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rrow 01
exobiota 作
"수환아, 나 남자 좋아해."
어렸던 중학교 2학년이였던 경수가 나름 학교에서 가장 친하다고 생각했던 수환에게 아무도 없는 달랑 두 사람만 서 있는 그 축구 동아리 탈의실에서 조심스레 내 뱉은 말이였다. 하지만 모든 걸을 이해해주고 감싸 줄줄 알았던 '가장 친한 친구' 수환에 대한 경수의 믿음이 깨진 건 커밍아웃을 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여전히 덥고 시끄럽게 매미가 울어대는 여름방학이 끝난 개학날이였다.
어느 드라마, 소설, 영화에서 보는 왕따들의 괴롭힘 만큼 강도가 꽤 심했다. 지나가는 경수의 얼굴에 침을 뱉는다던지, 급식소 재건때문에 매일 같이 어머니가 정성스레 싸주신 도시락에 죽은 동물을 넣는다던가, …혹은 성욕풀이 대상으로 '사용'한다거나.
너무나 어렸고, 깨끗하던 경수를 순식간에 벼랑 끝으로 몰고간건 누구의 짓이였을까. 수환의 짓? 반 아이들의 짓? 학교 내 모든 아이들의 짓? 아니면 경수 본인의 짓? 누구의 잘못이라 해도 경수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이미 위태로운 10대의 끝자락의 경수는 위험했다.
19살이 된 경수는 지난 날을 돌이켜보며 결심했다. 지난 5년간의 괴로웠던 학창시절을 털어내고자. 물론 TV속에서처럼 학교폭력에 비관해 자신을 괴롭히던 아이들의 이름과 행적을 구구절절 적어놓고 죽을 생각은 하지않았다. 애초에 일반 다른 아이들과 다른 자기 본인의 탓을 누구에게도 전도시키고 싶진 않았다. 자신의 죽음을 통해 자신의 지난 힘들었던 과거를 알아달라고 호소 할 생각도 없었다. 그저 공부라는, 학교라는 틀 내에서 숨 쉴 틈 없이 달려 온 지난 과거에 대한 비관, 대한민국 고3의 고충에 대한 가식적인 글로만 가득 적힌 의미없는 유서만 주머니에 꼬깃 꼬깃 쑤셔넣고 달리는 트럭과 차 사이로 용기있는, 혹은 그저 현실도피적인 경수의 뒷 모습이 사라졌다.
ㅡ빵!!!!!!!!!!!!!
공중으로 붕 뜬 경수의 얼굴은 누구보다 평온했다. 끝이다. 해방감 같은 것이였을까. 아니면…. 평온한 얼굴사이에 그 불안감이 비친건 왜일까. 털썩, 꽤 큰소리가 나고 경수의 몸은 많은 차들의 바퀴가 굴려 낸 마찰로 인해 달궈진 아스팔트에 몸을 맡겼다. 경수의 눈이 감겼다.
『골반이 틀어져서 걸을수는 있지만 평생 오른쪾 다리를 절며 살아야 할겁니다. 여기에 CT사진을 보시면….』
과거 의사의 말이였다. 트럭 속에 뛰어들었던 경수는 다행인지 불행인지 트럭 운전사의 도움으로 급히 병원으로 실려갔고, 경수는 살았다. 모두들 기적이라 박수를 쳐 댈 때, 경수는 또 다시 지옥을 맛봐야 했다. 차라리 그냥 죽게 놔 뒀으면 이런 저런 동정의 눈동자들을 마주하지 않았을 지도 모르는 일이 아닌가.
결국 경수의 학교는 발견 된 유서를 밝히게 되면 '대한민국 학교의 실태!' 라니 어쩌니 경수의 학교가 언론의 입방아에 오르고 내릴거라며 단순 사고로 경수의 장대했던 자살시도를 덮어버렸다. 자신의 죽음과 삶이 오고 간 그런 사건에 대해 뭐라고 지껄이던 아무 상관도 없었지만 살아서 돌아온 학교는 경수에게 있어 더 잔인해져있었다. 그렇게 십대의 잔혹했던 기억의 편린을 남긴채 경수는 졸업식을 마쳤다. 물론 다리를 절뚝이는 채로.
*
경수는 시선에 익숙하지 않은 아이였다. 그래서 워낙 감정이 드러나지 않는 표정에 다른 사람들은 그저 모든것에 무덤덤해진 아이라 칭하지만, 아니였다. 누구보다도 여리고, 상처도 잘 받고, 사람들의 시선을 받으면 한없이 작아지는 그런 아이였다.
그렇게 19살에서 21살이 된 경수는 살아가는 매일매일이 고충이였다. 이상하리만큼 심하게 어긋난 다리 길이하며 걸을 때 마다 몸이 위로 치솟았다 아래로 푹 꺼지는 일반 사람들과는 확연히 다른 걸음걸이에 지나가던 사람들이 힐끔힐끔 쳐다보는 것 하며, 버스나 지하철에서도 그런 경수를 혀를 끌끌차며 노약자 석에 앉은 노인이 자신의 자리에서 일어나 경수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일 또한 허다했다. 비참했다. 그럴 때마다 경수는 자신은 장애인도 아니고 할머니한테 그런 취급받을 정도로 아프거나 힘들진 않다며 짜증 섞인 말투로 자리를 피해버리는 방법 만이 유일하게 남은, 자신의 마지막 자존심을 지키는 아이였다.
하지만 경수는 자신이 몸이 불편한, 남들과 다른 몸을 가지게 된 장애인이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있었다. 그래서 경수는 또 다시 10대의 끝자락에서 느꼈던 그 위태로움을 21살인 지금 다시 한번 느껴야 했다. 비참했다.
*
경수는 혼자 살았다. 자살 시도를 한 경수에 적잖은 충격을 받은 어머니와 더 이상 경수를 감당할수 없다며 매일 밤낮으로 싸워대는 부모란 작자들에 질려버린 경수는 집을 나왔다. 그래도 엄마라는 여자는 아직까지 부모노릇을 하고싶은 것이긴한건지 많지 않은 돈을 매달 붙여주고는 있지만 혼자 사는 경수로서는 턱 없이 모자란 돈이였다. 그래서 경수는 다리의 장애에 구애받지않는 자신의 집과는 조금 떨어진 시내의 한 중소기업 사무 보조 알바를 시작했다. 그저 사원들이 정리한 내용을 글로 풀어 써 내려가기만 하면 되는 간단한 일이였다. 하지만 이 역시도 출퇴근 할 때는 사람이 북적이는 시내길을 꼭 지나야 하기 때문에 여간 불편한것이 아닐수 없었다. 이제는 익숙해 질 때도 되었다고 생각하는 경수였지만 막상 그 길만 들어서면 저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그러다 다른 사람과 어깨를 부딪히거나 앞을 잘 보지못해 낮게 달린 간판에 머리를 박는 일도 잦았다. 하지만 경수는 차라리 이 편이 낫다고 생각했다. 수백개의 경멸의 시선이 자신에게 닿는 걸 알게 되는 것 만큼 비참한 것은 없으니까….
그 남자를 만난것도 여느 때와 같은 붉게 저물어가는 해가 넘어갈듯 말듯 건물들 사이로 걸쳐진 그 복잡한 퇴근 시간대였다. 아무런 의도도 없이 그저 조심해서 걸어간다고 걸은 경수지만 갑자기 자신의 앞에 들어선 검은 그림자가 덮쳐오는 동시에 그 이름 모를 남자의 가슴팍에 얼굴을 묻어버렸다. 당황해 급히 얼굴을 뗀 경수는 여전히 고개는 푹 숙인채로 "죄송합니다." 라고 크지 않은 목소리로 읊조렸다. 자신의 사과에도 아무 대답이 없는 남자에 경수는 눈을 꽉 감았다. 항상 그러했다. 이렇게 나의 실수는, 그들의 고의든 부딪히게 되면 시비를 걸어왔었다. 그리고 바로 날아오는 주먹. 항상 같은 패턴이였다. 오늘이 그 재수없는 날 중에 하루겠거니 그저 체념한 표정으로 때릴려면 때려라 하고 눈을 감은 경수였다. 하지만 예상했던 것과는 달리 제 뺨을 강타하는 투박한 손 대신 부드럽지만 살짝은 아이티가 묻어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번호 좀 주실수 있으세요?"
그 와의 첫 만남이였다.
*
미쳤지 도경수, 단단히 미쳤지. 넓지 않은 단칸방 찬 맨바닥에 드러누운 경수는 자신을 원망하고, 또 원망했다. 그 자리에서 떡하니 번호를 주고 오다니…. 고개를 들어 마주한 그의 얼굴은 꽤 반반했다. 아니, 잘생겼었다. 깊게 쌍커플이 졌지만 나른하게 풀린 눈하며, 오똑한 꼬, 두툼하게 매력적인 입술과 꽤나 탄탄하게 자리잡은 몸까지. 경수에겐 그저 바라고 바래왔던 사람이건만…. 멍한 듯 방금 전까지 얼굴을 마주하고 있던 남자를 상상하던 경수였지만 이내 표정이 울상으로 변했다. 내가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다리병신이라는 걸 알면 나를 어떻게 대할까. 아니, 그 전에 내 번호는 왜 가지고 간거지? 혹 다른 남자들 처럼 나를 놀거리로 만나고 싶어서 그랬나? 하지만 그의 진지한 얼굴에서는 그런 의도는 느껴지지 않았다. 그럼 왜? 생각의 끝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물고. 원래 생각이 ㅁ낳은 경수는 간만에 복잡하게 늘어지는 자신의 머릿속에 당혹스러웠다.
한심하다는 듯 자신의 머리칼을 마구 헝크리던 경수의 옆에 놓여있던 구형의 스마트폰이 짧은 진동 소리를 내며 울렸다.
[아까 번호 가져갔던 사람인데요 혹시 시간 괜찮으시면 다시 뵐수있을까요?]
순간 경수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진짜… 연락이 왔네? 답장을 보낼까 말까 그저 아무것도 적히지 않은 답장화면만 눌러놓고 또 다시 생각이 많아진 경수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런 경우가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였다. 혼자 책 읽는 것을 좋아하는 경수는 혼자 자주 카페에 가 책 읽는것을 즐기곤 했는데 꽤 둥글둥글하게 귀엽게 생긴 그런 경수에게 다가와 '시간있어요?'라던가 '번호가 뭐예요? 관심이 생겨서요.'라던가 대시해오는 남자들도 모두 경수의 저는 다리만 보면 질색하며 피하기 일쑤였다. 하지만 이 남자는 웬지 다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슨 근거로 그런 생각이 든건지는 몰라도 그 반쯤 풀려있던 매력적인 눈동자 속에는 자신을 조롱하는 의도는 전혀 내 비치지 않았다. 그래, 뭐 혹시 조롱의 의도가 들어있었다 해도 이런식으로 한 두번 까인것도 아니고 그냥 한번 만나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것같다 ㅡ그에 대한 약간의 기대도ㅡ 라는 생각에 빠르게 손가락을 움직여 답장을 쳐 내려갔다.
[네. 시간 되실때 다시 연락주세요.]
예전에 써놨던 건데 차례대로 1,2,3 올릴께요! 재미는 없지만.....하.....내가 왜 올리고 있지..내일 펑할 글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