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RGET 10
- THE TARGET-
"저 앞에 있던 새끼들 좀 해고 시켜."
우리에게 뚜벅뚜벅 걸어 온 남잔 웃으며 말했다. 여기서 해고는 죽음인데. 그런 말을 내뱉는 그의 입꼬리는 보기 좋은 나선형이었다. 그가 어떤 일을 하는지 모르는 사람이 그를 본다면 매우 인상 좋은 남자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 같다. 마약밀매상이란 걸 아는 나도 한순간 인상 참 좋다.라는 감정을 느꼈으니 말이다.
"그러니까. 해고 좀 시키라고"
"소중한 고객님의 의견 수렴하도록 하죠."
내 손을 잡고 있는 오세훈이 손을 조금 더 강하게 조여왔다. 그런 그의 손을 보다 고개를 들자 여전히 웃고있는 그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세훈이 형 애인?"
"네. 그레이스 정입니다."
"나는 첸, 반가워요."
그가 나를 모른다? 아니 나를 모르는척 하는 쪽이 더 설득력 있을 것이다. 첸은 나를 확실히 알고 있다. 내가 경찰인 것도 자신들을 잡으려 하는 것도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어째서 이런 날 가만히 지켜보기만 하는 걸까. 아직 확신이 서지 않았다. 그래서 그들에게 맞는 반응을 했다. 오늘은 처음으로 명확한 증거를 잡아내는 날. 챙겨온 거라곤 속옷 속 작은 녹음기 하나. 여기서 믿을 거라곤 내 두 눈뿐이었다.
나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더니 해맑게 웃던 그는 우리를 안내했다. 지나온 사무실이 좁은 이유가 있었다. 냉장고를 지나 들어온 이 곳은 수십 개의 방이 위치한 비밀 공간이었다. 그를 따라 걸으며 조심히 살펴보자 저 남자가 이끄는 조직은 생각보다 거대했다. 이 공간에 있는 조직원들은 대략 삼십 명이 족히 넘었다. 보험회사 직원들 속으로 손쉽게 녹아들 수 있는 정장 차람들. 뒷골목에서 활약하는 조폭들과는 달랐다. 이들만의 방식과 규율이 존재했다. 마약을 거래하는 집약된 대기업. 첸. 저 자가 이 조직의 수장이다. 그의 웃는 낯에 방심해선 안된다. 그가 이끈 방 앞으로 다가간 우린 잠시 멈춰 섰다. 첸이 뒤를 돌아 나에게 물어왔다.
"우선, 간단한 자기소개. 여긴 꽤나 철저해서 말이야."
문고리를 잡고 나를 보고 있는 첸에게 그레이스 정의 나이와 이름을 말하려 입을 뗀 순간 나는 다시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010-1234-5678 전화번호. 신상 털기엔 충분하지?"
"충분하지."
세훈의 비꼬는 듯한 말투에도 첸은 여전히 웃고있었다.
"그럼. Welcome Paradise"
웰컴, 파라다이스. 그렇게 외친 첸의 손끝의 문이 열렸다. 천국. 그들의 파라다이스엔 음악과 술 그리고 약. 가지런히 정리된 원목 테이블 위엔 하얀 가루들이 비닐에 쌓여져 있었다. 약 냄새는 항상 그랬다. 맡을 땐 모르지만 항상 목구멍이 아려왔다. 방 문을 열자마자 풍겨오는 약 냄새에 인상이 찌푸려졌다. 내 손을 잡고 소파에 앉은 오세훈도 나처럼 사정없이 구겨져 있겠구나 생각하고 그를 바라보았지만 세훈은 싸할 정도로 무표정이었다.
"오늘 이렇게 갑자기 찾아온 이유는?"
"LSD 다시 사려고"
"형이 이미 다 사 갔잖아, 그것도 엄청나게"
"세탁기에 돌려버렸어. 그러니까 만들어 줘"
분명 부탁하는 내용이었다. 오세훈은 첸에게 부탁을 했다. 하지만 오세훈의 말투는 이런 자기의 권리가 너무나도 당연하단 듯이 말했다. 세훈의 부탁을 받은 첸은 어이없게 쳐다보더니 이내 큰 소리로 웃어댔다. 목청이 매우 컸다. 웃음소리가 비트 있는 팝송을 뚫고 나올 정도로 큰 소리였다.
"정말 캐릭터 확고해. 대단할 정도 아닌가, 그렇죠?"
첸의 물음에 살짝 웃어 보이며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그러자 옆에서 헛웃음 소리가 들렸다. 그렇지만, 나한테 오세훈은 아직 돈 많은 또라이인 건 변함없는데.
"그럼 애인씨는 왜 왔어요?"
"그레이스 정."
"얼굴은 한국인인데 그렇게 부르면 존나 정 없어 보이잖아. 맞지 애인씨?"
"그래요, 여긴 한국이니까."
나도 그거 해보려고요. LSD. 나의 당돌한 말의 첸은 오-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를 아래 위로 천천히 바라보더니 피식 웃고는 그의 뒷머리를 만지작거렸다.
"형이 추천해 준거야? 자기 애인한테?"
"응. 좋다고 하니까 해보고 싶대."
세훈이 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깨달았다. 지금 여기서 내 캐릭터는 또라이 여야 한다. 오세훈 못지않게 돈이 넘쳐나는 또라이.
"향기가 보인다면서요, 난 작업할 때 음악 듣고 하는데 음악이 보이면 그땐, 나도 천재할 수 있나."
"세훈이 형은 하느님께 절해도 모자란 케이스고. 그렇게 함부로 덤비면 큰일나는데."
"큰일은 내가 걱정해요."
오세훈처럼 말했다. 돈 많은 또라이의 표본은 역시 오세훈이 제일 적절했다. 나의 말투가 오세훈과 비슷하다고 느낀건지 첸은 나와 오세훈을 번갈아 쳐다보더니 웃어 보였다.
그러다 약은 처음이죠?라는 말에 맞다라고 대답해주니 눈을 반짝였다. 재밌는 장난감이라도 발견한 어린애처럼 두 눈에 흥미가 돌았다.
"이건 꼭 필요한 순서라."
그가 테이블 위에 있는 리모콘을 손에 들었다. 오세훈이 그 모습을 보자 짧게 혀를 차고 쇼파에 몸을 기댔다. 첸은 맑은 웃음소리를 내며 버튼을 눌렀고 고개를 벽장 쪽으로 돌렸다.
"참고로 겁주기는 아니에요."
그저 의사표현이지. 그 말을 들은 난 굳을 수 밖에 없었다. 책이 잔뜩 꽂혀있는 책장이 옆으로 벌어지고 철창이 다시 나타났다. 그리고 그 안에는 처참한 몰골들의 사람들.
머리가 잔뜩 헝클어진 여자 한명, 힘이 빠져 간신히 벽에 기대있는 중년의 남자, 얼굴에 상처가 가득한 남자 한명. 세명이 결박되어 갇혀있었다. 갑자기 들어온 빛 때문인지 그들은 신음소리를 내며 눈을 감았다.
"누가 좋을까..."
"경찰."
새로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재빨리 고개를 돌려 앞을 바라보자 한 남자가 들어와 경찰. 짧은 단어를 말했다. 정말로, 묘하게 생긴 남자 였다. 나를 향한 말이었을까 그를 똑바로 주시했다. 그를 빤히 바라보자 눈이 마주쳤다. 표정 없이 나를 바라보던 그는 이내 철창 쪽으로 시선을 돌리고 다시 말을 꺼냈다.
"경찰로 해."
"그럴까?"
나에게 하는 말이 아니었다. 그들이 말하는 경찰은 내가 아니라 철창 안에 있는 한 남자였다.
"아! 저기 저 여자는 술집 여자. 우리 엑스터시 가지고 장난쳐서 저기 있는 거고.. 저 아저씨는 뭐였지 형?"
"코카인."
"맞아 우리 코카인을 훔쳤어요 배달 도중에. 그리고 저 남잔 경찰!"
우릴, 잡으려 했지. 시우민은 내 쪽으로 다가와 말했다. 그리고 내 옆자리에 앉았다. 첸은 신 나게 말하다 내 옆에 앉는 시우민을 보더니 인사해요, 우리 형이야. 시우민.이라고 말해 주었다. 시우민은 세훈에게 눈 인사를 건네고는 팔짱 낀 체 나를 바라보았다. 그런 그의 움직임을 주시하던 세훈이 나를 자신의 품으로 당겨 안았다.
"그레이스 정, 스물여섯 살."
"뭐야, 나랑 친구잖아"
"나이도 어린데 LSD를 하겠다고?"
시우민 그가 세훈의 품에 엉성하게 안겨있는 나를 보고 물었다. 벌써 그레이스 정의 신상을 알아낸건지 아직 말해주지 않았던 그녀의 나이를 정확히 말했다. 자신의 감정을 풍부하게 표현해내는 첸과 달리 그의 형이라는 사람은 감정이 절연된 사람처럼 표정이 없었다. 시우민의 무표정 속에는 나를 향한 적대감이 느껴졌다.
"첸씨는 나처럼 어린데 만들기도 하잖아요 그 LSD."
"와, 맞는 말 진짜 잘한다! 너"
어느새 너라는 호칭을 쓰는 첸이 나를 바라보았다. 이럴 때가 아니지-라는 말을 하더니 소파에서 일어나 뒤에 있던 책상으로 다가갔고 서랍을 열어 조그만 칼을 꺼내들었다. 날을 살펴보는 건지 칼끝을 조금 만지고는 다시 웃으며 우리에게 다가왔다. 칼이 유난히도 빛났다. 결이나 상태로 봐서는 매우 날카로운 칼이었다. 칼을 손바닥에 탁, 탁 내리치는 첸의 얼굴이 한순간 변했다. 이 세상이 전부 재밌다고 생각하는 사람마냥 헤실 헤실 웃던 사람은 어디 가고 그의 눈동자에 광기가 서렸다. 칼을 높이 들더니 철창 쪽으로 칼을 던졌다. 짧게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났고 날카로운 칼이 둔탁한 소리를 내며 철창 안으로 떨어졌다. 다행히도 칼은 경찰이라는 남자 발끝만을 베었다. 단말마의 신음이 났다.
"에이, 역시 칼은 어려워."
말투는 소년같이 장난기 가득한 말투였지만 소년은 아니었다. 웃는 입꼬리는 그대로였지만 그의 눈동자는 아니었다. 머리끝을 살짝 매만지면서 다시 뒤로 돌아 서랍으로 다가갔다. 이번엔 총이었다. 베레타 92, 자동권총이었다. 총까지 갖고 있다. 첸이 총알의 개수를 세어보고는 총구를 철창 안 남성에게 겨누었다. 방아쇠를 잡은 첸의 손가락이 움직이는 순간. 나는 어두워졌다. 세훈이 내 두 눈을 손으로 가렸다. 오- 로맨틱하네, 여자의 높은 비명, 남자의 낮은 단말마, 그리고 여 섯발의 총소리가 연속적으로 들렸다. 첸은 총에는 소질이 없었다. 반동을 많이 흡수해버려 소음이 컸고 주춤거리는 발 소리까지 들렸다. 세훈이 손을 풀자 눈앞에는 총을 쥐고는 무표정으로 굳어 있는 첸이 보였다. 고개를 돌려 철창을 바라보자 피로 물든 벽이 보였다. 그런데 쓰러져 있는 건 두 명이었다. 조준을 엉망으로 했는지 중년의 남성도 총에 맞아 쓰러져 있었다. 이제는 시체가 되어버린 두 남자를 바라보다 옆에 겁에 질린 여자와 눈이 마주쳤다. 두려움에 휩싸인 눈동자는 사정없이 떨렸고 쉴 새없이 눈물이 흘러나왔다. 아... 아... 하며 입을 벌리고 소리를 내려고 애쓰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다 한순간 나를 보며 소리를 질렀다.
"도망 가!!!!!!!!!!!"
탕.
눈을 질끔 감았다. 그 여자의 머리에 구멍이 뚫렸다.
"시끄러워."
첸의 손에 있던 총이 테이블 위에 막무가내로 던져졌다. 그리고 리모컨를 들어 버튼을 눌러 책장을 닫았다. 저 뒤에는 세 명의 사람이 방금 시체가 되었는데. 고작 벽하나 쳐졌다고 피 냄새도 나지 않았다. 손이 조금 떨려왔다. 너무 오랜만에 목격한 죽음의 현장이었다. 그 떨림을 오세훈도 느꼈는지 나를 살짝 쳐다보곤 손을 꽉 잡아주었다. 엄지로 내 손등을 쓰다듬었다. 마치, 괜찮아 겁내지 마.라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이제 다 된 것 같으니까, 세훈 씨는 날 따라와요. 보여줄게 있어."
침묵을 유지하던 시우민이 오세훈에게 말을 걸었다. 내 옆에서 일어나더니 나와 오세훈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그런 시우민 말에 오세훈도 일어났다. 하지만 혼자 남게 될 내가 걱정됐는지 나의 손을 쉽사리 놓지 않았다.
"죽고 못 사나 보네 둘이."
첸의 퉁명스러운 말에 세훈에게 괜찮다고 소리 없이 말했다. 세훈은 그런 나를 잠시 내려보다 시우민과 함께 방을 나섰다. 모두가 나가고 첸과 나만이 남겨진 이 방에서 잔잔한 팝가수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박자를 타며 고개를 흔들던 첸이 내 옆자리에 다가와 앉았다.
"약을 왜 하려고 해?"
순수한 질문이었다. 정말 궁금하다는 듯 나에게 물었다. 그래서 살짝 웃어 보이며 말했다.
"가끔 미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서."
"하긴, 세상이 얼마나 지옥이야. 목구멍에 핏줄에 약이라도 쑤셔 넣어야지."
거기에 천국이 있잖아. 하이톤의 목소리인 줄 알았는데. 천국을 말하는 그의 목소리는 낮게 깔렸다. 그게 원래 자신의 목소리고 여태까진 억지로 냈던 목소리, 말투라고 믿을 정도로 차분해졌다.
"그럼 너도 약을 해?"
"아니, 우린 약 안 해. 병신 같거든 약에 취한 꼴 보면. 이건 비밀인데, 오세훈도 병신 같아."
"애인 욕했다고 나한테 화내는 건 아니지?"
오세훈이 없자 형이라는 호칭이 사라졌다. 오세훈 앞에서는 웃으며 살갑게 말을 건넨 그가 당사자가 없는 자리에선 정 반대의 말투로 오세훈을 판단했다.
"LSD는 정말 천재들이 찾는 약인가봐. 오세훈도 그렇고 스티브 잡스. 그리고 비틀즈도."
"........"
"Lucy in the Sky with Diamonds. 지금 재생되고 있는 노래, 비틀즈가 네가 찾는 그 LSD를 하고 만든 노래야."
Somebody calls you, you answer quite slowly,
누군가가 너를 부르고 너는 조용하고 천천히 대답하네
첸이 내 어깨에 팔을 올렸다. 박자에 맞게 길게 뻗은 검지를 내 어깨 위에서 톡톡 움직였다.
A girl with kaleidoscope eyes
만화경의 눈을 가진 소녀여
"우린 그래서 LSD를 다이아몬드라고 불러."
Look for the girl with the sun in her eyes,
태양의 눈을 가진 소녀를 찾고 있네.
"네가 왜 마약을 하고, 이 곳에 왔는지는 관심 없지만."
And she's gone
그리고 그녀는 사라 졌네.
"다이아몬드를 너에게 선물할게, 나랑 친구하자."
Lucy in the sky with diamonds
하늘 속에 루시와 다이아몬드
kaleidoscope[만화경] |
망원경 모양으로 내부를 들여다보며 빙글 돌리면 반사에 의해 다양한 무늬가 변화하며 많은 상과 갖가지 아름다운 모양을 나타낸다. |
*암호닉*
[비염]
[시동]
[옷쟝]
[요구르트♡]
[알로에]
[쌍수]
[퇴폐미]
[시우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