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한국
세기의 피터팬 ; 신이 내린 황홀한 저주
왜 빈궁은,
지독한 외로움에 허덕이는 것은 나 혼자만이 아니었다. 세상 어느 곳에서도 이 궁만큼 자신의 한쪽 눈을 찾으러 평생을 헤엄치러 다니는 외눈박이 물고기마냥 어딘가 하나 결핍한, 고독한 사람들만이 가득한 곳은 없다.
그대가 혼자라고 생각하는 겁니까.
끝이 올라가지 않은 말 한마디는 질문이라기 보다는 혼잣말에 가까워 그저 입을 다물고 묵묵히 치마에 새겨진 문양이 얼마나 세밀하고 정교한지, 침선장이 참으로 고생했겠다, 라는 생각 따위를 하며 침묵을 지켰다. …제 속이 문드러지는 꼴이 그리 재밌으십니까. 세자의 투정이라기 보다는 속상한 마음이 여실히 드러나는 작은 말에 답할 말이 없어 입술의 거스러미만 이로 뜯어내는데 적막만 흐르는 주위에 고개를 조심스럽게 드니 나를 원망스럽게 바라보는 커다란 눈이 보인다.
─내가 너를 천하에서 가장 강하고 행복한 여인으로 만들어주마!
피곤함에 붉게 충혈된 눈이 지난날의 패기롭고 깜찍하기 그지 없던 세손시절과 겹쳐 보여 입 안 여린살을 깨물며 세자의 손을 잡으려 손을 뻗은 순간 와락, 내 품에 안겨온 세자가 나를 터뜨리려는 건지 가득 힘주어 내 허리를 옭아맨다. 좋아, 좋아합니다. 보고 있어도 빈궁이 보고…싶습니다. 떨리는 음성에 울컥 울음이 차올라 괜한 달을 바라보며 어정쩡한 손으로 세자의 어깨를 어설프게 잡았다.
"…남자친구 있어요?"
네? 포스기에 오만원 지폐를 넣고 주섬주섬 동전과 만원짜리와 천원짜리 지폐를 꺼내 건네는데 들려온 말은 예상치 못한 말이라 순간 내가 잘못 들은 것 같아 다시 묻자 이리저리 눈을 굴린 남자가 머쓱하게 웃더니 혼자 으아아…, 하고 제 머리를 마구 헤집는다. 잔뜩 힘주어 세팅했을 머리일텐데 한순간에 까치집을 지은 머리에 옆에 있던 코디가 제 이마를 턱, 하고 손바닥으로 짚는 게 보인다.
"없는데요…."
남의 남자친구가 있는지는 왜 궁금한거지. 머리모양이 망가졌다는 얘기를 해주려다 물음에 답하는 게 먼저인 것 같아 작게 답을 하고 '지금 그쪽 머리 망가졌어요.'라고 말해주려는 찰나 동전과 지폐를 받아든 손이 바닥으로 추락한다. 짤짤거리며 떨어진 동전들이 바닥에 한가득 떨어진 것에 황당해 남자의 얼굴을 홱 쳐다보자 입술을 깨물고 환한 표정을 지은 남자가 행복해죽겠다는 표정으로 정말요? 하고 되묻는 것에 고개를 빠르게 끄덕이고는 바닥을 가리켰다. 손님, 돈 다 떨어졌는데요.
"부친이 이 나라의 군주인 것은 같은데 누구는 능지처참당할 놈이란 소리나 듣고."
이럴때마다 나는 여기가 참 더럽다.
예절이라고는 어디에 갖다버린건지 어감이 매우 더럽지만서도 세훈이의 말에 공감이 되어 고개를 작게 끄덕이는데 바로 옆에 있던 김상궁이 나를 도끼눈을 하고 홱 노려본다. …알았어. 공감 안해. 안한다고. 김상궁에게 고개를 여러번 끄덕이고 손사레를 치자 나를 못 미덥게 바라보며 세발자국 정도 물러선다. 이런 내 모습을 아는건지, 모르는건지 커다란 나무 위에 올라탄 세훈이가 넓은 연못을 한번 쳐다본다.
"…근데 거기서 내려와야 되지 않을까."
"빈궁마마도 내가 더러워?"
"안더러워. 네가 왜 더러워. 알았으니까 내려와. 저하가 보기라도 하시면…"
"보면."
"…어?"
"보면 뭐 어떻게 되는데. 형님은 내가 나무에 떨어져서 죽으면 오히려 좋아할걸."
무슨 말을 그렇게 하는건지 덤덤하게 내뱉는 말이 지나치게 자신을 깎아내리다 못해 짓밟는 말들이라 순간 벙쪄 답을 못하자 나를 곁눈질로 쳐다본 세훈이가 바람빠진 웃음소리를 낸다. 그런 표정 지을 거 없어. 원래, 내가 태어날 때부터 그랬으니까.
"…적어도 나한테는 안더러우니까 얼른 내려와. 진짜 다치면 어쩌려고 그래, 너."
"빈궁마마."
"어?"
"만약에 내가 세자가 된다면 빈궁마마는 내 부인이 되는 건가?"
"…어?"
내려오라는 나무는 안 내려오고 무슨 이런 고약한 말장난을 치는건지. 다시 또 벙쪄 위를 올려다보는데 어느 새 내게 시선을 고정한 세훈이가 피식 웃고는 나무에서 사뿐, 내려온다. 지금 내가 무슨 말을 들은거지…. 멍청하게 넋을 놓고 있는 내가 우스운건지 피식 웃은 세훈이가 다가와 내 어깨를 가벼운 손길로 토닥이고는 그대로 옆으로 나를 스쳐지나갔다. 무거운 얼굴로 농담이야, 라고 덧붙인 가벼운 말을 하며.
"그냥 좀 가끔 그런 시덥잖은 생각을 해."
무슨 말을 하려는건지 뜸들이는 태도가 마음에 안들어 먹고있던 설렁탕의 국물을 한 모금 마시고 숟가락을 탈탈 털어 다리를 달달 떨며 정신 사납게 구는 오세훈의 손등을 때리고 젓가락으로 석박지를 집는데 내가 때리던지 말던지 아랑곳않고 다리를 떠는 오세훈이 이제는 턱을 괴고 말을 잇는다.
"내가 너를 만나지 않았으면 어땠을까, 라는 생각."
"개소리하지말고 다리 떨지마."
이게 대낮부터 술을 마셨나. 헛소리를 지껄이는 오세훈에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석박지를 입에 욱여넣는데 갑자기 사레가 들려 컥컥거리며 기침하자 오세훈이 대놓고 들으라는 듯 한숨을 내쉬고는 물잔에 물을 가득 따라 내밀더니 의자에서 일어나 긴 팔을 뻗어 내 등을 툭툭 두드린다. 컥컥, 네가 개소리해서, 그래. 눈꼬리에 맺힌 눈물을 닦으며 물을 벌컥벌컥마시자 오세훈이 휴지 두장을 뜯어 입을 닦으라며 내민다.
"아무래도 넌 나 안만났으면 이렇게 먹다 뒤지던가 했을거야."
휴지로 입술을 거칠게 닦으며 고약한 말버릇에 오세훈을 노려보자 피식웃으며 내 머리를 가득 헤집는다. 설렁탕이나 먹어라, 돼지야.
「나는 더 이상 네가 알던 어리고 나약한 세자빈이 아니다.」
어리숙하고 덤벙거리는 줄만 알았는데 글씨는 꽤나 정갈하게 쓴다. 촛불 아래 일렁이는 하얀 한지에 적혀있는 글자들은 생각보다 간단했고 또 의외로 빼곡했다.
「나는 한 나라의 국모이고 지아비를 섬겨야 할 여인이다. 나는 이제 약하지 않고 네 도움도 필요로 하지 않을만큼 외롭지 않다.」
허, 경수의 헛웃음이 작게 울려퍼졌다. 무슨 심보로 이런 글을 쓴걸까, 도무지 알 수 없는 여인이다.
─누가 괴물이라고 하더이까. 내 아주 혼쭐을 내 다시는 눈도 못 뜨고 온전한 사지로 못 돌아다니게 해주겠습니다.
「나는 어른이고 더 이상 괴물을 사랑하지 않는다.」
네가. 네가 내게 괴물이라고 한다. 군데군데 번져있는 붓글씨들 위로 경수의 눈물이 떨어져 한지 위로 진한 동그라미가 그려졌다.
"어른이…"
좋아하는 여자가 있냐고 묻자 한참을 뜸들이더니 입을 여는 도경수씨를 바라보는데 갑자기 머리가 지끈거려왔다. 한동안 없던 편두통이 다시 도진건지 말을 하던 경수씨에게 잠시만요, 하고는 급히 가방에서 아스피린 두 알을 꺼내 입에 털어넣고 찬물로 넘겨버리니 나를 바라보던 경수씨가 힘없이 웃었다.
"어른이 되지 않기로 약속한 사람이요."
"아, 되게 어렸을 때부터 좋아하셨나봐요."
뭐, 그런 셈이죠. 커피를 잘 즐기지 않는다던 경수씨는 형식상 시킨 에스프레소를 그대로 한 모금 들이켰다. …으, 쓸텐데. 저절로 인상이 찡그려지는데 내 혀까지 떫어지는 기분에 앞에 있는 카페라떼를 들이켰다.
"어, 잠시만요. 전화 좀…"
"여기서 하셔도 돼요."
시선을 내리까는 경수씨를 보며 어른이 되지 않기로 약속을 한 사람이기에는 지나치게 어른스럽다 생각을 하는데 개 짖는 소리로 벨소리를 설정해뒀던 터라 갑자기 클래식이 울려퍼지던 카페 내에 개 짖는 소리가 울려퍼졌다. 지나가던 알바생이 나를 쳐다보고 경수씨도 고갤 들어 날 바라보기에 파도가 밀려오 듯 덮쳐오는 민망함에 가방을 뒤져 핸드폰을 꺼내자 나를 반기는 것은 '오세훈' 세글자였다. 미친새끼…, 전화를 받으려 자리에서 일어서는 나를 제지한 경수씨에 말없이 고갤 끄덕이고 짧게 감사하다는 말을 붙이며 전화를 받자 이제 일어난건지 잔뜩 잠긴 세훈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언제 나갔어?
"좀 전에. 야 나 밖이니까 전화 좀 끊어."
-지랄하네. 또 벨소리 개소리로 해뒀냐?
"…밥은 먹었어?"
-어. 넌 요리는 하지 마라.
"왜? 네가 한 그 쓰레기찌개보다야 훨씬 낫지."
기억조작에 이어 이제는 미각조작까지. 조만간 국정원 들어가겠네.
빈정거리는 목소리에 경수씨의 눈치를 재빨리 살피고 '하하, 밥 다 먹었으면 설거지 좀 해놔. 청소도.'라고 답하자 져주는 일 하나 없는 오세훈은 이미 다 해놨다며 깔끔한 척 떨지 말라고 비죽이기에 그대로 통화 종료버튼을 누르며 경수씨에게 어색한 웃음을 내보였다. 하하, 전화가 길어졌네요.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하네요."
"네?"
좀처럼 알아들을 수 없는 말에 네? 하며 묻자 아무것도 아니라며 웃은 경수씨가 에스프레소를 또 마신다. 와, 쓴 거 진짜 잘 마시네.
본격 헛소리 |
안녕하세요.. 어.. 인티 글 남기는 건 처음인데 글잡 매일 관음하다가 (두근) 글 제목처럼 세기의 피터팬이 제목이고 주 소재예요! 피터팬은 경수지만 세훈, 찬열, 경수 이 세 명 중심으로 돌아갈 예정이고 트레일러라 정확한 내용은 다 안 밝혔어요. 사실 민석이도 넣으려고 했는데 세명도 벅차기도 하고 이야기 구도는 세명으로 밖에 안 짜서..ㅠㅠ 시간이 나면 민석이도 넣어야져(야심) 반응연재라기에는 순전히 자기만족으로 글 쓰는 글순이라 시간 날때마다 틈틈이 글 쓰려고 해여 1편이 내일 나올지 내년에 나올지ㅎ는 아무도 몰라 그럼 저는 이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