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오래 기다리셨죠?
급한 마음에 일단 암호닉 정리는 잠시 미루고
들고 왔습니다.
책임감 있게 끝을 내야죠 우결.
다음 에피소드는 완결입니다.
세준 번외도 있습니다.
시간이 길어지더라도 완결 꼭 내겠습니다.
죄송해요 여러분.
변백현은 제 자신이 병신이라고 생각했다. 찬열과 둘이 붙어다니며 온갖 찬양의 수식어에 익숙해져 있던 제가 그 '다르다' 는 도경수의 한마디로 심장이 터질 것 같이 두근거리고 눈 앞이 두개로 흩어졌다 곧 하나로 곧게 퍼지는 감각을 느끼는게. 도경수의 발언 이후 변백현은 수업도 듣지 않은 채 불량 학생들은 누구나 찾는다는 옥상에서 땡볕에 괜히 제 몸을 혹사시켰다. 담배를 피워볼까도 싶었지만 그럼 제가 정말 쌩양아치로 찍혀 경수에게 다가갈 수 없는 사람이 될 것 같아 차마 불을 붙이지도 못했다. 이미 쌩양아치가 맞다는 사실은 안타깝게도 하지 못하는 변백현이었다. 괜한 오기로 얼굴이 빨개지도록 옥상에서 괜히 시간을 죽이다 경수가 느즈막히 종대와 운동장을 가로지르는 모습을 바라봤다. 내가 없으면 도경수가 가다가 엎어지기라도 해야 내 존재를 알아차릴까 싶다가도 도경수 엎어지면 아프겠지 싶어 제 머리를 세게 내려치기도 했다. 사랑에 빠진 열여뎗 청소년의 마음은 그렇게나 어지럽고 정의가 불가능한 것이었다. 그렇게 시야에서 경수가 사라지고 운동장에 수없이 많은 발자국 중에 경수가 밟았던 길을 단번에 찾아내는 저를 재차 발견하고 당황스러운 마음에 교복바지에 손을 넣었다 빼기를 반복했다. 이 정도로 내가 도경수에게 빠져있다고 내 온몸이 말해주고 있었다.
백현은 그 길로 한시도 쉬지않고 경수의 집으로 달려갔다. 아주 멀리서도 도경수의 동그란 머리통을 발견할 수 있었다. 백현은 꼭 마지막 인것처럼 그 길을 달렸다. 경수를 향해. 그 작은 등이 못견디게 사랑스러웠다. 저의 마음을 그렇게나 몰라주는 야속한 등이지만 그마저도 너이기에 너무 사랑스러워서 미칠 것 같아고 소리치고 싶었다. 숨이 차게 달리는 와중에도 변백현은 가오 상하게 눈물이 났다. 물론 도경수도, 지나가는 할머니도 모르게 소매로 닦아내긴 했지만. 도경수가 너무 좋고 사랑스러워서 숨이 막혔다. 이렇게 뛰면서 느끼는 감각이 아닌 정말 마음이 차고 넘쳐서. 경수가 몰라주는 마음이 서운하고 떼를 쓰고 싶었다. 나 좀 알아줘. 좋아해줘. 특별하게 생각해줘 경수야. 경수야.
그렇게 뛰어서 닿은 도경수를 보는 순간 변백현은 왈칵 새나오는 마음의 범람을 막지 못하고 무너졌다. 도경수가...
정말이지
너무
좋았다.
좋다는 말의 어원을 찾아가 그 사람의 멱살을 잡고 흔들고 싶었다. 너는 어떻게 날 알고 그 단어를 만들었냐. 내가 도경수를 이렇게나 '좋아' 할 거라고 어떻게 알았어? 사랑이라는 거창한 말 안에 경수를 담는다면 경수가 조금이라도 흐려질까 변백현은 아주 조심스럽게 도경수를 좋아했다. 그 큰 눈을 축 내린 채 저를 바라보는 도경수가 변백현은 '좋았다' .
"나도..."
경수가 입술을 열어 하는 말들이 바람을 타고 백현에게 흘러들었다. 이 순간, 경수가 저를 싫다 밀어내도 백현은 감히 실망도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네가 좋은가봐."
확신하지 못하고 망설이는 작은 입술을 백현은 어루만지고 싶었다.
"... 그런가봐 백현아."
내 이름이 백현인게 이 세상에 태어나 도경수를 발견한 일 다음으로 잘한 일인것 같았다. 아마도 저는 이 세상에 태어나자마자 엄마에게 내 이름을 변백현이라고 지어, 라고 하지 않았을까 하는 우스운 생각도 찰나에 스쳤다.
"안 좋아해도 상관없어."
"..."
"정말이야. 네가 개새끼라고 하면 나 개새끼 할거야. "
"너 개새끼 아니야 백현아."
"아니, 더한 것도 할거야."
"..."
"경수야."
"... 응."
"나 학교갈 때 너랑 같이 가게 해줘."
"..."
"내가 너 아침마다 너네 집앞에서 기다리게 해줘."
"..."
"점심 시간마다 네 앞에 앉아서 밥 먹게 해줘."
"..."
"내가 이유없이 너한테 전화할 수 있게 해줘."
"..."
"내가 보고싶다고 밤 늦게 달려가도 괜찮다고 해줘."
"..."
"너무 욕심이 많아서 미안해."
"..."
"그런데 경수야."
"... 응, 백현아."
"네가 너무 좋아서 나는 뭘 어떻게 못하겠어. 나는 조금 후에 좋아해 줘도 좋아. 네가 나를 좋아해 주기 까지 하면 나는 심장이 터져서 죽을지도 몰라. 진심이야."
"죽지마 백현아."
"경수야. 너무 좋아해. 심하게 좋아 네가. 진짜 넌 상상도 못해. 이건 정말 말도 안돼. 경수야, 심각하게 좋아해."
뜬금없는 변백현의 애정 폭격에도 도경수는 멀뚱히 변백현을 바라봤다. 뭘 저렇게 어렵게 말하나.
"백현아."
"응."
"내가 존나 좋아?"
"... 어?"
"내가 존나게 좋다는거지?"
"... 어."
"씨발 존나 환장하게 도경수가 좋아. 이거지?"
"..."
"아니야?"
"... 마, 맞지."
김종대가 꼭 봤어야 할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어쩜. 저렇게 철썩같이 알아 들었는지. 변백현은 도경수의 입에서 나온 '씨발' 과 '존나' 가 진정 사실인가 싶어 멍하니 도경수를 바라봤다. 너무 좋아해. 보다 존나 좋아한다. 가 더 변백현 스타일이었지만 차마 나오지 않았던 말.
"나 똑똑하지 백현아."
하.
"칭찬해줘."
경수야.
"내가 언어는 잘해."
백현은 떨리는 손으로 경수의 머리칼을 조심히 쓸어내렸다. 조금 땀에 젖어 눅눅한 머리칼 마저도 사랑스러워 미칠 것 같았다.
"아이스크림 먹을래 백현아?"
"... 응."
"손 잡을까 백현아?"
이건 반칙이다. 나는 조금만 다르다며. 그런데 이렇게 훅 들어오면 난 어떡하라고. 백현은 눈에 보이도록 떨리는 손으로 경수의 손을 쥐었다. 이게 꿈인가 생신가 구분도 되지 않았다. 도경수가 어쩌면 연애에 해박한 지식을 가진 꼬리가 오만개는 달린 여우인걸까. 변백현은 그다지 예쁘지도 않고 오히려 투박하다고 할 수 있는 도경수의 손을 감히 힘주어 잡지도 못했다. 세상에 태어나 이런 감정이 있다는 사실을 어쩜 지금 알았는지 억울해 미칠 것 같았다. 아니, 도경수를 왜 지금봤을까. 학교에 다닌 1년 반이라는 시간동안 변백현 너 대체 뭐했냐.
세상에 빛과 소금이 없어도 도경수가 있다면 세상은 평화롭고 아름다울 것 같았다. 도경수가 빛이고 소금이며 하나님이고 부처님이었다.
"백현아."
"... 응."
"이젠 우리 사귀는거야?"
"... 그래도 돼?"
정말 어쩜 이렇게 병신같은 대화가 있을까. 멍청하게 길가에 서서 손을 잡고 맹하게 대화를 주고 받는 두 남고생의 모습은 꽤나 주목을 끄는 구석이 있었다.
"음... 내가 결정해야 돼?"
변백현은 너무도 당연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지."
"왜?"
"내가 널 더 좋아하니까."
"그걸 어떻게 알아?"
"난 알아."
"똑똑하다 백현아."
"고마워 경수야."
"백현아."
"응 경수야."
"사귀자."
변백현은 턱이 빠지게 고개를 끄덕였다.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사실을 까먹고 온 몸으로 알았다는 대답을 내뱉었다.
경수는 백현의 손을 잡아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방금 아주 남자다웠어. 스스로에게 꽤나 멋진 감탄을 내뱉는 것도 잊지 않았다. 맹하게 제게 질질 끌려오는 백현의 온기가 싫지 않았다. 이건 분명 살아오면서 처음 느끼는 감정이었다. 카테고리 2개가 전부였던 도경수 인생에 새로운 항목이 하나 더 생겼다. 이름은 아마도 사랑.
"... 경수야."
"응 백현아."
"있잖아..."
"응."
"내 이름 뒤에... 하트 붙여주면 안돼?"
"돼. 지금 붙일까?"
"응. 근데..."
"응, 왜?"
"... 두개 붙여주면... 안돼?"
"세개 붙일래."
"난 경수 이름 뒤에 네개 붙일게."
"난 다섯개."
"나 열개."
숫자를 처음 세는 아이가 된 것처럼 거진 하트 열전을 벌이던 둘의 뒷모습이 퍽 청량했다. 알고보니 선수였던 도경수의 훅으로 관계의 진전을 맞은 변백현은 걷고 있는 시멘트 길이 혹시 꽃길은 아닌지 연신 확인할 뿐이었고. 저도 모르는 사이 변백현을 들었다 놨다 흔들었다 뒤집었다 아주 정신 못차리게 만들었다는 사실을 모르는 도경수는 그저 본인의 휴대전화를 특수 문자를 열개 이상 쓸 수 없는데 어쩌지란 고민에 휩싸였다.
청춘이란 그랬다. 더군다가 열여뎗이란. 조금 다른 길을 걷고 있다는 사실조차 알 수 없게 믿을 수 없이 달콤하고 예쁜 길이었다. 하트를 열개나 이름 뒤에 붙일 만큼 가득한 애정이 새나오는 여름 날 오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