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O/찬세]
안녕, 세훈아
오늘도 여전히 뻐꾹대는 알람시계와 아침을 맞이했고 눈을 뜨자마자 보이는 시간에 경멸하며 몸을 일으켰다. 저너머 창문에서 일정하게 떨어지는 빗방울소리를 들으며 오늘은 피곤할것이라고 생각했다. 놀러가는데 비와서 질척거려 쓰겠나, 중얼중얼. 아무도 없는 집안에서 대답을 바라는것도 아니면서 혼잣말을 반복하는 습관은 고쳐지질 않는다. 빗방울하고 대화한다고 치지 뭐, 너 때문에 망하게생겼다고 방울들아. 일단 늦었으니 간단히 씻고 나가야 겠다. 여자후배들이 선배,왜늦었어요? 한턱 쏴요!! 하며 앵앵 거릴 것을 생각하니 지저리가 쳐진다. 여자는 이해하려해도 이해할수가 없는 존재야.그치? 빗방울들?
[찬열오빠ㅠㅠ왜이리늦어요ㅠㅠㅜ일찍만나기로했잖아요ㅜㅜ]
[언제오세요ㅠㅠㅠ]
[오빠ㅠㅠ빨리와요 버스 놓치겠어ㅠㅠ]
[신입생들 눈인사 오는데 잘하는 짓이십니다? 신입생 얼굴도 모르지?]
[야박병신아 신입생들 다왔다 너만 안와서 기다리고있어]
[신입생 니가 좋아할 만한 스타일인데?]
간단히 샤워를 끝내고 낮아진 기온에 적응하지못하며 핸드폰을 켰다. 띵.띵.띵.띵 여자애들은 왜이리 자음을 좋아하는거야. 정신없어. 스마트폰을 괜히 샀나봐 쓸데없이 문자가 빠딱빠딱 오네. 마지막 도경수의 문자가 눈에 띈다. 좋아할 만한 스타일은 나도모르는데 빨리오게하려고 별 생각을 다했나보다.내가 순순히 니말을 들을것같냐 병신아.
한껏 도경수를 비웃으며 우산을 들고 출발했다. 비는 아까보다 더 심해져있었고 바짓가랑이 젖어가고 핸드폰 진동은 시간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어 온갖 짜증이 쌓여가기 시작했다. 다리에 쥐나겠다. 다리에 전자파 쥐 같은 거 나는거아냐? 으핳핳 이런 나의 개드립 이걸 사람들이 몰라주는 건 국가적 손실이라고 으핳핳.
"야!!"
"기차 화통 삶아서 상추 쌈 싸먹었냐 "
"늦어놓고 사과도안해?"
"미안"
"아오진짜박찬열"
다들 형광 색깔의 우산을 쓰고 있어서 눈이 아팠지만 뭐, 겹치는 색깔이 없으니 개성있고 좋네.어디,나랑 겹치는 우산 있나. 신입생이면 넌죽었어 내가 겹치는거 싫어하거든,알아? 오오..좋아좋아..조..뭐야저거.저..저거.. 3년내내 나랑 똑같은 색깔의 우산은 없었는데 뭐지 저자식. 게다가, 여자랑 어깨동무까지 하고있네.
그순간부터 난 그아이를 눈으로 위아래를 훑고있었다. 스타일은 슬림하고 괜찮고 깔끔하네, 합격. 하는 행동 보니까 여자한테 매너도 좋네, 얼굴이 못생겼을거다 두고봐라 너오늘 딱 걸렸어. 감히 나랑 똑같은 취향을 가지다니
"저기."
"예."
어쭈 이놈봐라 얼굴도 안마주쳐.
"얼굴 들어봐"
"왜요"
"선배가 말하면 즉각즉각 들어야지 신입생 주제에"
"아진짜."
"..아..."
얼굴을 들었다. 허여멀건한 얼굴에 깔끔히 내린 갈색 머리, 반쯤 뜬 눈, 높은 코 작은 입. 그대로.그대로. 내기억 속의 그아이와 그대로였다.
순간 머리가 띵해지고 하얘졌다. 나의 눈코입은 움직이길 거부한것 같고 내 발걸음 조차 더이상 떨어지지 않았고 내 뇌도 작동을 멈춘것 같았다.
여전히 좋아하는 민트색에, 야무지게 우산을 잡은 길쭉길쭉한 손, 당황스러운지 여전히 나를 바라보고있는 익숙한 눈동자. 전혀 변하지 않은 맑은 눈동자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설레고 기대되는 마음이 나를 반겼고 기억 저 너머에, 꼭꼭 숨겨놨었던 얼굴이 머리속을 스쳐지나갔지만 나를 바라보는 그 눈이, 순간적으로 떨리는 것 까지도 눈에 들어왔다. 그 흔들림에 왠지 씁쓸해졌다.
"오.박찬열 사교성 좋아졌구나! 벌써 신입생 얼굴을 맞이하고있다니"
"아아."
"여기는 오세훈. 여기는 세훈이 여자친구..이름이..?"
"오세훈."
"처음 뵙겠습니다. 잘부탁드려요"
하는 아이를 보며 순간 멍했다가. 결국엔 나도 웃어버렸다. 여자친구는 관심밖이다. 이름을 말하고 자기소개를 하는중이었는듯 싶지만 나의 눈은 세훈에게로 집중되었다. 여전히 변함없는 허여멀건한 얼굴에, 여전히 높은 듯 낮은 듯한 톤에, 그리고 여전히 변함없는 웃음. 한동안 내 옆에 있다가 아무도 모르게 소리없이 사라진 그아이, 그아이가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내 기억속의 그아이와 똑같은 모습을 한채 내앞에 서있었다. 제법 어깨도 넓어지고 날카로워진 이목구비,그리고 옆에 끼고 있는 여자친구가 조금은 어색하여 웃었다.
"안녕.세훈아"
내가 한동안 부르짖었던 그이름. 내가 그리워했던 그얼굴. 세훈아, 넌, 날 보고싶어 했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