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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네가 좋다. 동백이 피어가는 이 살 애린 초봄에 네가 찾아올 것이라 나는 믿으니 나는 아직도 네가 좋다.

 

 

동백

 

W. 반리본 

 

엄마와 아빠가 부부 싸움을 하고 있을 때. 나는 그 것이 싫어 눈이 오는데도 불구하고 밖에 나와 있었지. 잠옷 차림에 신발도 신지 않고, 그렇게 말이야. 술 취한 아저씨들의 시끄러운 노랫소리가 들리고, 간간히 계집애들의 웃음소리가 들리고. 그 옆에 욕 지랄을 하며 따라가는 사내아들의 소리가 들렸지. 너는 그 것들과는 다르게 아무 소리 없이 다가와 내 목에 목도리를 감아줬었어. 부드럽고 따뜻한 그 느낌을 내가 어찌 잊겠니.

 

추위도 아픔도 그 때만은 모두 잊혔었지.

 

아무것도 묻지 않는 시끄러움이 싫어, 너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그 시끄러움이 싫어. 하지만 너는 끝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더라지. 너의 목도리는 따뜻했지만 너는 따뜻하지 않았어. 나를 상처주고 짓밟고, 그렇게 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네가 좋았단다. 아무 소리 없는 그 시끄러움이 사랑스러웠단다.

 

나는 자지 않았고, 너도 떠나지 않았어. 집으로 들어가는 것이 싫었고, 너를 놓치는 게 싫었단다. 너는 그걸 알고 있었니? 나의 하나 밖에 없는 사랑아. 웃지도 않고, 그렇다고 내게 말을 걸지도 않는 너는 무척이나 차가웠어. 아주 작은 따스한 말이라도 원했던 내가 비참해질 만큼 너는 차가웠어.

 

하지만 무엇이든 너는 아름다웠고, 빛났어.

 

어느 겨울, 날짜도 정확히 생각나지 않고 요일도 정확히 생각나지 않는 그 겨울. 모든 것이 생생하지만 모든 것이 깜깜하게 어둡단다. 그리고 너를 향해 손 내밀고 있어. 나를 구해주, 구해주… 목이 쉬어라 소리치며.

 

해가지고 한참이 지나, 먼지로 뒤덮인 잿빛 하늘을 어둠이 또 다시 덮고서 그 위로 간신히 다 죽어가는 달빛이 우리를 비추고, 보이지도 않는 별들이 하늘 위, 구름 위에서 서로가 만들어가는 리듬에 몸을 맞기며 춤을 출 때. 우리는 만났지. 언제나 같은 시간 11시 59분에 말이야. 그리고 너는 내 옆에 가만히 앉아 있다가 노래를 불렀어. 언제나 같은 노래. 그 노래는 슬프기도 했고, 안쓰럽기도 했지. 나를 향한 노래인지, 누구를 향한 노래인지.

 

그렇게 며칠이 지나고, 너는 처음으로 표정을 지어 보였어. 우리가 만나던 시간 보다 한참을 일찍 나와 그 자리에서 너는 울고 있었어. 그 것에 놀라 아무것도 하지 못한 체 나무 뒤에 숨어 너를 바라만 보았어. 너는 누군가를 찾고 있었지. 열심히 그 여린 목소리로 애타게 누군가를 부르고 있었어. 간신히 들린 그 말은 나 또한 너와 같이 울기에 충분했지.

 

‘성현… 성현아…’

 

처음 알았어. 네가 그렇게 울며 부를 사람이 있다니… 나는 더 이상 네게 다가가지 못 할 것만 같았단다. 나 또한 너와 같이 울며 나무 뒤에 숨어 너를 바라보았어. 너와 나는 눈이 마주친 채로 한참을 그렇게 울고 또 울었지.

 

다음날에도 그 다음날에도 나는 너를 만나러 항상 그 시간에 그 장소로 나갔어. 너 또한 나왔지. 하지만 너는 나와서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그리워했어. 내가 아닌 이미 한참 전에 떨어져 지고만 동백꽃을 말이야. 네 입으로 그랬잖니. 기억나지? ‘나는 나의 초봄에 진 동백을 아직도 그리워 해.’ 라고 말이야.

 

너의 그 ‘성현’이라는 사람은 듣지 않았지만 알 것 같았어. 아니, 나는 그를 알고 있었어. 너의 사랑이었고, 너의 동백이었고, 너의 초봄이었지. 그리고 산산이 부서져 버린 거야. 꿈같이 아무것도 알 수 없는 그 꿈같이 말이야.

 

우리는 만났고, 너는 또 다시 같은 노래를 반복해 불렀어. 어느 날은 그 노래에 웃음이 나오고, 어느 날은 그 노래에 눈물이 나왔지. 그렇게 한참을 하고 보니, 그제야 알겠던 거야. 그 노래는 그 무엇도 아닌, 너 자신을 위한 노래였다는 것을.

 

애초에 너에게 나 따위는 필요 하지 않았던 거야. 그저 그 시간에 가면 너와 같이 누군가를 기다리고 그리워하는, 또 추워하는 아무 필요 없는 그런 허무한 존재였던 거야. 그걸 알았을 때, 나는 처음으로 네게 물었지. ‘어째서 나를 밀어내지 않은 거야?’ 그리고 너는 내게 말했어. ‘네가 나에 대해 무엇을 아는데?’ 그래, 우리는 서로에 대해 아는 것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너를 사랑한다 말했고, 너는 나를 알아주지 못한다 말했지.

 

우리가 그렇게 이야기를 하고, 너는 내게 성현의 이야기를 했지. 나는 묵묵히 듣고만 있었어, 너에게 있어 그 초봄은 사라지지 않을 거라 미리 알았기 때문이야. 넌 내게 그랬지. ‘성현이가 불러주었던 내 이름은 아직도 잊을 수 없어.’ 난 참을 수가 없었어. 널 잡고서 울고만 싶었어. 그리고 항상 속으로만 되새기던 네 이름을 불렀지. ‘수정아… 수정아…’ 너는 대답하지 않았어. 하지만 난 알 수 있었지, 동백은 점차 더욱 화려하게 피고 있다는 것을 말이야.

 

11시 59분. 이제 그 시간은 무의미 해졌어. 너와 나는 만나고 싶을 때에 만났고, 키스하고 싶을 때에 키스했어. 너의 노래를 들으면서 이젠 네가 아닌 나를 생각 할 수 있었지. 네가 불러주는 내 이름은 무엇보다도 황홀했어. 네가 말했듯이 말이야. 너에게 있어 난 이제 필요한 존재가 되었고, 무엇보다 소중한 존재가 되었어. 그렇게 되니 난 네가 점점 욕심이 나는 거야. 그래선 안 된다 나를 달래고 또 달래 보아도 소용없었어. 네가 너무 욕심이 났어.

 

“진리야…?” 그래, 당황스럽겠지. “최진리…” 믿을 수 없겠지. “네가 나한테 어떻게 이래!” 끔찍하겠지. 그런 너에게 나는 말했어. “잘 가, 아직도 동백을 그리워하는 초봄아.” 너는 날 잡지 못했어. 그저 날 보며 눈물을 하릴없이 흘릴 뿐이었지. 처음부터 넌 날 사랑한 것이 아니었으니 말이야. 하지만 충분했어. 너는 내게 줄 수 있는 모든 것을 주었고 나는 그런 너를 기다렸으니 말이야.

 

초봄이 오고, 다시 동백이 필 시기가 되자. 어느 시인이 말했던 것처럼 나는, 우리는, 모두는 화려하고 붉게 피어있는 선운사 뒤 안의 동백을 보고서 한참을 울었지. 마치 그 붉은 빛이 누군가의 입술을 닮아서, 누군가의 노래를 닮아서 말이야. 잊혀지지 않았지만 이미 기억 속에 바래버린 내 동백아. 너는 아직도 초봄을 기다리고 있니?

 
 
-
 
바라고 바라옵건데, 그 누구든 나를 생각 할 적. 지는 동백으로 생각해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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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핳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12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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