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돼 찬열아. 포기하지마."
불행인지 다행인지 백현이는 함정을 계속 피해갔다.
50까지 가는 게 이리도 힘겨웠나.
지금 백현이는 41번 칸에 서있다.
"찬열아 거의 다 왔으니까 힘내자."
"응. 던진다?"
주사위와 바닥이 내는 둔탁한 마찰음이 나자,
주사위의 점이 6을 나타냈다.
"47...하나, 둘, 셋.."
한칸씩 세며 성큼성큼 칸을 넘는 백현이를 보며 같이 세어주었다.
"여섯.. 하.."
물음표다.
탁-.
"으아악!"
순신간에 백현이의 오른팔을 스쳐 지나간 화살이 벽에 박혔다.
다행히 내 겉옷을 입지 않고 걸치고 있어서 살짝 스친 것 뿐이지만,
살이 까져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백현이는 침착하게 양말 한짝을 벗어 팔에 묶었다.
"괜찮아?"
"으으.. 난 괜찮아. 계속 해."
아파하는 너를 보고도 바라만 봐야 한다는 게 너무 속상하다.
"뭐가 괜찮아. 살이 푹 패였잖아. 피도 점점 더 나고. 우리 그만 하자. 너무 위험해."
"진짜 괜찮아. 이렇게라도 다시 나갈 수 있다면 좋으니까 포기하지마.응?"
"이제 시작인걸? 뭘 그리 좋아하시나."
"얼른.. 얼른 끝내고 나가자."
아파하며 나를 재촉하는 백현이에게 고개를 끄덕여주고 다시 주사위를 던졌다.
합쳐서 점이 세개.
50번 칸에 갈 수 있다.
"49.. 50.. 찬열아! 끝났어!"
백현이의 두 발이 50번 칸에 닿자 모든 것이 사라졌다.
물론 내 발 밑에 있던 빨간 타일도.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았다.
-앞으로 미션이 세개 남았다.
아, 다친 건 유감스럽게 생각해. 게임을 실감나게 하려면 그정도는 감수해야지. 안그래?
".. 닥.치고 다음 미션이나 내."
비아냥거리는 그의 목소리가 듣기 싫어 재촉했다.
-이번에는 카드 뒤집기 게임이야.
섞여있는 카드중에 같은 그림 두장씩 맞추면 되는거지.
뒤를 돌아보니 바닥에 손바닥만한 카드들이 16장이 정갈하게 놓여 있었다.
-힌트없이 바로 시작하지.
틀릴경우 앞의 미션처럼 함정이 있을거야.
그럼 행운을 빌지.
백현이와 나란히 앉아 카드를 응시했다.
"먼저 뒤집어."
백현이는 다친 팔의 고통 때문인지 인상을 쓰며 내게 말했다.
어떠한 힌트없이 한번에 짝을 맞추는 것은 무리인데.
앞쪽에 놓인 카드 한장을 조심스레 뒤집었다.
"어? 이 사진은.."
고등학교 입학식 사진이었다.
이때 백현이와 처음 만났는데.
"이 사진이 어떻게 여기있지?"
"그러게.."
고개를 갸우뚱하며 내게 물어왔다.
의문을 품은 채 바로 옆의 카드를 뒤집었다.
"이럴수가."
좀전에 뒤집었던 카드와 같은 사진이 있었다.
"찬열아, 너 이 게임 잘하잖아."
"컴퓨터로 하는 건 처음에 힌트 주잖아. 이건 무작정 뒤집어야 하는데."
"그래도 맞췄잖아. 봐. 그것도 한번에. 다음꺼도 뒤집어봐."
중간에 있는 카드를 뒤집었다.
이번에는 수학여행때 같이 찍은 사진이었다.
"왜 다 우리 사진이지?"
"그러게. 나 무서워 찬열아."
나의 어깨에 기대는 백현이의 어깨를 감쌌다.
"이상하긴 한데 우선은 여기를 빨리 나가야 되니까 끝나고 생각하자 백현아."
오른쪽 위 모서리에 있는 카드를 뒤집었다.
우연의 일치인건가.
이번에도 역시 같은 카드였다.
바로 다음 카드를 뒤집었다.
"너 누구야! 우리한테 뭘 바라는거야!"
허공에 대고 소리쳤다.
카드에 있는 사진은 같은 대학에 입학하고 같이 여행갔을 때 찍은 사진이었다.
"어떻게.. 이 사진이.."
점점 손이 떨려왔다.
주사위를 던질 때보다 더 소름이 돋았다.
"찬열아.."
백현이의 어깨를 꽉 쥐고 마지막 카드를 뒤집었다.
사진을 본 순간 머리가 핑 돌면서 현기증이 났다.
이 방에 들어오기 직전 벨벳으로 덮인 문을 여는 순간 찍힌 사진이었다.
하나 남은 카드 역시 같은 사진이었다.
모두 한번에 맞췄기에 함정을 피할 수 있었지만, 알 수 없는 공포감이 온 몸을 감싸안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