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전학생은 언제나 화제의 중심이 된다. 아이들은 또다시 새로운 얼굴의 근거 없는 소문을 만들고, 말도 안 되는 증거를 캐낸다. 동시에 전학생은 새로운 환경에 적응을 하기도 전에 모든 주인 없는 소리들의 중심이 된다. 우리 학교 아이들은 뉴페이스를 참 좋아한다. 5반 A가 사실 이사장 아들이라더라. 8반 B가 그렇게 원조를 하고 다닌다며. 학교를 떠도는 진실 모를 말들은 벌써 가정 사실이 된다. 전학생은 흥미가 없어 보였다. 자존심에 스크래치가 난 소문을 퍼트리고 다니는 안경잡이는 비장한 표정으로 큼큼댔다. 사실 이건 특급 비밀인데. 모든 건 그렇게 시작한다.
전학생이 이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숨이 턱하고 막혀온다. 안경잡이는 쉴 새 없이 떠들었다. 굳이 귀찮게 변명할 생각은 없다. 다 부질없거든. 나는 나조차도 모르는 사이에 입소문을 타고 충격적인 사실이란 카테고리에서 짱을 먹었다. 나의 과거를 만드는 건 내 기억이 아니고, 몇백 명의 입이란 걸 모를 리가 없다.
타깃은 언제나 정해져있었다. 공격은 예고가 없지만 패턴은 매번 똑같다. 전학생은 내내 날 바라보고 있었다. 떠도는 이야기의 근원지는 또다시 내가 된다. 사람을 믿는 건 사실 참 힘이 든다. 소문의 힘이 그 정도다.
학창시절
내 눈치 따위는 보지 않았다. 어차피 그거 노리고 떠드는 게 쟤들 입이라서.
“야. 쟤 보이지? 끝에 단발머리.”
정성스럽게 내 외모를 설명하더니 손가락으로 짚어주기까지 한다. 잠시 거뒀던 전학생의 시선이 다시 이쪽으로 따라왔다. 야, 진짜 이건 고급 정보야. 안경잡이는 생색내기를 참 좋아했다. 아침 조회 시간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교실엔 적막이 부유했고 삭막한 공기가 바람을 타고 우리들 사이를 감쌌다. 나는 모른 척 쾌쾌하게 쌓인 가구들을 잠시 둘러봤다. 떠들 거면 떠들어라. 나는 그들 몰래 가슴께를 부여잡았다.
말하자면 나는 항상 몇백 명의 도마 위에 올려져 놀이를 당하는 존재였다. 내 의지는 하나도 없이 그들의 입놀림대로 나에 대한 인식이 바뀌고, 그래서 내 미래 또한 바뀌었다. 나는 그게 일상인데. 당장이라도 쫓아가 안경잡이의 입을 틀어막고만 싶었다. 도대체 왜? 여태 생각도 안 해본 기분이 든다. 긴장이라고 할까. 귀를 틀어막고 싶은, 그런 끔찍한 기분 말이다. 상대조차 하지 않았던 악의 소리들을 부정해버리고 싶은 그런 감정을.
나는 주위에서 느껴지는 딱딱한 시선들에 눈을 꾹 감았다. 지금 당당할 때야? 습관처럼 내 뒤를 쫓던 질문들이 별안간 머릿속에 꽂힌다. 전학생의 시선엔 흔들림이 없었다.
“야. 쟤 별명이 화장실이야. 급할 때 빌리라고.”
킬킬대는 여러 명의 웃음소리는 처음으로 내게 수치를 안겨준다.
“쟤랑 사귀었던 애도 좆나 양아치 짓 하다가 결국 쟤 버리고 자퇴했거든. 그래서 쟤 저 꼴 난거고. 그 양아치한테 뒤도 개많이 대줬다더라.”
쓰레기만도 못 한 취급에 화가 난다. 준회는 진심이었어.
“그냥 더럽고 질 낮은 애들 한 명쯤 있잖아. 딱 그런 류야. 그냥 무시하고 살아.”
제발. 나는 처음으로 간절했다. 전학생의 눈빛이 반짝였다.
. .
“미친놈아.”
자괴감에 빠졌다. 여태 잘 버텼는데. 동조하지 않았고 그래서 흔들리지도 않았다. 근거 없는 떠도는 소리들, 내가 떳떳하면 되는 거라고. 나는 그게 현실이라고 생각했다. 처음부터 누군가에게 걸레짝만한 취급을 받고 억울할 새도 없이 나를 향한 말들이 사실이 되는 과정을 직접 지켜봤을 땐, 생각보다 더 많이 아팠다.
나는 그래도 괜찮은 척. 약해빠진 게 아니라는 걸 증명이라도 하는 듯이 더 어깨를 폈다. 내가 울어버린다면 결국 그 말도 안 되는 말들을 다 받아들인다는 건데. 준회의 진심도, 내 사정도 결국 그들에게 먹혀 아무 반박도 못 한다는 거다. 날 목표로 하는 조롱 섞인 말들은 매 순간 날 물고, 할퀴고 난도질해서. 버틸 순 있는데 언제까지 당당할지는 모르겠다.
“야. 김동혁, 대답 안 해?”
오지랖은 또 우리 반으로 출석 도장을 찍는다. 아, 준회 보고 싶다. 김지원은 준회의 과거와 빼다 박은 듯이 닮았다.
“여주가 그런 말을 듣는데 넌 가만히 있어?”
“어떡하라고. 난 니나 구준회처럼 쟤 지켜줄 마음 별로 없어.”
그래. 참 고맙네. 김동혁의 표정은 진심이었다. 어차피 나도 부담스러워. 김지원은 한참을 씩씩대다 다시 내 쪽으로 다가왔다. 이만하면 알겠다. 눈치가 없는 게 아니고, 알면서도 이런다. 무슨 속셈이야? 배려는 전혀 아니다. 내 기분 반영 하나도 안 하는데 그게 무슨.
아무리 생각해도 구준회 같잖아. 걔도 동에 번쩍 서에 번쩍 내가 무슨 말만 들으면 어떻게 알고 와서 지가 더 화내고. 의미 없는 과거가 자꾸 떠오른다. 이젠 아무 소용없는 건데. 아무튼 나는 그래서 김지원이 싫어. 눈길도 안 줬다. 지가 이럴수록 내가 더 힘들어할 거란 건 아는 건지, 알면서도 이러는 건 진짜 이기적인 거다. 준회는 날 배려하기라도 했어.
“여주야. 김동혁 저러는 거 너무 신경 쓰지 마.”
“안 써. 너야말로 제발 사람 말귀 좀 알아먹어.”
“어?”
“싫다는데 자꾸 아는 척, 챙겨주는 척. 진짜 꼴깞인 건 알아?”
언제부터 갑자기 나타나기 시작하더니, 사람 감정 헤집어놓기만 한다. 그렇지 않아도 혼란스러운 건 정리될 새도 없이 쌓여만 가는데. 평소에 접촉도 없던 놈이 왜 그 같은 방식으로 다시 내게 다가오는지 나는 도무지 조금도 이해할 수가 없다. 김지원의 속셈을.
“쟤네한테 주먹질은 안 해. 네 몸도 네가 지키기로 했잖아.”
“그래서. 너 지금도 충분히 주제넘어.”
“경계 안 해도 돼. 흑심 없고, 그냥 네 편인 거잖아.”
“야.”
“나 여기서 더 안 다가가. 걱정 마.”
그게 문제가 아닌 것 같은데. 지 존재만으로도 나는 이렇게 속이 문드러지고 골머리를 앓는데. 매번 멋대로인 행동에 진절머리가 날 지경이다. 김지원은 제 할 말만 뚝딱하고 교실을 나섰다. 뭐 하는 애야. 나에 대해 조사하나? 내 생각 지 멋대로 파악하고 무작정 확정짓는다. 지가 뭐라고.
주변이 다시 소란스러워진다. 떠들썩한 분위기에 줄곧 우리를 지켜보단 최현희가 조소를 뱉었다. 돌아올 반응은 뻔했으므로 굳이 마음을 먹거나 하지않았다. 최현희는 성큼 내 자리로 다가온다.
“대단하다. 쟨 또 뭐야?”
“뭐?”
“김지원 앞에서도 옷 벗고 쇼했니? 그래서 쟤가 저렇게 너 싸고도냐고.”
참 나. 말하는 꼬라지 하고는. 왜 이렇게 내 일에 관심들이 많은지 모르겠다. 되는 데로 뇌까리고 천박한 말만 해대는 꼴이 웃겨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 같다. 저런 소리 듣는다고 화나는 건 절대 아니다. 더한 말도 들었는데, 저게 대순가.
대답할 가치도 없다는 걸 진작 알아채고 시선을 거뒀다. 최현희는 포기도 않고 방금 전 행위에 대해 핏줄까지 세워가며 날 타박했다. 니가 그러니까 안 된다는 둥, 구준회만 불쌍해진다는 둥. 매번 깨닫는 거지만 얘는 지 인생보다 내 일상을 더 사랑하나 보다. 나한테 관심을 못 줘서 안달이야.
“인생 그렇게 살지 마라.”
참 웃기는 충고를 날린다. 그럴 위치가 돼? 내가 지한테 꼼짝도 못 덤비는 줄 안다. 웃겨. 애초에 상대할 생각도 없다. 내가 왜. 나는 원래 모든 상황에 관대했다. 그래서 구준회가 학교 다닐 때 무슨 지랄을 하고 다니든 시종일관 관망만 하며 침묵을 지켰다.
최현희는 숨도 안 쉬고 나한테 경박한 말투로 욕을 해댔다. 그러든가 말든가. 나는 약간 해탈을 한 걸까. 근데 최현희가 갑자기 하던 말을 뚝 멈춘다. 슬슬 어수선해지던 교실의 분위기는 다시 물먹은 듯 고요히 가라앉는다. 뭔데. 나는 표정관리에 약하다.
“여기 자리 비는 거면 좀 앉자.”
“뭐라고?”
“창가는 취향이 아니거든.”
계절과 맞지 않는 포근한 향이 훅 끼쳐온다. 전학생은 뻔뻔한 얼굴로 내 옆자리에 착석했다. 아이들은 경악스러움을 감추지 못 하고 우리를 번갈아봤다. 지금 상황 파악이 필요한 거야? 전학생은 미동도 없이 내 옆자리를 지켰다.
창가가 취향이 아니라는데. 어차피 빈자리 굳이 말려서 뭐 할까 싶어 그냥 냅뒀다. 속셈이 따로 있는 거겠어. 아니길 바라는 마음은 없지 않아 있지만 사실 표정을 읽을 수가 없다. 묵묵히 교과서를 정리하던 전학생이 문득 고개를 오른쪽으로 튼다. 마침 최현희가 너도 얘랑 자고 싶어서 그러는 거냐며 상스러운 말을 지껄인다.
나는 다시 전학생과 눈이 마주쳤다. 사람을 끌어당기는, 그런 눈빛과 말이다.
“이여주?”
“….”
“잘 부탁해. 학교 적응해야 하는데 친구가 없네.”
전학생은 씩 웃었다. 그니까, 이름이 김한빈이라고 했다. 김한빈이 내 눈을 보며 따뜻하게 웃는다. 나는 뒤통수가 얼얼해지는 기분을 애써 부정하지 못 했다.
COK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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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다음 편부터 본격적인 전개가 될 듯 해요. 긴 코멘트에 암호닉도 신청해주신 [준회]님 너무 감사드려요ㅠㅅ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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