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특별편 하나만 더 써도 되나영...?(쭈굴)
제발 된다고 해주세영....
암호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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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간 말이 없던 상담가는 빤히 아이의 눈을 바라봤다. 쓸모 있는 사람. 이제서야 일곱살이 됐다는 아이에게 쓸모라는 말을 가르친 아이의 부모. 상담가는 다시 미소를 띄운채 물었다.
"타오가 쓸모있는 사람이 되는데 왜 엄마, 아빠 곁에 있으면 안돼?"
"타오는..."
"응,우리 타오는?"
"타오는 엄마랑 아빠 진짜 애기가 아니에여..."
"..."
"엄마랑 아빠가 타오를 불쌍하게 생각해서 이케 해주는 거라고 그래써여."
"...타오야."
말을 잃은 상담가가 이내 시선이 마주치지도 않을 벽을 바라봤다. 필시 밖에서 경수와 백현이 이 모든 것을 지켜 보고 있을텐데. 그동안 수많은 아이들의 상담을 해왔고 그 시간들이 쌓여 나름 아이들의 마음을 아주 잘 어루만지는 저명한 의사로 명성을 얻은 터였다. 하지만, 이런 경우는 정말 처음이었다. 이토록 상처가 가득하고 겁에 질려 애정을 감히 갈구하지도 못하는 아이의 모습은 정말, 처음이었다.
"타오야, 왜 그런 생각을 해. 타오 엄마 아빠가 절대 그런 생각 하실 분들 아닌거 아줌마가 아는데?"
"언제까지 애를 키우게써. 쟤 좀 자라면 애..애무따지...그거일텐데."
"응?"
"사람들이 그래써여. 타오는 애무따지 이거 모르는데, 그냥 엄마 아빠한테 안좋은거 그거에요."
상담가는 상담을 멈췄다. 창 밖에 있는 경수가 걱정이었다. 거진 20년 세월을 남의 마음을 읽어내며 살아왔다. 하루를 만난 그날의 경수를 보고 알 수 있었다. 누구보다 마음이 여리고 눈물이 많은 사람이란걸. 외유내강인 사람이라지만 천성은 숨길 수가 없는 법이었다. 상담가는 애써 미소 지으며 타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우리 타오 잠시만 밖에서 장난감 가지고 놀고 있을까? 아줌마랑은 조금만 있다가 얘기하고. 어때?"
꽤나 집중해 애착을 보이던 인형을 망설임없이 제자리에 내려놓은 아이는 의자에서 내려가 소리도 내지 않고 상담실 문을 나섰다. 뒤를 따라 나간 상담가는 곧 자리에서 일어나 아이를 안아든 경수 뒤로 백현과 눈을 마주했다. 고개를 한번 내저은 백현이 곧 타오의 얼굴에 쉴새없이 입맞춤을 해대는 경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경수는 정말이지 '가슴이 미어진다' 는 것을 느꼈다. 아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말들을 끊임없이 해대는 타오를 보고 있는 것이 못견디게 고통스러웠다.
"우리 애기가...안에서 뭐했어?"
"그냥...인형이랑 놀아써여."
"...다른건, 안했어?"
"그냥...셩생님이랑 놀아써여."
무서웠다고 투정을 부릴 만도 하건만. 아니라며 어른스럽게 고개를 저어가며 오히려 차분한 눈빛으로 경수의 불안한 마음을 어루만지는 아이. 경수는 품에 안은 아 아이를 떠나보낸다는 잠시간의 상상마저도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이토록 사랑스럽고 안쓰러운 아이를 품에서 보낼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경수는 타오를 안아든 채 아이의 머리를 감싸안고 백현을 바라봤다.
백현아. 어떻게 해.
정말 어떻게 해야하는지, 백현도 알 수가 없었다. 가슴 아픈 말들을 쏟아내는 눈앞의 아이와 그런 아이로 인해 그 아픔을 고스란히 받고 있는 경수. 백현에겐 너무나도 어려운 것들이었다. 도경수의 고통이 변백현에게 어떠한 작용을 하는지 말로 표현할 수는 없었다. 이전에도 말했듯이 정말 물리적으로 가슴이 아팠다. 도경수가 겪고 있는 저런 좋지 않은 것들이 변백현에게 그대로 달려와 거대한 가시가 되어서 마구 찌르는 것만 같았다.
"두 분."
도경수와 변백현을 칭하는 '두 분'
"상담실로 잠깐 모실게요."
아무것도 바라는 것은 없었다. 아니, 없다고 하기엔 아이와 함께 하고 싶은 나날들이 너무나도 많지만 타오가 더이상 상처받지 않고 웃을 수만 있다면. 그것 뿐이었다.
"밖에서 충분히 보고 들으셨을 거라고 생각해요."
아이가 이 모습을 보지 못하도록 잠시 현석을 불러 아이의 간식을 사러 나간 터였다. 그나마 경수와 백현을 제외하고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 현석인지라 타오가 가장 낯가림없이 잘 따르기도 했다. 타오가 꼭 쥐고 있던 인형을 손에 쥔 경수가 백현과 나란히 앉아 고개를 숙이고 인형을 응시했다. 마른 세수를 한 백현이 무겁게 입을 열었다.
"...타오 직계 가족을 찾았어요. 연락이 왔어요 얼마전에."
"아..."
"여기 저기 법이고 뭐고 다 알아봤는데 혈육 관계인 사람이 양육권을 원하면 방법이 없대요. 타오가 아직 그쪽 호적이고, 저희도 아직 호적 정리 안된 상태고."
"굉장히 현실적인 문제네요."
"그런거 생각한 적 없었어요. 어차피 경수랑 전 계속 같이 살거고, 나이가 더 들면 경수랑은 외국에 나가 살 생각이었어요. 경수가 노래 하고 싶은만큼 충분히 하면 좀 더 자유로운 곳에서 연애하고 살려고 그랬어요. 그냥, 그 사이에 애가 같이 할거라고 생각만 했지, 이런 일 상상도 못했어요. 아니, 떠나겠지 은연중엔 알았지만 이런 식으로는 아니었어요."
"백현씨가 지금 무슨 말슴 하시는지 알아요."
"지금 애랑 떨어져서 경수가 잘 살 수 있을지도 모르겠고, 타오도 막 적응해서 밝아지고 있는데 다시 얼굴도 모르는 삼촌이라는 사람 집 가서 얼마나 잘 지낼 수 있을지도 모르겠어요. 솔직히, 경수가 더 걱정이긴 하지만."
"지금 아이의 정서상, 또 한번 양육 환경이 바뀌는건 굉장히 위험한 선택이에요, 아시겠지만."
"그러니까, 아무도..."
백현은 잠시 말을 멈추고 옆을 바라봤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경수는 아직까지도 타오가 쥐고 있던 인형을 만져대며 아무 말도 없었다. 괜히 불안해지는 마음에 백현은 경수의 한손을 잡아 제쪽으로 끌어당겼다. 조금 기우뚱하는 경수를 단단히 잡아 그가 앉아 있는 의자를 제쪽으로 좀 더 끌어왔다. 그런 경수의 손을 잡고 말했다. 정말 솔직히 저도 겁이 나는 이 마음을.
"아무도 애 생각을 안해요. 그런데 제가 더 무서운건,"
"..."
"저희도 지금 정말 애를 생각하는건지 아니면 그냥 정든 애 보내기 싫어서 우리 생각만 하는건지 구분이 안간다는 거에요."
"..."
"이럴 땐 어떤게 맞고 옳은지 아무도 가르쳐 준 적이 없는데."
"..."
"...어떡해요 선생님."
결국 백현도 고개를 숙였다. 도경수 하나만을 알고 도경수 하나만을 지키고 도경수 하나만을 바라볼 때, 변백현은 그 어떤 것도 거칠게 없었다. 내 도경수는 내 방식대로 지켜갔다. 그 과정에서 어쩌면 저보다 더 클지도 모르는 경수가 저를 품어 안아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하지만, 지켜야할 아주 작고 여린 아이가 한명 더 생기자 이야기가 달라졌다. 내 도경수가 상처 받지 않도록 그 아이를 함께 지켜내는 것이 무척이나 힘들었다.
옳고 그르다는 기준이 존재하는지조차 의문이었다. 결국은 스물넷, 사랑에 눈 먼 남자 변백현도 서툴기 그지 없는 초보 부모였으니까.
아무도 입을 열 수 없는 아주 어려운 문제 앞에서 그때까지도 말이 없던 경수의 낮은 목소리가 울렸다.
"안보내요."
경수는 생각했다.
"타오는 저희랑 지낼거에요."
깊지 않게, 눈앞의 현실을 바라봤다. 백현이 말한대로.
"타오가 가고 싶다면 그 타오 삼촌이라는 분이 어떤 분인지 제가 보고, 타오가 어떤 집에서 살건지, 유치원은 어디로 보내실건지."
내 아이가 가장 행복할 수 있는 길로. 그뿐이었다.
"저희와 정기적으로 만나게 해주실건지, 앞으로도 쭉 책임을 지실건지, 정말 친자식처럼 생각해서 키워주실건지."
백현은 상담가의 눈을 맞추고 흔들림없이 말하는 경수를 바라봤다.
"제가 다 확인하고 나서 보내줄거에요."
언제나 가장 중요하고 힘겨운 순간에 모든 것을 아울러 감싸는 내 도경수의 너른 품.
"그 전에는 타오 아무도 못데려가요."
백현은 손안에 쥔 경수의 작은 손에 제가 참 많은 것을 의지하고 있다는걸 알았다.
침묵만이 감도는 작은 상담실 안에는 여전한 경수의 목소리만이 울렸다.
"만약에 타오가 가기 싫다고 한다면, 그렇다면."
정말 분위기와는 맞지 않았지만.
"저희 곁에 있고 싶다고 아이가 그렇게 말한다면."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걸 안다면 경수가 정신차리라며 한소리 하겠지만.
"그러면 하나님이 오셔도 타오 아무데도 못데려 가요."
또 한번 정신 못차리게 반하게 만든 내 도경수는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백현은.
"백현이랑 제 품안에서 아무도 못데려가요."
내 이름을 당연하게 저와 하나로 묶는 경수의 작고 귀여운 하트 모양 입술이 못내 사랑스러웠다.
"우리 아들이에요."
....우리 아들. 이라고 경수가 말했다.
그러면 우리 아들이지.
도경수의 한마디가 법보다 옳은 변백현의 멍한 표정이 맴도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