식적인 반응조차 나오지 않았다. - 그에게 미안하지만. 그리고 어물쩡한 이야기로만. 한 시간 같았던 이십분 정도가 지났었을까. 슬슬 마무리를 지으려, 휴대폰을 꺼내면서 누구에게 문자가 온 척 - 혼신의 연기를 하려고. 나에게 문자를 보내려고 한 그 순간에. 맞아 그때 타이밍도 좋게도, 누군가가 어어 - 하며. 카페 안에서 큰 소리를 내었다.
물론 바로 뒤돌아보았다. 마크 씨도 뭐냐는 눈빛으로 소리가 나는 쪽을 바라보았고.
“라쉬씨, 타일러 씨!”
- 뭐. 그를 보자마자, 나도 모르게 표정이. 말도 안 되게 밝아지더라.
혹시나 마크 씨가 봤으려나, 보고 기분 나빠하려나. 바로 표정관리를 했지만 기욤 씨는 바로 내게 달려와 - 바쁘시다니 여기 있으셨네요. 뭐 하고 계셨어요. 이 분은 누구예요? 등의 폭풍 같은 질문을 내뱉더라. 이 분은 마크 씨고. 뭐 그냥 잠시 이야기하고 있었던 분이에요. 라, 솔직히 그렇게 마땅히 대답할만한 대답은 그것밖에 없어서. 그렇게 딱 말을 건넸는데 미묘한 표정의 마크 씨가, 소개팅하고 있었어요 - . 라, 솔직하게 말을 꺼내주었다.
그 덕분에 왠지 모르게 난처한 느낌이 들었지만. 힐끔, 기욤 씨를 바라보니 역시나. 표정이 장난 아니다.
뭔가 ‘나 충격받았어요’하는 게 얼굴에 그대로 드러난다. 마크 씨도 그걸 읽었는지, - 혹시 둘이 무슨 사이에요?. 라 물었었는데, 아무 사이도 아니에요. 아무 사이도 아닌데. 그러네. 솔직히 나도 당황스럽다. 마크 씨가 다시 혼란스러워 보이는 그에게. - 타일러 씨는 저랑 소개팅 중이고. 저쪽에 빈자리가 있으니 저쪽에 앉으시라고. 친절하게 손가락으로 자리까지 가리키자. 그는 잠시 멀뚱멀뚱, 마크 씨를 바라보았는데. 뭔가 죄짓는 기분이야. 가시방석처럼 느껴진다. 이 자리.
“저 타일러 씨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 있는데, 하고 가면 안 돼요?"
“아는 사이 같은데 내일 하시죠.”
아니 지금 해야 할 것 같아요. 갑자기 막 생각난 이야기라.
그래도 내일 하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 와, 아니 지금 해야 해요. 도대체 뭘 말하고 싶길래 지금 급히 말할 거라고 하는 기욤 씨와, 내일 말하라고 젠틀하게 웃는 마크 씨의 주먹 없는 싸움 같다. 그냥, 그냥 나는 이 자리에서 나올까. 왜 그러니까 소개팅 같은 걸 급하게 잡아가지고. 딱히 기욤 씨를 말리고 싶지 않고, 그렇다고 해서 기욤 씨의 편에 서서 착하셨던 마크 씨를 밀기도 싫은데. 어떡하면 좋아, 어떡하면 좋아. 딱 난처해 어쩔 줄 몰라 하던 그 순간에 - 결국. 기욤씨가. 일을 내고야 말았다.
“저 오늘 고백하기로 했어요, 타일러 씨에게!”
도대체 누구 마음대로. 황당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을까, 그는 씩씩거리고 있었고. 마크 씨는 허 - 웃더니 손을 휘휘 내저었었지.
*
“다 망했어요”
“... 죄송해요”
덕분에. 다 망했어요, 다!. 마크 씨는 둘이 할 이야기나 하라고 먼저 자리를 비켜주시고. 지금 타쿠야에게 바보 같은 짓이라도 했냐며 문자는 계속 오고. 또 타쿠야가 줄리안에게도 말했는지 너는 공부만 하라며 무시까지. 다망했어요 - 다 망했어. 해탈하게 그것만 중얼이자 기욤 씨는 죄송하다며 그 말만을 반복한다. 덩치도 큰 사람이 그 덩치에 맞춰서, - 내가 당신을 좋아해서 그랬다고요! 라는것도 못하나. 이 사람은, 착한 건지 순한 건지. 너무 착하고 순해서 바보 같은 건지. 모르겠다.
“고백한다면서요”
“....”
“나 안 좋아해요?”
좋아하는데 - 좋아하는데. 그가 우물쩍거리자 괜히 좋아하는데?.라고 미간을 좁혀 그에게 다가갔다. 그는 한숨만 푹푹 쉬어대다가, 솔직히 방금 전의 자신의 행동 때문에 타일러 씨가 자신을 싫어할까 봐 겁이 난다고. 꽤나 솔직한 반응을 보이는데. 오 그런가. 괜히 피식, 웃음이 세어 나온다.
저기요. 내가 아예 댁에게 마음이 없었는데, 댁이 그 난리를 쳤으면. 그곳을 박차고 나왔을 거예요. 마크 씨도, 기욤 씨도 뭐고. 창피해서.
그런데 왜 안 나왔어요? -라고 기욤 씨가 물어서. 그러게요. 짐작 가는 건 없으세요?라고 되물었다. 이 정도면 됐다. 이것도 못 눈치 채면, 이 사람은 완전 - 순진을 넘어선 멍청한 건데. 그도 당연히 이젠 눈치를 챈 건지. 아 미안해요. 미안 미안.이라고 또 사과를 하더니 이내 제 걸음을 멈추어 섰다. 솔직히 지금까지, 제가 당신이 너무 좋아서 잘 접근을 못했었어요. 금방 다른 곳으로 갈까 봐. 그런데 접근을 안 하니까 더 빨리 다른 곳으로 가더라고요. 그러니까, 늦기 전에. 더 늦기 전에 -
“좋아한다, 고 말하고 싶어요.”
큰 사람이 얼굴을 붉히며. 나보다 덩치는 두 배보다 더 큰 사람이 나에게 얼굴을 붉히며 자초지종을 설명하면서 고백을 하는데. 또 미안합니다. 죄송해요 - 만을 중얼인다. 기욤 씨가 미안한 게 뭐 있어요. 기욤 씨가 잘못한 게 뭐 있어요. 고마워요. 고백해줘서 고마워요. 괜히 그의 품에 들어가 쏙 안기니, 갈 곳 잃어 어쩔 줄 몰라 하던 손이 허공을 어루만지다. 결국 나를 안았을까. - 진짜 이 사람. 여간 떠는 게 아니다.
“고마워요.”
이제 마크인지 뭔지 하는 사람 찾아가지 마요. 소개팅도 받지 마요. 나랑 사귀는 거니까 - 사귀는 거 아니라면 나랑 사귀어주세요. 나도 지금 제가 무슨 소리 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한 건 타일러 씨 좋아해요. 나 마크 씨 질투하고 있어요. 그러니까 -
“알았어요 저도 좋아해요”
그제야 기욤씨가 하아. 하고 꽉 조였던 품을 놔줬다. 그제야 여유로운 미소를 지어주었다. 이제야 말해주네. 이제야 고백해주네. 기다렸어요. 나도 좋아해요. 그를 바라보았을까, 그는 머뭇거림도 잠시 입을 맞추어주었고. 나도 그를 받아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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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편으로 끝날것같타영!!!워후!!!!
사실 이거 안끝나써ㅓ여...포기한거아니에여...다만 일레어에 치여서 잠시 허덕였을뿐 <<....
♥암호닉♥분들!
블맘님 - 암호닉 친절하게 설명해주셔서 감사해여 ^ㅁ^ 이거 맞나여! 담에 또 열씨미 써서 찾아뵙겠습니다!
증사앙님 - 처음으로 신알신해주시고 처음으로 암호닉해주셨다고..(감동) 사실 저도 암호닉이란거 처음이에여 (속닥속닥ㅎㅎㅎㅎ
덧글에 그 신청하신분들 보고 썼어여!!빠진분은 없겠져 (소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