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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GM-김형중, 그랬나봐(Piano Cover By 낮사람)
그렇게 도경수가 떠났다.
몸을 씻고 욕실에서 엉거주춤한 걸음새로 나와선, 몸을 닦던 검은 수건으로 머리를 대충 털고선, 벗어던져 두었던 옷가지를 주섬주섬 꿰어입더니, 문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경호원 두명에게 붙들리듯 끌려갔다.
나는 그 모든 장면을, 스크린에 비친 영화처럼 바라보았다. 끼억대는 매트리스 위에서.
멍하게.
생각을 억제하며.
도경수를 억제하며.
공중에 부연 공기를 눈으로 셀 것 처럼, 눈동자에 탁한 약물을 탄 것처럼, 내 모든 감각을 놓아버리려는 무력한 노력을 했다.
센티넬. 한자어로는 感覺人(감각인).
나의 운명이었고, 한 번도 거부할 필요도, 생각도 없었던 나의 인생.
그리고 그런 나의 인생으로 무너져버린 한 사람의 인생.
그에 대해 생각했다.
끊임없이 생각했다.
김종대가 왔다.
다시 웃는 낯짝으로.
내 손목에 두꺼운 수갑같은 것을 채웠다.
그리고 물을 마시게 했다.
그리고, 들은 것도 같은데.
잘 자, 라는 목소리.
/경수시점/
거구의 사내들 팔에 붙잡혀 몇 분쯤 걸어갔다. 아무리 파악하려고 애써도 이 건물의 구조는 아리송하다. 하긴 내가 지금 몇 층에 있는지도 알 수 없는데, 이 건물의 구조를 파악하기란 거의 불가능할 것이다.
그래도 내가 기억할 수 있는 최대한으로 건물의 지리를 외우기 위해 오는 길 내내 인상을 찌푸렸다.
나중에, 멀지 않을 때에-종인과 이곳을 벗어나기 위해.
익숙한 엘리베이터 앞에 도착했다.
이곳에 처음 왔던 날, 찬열과 함께 타고 종인이 있던 지하감옥까지 내려왔던 엘리베리터였다. 문이 열리자, 내 눈은 다시 한 번 가려졌다. 두터운 손이 눈을 짓눌렀다. 승강기가 작은 진동과 함께 솟구치기 시작했다.
"....오랜만이네."
눈을 떠 보니,
나의 집,
아니,
우리 집.
"..무슨 짓이야."
"그냥, 편안하게 얘기하자고."
찬열이었다.
그리고 내가 서 있는 곳은 SAG에서의 나의 거처와 같은, 그러니까 나와 종인의 집 구조와 똑같은 방이었다. 가구배치와, 그날 대충 개켜두고 온 이불까지, 똑같았다.
내가 종인을 기다리던 그날과 똑같았다.
하지만 달라진 건 나의 마음이었다.
찬열은 그때의 나처럼, 소파에 앉아 나를 불렀다. 나는 천천히 다가갔다.
"...오랜만이지? 여기."
"여기라니. 여긴 아직도 낯선 곳일 뿐이야."
'...내 이름은, 기억해?"
"..박찬열."
"...그래."
그 후로 찬열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고개를 살짝 돌리면, 파란 하늘이 유리창에 가득 담겨 있었다. 잠깐 스크린일까, 생각도 해 보았지만, 발밑으로 스멀스멀 다가오는 햇빛을 보고 생각을 고쳤다.
'...나는.."
"...."
"원래 SAG 소속이었어."
"...."
'종인이처럼, 촉망받는 센티넬이었고, 사랑하는 가디언도 있었지."
'...."
'하지만, 그들은-나를 키워주고 먹여 살려주고 보살펴 주었다고 주장하는 그들은,"
"...."
"나의 인생을 빼앗아 쥐고 흔들었어. 나의 목숨은 있었지만, 삶은 없었어."
"...."
"난 종인이를 알고 있었어. 좋은 녀석이었고, 나와 같은 삶을 살지 않길 바랬어."
'..웃기지도 마."
"...."
"'능력이 좋은' 녀석이었겠지. 반군들의 눈에는."
"...."
"그렇게 위한다면서, 사람을 저렇게 만들어 놨어. 그렇게, 위한다면서....!"
"...."
"김종인과, 내 인생을, 숨조차 쉬고 싶지 않게 만들었어.."
말끝이 흐려졌다. 왈칵 솟는 뜨거운 눈물 때문이었다.
두 손에 얼굴을 묻었다. 눈 앞이 까만 배경으로 가득 찼다. 까만, 배경. 까만, 밤이 생각났다. 그날, 밤이 생각났다.
억지로 제 몸을 김종인의 위에서 흔들던 날. 그의 무력한, 혹은, 더 이상 조금도 남아있지 않은 나에 대한 정의 밑바닥을 고스란히 드러내주는 그의 표정을 보던 날이 생각났다.
그 전까진, 내가 어디까지 추락할 수 있을까 생각했다.
이제는, 내가 있는 곳이 진짜 바닥인가, 생각한다.
그도 볼 수 없을 만큼, 깊은 바닥인다. 이곳이 밑바닥인가.
내가 편히 눈감을 수 있는, 절망의 끝인가.
"..나는 알아."
"....뭘, 안다는.."
"김종인의 눈빛. 나는 알아..나는 보여."
"....."
"내가, 변백현을 바라볼 때, 변백현을 생각할 때, 그 때, 내 인생의 모든 순간에, 그러니까, 내 삶과 숨이 함께였을 때-"
그는 말을 더듬더리며 이어나갔다. 한 글자, 한 글자를 발음할 때 마다, 변백현, 그 이름을 부를 때마다 입술이 바르르 떨리는 그의 모습을 잠자코 지켜보았다.
"보여, 김종인이. 그 때의 내가 보여."
"...."
"...그러니까, 다 너와 그를 위해서야. 그러니까..."
"...필요 없어."
"....."
"여기서 더 이상..숨쉬고 싶지 않아."
숨을 들이쉬면, 그날의 냄새가 떠오른다. 비릿한 밤꽃 냄새. 축축한 땀 냄새가 매연처럼 코를 찌른다.
숨을 내쉬면, 들이쉴 때는 티도 나지 않던 그 향기가 미약하게 섞여 빠져나온다. 마지막, 잠이 들기 전의 가냘픈 향이. 그의 품 속에서 맡던 약한 소독약 냄새가.
"네가 이런 식이면."
"...."
"김종인은 나와 같은 꼴이 될걸."
"...."
"어쩌면, 나보다 더 불행해질 수도 있겠지."
'...무슨 소리야."
"그거 알아? 이제는 각인된 가디언이 죽어도 센티넬에게 힘을 공급할 수 있는 기술이 있어."
"뭐?"
"SAG에서는 절대 도입하지 않을 기술이지. 위험한 기술이기도 하고."
"헛소리 하지마. 그런 게 가능할 리 없어."
"내가 그 증거물인걸. 난 가디언 없이 몇 년간 버텨왔어."
"....!"
"그래서-너를 이곳에 대려온 이유는 뭘까. 김종인이 아니라, 너를."
"....."
"너는 죽여도 괜찮거든."
김종인은 아니지만.
그는 짤막하게 덧붙였다.
알고 있었지만, 타인을 통해서 듣게 되리라고는 몰랐던 사실이었다.
"너는 없어도 괜찮거든. 김종인에게."
그는 자꾸 나의 이곳저곳을 찔렀다. 온 몸에 퍼진 눈물샘을 찔러댔다. 나는 온 몸으로 울고싶었다. 하지만 눈물은 빼곡하게 눈에만 가득 차, 생각을 제대로 할 수 없을 정도로 먹먹해졌다. 눈물은 벅차올라서 머릿속 종이까지 번져서, 종이를 잔뜩 젖게 하고, 온 몸을 타고 돌아서, 그 특유의 무력감을 이곳저곳에 묻혀놓았다.
나의 존재 이유가, 김종인이라면. 그 불안한 관계 속에서 내가 마지막까지 그의 곁을 떠나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는, 내가 그의 가디언이기 때문이었다. 나만이 그의 아픔을 먹고 살 수 있기 때문에. 하지만 그 역할조차 대역이 존재한다면, 나는 대사를 까먹은 채, 어버버거리면서, 뒷걸음질 치면서, 무대에서 내려올 수 밖에 없었다.
"도경수, 김종인 옆에 계속 있고 싶어?"
"아, 아.."
"도경수, 김종인을 원하잖아."
목에서는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내 인생을 지탱해주던 역할이 사라지자, 나의 숨은 제 할일을 마쳤다는 듯 서서히 사라지고 있었다. 머릿속에는 찬열의 목소리와, 그날 밤의 나의 역할을 지키기 위한 처절한 연극과, 나를 품으로 끌어당기는 그의 모습이, 깜빡, 깜빡, 커졌다가, 꺼졌다가, 서로 부딪히고 섞여들다가,
암전.
오랜만이에요!!^^ㅎㅎ너무 늦었죠ㅠㅠ저 까먹으신건 아니죠?ㅠㅠㅠ죄송해요ㅠㅠ바빴어요ㅠㅠㅠㅠ
어헝어헝ㅠㅠㅠ내일은 시간이 좀 있으니까 내일 한 편 더 올 수 있을 것 같네요!ㅠㅠ죄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