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냥 부부연애만으로 끊으려던 글을 어쩌다보니 이어쓰게 되었습니다! 점검을 하면 못 올리는 줄 알고 서둘러 마쳤는데 알고보니 이용하는 데에는 지장이 없다고 말씀하시더군요. 참 다행이에요! 저번과 같이 이번에도 역시 치환 기능을 사용하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
02. 키워드 : 교복연애(오랜 시간 끝에 찾아온 꽃같은 연애기, 시험 / 전 시리즈 교복연애와 이어짐) 시험이 끝나자마자 부리나케 이진기를 끌고 나간 김종현 무리 덕에 오늘은 그의 얼굴을 볼 수 없으리라 생각했다. 나를 뒤로한 채로 얼결에 끌려가는 얼굴이 황당함으로 물들어있었으나 그런 그의 목덜미를 잡아챈 김종현은 날쌘 움직임으로 교실을 빠져나갔다. 옆에서 칭얼칭얼 이번 시험에 대한 평가를 늘어놓는 귀분이의 등을 쓰담쓰담 두드려주며 가방을 메고 교실을 나섰다. 따사롭게 내려앉는 햇살이 어깨 아래서 찬연한 빛을 냈다. 시험이 끝나서 그런가. 평소라면 신경질을 돋우는 데 도움만 실컷 얹어주었을 날씨가 오늘따라 화사하게 기분을 돋구어주는 것 같아 입꼬리가 살풋 호선을 그렸다.든 것이라고는 시험지 몇 장과 자습서와 필통이 끝. 걸을 때마다 터덜터덜 소리를 내는 가방을 의식했는지 옆에 서서 줄곧 바닥만 뚫어져라 응시하던 귀분이가 획 고개를 돌려 내 가방끈을 낚아챘다. 그리고는 야, 오이니. 하며 왠지 한 대 칠 것 같은 험악한 얼굴로 나를 응시하는거다. 뒷통수가 뚫릴 듯한 강렬한 눈빛에 놀라 안면근육이 절로 움찔대는 것 같았다. 바싹 내 옆으로 붙어 조심조심 화단 옆으로 내몰아낸 그녀는 어딘가 석연치 않다는 듯 쩝 입맛을 다시며 내 옆, 저편의 화단에 걸터앉아 인상을 구겼다. 시험성적이 좋지 못했나. 오늘따라 왠지 더 우울해보이는 얼굴에 괜히 내 기분까지 축 쳐지는 듯 했다.그래도 명색의 친구라는 이름인데. 어깨 한번 두드려주고, 위로의 말을 조금이나마 건네주어야 할 듯 싶어 귀분이의 앞에 가 섰다. 숨을 들이마시고, 툭 말을 뱉으려는데 갑자기 벌떡 일어난 귀분이가 제 머리채를 잡고 발을 동동 구르며 악을 쓰기 시작했다. 귀분아. 너 왜 그래! 스스로 제 머리채를 잡고 학교 사람들이 다 보는 화단 앞에서 악을 쓰는데도 그녀는 별 다른 생각이 없는 듯 보였다. 오히려 더 무언가에 빠져있는 듯 얼굴이 분에 차서 잔뜩 붉어져 있었다. " 야! "" 어? "" 넌 김종현이 이진기 데려가는데 뭐. 화 안나? "" 으응? "" 아오. 진짜. 이 머저리들아! " 잔뜩 헤쳐져 산발이 된 머리로 세차게 발을 계단턱에 부딪히는 모습에 놀라 무어라 제대로 답해줄 새도 없었다. 혹여나 아이들이 볼까 무서워 서둘러 귀분이의 머리를 정리해준 뒤, 최대한 측은한 표정으로 귀분이와 눈을 맞췄다. 분이 풀리지 않는 건 여전한지 귀분이의 숨이 잔뜩 거칠어져있었다. 아까 시험 이야기할 때 더 달래줄 걸 그랬나. 왠지 제 시험에 대한 분을 이상한 곳에 푸는 것 같기는 했지만 별 말은 하지 않기로 결심하고 비죽 입꼬리를 당겨 웃었다. 귀분아, 왜 그래…, 하는 말을 끝내기도 전에. " 응, 미안. " 중력에 이끌려가듯, 가방끈이 끌어당겨지며 몸의 중심이 한쪽으로 기울어졌다. 귓가에 바싹 붙여져 귓전을 간질이는 목소리의 주인공이 누군지 미처 알아채기도 전, 넘어지는 듯 하던 몸이 허공에서 중간에 멈춰서 포근한 무언가에 부딪혔다. 단단하고 다부진 어깨가 몸 전체에서 느껴졌다. 동시에 내 어깨 위로 조심스레 얹혀지는 뭉툭한 손가락도. 코 끝을 간지럽히는 향기로운 체취도. 나와 마주 선 채로 귀분이는 황당하다는 듯 입을 벌린 채 씩씩거리고 있었고, 내 뒤에 서서 나를 지탱해주고 선 이진기는 어깨를 붙잡았던 손을 들어 나를 도로 올려다놓았다. 미안, 힘 조절을 잘못했어. 내 옆으로 조금 비켜가 선 이진기의 머리는 나보다 조금 더 위의, -머리 한 개 정도의 차이였다- 곳에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무표정의 눈에서 느껴지는 다정함이 가슴 속으로 자그맣게 스며들었다.그래서 말인데. 나 좀 데려가도 될까? 더 이상 내 어깨를 움켜쥔 손도, 코허리를 맴도는 달큰한 향기도, 나를 지탱해주는 단단한 어깨도 없었지만. 나는 이진기가 내 옆에 서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마음이 잔뜩 들뜨는 듯 했다.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푹신푹신한 마쉬멜로우를 타고 방방 뛰어다니며 자욱한 구름 속을 헤쳐나가는 느낌? 당황스러움과 반가움이 적당히 섞인 내 표정을 알아챈건지 이진기가 조금 미안하단 눈을 하고선 도로 나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나 혼자만의 착각인지 몰라도, 마주한 눈에서 찌릿 작은 전기가 통하는 것 같았다. * 이진기와 걸어오는 길. 기어코 내 가방을 들겠다며 떼 아닌 떼를 쓰던 그는 이내 가볍게 한 손에 가방을 얹고선 나와 함께 골목길을 걸어나가고 있었다. 겨울의 언젠가. 이진기와 함께 걸었던 길이었다. 몇 개월이 지난 지금도 또렷히 남아있는 기억에 남 몰래 웃으며 슬쩍 이진기를 살폈다. 아무렇지 않은 듯 한쪽에는 제 가방을, 다른 한쪽 어깨에는 내 가방을 걸친 이진기는 나와 걸음을 맞추어 평소보다 조금 느린 속도로 걷고 있었다. 그 것을 깨닫자 마자 내가 이진기에게 민폐를 끼치고 있다는 생각에 얼굴이 홧홧 붉어져왔다. 이진기는 나에게 이만큼이나 해준 것이 많은데. 왠지 모르게 나는 계속 이진기한테 좋은 일을 해주지 못하는 것 같아서 미안해졌다. 고개를 돌려 조금 위에 선 이진기의 뒷통수를 바라다보았다. 어떻게 말해야 할까. 시간이 흐른 뒤, 그래도. 나름…. 교제를 시작하게 되었는데 여전히 이진기와 이야기를 하는 건 내게 낯선 일이었다. 이진기가 평소에 그렇게 말이 많은 편도 아니고, 또 내가 그렇게 숫기가 많은 편도 아니고. 막상 시작해도 시작한 게 아닌 것 같은 기분. 그래도 전의 상황처럼 이진기가 내게 먼저 다가와주면 그 건 또 그것대로 그렇게 좋은 일이 없었다. 달싹이던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고개를 바싹 들고선 이진기에게 몇 걸음 다가갔다. 멀어져있던 간격이 조금씩, 조금씩 좁혀지며 그의 체취가 코 끝을 맴돌았다. " 저…. "" ...아, 응. "" 내 가방 무겁지…, 미안. " 아. 맙소사. 멍충이. 원래 꺼내려던 말은 이런 게 아니었는데. 생각보다, 아니, 예상보다 훨씬 빗나간 말에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 한동안 멀뚱멀뚱 시간이 멈춘 듯 이진기의 눈만 응시하고 있었다. 평소라면 꿈도 못 꿀 상황이었다. 내가 이진기와 눈을 이토록이나 오래 마주하고 있다니. 당황스러움에 목부터 타오르기 시작한 불길이 얼굴에 번져오는 걸 미처 깨닫지 못한 채 입술만 오물거리는데 옆에서 청량하게 웃는 소리가 봇물터지 듯 흘러나왔다. " 아니, 전혀. "" 내가 들어도 되는데. 미안해서. "" 뭐가 그렇게 미안해. "" 아니. 그게…. 그렇잖아. "" 음. 괜찮아. 너 오늘 자습시간에 어깨 아프다고 그랬잖아. "" …어? " 어떻게 알았는가 싶어 두 눈을 동그랗게 뜨는데 이진기도 아뿔싸, 싶은 표정으로 나를 내려다보더니 급히 고개를 돌렸다. 길게 자란 머리칼 사이로 어렴풋이 비춰지는 귓볼이 붉게 달아올라있었다. " 아, 그러니까…. 내가 일부러 들은 건 아니었고... 어쩌다보니까.. "" ...어어. "" 그냥, 너.. 뭐하나 궁금해서... 그러다보니깐 우연히 들었어.. "" …. "" 학교인데 너한테 가서 대놓고 이야기할 수도 없고. 네 얼굴도 못 보잖아. "" …. "" ...너... 보고 싶은데…. " 달아오른 이진기의 귓볼을 따라 열이 옮았는지 나까지 저절로 얼굴에 불이 붙었다. 어어어... 어떻게 답해야할지 몰라 안절부절 그 자리에서 맴도는데 푹 숙여진 고개에서 조그마한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가자, 늦겠다…. 어디선가 바람이 불어와 우리 사이를 스쳐 지나갔다. 바람결을 따라 흘러드는 달콤한 향음내가 무척이나 달았다. 가방을 굳게 동여맨 이진기의 넓은 등판이 눈에 들었다. 그리고 그 위로 보여지는. 붉게 달아오른 귓볼이 찬란한 여름의 햇볕만큼이나 이진기를 닮아있었다.
02. 키워드 : 교복연애
(오랜 시간 끝에 찾아온 꽃같은 연애기, 시험 / 전 시리즈 교복연애와 이어짐)
시험이 끝나자마자 부리나케 이진기를 끌고 나간 김종현 무리 덕에 오늘은 그의 얼굴을 볼 수 없으리라 생각했다. 나를 뒤로한 채로 얼결에 끌려가는 얼굴이 황당함으로 물들어있었으나 그런 그의 목덜미를 잡아챈 김종현은 날쌘 움직임으로 교실을 빠져나갔다. 옆에서 칭얼칭얼 이번 시험에 대한 평가를 늘어놓는 귀분이의 등을 쓰담쓰담 두드려주며 가방을 메고 교실을 나섰다. 따사롭게 내려앉는 햇살이 어깨 아래서 찬연한 빛을 냈다. 시험이 끝나서 그런가. 평소라면 신경질을 돋우는 데 도움만 실컷 얹어주었을 날씨가 오늘따라 화사하게 기분을 돋구어주는 것 같아 입꼬리가 살풋 호선을 그렸다.
든 것이라고는 시험지 몇 장과 자습서와 필통이 끝. 걸을 때마다 터덜터덜 소리를 내는 가방을 의식했는지 옆에 서서 줄곧 바닥만 뚫어져라 응시하던 귀분이가 획 고개를 돌려 내 가방끈을 낚아챘다. 그리고는 야, 오이니. 하며 왠지 한 대 칠 것 같은 험악한 얼굴로 나를 응시하는거다. 뒷통수가 뚫릴 듯한 강렬한 눈빛에 놀라 안면근육이 절로 움찔대는 것 같았다. 바싹 내 옆으로 붙어 조심조심 화단 옆으로 내몰아낸 그녀는 어딘가 석연치 않다는 듯 쩝 입맛을 다시며 내 옆, 저편의 화단에 걸터앉아 인상을 구겼다. 시험성적이 좋지 못했나. 오늘따라 왠지 더 우울해보이는 얼굴에 괜히 내 기분까지 축 쳐지는 듯 했다.
그래도 명색의 친구라는 이름인데. 어깨 한번 두드려주고, 위로의 말을 조금이나마 건네주어야 할 듯 싶어 귀분이의 앞에 가 섰다. 숨을 들이마시고, 툭 말을 뱉으려는데 갑자기 벌떡 일어난 귀분이가 제 머리채를 잡고 발을 동동 구르며 악을 쓰기 시작했다. 귀분아. 너 왜 그래! 스스로 제 머리채를 잡고 학교 사람들이 다 보는 화단 앞에서 악을 쓰는데도 그녀는 별 다른 생각이 없는 듯 보였다. 오히려 더 무언가에 빠져있는 듯 얼굴이 분에 차서 잔뜩 붉어져 있었다.
" 야! "
" 어? "
" 넌 김종현이 이진기 데려가는데 뭐. 화 안나? "
" 으응? "
" 아오. 진짜. 이 머저리들아! "
잔뜩 헤쳐져 산발이 된 머리로 세차게 발을 계단턱에 부딪히는 모습에 놀라 무어라 제대로 답해줄 새도 없었다. 혹여나 아이들이 볼까 무서워 서둘러 귀분이의 머리를 정리해준 뒤, 최대한 측은한 표정으로 귀분이와 눈을 맞췄다. 분이 풀리지 않는 건 여전한지 귀분이의 숨이 잔뜩 거칠어져있었다. 아까 시험 이야기할 때 더 달래줄 걸 그랬나. 왠지 제 시험에 대한 분을 이상한 곳에 푸는 것 같기는 했지만 별 말은 하지 않기로 결심하고 비죽 입꼬리를 당겨 웃었다. 귀분아, 왜 그래…, 하는 말을 끝내기도 전에.
" 응, 미안. "
중력에 이끌려가듯, 가방끈이 끌어당겨지며 몸의 중심이 한쪽으로 기울어졌다. 귓가에 바싹 붙여져 귓전을 간질이는 목소리의 주인공이 누군지 미처 알아채기도 전, 넘어지는 듯 하던 몸이 허공에서 중간에 멈춰서 포근한 무언가에 부딪혔다. 단단하고 다부진 어깨가 몸 전체에서 느껴졌다. 동시에 내 어깨 위로 조심스레 얹혀지는 뭉툭한 손가락도. 코 끝을 간지럽히는 향기로운 체취도. 나와 마주 선 채로 귀분이는 황당하다는 듯 입을 벌린 채 씩씩거리고 있었고, 내 뒤에 서서 나를 지탱해주고 선 이진기는 어깨를 붙잡았던 손을 들어 나를 도로 올려다놓았다. 미안, 힘 조절을 잘못했어. 내 옆으로 조금 비켜가 선 이진기의 머리는 나보다 조금 더 위의, -머리 한 개 정도의 차이였다- 곳에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무표정의 눈에서 느껴지는 다정함이 가슴 속으로 자그맣게 스며들었다.
그래서 말인데. 나 좀 데려가도 될까? 더 이상 내 어깨를 움켜쥔 손도, 코허리를 맴도는 달큰한 향기도, 나를 지탱해주는 단단한 어깨도 없었지만. 나는 이진기가 내 옆에 서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마음이 잔뜩 들뜨는 듯 했다.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푹신푹신한 마쉬멜로우를 타고 방방 뛰어다니며 자욱한 구름 속을 헤쳐나가는 느낌? 당황스러움과 반가움이 적당히 섞인 내 표정을 알아챈건지 이진기가 조금 미안하단 눈을 하고선 도로 나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나 혼자만의 착각인지 몰라도, 마주한 눈에서 찌릿 작은 전기가 통하는 것 같았다.
*
이진기와 걸어오는 길. 기어코 내 가방을 들겠다며 떼 아닌 떼를 쓰던 그는 이내 가볍게 한 손에 가방을 얹고선 나와 함께 골목길을 걸어나가고 있었다. 겨울의 언젠가. 이진기와 함께 걸었던 길이었다. 몇 개월이 지난 지금도 또렷히 남아있는 기억에 남 몰래 웃으며 슬쩍 이진기를 살폈다. 아무렇지 않은 듯 한쪽에는 제 가방을, 다른 한쪽 어깨에는 내 가방을 걸친 이진기는 나와 걸음을 맞추어 평소보다 조금 느린 속도로 걷고 있었다. 그 것을 깨닫자 마자 내가 이진기에게 민폐를 끼치고 있다는 생각에 얼굴이 홧홧 붉어져왔다. 이진기는 나에게 이만큼이나 해준 것이 많은데. 왠지 모르게 나는 계속 이진기한테 좋은 일을 해주지 못하는 것 같아서 미안해졌다. 고개를 돌려 조금 위에 선 이진기의 뒷통수를 바라다보았다. 어떻게 말해야 할까.
시간이 흐른 뒤, 그래도. 나름…. 교제를 시작하게 되었는데 여전히 이진기와 이야기를 하는 건 내게 낯선 일이었다. 이진기가 평소에 그렇게 말이 많은 편도 아니고, 또 내가 그렇게 숫기가 많은 편도 아니고. 막상 시작해도 시작한 게 아닌 것 같은 기분. 그래도 전의 상황처럼 이진기가 내게 먼저 다가와주면 그 건 또 그것대로 그렇게 좋은 일이 없었다. 달싹이던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고개를 바싹 들고선 이진기에게 몇 걸음 다가갔다. 멀어져있던 간격이 조금씩, 조금씩 좁혀지며 그의 체취가 코 끝을 맴돌았다.
" 저…. "
" ...아, 응. "
" 내 가방 무겁지…, 미안. "
아. 맙소사. 멍충이. 원래 꺼내려던 말은 이런 게 아니었는데. 생각보다, 아니, 예상보다 훨씬 빗나간 말에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 한동안 멀뚱멀뚱 시간이 멈춘 듯 이진기의 눈만 응시하고 있었다. 평소라면 꿈도 못 꿀 상황이었다. 내가 이진기와 눈을 이토록이나 오래 마주하고 있다니. 당황스러움에 목부터 타오르기 시작한 불길이 얼굴에 번져오는 걸 미처 깨닫지 못한 채 입술만 오물거리는데 옆에서 청량하게 웃는 소리가 봇물터지 듯 흘러나왔다.
" 아니, 전혀. "
" 내가 들어도 되는데. 미안해서. "
" 뭐가 그렇게 미안해. "
" 아니. 그게…. 그렇잖아. "
" 음. 괜찮아. 너 오늘 자습시간에 어깨 아프다고 그랬잖아. "
" …어? "
어떻게 알았는가 싶어 두 눈을 동그랗게 뜨는데 이진기도 아뿔싸, 싶은 표정으로 나를 내려다보더니 급히 고개를 돌렸다. 길게 자란 머리칼 사이로 어렴풋이 비춰지는 귓볼이 붉게 달아올라있었다.
" 아, 그러니까…. 내가 일부러 들은 건 아니었고... 어쩌다보니까.. "
" ...어어. "
" 그냥, 너.. 뭐하나 궁금해서... 그러다보니깐 우연히 들었어.. "
" …. "
" 학교인데 너한테 가서 대놓고 이야기할 수도 없고. 네 얼굴도 못 보잖아. "
" ...너... 보고 싶은데…. "
달아오른 이진기의 귓볼을 따라 열이 옮았는지 나까지 저절로 얼굴에 불이 붙었다. 어어어... 어떻게 답해야할지 몰라 안절부절 그 자리에서 맴도는데 푹 숙여진 고개에서 조그마한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가자, 늦겠다…. 어디선가 바람이 불어와 우리 사이를 스쳐 지나갔다. 바람결을 따라 흘러드는 달콤한 향음내가 무척이나 달았다. 가방을 굳게 동여맨 이진기의 넓은 등판이 눈에 들었다. 그리고 그 위로 보여지는. 붉게 달아오른 귓볼이 찬란한 여름의 햇볕만큼이나 이진기를 닮아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