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에다가도 감히 말하지 못할,
아이돌인 그 애 이야기.
#10. 내가 생각만 하던 걸, 네 입으로 듣는다는 게
만나자마자 헤어져야했다.
딱히 어떤 에피소드가 벌어질 만한 주는 아니어서, 숙소 복귀 없이 연습실에서 촬영이 끝이라고 했다.
별일 없이 연습이 흘러가고, 조금 보던 언니는 일찍 들어가셨다.
"수고하셨습니다~"
촬영팀이 정리를 시작했고, 아이들도 잠시 자유롭게 눕거나 나갔다.
나도 돌아갈 길이 멀어 잠시 화장실을 들렀다. 연습실을 비롯한 이곳 저곳에, 혹 놓고가는 문서들이 없나 체크했다.
[툭툭]
"악! 깜..짝.."
"뭘 그렇게 놀라세요? 사람 민망하게.."
이것마저 조승연이랑 정반대구나.
조승연은 톡톡, 조심스럽게 내 어깨를 두드렸고, 옹성우는 거의 때리듯이 툭툭, 세게 쳤다.
"시비건 거 아니죠?"
"제가요?"
"아니, 너무 세게 쳐서...푸하..."
놀란 맘이 가라앉아 웃음이 나왔다. 그냥 내게는 정반대인 이 둘이 너무 웃겼다.
"작가님 우리팀이예요?"
"에?"
"다음 주에 오세요?"
"음...저도 몰라요...."
"오세요, 다음 주에."
"....."
"꼭 오세요~"
옹성우는 가볍게 웃었고, 무겁게 얘기하며 떠났다.
고맙다. 진심으로.
"작가님, 정리 좀 더 걸려요. 배차 타고 가실거면 좀 기다려줘요~"
"네~ 신경쓰지마세요~~"
스텝들이 짐을 빼는 동선 말고, 조금 한적한 구석에 자리잡았다.
그러다가, 조승연이 보고싶었다.
고맙다는 말은 못해도, 인사는 하고 마무리하고 싶었다.
...용기는 나지 않아서 실천은 못하지만.
뭐 핑계거리 없나.... 쓸데없이 가방을 뒤지다가, 당 떨어질 때를 위해 갖고다니는 간식들이 손에 잡혔다.
무의식 중에 입에 넣었다.
"혼자 뭐 드세요?"
쳐다도 못보고 그 상태로 굳었다. 하필 먹을 때 들킬 줄이야.
"뭐야 작가님 저희도 주세여어~"
박지훈도 있구나....
머쓱하게 웃으며 대충 초코바 잡힌 걸 몇 개 건넸다.
"촬영 중 아니니까 앉아도 되겠다아아"
아무렇지 않게 내 옆에 앉는 박지훈.
그리고 그 옆에 앉는 조승연.
얘넨 너무나도 편해보이는데, 나 혼자 안절부절 못했다.
"작가님 왜 안왔어여"
"네?"
"이번주에 왜 안왔어여?"
"...저도 잘..."
"그 승아작가님이 일러서여?"
엥.
"성우형아랑 승연이형아가 그랬는데. 하나만 더 주세요오.."
너무 맛있게도 그새 초코바 3개를 먹어치운 박지훈에게 마지막 남은 두 개를 건넸다.
조승연은 이 쪽을 보지 않고 박지훈의 옆구리를 쿡쿡 찔러댔다.
"아, 왜 그래여 간지럽게~"
"지훈아, 형이 자나깨나 말조심 하라했지?"
"눼? 언제여?"
"작가님 다음 주엔 오세요?"
"글쎄요-"
귀엽게 투닥대는 둘을 보고 있다가, 진심으로 모르기에 그렇게 답했다.
1차로 박지훈에게 빈정 상한 듯한 조승연은, 내 대답이 맘에 안들었는지 귀엽게 입술을 삐죽였다.
"정말 몰라요. 메인작가님이 결정하실거라."
그제야 희미하게 웃으며 나를 바라보는 조승연. 무슨 말을 하려는지 입술이 오물거린다.
"저는 다른 팀 분들은 못봤지만, 스텝분들 중에 작가님 이름만 알아요"
"......."
그..래서? 라고 물을 뻔 했지만, 어딘가 반짝거리는 듯한 저 눈빛을 보고 입을 다물었다.
왜인지 꼬리가 보일 것 같았다. 반짝이는 눈망울로 꼬릴 흔들며 칭찬해달라는 개...아니 강아지 같았달까.
"저한테 섭섭하지 않았어요?"
"네?
"....저번 주에, 다들 제 얘기 한번씩 했을 것 같은데."
"푸...!!!"
마지막 초코바를 입에 넣던 박지훈이 그새 찔렸는지 먹던걸 뱉었다. 다행히 제 손으로 그걸 또 받았다.
그리고 안그래도 큰 눈이 더 커져서는 나를 본다. 언제 봐도 눈이 참 예뻐.
"어떻게 아셨어요???"
"박지훈씨가 유독 많이 했나보네."
"와....! 소름 돋았어... 욕까지는 안했어요오!"
정말 투명한 친구다. 그 날 목소리가 들렸던게 박지훈은 아니었지만, 박지훈도 비슷한 이야길 하긴 했구나.
초반엔 애들이 다 영악해보이고, 기싸움에서 지지 말아야지! 했는데.
그저 잘 되고싶은 마음과 욕심이 있을 뿐, 나쁜 애들은 없는 것 같다.
"아무튼~ 다 오해였져 뭐, 피디 아저씨가 말씀해주셨어여"
"그렇다고 제가 착한 사람은 또 아니에요."
"나쁜 사람이에여?"
열여덟살 아닌가.
어째 어제까지 있던 중딩 팀 애기들이 더 말이 통했던 것 같기도....
그 때 마침, 저 앞 쪽에서 피디님이 연습실을 나오며 안쪽의 누군가와 인사를 한다.
정리가 끝났나보다.
"아무튼, 이번 주도 고생많았어요. 다음 주에 볼 수 있으면 보고."
"달작가님!"
"..네?"
"저는 작가님이 제일 좋아요."
네.......?
미처 대답도 못하고 또 벙쪄있는데, 피디님이 멀리서 날 부른다.
"어우 뭐야, 형. 고백하는거예요?"
옆에서 박지훈이 더 난리인데, 정작 조승연은 날 보며 헤실헤실 웃고있다.
당연히 이성으로서의 감정이 아닌 건 아는데. 당황스러웠다.
그리고 답이 없는 날 결국 데리러온 피디님의 손에 이끌려, 연습실을 나왔다.
"빨리 가자고요~ 작가님 또 애들 혼내고 있던 거 아니죠? 얼굴이 빨간 것 같은데."
"아니, 아뇨."
"그만 좀 혼내요~ 혼자 맨날 열받아하지말구!"
그런 적이 있다.
나도 모르게 저 아이를 의지하는 내 마음이, 나만 그런걸까.
저 아이도 어렴풋이 나를 의지하고 있는건 아닐까.
며칠 보진 못했지만, 인간으로서의 호감이 내게 있지 않을까.
아니고서야 저렇게까지 나를 바라보고, 신경쓰고,
처음과는 조금 달라진 모습으로, 나에게는 조금 편해진 모습으로 대할리 없을텐데.
하다가 내 생각에 내 스스로가 어이없어서 웃어 넘겼던 적이.
내가 상상만 하며 웃어넘기던 생각을,
네가 네 입으로 직접 먼저 뱉어줄 줄은 더 상상도 하지 못했다.
큰일이다. 계속 이렇게 마음을 빼앗겨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