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만 늦추시오."
"안될 말씀입니다."
"천자의 마지막 밤입니다 예판."
"..하오나,"
"그대가 강산이 바뀌도록 모셔온 황제 폐하십니다."
"....."
"그대가 이리 나온다면 내 예판을 어찌 마음 편히 믿고 황위에 앉을 수 있겠습니까."
"...전하."
"하루도 이틀도 아니지 않습니까. 그저..."
"...."
"반나절입니다."
"...."
"그리 큰 짐을 지고 평생을 살아온 이에게 건네기에 아깝진 않은 시간 아닙니까."
"...."
"형님께서 이생의 마지막 밤을 천금과도 같이 보내고 계십니다."
형님.
지금 그이를 품고 계십니까. 품에 안아 아끼고 계십니까. 형님께서 하루도 마음 편히 잠들지 못하셨던 날들을 이 아우는 알고 있습니다. 제 어미를 죽이고 빗속에서 눈물을 흘리시던 형님을 알고 있었지요. 제가 원망할 수 있도록 그리 해주신 것 역시. 형님, 만일 제가 죽어 형님 곁으로 간다면 그때는 하루 걸러 하루 밥을 빌어먹는 걸인으로 살지언정 형님과 우애라는 것을 나누고 싶습니다. 형님의 손을 집고 흙길을 뛰어 놀고 몰래 어미의 눈을 피해 새벽 눈을 맞기도 하는 그런 형제 말입니다.
이제는 힘을 다해 아스라히 마지막을 밝히고 있는 촛불 아래로 백현은 경수의 손에 입을 묻고 말했다.
"이생에 남거라."
"...."
"이생에 남아 종인의 곁에서 홍복을 누리거라. 그는 너를 내치지 않을 것이다."
"...."
"상처만 안고 살질 않았느냐. 평생을 어두운 곳에서 웅크리고 그리 살았지."
"...."
"허니 남은 생은 누구보다 귀하게 살고 오너라."
"폐하께선."
"...."
"폐하께선 꽃길만 걷고 오셨습니까."
나보다 더한 암흑 속에서 견딘 이의 얼굴을 하고선 내게 빛을 말하는 남자. 당신의 지나온 삶이 어떠했는지 난 알지 못하지만 당신의 눈을 바라만봐도 나는 알 수가 있습니다.
"뭇 모든이의 비난까지 감내해 이날까지 오질 않으셨습니까."
당신을 조롱하고 비난하는 목소리를 듣지 않은 날이 없습니다.
"누구도 믿을 수 없는 곳에서 이 긴 세월을 인내하지 않으셨습니까."
당신의 마음 속 깊은 곳을 알지도 못하면서.
"누구보다 아픈 길을 걸어오지 않으셨습니까."
가장 아름다운 가시밭길을.
날이
"백현."
밝아 온다.
"당신을"
해가
"은애.."
떠오른다.
"..하고 있습니다."
어스름한 빛 사이로 백현의 뺨을 살며시 쓰다듬었다.
"제게는 첫정입니다."
"..경수."
"마지막 정이기도 하지요."
"...넌 내게 영원이다."
"다음 생을 감히 제게 약속해 주신다면"
"...."
"기다리겠습니다."
"...."
"언젠지 모를 당신과의 삶을."
"...멀지 않을 것이다."
"...백현."
"내, 네가 그 아무리 먼곳에 있다한들 널 찾아내마."
"...."
"시선이 닿지 않는 아주 높고 낮은 곳에 네가 있다 해도 내 너를 찾을 것이다."
"...."
"그러니 걱정하지 말거라."
"...."
"죽어 없어진들 마음까지 뺏기랴."
그가 건네는 천금과도 같은 미소. 비로소 그가 지어내는 바람보다 부드럽고 꽃잎보다 찬란한 미소. 경수는 미소짓는 백현의 볼을 조심히 감싸쥐었다.
"백현."
"때가 됐다."
"...조금만 앞서 계십시오."
"...장도는 네손을 더럽힐 것이다."
"제가 늦지않게 따르겠습니다."
당신의 뒤를.
"은애하는..."
찬란한
"...나의 주군."
꽃이
"나의 백현."
졌다.
"폐하. 황좌에 오르시지요."
형님.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노니."
행복 하십니까.
"모두들 축배를 들게."
모두가 축배를 듭니다.
야사(野史)는 말한다. 정치에 뜻을 품은 이복 동생의 반란에 목숨을 잃은 황제가 실은 그의 총비에 의해 시해 됐다고. 날이 밝아 기침이 없는 황제의 방에 든 내관의 발걸음을 붙든건 시해된 황제의 시신이 아닌 그가 죽어서까지 붙잡고 있던 그의 총비의 하얀 손. 시리도록 아무 표정도 없던 가인의 환한 미소. 혹여나 후생이 있다면 언젠가 다시 만나 악수를 한번 건네고 싶다 했던 그 미소. 죽음을 뛰어넘는 그 무언가의 존재를 확신하게 만든 그날 아침.
역사 속 단 한줄의 기록이 담기엔 터무니 없이 깊었던 사랑이 있었노라. 그렇게.
뛰지 말거라.
많이 기다리셨습니까.
글쎄, 일각이 지났나 억겁이 지났나.
예?
너를 보고싶은 마음에 억겁과도 같았고, 네가 이리 급히 오다 다칠까 내 염려를 하느라 일각과도 같았다.
어찌 그리 말씀하십니까. 낯이..
거칠 것 없다. 이곳에 너와 나뿐이다.
...날이 좋습니다.
난 네가 좋다.
...백현.
가자.
..어디로 가야합니까.
어디든.
.....
이리 네손을 쥐고 간다면 그 어딘들 극락이 아니겠느냐.
아직도 처음과 같이 절 은애하십니까.
아니.
.....
그와는 견줄 수 없도록.
백현.
그리 너를 아끼고 있다.
....
나의 경수.
나의 사랑.
나의 영원.
주제에 슬럼프라는 것이...?^_^
저 잠시 다른 길로 새도 됩니까 여러분.
아 이번 특별편은 마지막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