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can't stop loving you.
너를 사랑하는 것을 멈출 수가 없어.
kish - 비오는 날이면
[7화]
눈을 떴을 때는 캄캄한 밤이었다. 그리고 창밖으로는 비가 오는지 창문을 두드리는 빗소리가 들려왔다. 불이 켜져 있지 않아서 어두컴컴한 밤. 한국과는 다르게 집과 집 사이의 거리도 꽤 되었기에 커튼을 치고 있으면 완전히 어둠이었다. 그리고 지금 내 방이 그러했다. 여전히 어질 거리지만 훨씬 나아진 몸 상태에 몸을 일으켰다. 철퍽 하는 소리와 함께 이마에서 떨어지는 물수건을 손으로 쥐며 오른손에 닿는 무언가로 시선을 옮겼다. 그리고 백현아. 네가 있었다. 까만 머리카락과 고운 손. 불편하게 엎드려 자는 네 모습에 너를 빤히 보다가 너를 깨웠다.
"백.."
잠긴 목소리에 잠깐 헛기침을 하고. 그래도 안돼서 옆 탁자에 놓인 물을 한 모금 마시고 다시 너를 부른다.
"백현아. 여기서 자면 어떡해."
"……."
"백현아?"
살살 흔드는 내 손길에 너는 눈을 뜨고 나를 보았다. 반쯤 감긴 눈으로 나를 보는 너를 본다. 입술을 깨물고 나를 노려보는 네 눈이 일렁인다. 어째서 노려보는 것일까 하고 너를 가만히 보다가 어색하게 웃는다. 웃는 법을 잊어버린 사람처럼. 웃는 게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에 당황하며 손을 들어 입가를 매만졌다. 볼에 경련이 일어났다. 그리고 여전히 일렁이는, 그리고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네가 입을 열었다. 다 터버린 입술이 안타깝다. 손을 들어 까슬한 피부와 입술을 만지자 투박한 내 손을 고운 손으로 세게 움켜쥔다.
"아파. 백현아."
센 악력에 인상을 찡그리며 말하자 네가 중얼거린다.
"……. 멍, 청하게"
"어…?"
"누가, 멍청하게. 욕조에서 잠이 들어. 너, 바보야? 생각이 있는 거야, 없는거야? 내가 안 왔더라면!"
"……."
"…얼어 죽고 싶어서 작정했어? 만약에! 기절한 채로 물에 빠졌으면 그대로 죽는 거였어. 알아? 정말 미쳤어?"
"백현아. 나 괜찮아."
"괜찮기는! 몸이 얼음장처럼 차가워져서 욕조에 죽은 채로 늘어져 있는데, 그걸 보는 내가…. 내가……."
"미안해."
괜찮다는 내 말에 더 큰 목소리로 외치다 결국 눈물을 떨구는 너를 본다. 내 손을 잡고 있는 너의 손이 떨려온다. 차가운 손의 떨림이 왜 기분이 좋은 걸까.
"미안해. 내가, 미안해. 백현아."
"왜, 항상…. 항상 네가 사과를 해…. 사죄를 해야 하는 건 난데…."
내 말에 너는 굵은 눈물을 흘리며 내 손을 너의 볼에 댄다. 열로 인해 뜨거운 손에 차가운 얼굴이 닿는다. 내 손이 뜨거운지 너는 흠칫한다. 그리곤 내 손을 양손으로 쥔다. 눈물을 흘리다 못해 몸을 덜덜 떨며 말하는 너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너를 빤히 쳐다보는 내가 이상한 걸까. 아니면 이제 와서 내 손을 부여잡고 우는 네가 이상한 걸까. 백현아.
"내가…. 잘못했어…. 다 내 잘못이야…. 미안해…. 경수야…. 미안해, 미안해…. 나는, 나는, 네가 죽는 줄 알고…. 나는…. 정말 무서워서…. 미안해, 내가… 내가 잘못했어…. 죽지마…."
고개를 들지 못하고 계속해서 우는 너를 보았다. 어째서 우는 것인지 이해가 되질 않았으니까. 네가 잘못한 것은 없는데. 내가 잘못한 거였다. 항상 몸이 아프다는 걸 알면서도 욕조에 들어가서 나오질 않았으니. 그렇게 막연히 우는 너를 보다 네 손에 잡힌 내 손을 빼낸다. 놀란 얼굴이 나를 본다. 눈물로 젖어버린 얼굴을 빤히 더욱 다시 자리에 누웠다. 이제 가. 중얼거리듯 하는 내 말에 네가 작게 뭐라고? 하는 소리가 들린다. 이제 가. 백현아. 내 말에도 자리를 옮기지 않는지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내가 숨 쉬는 소리만이 방안에 들린다.
"이제 가. 백현아."
"……."
"이제 열도 다 내렸으니까 사라져도 돼."
이불을 덮어쓰고 뒤척이다 너를 뒤로하며 몸을 돌린다. 사라지는 모습 따위 보고 싶지 않으니까. 그리고 너의 갈라진 목소리가 들린다.
"너…."
"사라져. 환상따위…."
더이상 보고싶지 않으니까.
백현아.
너와 내가 사고 난 날.
네가 나를 잊어버린 그 날.
그 이후로부터 쭉.
그 날만 되면.
나는 항상
너의 환상을 본다.
백현아. 아픈지 벌써 사흘이 흘렀다. 기계적으로 일어나 씻고 테라스에 앉아 지금쯤 너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 생각하며 멍하니 거리를 내다보았다. 조용한 마을은 가끔 돌아다니는 사람들과 야생동물들을 제외하면 빗소리만이 제각각의 운율을 이룰 뿐이다. 그 리듬과 운율을 느끼며 눈을 감았다. 그리고 너를 생각하고, 그 날을 생각한다. 그 날, 나는 환상일지라도 너를 본 것에 오묘한 기분을 느꼈다. 차가우면서도 따뜻한, 거칠면서도 부드러운 것이 가슴 한구석을 채우는 기분이었다.
참 웃기게도 나는 환상통을 겪고 있다. 환상통을 겪고 있는 다른 사람들과 다른 점이라면, 그들은 몸이 절단난 것이고 나는 마음이 절단되었다는 것이겠지. 너로 인해 뜯긴 가슴 한쪽이 환상인 너를 본 것으로 조금 아문 것이다. 고작 환상으로 말이다. 다른 사람이 들으면 미친 사람 취급하고, 어이없어 할 말이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사흘 전 그 날 후 나는 현관문을 나서지 않았다. 조금만 더 이렇게 있다가 나가고 싶다. 빛을 보고 싶지 않다. 내 빛인 너는 없는데, 태양을 보아 무얼 하겠나. 하는 마음이었다. 첫날은. 하지만 지금은 그냥 조금만 더 혼자 있고 싶을 뿐이다. 밖으로 나가면 해리엇을 만날 테고 그럼 난 또 너를 떠올리며 아파할 것이다. 미련하게도. 참 멍청한 나는 너의 환상을 보고 상처가 아물어가는 걸 느끼면서 해리엇을 보면 그 상처가 다시 곪는 걸 느낀다.
왜냐고 묻는다면 무어라 해야 할까.
그래. 환상일지라도 너였고, 내 빛이었고, 내 사랑이었다. 하지만 해리엇은,
단지…. 그래. 단지, 너를 닮은 그림자일 뿐이다. 태양인 너의 이면.
주먹에 힘을 주자 쨍그랑하는 소리와 함께 쥐고 있던 잔이 깨졌다. 손바닥과 손가락이 베인 고통에 손을 보자 빨간 피가 테이블로 떨어져 원을 그렸다. 검은빛을 띠는 붉은색의 피를 멍하니 보았다. 그리고 순간적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렇게 다치면 네가 보일까 싶어서. 내가 위험해지면 네가 보일까 싶어서 말이다. 그리곤 자조적으로 웃어버렸다. 이게 무얼 하는 짓인가 하며. 참 부질없는 짓인데 말이다. 다행히 깨짐과 동시에 손에 힘을 풀어서 그런지 깊게 베이지도, 자잘한 유리조각이 박히지도 않았다. 그래도 병원에 가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도…?"
"해…. 리엇."
병원을 가려고 밖으로 나와 어느 정도 걸었을까 나를 부르는 잠긴 목소리에 우산을 들어 올리며 앞을 보자 해리엇이 있었다. 며칠 사이 까칠해진 피부를 보자 내가 그에게 했던 말이 생각이나 눈을 피해버렸다. 바닥에 원을 그리며 떨어지는 빗방울을 쳐다봤다. 그와 나 사이에는 아무런 대화가 이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곧 그는 어색하게 웃는 얼굴로 내게 말했다.
"해리엇이 검은색을 좋아하는 줄 알았지만, 너무 까맣지 않아? 머리부터 발끝까지 까맣잖아!"
나와 농담을 한다는 듯 경련이 이는 입꼬리를 억지로 들어오려 웃는 그를 보자 미안함이 몰려왔다. 그런 그에게 미안해서 아무런 말도 못하자 해리엇이 내게 다가왔다. 그리고 나는 뒤로 물러섰다. 한 걸음 다가오자마자 나도 모르게 한 걸음 뒤로 물러서 버려서 오히려 내가 놀랐다. 그리고 고개를 들자 상처받은 표정으로 나를 보는 해리엇이 보였다. 미안. 작게 내뱉어진 말에 담긴 내 진심이 그에게 닿길 바란다. 조심스럽게 그와 눈을 마주치자 입술을 깨물며 나를 바라보던 해리엇이 아픈 표정으로 웃었다. 차라리 울면 좋으련만 그는 항상 내게 웃는 표정을 보인다.
"괜찮아."
아까보다 더욱 잠긴 목소리로 대답한 해리엇이 이내 곧 내 손을 보았는지 경악한 표정으로 내 손을 들어 올린다.
"너…!"
"아…. 실수로, 잔을 깨서…."
"도대체…. 앓은 지 며칠이 지났다고…."
변명하듯 내뱉는 내 말에 그는 자신이 다친 마냥 슬픈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또다시 미안함이 밀려왔다. 그리고 해리엇이 내 손을 잡고 살펴보기를 몇 초가 지났을까. 그는 아. 하는 작은 소리와 함께 내 손을 놓아주었다. 그리고 옆으로 비켜서며 여전히 어색한 미소를 입가에 걸치며 턱짓으로 가보라 했다.
"병원 가서 치료받아야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눈짓으로 인사를 하고 다시 갈 길을 간다.
"친구라도…. 좋아. 결국엔 너를 다시 찾아가 버릴 테니까…."
뒤에서 중얼거리는 해리엇의 말에 가슴 한구석이 따끔거렸다. 하필 왜 나 같은 사람을 좋아해 버린 것인지.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그가 말했듯이, 내 마음도 결국엔 백현이 너를 찾아가 버릴 텐데.
그리고 병원에서 조심하지 그랬냐며 의사에게 한 소리도 들었다. 간호사 역시 치료를 해주며 내게 그렇게 안 생겨서는 은근히 어벙하다고, 조심하라 말하였다. 또 생긴 거랑 다르게 은근 자주 아프다고 잔소리도 했다. 우리나라에 비하면 넓지만 그래도 미국에서는 조그마한 동네에 속하는 곳이라 서로서로 얼굴을 다 아는 사이기에 가능한 것이겠지. 의사와 환자 간의 편한 대화와 잔소리는.
그리고 루나를 만났다.
"도!"
"루나. 오랜만…. 은 아니지만, 음. 어쨌든. 그래. 잘 지냈어?"
"오, 나야 항상 잘 지내지. 못 지내는 날이 어디 있겠니? 안 그래?"
친구의 병문안을 온 것일까 다른 친구들과 함께 있던 루나는 친구들과 함께 내게 다가왔다. 루나의 친구들은 이미 파티 날 다 보았기에 묵례로 가볍게 인사했다. 그들은 내게 손을 흔들며 인사를 했고. 그리고 주저리 이어진 내 말에 깔깔 웃음을 터뜨린 루나는 내 물음에 대답하며 친구들에게 되물었다. 그녀의 친구들 역시 깔깔대며 그건 그렇다며 동감한다고 대답을 했다. 그리고 짧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헤어지려던 찰나 그녀가 나를 불러 세웠다.
"아, 맞다!! 도!"
"…?"
그리고 나는 루나의 말을 다 끝내 듣지도 못하고 병원을 나와야 했다.
사흘 전에. 나 해리엇의 도플갱어를 만났다? 이박삼일 동안 여기에 머문다고 했는데 말이 이박삼일이지 오늘 1시 비행기로 다시 뜬다더라고. 근데 정말이지 키만 해리엇보다 작고, 머리카락 색만 까맣지 완전 해리엇이랑 똑같이 생긴 거 있지? 근데 그 사람이 너와 아는 사이라고 너를 찾길래 집 주소를…. 도? 왜 그래? 안색이 안 좋아. 많이 아파? 도? 어디가!! 도!!!
백현아.
부디 너이길 바라며
아니.
백현아.
다시 너에게 간다.
[암호닉]
잇치
망고레오
창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