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호닉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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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말해."
"귓구멍에 좆박았냐."
"다시 말해보라고 이 병신새끼야."
"죽는 것도 서러운데 이새끼나 저새끼나 왜이렇게 욕들을 쳐하고 지랄이냐."
"변백현."
"그래 변백현. 나."
"....."
"죽는다고 곧."
"..경수를 두고..네가."
"...."
"..죽는다고."
경수의 이름을 듣자마자 우습게도 눈물이 났다. 김종인 네앞에서 누구보다 의연하려 내가 얼마나 노력을 했는데. 거기서 씨발 우리 경수 이름을 말하냐 너는. 사람 속도 모르고 새끼가. 지금 내가..얼마나 모든걸 토해내고 싶은지 알지도 못하는게.
"야."
"...."
"놀랬냐."
"...."
"너도 그런데 우리 경수가 알면 얼마나 아프겠어."
"...."
"얼마나 슬프겠어."
"....."
"그 눈물많고 여린게 얼마나 울겠어 또."
그렇잖아. 착해빠진 우리 도경수가 나 그렇게 가면 얼마나 고통 속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살지 너도 알잖아. 나는 못본다 그거. 나때문에 우리 경수가 울고 아파하고 힘들어하면 죽어서도 내가 아파서 못견딜테니까. 내가 이기적인 새끼라고 해두자.
"지금 우리 경수한테 전화할거야."
"..그래서."
"...다른 여자 생겼다고..할거야."
"씨발 변백현."
"..우리 경수 어디 원망할 곳은 만들어주고 가야지."
"...."
"우리 경수 나 사라지고나서 힘들 때 이유도 모르고 끙끙 앓는 일 없게 원망도 하고 욕도 하고 복수라도 할 마음으로 다시 멀쩡하게 살아갈 구실 만들줘야지."
"그래서."
"....."
"그래서 지금 나더러 너 죽으면 경수 옆으로 가서 그래 변백현이 개새끼다. 너 두고 다른 여자 옆에 끼고 잘먹고 잘산다더라. 그러니까 경수 너도 다잊고 나한테 와서 행복하게 잘 살면된다. 뭐, 이렇게 위로라도 하라고?"
"어. 위로는 맞는데. 우리 경수 사랑하는건 진심으로 좀 해주고."
"..너 진짜 병신 다됐다."
"그럼 지금 내가.."
"....."
"제정신이겠냐."
"....."
"그 예쁜걸 두고 가야되는데."
"....."
"나없으면 뭐 하나 제대로 할 수도 없게 만들어놨는데."
"....."
"나없인 세상이 끝나는 것처럼 만들어놨는데."
"....."
"당장 우리 경수한테 사랑한다고 말 한마디 못하는데 내가 제정신이면 그게 이상한거지."
"....."
"..안그러냐."
나는 매 순간 언제나 견디는 삶을 살아왔다. 도경수, 너에 대해 흘러 넘치는 사랑을 주워담으며 단 한순간도 편히 지나온 시간이 없다. 너의 앞에서, 너의 옆에서, 너의 뒤에서, 네가 존재하는 그 어떤 곳에서든 너를 향한 마음을 쏟아내듯 너에게 퍼부어대면서도 나는 주체하지 못하는 사랑에 언제나 숨막히듯 쫒겨왔다. 그런데 그런 너에게 감히 사랑한다 한마디 건네지 못하고 죽을듯이 끓어오르는 마음을 붙잡고 이리저리 헤매이며 방황하는 나는 지금 죽음보다 더한 고통 속에서 견디고 있다. 그래서 어쩌면 다가올 죽음이 더이상 두렵지 않은걸지도. 물론, 널 보지 못한다는 걸 빼면..그러면 말이야.
어젯밤. 너에게 마지막으로 걸려왔던 통화목록을 한참이나 보다 김종인의 얼굴을 바라보며 너의 번호를 천천히 눌렀다.
"..하지마 변백현."
내가 아는 우리 경수라면.
-백현아.
바로 받을거야. 거봐.
-번호 그대로네? 로밍했어? 잘 도착한거야?
"도경수."
경수야.
-응. 여기는 이제 막 점심시간 지났는데. 거기는 몇시야? 이탈리아 좋아?
"할 말, 있어."
지금부터 내가 너한테 하는 얘기
-..뭔데? 맛있는거 먹었어? 찬열이랑 다른 애들은?
"..나, 이탈리아 아니야."
잘들어.
-..어?
"도경수."
내가 지금 주는 상처 잘 기억해.
-무슨..말이야?
"나.."
그리고 네 인생에 내가 끼어든 순간부터 다 잊어.
-.....
"여자 만난다."
지금 이상처 빼고 다 잊어 경수야.
-.....
"너도 어느정도는 예상했을거라고 생각한다."
그래야 네가 살아.
-.....
"그러니까.."
김종인. 잘 봐. 내가 우리 도경수한테 어떤 상처를 주는지. 그래서 네가 우리 도경수를 얼마나 아껴줘야 하는지 두 눈으로 똑바로 봐.
또 순진해서 의심 한번 못하고 앞뒤없이 뱉은 말을 곧이 곧대로 믿고 멍하니 굳었을 경수의 모습이 눈앞에 그려졌다. 내가 하는 말은 다 믿으니까. 세상 사람 모두가 아니라고 그렇게 말해도 변백현이 한말을 믿는게 우리 경수니까. 백현이가 아니랬어. 백현이가 그랬어. 이상하다..백현이는 이거랬는데. 귀엽게 기울여지는 너의 얼굴이 생각나 와중에도 웃음이 새어나올 것 같아 입술을 세게 물었다. 아, 잠시만 경수야. 나 지금도 너를 너무 사랑해.
그래서 말할게.
우리 경수 내가 사랑하니까.
"그러니까..헤어ㅈ,"
-사랑해.
.....
-사랑해 백현아.
아.
-할 말이..그거였어? 난 또 큰일난 줄 알았네.
경수야.
-괜찮아. 괜찮아 백현아.
..아니야.
-나 기다릴 수 있어.
...안돼 경수야.
-내가 더..잘할게.
제발.
-애처럼 굴지도 않고 너 없어도 밥도 잘먹고 어른스럽게 굴게 정말이야. 보일러도 잘 돌리고..그리고, 스케쥴도 잘가고 이제 너없이 녹음실도 잘 갈게. 너만 기다리고 그러지 않을게. 어..또..또...리허설 중간에 너한테 전화도 안하고..당근도 잘먹고 편식도 안할게...그리고..어...
너 이러면 안돼.
-다른여자 만나도 되니까..옆에만 있어주라 백현아.
경수야.
-네가 하지 말라는건 아무것도 안할게. 전화도 문자도 아무것도 안할게 네가 먼저 하라고 할 때까지.
네가 얼마나 빛나는 사람인데.
-그여자..뒤에 있을게. 뭐든지 내가 두번째로 밀려나도 좋아 그러니까.
어떻게 그런 말을 해.
-..헤어지자고 하지마 백현아..
네가 얼마나 빛나는 내 도경수..인데.
손에서 미끄러진 휴대폰이 바닥으로 떨어져 둔탁한 소리를 냈다. 미친사람처럼 크게 웃다가 앉아있던 자리에서 쓰러지듯 바닥으로 내려가 김종인의 다리 사이로 기어가 매달렸다. 거친 그의 바짓단에 얼굴을 묻고 소리도 내지 못하고 울었다. 경수가..우리 경수가 나를 이만큼이나 사랑한다.
넌 가늠이나 할 수 있나.
숨이 쉬어지지 않아 충혈된 눈으로 김종인을 올려다봤다.
우리 경수가 좋아하는 내 하얀 셔츠가 바닥에 쓸려 더러워지도록.
목숨줄이나 되는 것처럼 김종인의 다리를 붙잡고.
듣기 싫은 쇳소리가 새어나오는 입을 억지로 벌려 말했다.
"..살려줘.."
누가 나를 제발.
"...살려주세요..."
우리 경수를 좀
"..제발..."
구해주세요.
내가 미쳤나보다.
버터마가린 백도를 잠시 떠나고 싶다.
더 슬프게 하고 싶다.
하지만 다음편에서 끝날거에요 여러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