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사람이 있어."
"......"
제 집인냥 과자를 터선 그 입으로 맛있게도 먹으며 깔깔대는 모습에 충동적으로 뱉어낸 말이다.
어이없게도 멍청한 내 행동에 나조차도 놀라 그 이상 어떤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아무 말 없는 그의 뒷모습에 괜시리 가슴이 철렁하다.
무슨짓을 한건지. 문정혁, 네가 미친 게 아니고서야-
어느새 살짝 돌아간 고개가 비스듬히 날 향해 있다.
고요한 집에 메아리치며 티비 소리만이 울려퍼지고, 영원처럼 느껴지는 이 순간을 깨고 싶어 차라리 다른 말로 돌리려는데 그 찰나에 너의 입이 살짝 벌어진다.
".....아..., 나도."
".........."
예의 그 눈에 힘을 주며 누구냐는 둥, 보여달라는 둥 발길이라도 차며 배신자라고 장난이나 치겠지, 이리 생각한 내 기대와 달리 귀에 박히는 단 세글자에
심장이 덜컹 대려앉는다.
이런 대답일 줄 알았다면 애초에 말을 돌리고도 남았을 텐데.
이번에는 내가 멍청하게 말없이 앉아 있는 꼴이 되어버렸다.
말없이 희미하게 웃자 너는 약간은 상기된 표정으로 다시 티비를 응시한다.
무겁고 어색한 침묵만이 주위를 감싸고 너는 그것을 견딜 수 없는 듯 아무렇지 않게 다시 웃으려 하고 먹으려 한다.
그래..., 그렇겠지. 우리 나이도 어느덧.
명절이면 명절마다, 아니, 비단 명절이 아닌 어딜 가든 사석, 공식적인 자리든 가리지 않고 결혼얘기가 거론된다.
더이상은 외면할 수 없는 현실 속에 나는 간단히 생각하기로 하고 대답을 한다.
아직은 결혼을 할 생각이 없다던 너를 떠올리며 나는 왠지 시큰해진다.
왜 몰랐을까. 눈치 조차 챌 수 없었던 나를 책망하고 또 책망했다. 가족만큼이나 서로 가깝다고 자부하라면 할 수 있는 사이인데.
너는 언제나 내 예상을 벗어난다. 20년의 세월 동안, 나는 너의 그 어떤 무엇을 본 것일까.
끊어낼래도 끊어낼 수 없는 너를 어떻게 해야 할까. 철없던, 어렸던 어느 그 날처럼 나는 너를 몰아붙일 생각이 없다.
가지고 싶고, 손대고 싶은 만큼 너를 놓아주고 싶고, 그만큼 나는 인정받고 싶었다.
그렇기에 나는 오늘도 나를 외면한다.
동그란 네 뒷통수를 바라보며 어느 여자와 함께 서 있을 네 모습을 떠올렸다.
나는 아프다. 나는 힘들것이다.
그러나, 너만은 웃어야 한다. 그런 생각을 해왔다.
그렇기에 나는 오늘도 나를 애써 외면하는 것이다.
".....기도할게."
"........."
"....잘 됬으면 좋겠다."
".......너도."
쓰라릴 만큼 차가운 현실 속에서도 너는 내 힘이었기에.
나는 그저 네 웃음이 사라지지 않기를 바라고 바랠 뿐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