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기억속엔-박찬열x오세훈
당장 일어나지? 지금 내눈앞에 우리학과 퀸카있는데 -변백현
구라치지마 걘 너앞에 안나타나.하고 빠르게 타자를 쳐 전송한뒤 또 거짓말이리라.살짝
이젠좀 창의적인 거짓말을 써먹었으면 하는 바람 반. 한편으로는 진짜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
반. 합쳐서 1. 일어날때가 된듯싶었다.
"진짜야..진짜라고.."
"야.말이돼? 불쑥불쑥 나타나게."
"완전이뻐..."
"진짜냐?"
"집앞 버스정류장.말 걸어볼거야 끊어."
꼴에 폼 좀 잡는다고 목소리 낮추고 큼큼.하며 가다듬는 꼴이 거짓말은 아닌가 싶어 발걸음을 빨리
했다. 키도 작달막한게 목소리 낮춰봤자 얼마나 폼나겠어. 나정도는 되야 넘어오지 불쌍한 변백현.
"백현아!"
진짜구만. 퀸카가. 머리카락을 사뿐히 흔들며 뒤를 돌아보는게 퀸카답다. 생각했다.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띄어 놓은거 보면 둘다 호감이라는 이야기인데, 어느정도 말주변을 꾸며나가고 있었
나보다..하는찰나, 백현의 표정이 울상이다.
"안해먹어."
뭐야 이 분노의 찬 목소리는. 주위를 둘러보아 분위기를 살펴보았지만 백현의 표정이 잠시동안만
울상이었을뿐 백현 그리고 이쁜여자님의 표정은 싱글벙글. 아까전과 다를바가 없었다.아차,방해
물이있었구만.
"안녕하세요. 백현이 친구에요."
"안녕하세요. 진희 남자친구입니다."
왓더뻨.변백현보다 훤칠한 키에 살짝살짝 자리잡은 잔근육들, 믿음직하게 이쁜여자님의 접힌 어깨
에 가지런히 올린 손가락들. 변백현이 루저되기 한순간이다.넌 끝났어 변백.나와.디스이스마이턴
오케이? 허여멀건해가지곤, 머리에 피도 안마른것같은게 어디서, 너랑은 인사하기 싫어 임마.
어디서 많이본 흔한 얼굴에다가 아주..
"야오세훈."
어?형.오랜만이네.태연하게 악수를 건네는 세훈. 아직도 손이 보들보들한게, 몸만 컸나보다.
많이컸네,세훈아.아.형도 멋있어졌네.
대학생이라고 머리에 힘좀주고 멋지게 짙은 갈색으로 염색까지 한 아이. 진희의 어깨에 올리고있던
길쭉길쭉한 손가락이 다시 눈에 들어오고, 세훈은 부담스러운지 손을 살짝 숨긴다.
"세훈아.누구야?"
"아..저,그.. 아는형."
"아..저는 박찬열입니다. 세훈이랑 아는..사이구요.."
"그렇구나.."
고개를 숙이는 그녀에게 대충 답을 해주고 다시 세훈에게 시선을 집중시켰다. 변한게 없었다.
너는 2년 전에도 지금과 똑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고 언제나 부끄러운 듯한 수줍은 미소를 가지고
있었다. 하나 달라진게있다면,내가 너에게 그냥 아는형이 되어버렸다는것, 특별하고 각별한 사이.
라곤 말하기 어렵지만, 그저 아는사이. 라고 정의해 버리면 안되는거였다.
세훈이 눈을 마주치자 다시 저 어디론가로 피해버린다. 나는 그때 깨달았다.
너의 시선에는 내가없고 너의 마음에도 내가없구나. 나는 그저 떠나가지도 못한, 그저 너의 나날을
스쳐지나간채 잊지도 가지지도 못한 어중간한 관계에 놓여있는 사람이구나를.
지금 이순간엔, 너의 기억속에 내가 남아있는 것 만으로도 나는 만족해야겠다.
"찬열아, 가자."
일부러 표정을 굳혔다.일부러 아이를 쳐다보지 않았고, 더 신나게 백현과 이야기했다. 본듯 보지
않은듯, 궁금하지도 않은 아이의 근처의 버스 노선표를 보다 잠깐 그아이를 볼때마다 그 아이는
옆의 여자친구의 말에 귀도 기울이지 않은채 먼산만 바라보고 있을뿐이었다. 안심이 되어 다시,
쫑알거리는 백현의 말에 동조했다.더 시끄럽게, 더 신나게, 더 과장되게, 그렇게 해서라도 관심
을 받고싶었다. 질투받고싶었다. 나는 이렇게 옛사랑을 맞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