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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

 

W. 반리본 

 

 

1. …에게

 

언니, 비가 쏟아지고 있어. 갑자기 너무 많이 쏟아지는 바람에 당황할 새도 없이 빨래가 젖을까 급하게 문을 닫았어. 한참을 베란다에 쪼그려 앉아서 비 내리는 것을 바라보고 있는데, 집에도 비가 내리기 시작하더라. 얼굴부터 흘러내리는 빗방울이 바닥에 선명하게 자국을 냈어. 빗방울은 닦아도, 닦아도, 지워지지 않더라.

비가 내리면 언제나 당신이 생각나는 거 알아? 그런데, 너무 멀어서 갈 수가 없다.

 

2. 빗방울

 

언니, 빗방울은 너무 쓸쓸한 것 같아. 아무 준비도 없이 그 높은 곳에서 콘크리트 바닥까지 떨어지면서 아무것도 남길 수 없잖아. 난 그런 빗방울은 되고 싶지 않아.

 

3. 초록색

 

언니, 언니가 그랬지. 난 초록색이 잘 어울린다고. 그런데 수정이가 그러더라. 난 분홍색이 잘 어울린다고. 잘 모르겠어. 역시 언니가 옆에 있어줘야 확실 할 텐데… 수정이가 내게 언니 생각 좀 그만하래. 그래서 수정이에게 화를 내고 말았어. 내가 심한 것 같아. 하지만 사과하기는 싫어.

 

4. 고백

 

수정이가 내게 고백했어. 멀리 있는 언니보다는 자기가 나을 거래. 난 이걸 어떻게 해야 할까?

 

5. 나

 

난 언니를 사랑해. 하지만 언니는 날 사랑하지 않아. 난 어떻게 해아할지 모르겠어. 사실 이젠 언니가 어디 있는지 조차 잘 모르겠거든. 언니는 정말 죽은 걸까? 아니면 아직은 어딘가에 살아있는 걸까? 어째서 그렇게 마음대로 자살을 한 거야? 나는 중요하지 않았던 거야? 모르겠어.

 

6. 미안

 

수정이와 사귀기로 했어. 미안해.

 

7. 헤어짐

 

언니, 일 년 만이지? 수정이랑 헤어졌어. 수정이가 결혼을 하게 되었거든. 날 만나면서 그 남잘 만나고 있는 걸 알고 있었는데, 모르는 척 하고 있었어. 이렇게 크게 뒤통수 맞을 줄은 몰랐거든. 결국 이렇게 다시 언니에게 돌아왔네. 내가 보낸 편지. 모두 읽었지?

 

8. 답장

 

답장을 받고 놀랐어. 그래도 살아있다니 다행이야. 내게 유서만 남기고 사라졌을 때. 얼마나 놀랐는지 알아? 언니를 살려준 그 남잔 누구야? 아, 남자라고 하면 안 되나? 그래. 언니 남편은 어떤 사람이야? 궁금하다. 아이들도 궁금해.

 

9. 사진

 

사진 고마워. 여자앤 언니를 닮았고, 남자앤 남편 분을 닮았어. 언니는 하나도 변하지 않았구나. 예전 모습 그대로야. 언니 집에 몇 번 갔었는데. 헛걸음이었네. 그 곳은 언니의 집이 아니잖아. 집 열쇠는 편지와 함께 보낼게. 가끔은 들려. 집이 너무 쓸쓸하더라. 모두 그대로야, 청소도 가끔 가서 하고 있어. 난 언니가 살아 있다고 믿었으니까.

 

10. 아직도

 

언니는 아직도 날 사랑해?

 

11. 분홍색

 

아, 알겠어. 이제 날 사랑하지 않는 것쯤은 알고 있었어. 빈말이라도 날 사랑한단 말을 듣고 싶었을 뿐이야. 하지만 그 것도 해주지 않구나? 내겐 이제 초록색 보단 분홍색이 더 어울리는 듯 해. 그런데, 초록색도 분홍색도 이젠 내게 남지 않았네.

 

12. 동정

 

날 동정할 필요 없어. 그렇게 불쌍하단 듯이 답장을 보낼 필요도 없어, 그리고 언니. 거짓말도 필요 없어.

 

13. 거짓말

 

내가 거짓말이 필요 없다 그랬지, 모른 척하랬어? 언니가 직접 글씨를 쓰길 바라. 아니, 언니가 직접 편지를 쓰길 바라. 부탁이야, 아니 부탁입니다. 전 언니가 필요해요. 당신이 아니라.

 

14. 직접

 

언니가 직접 쓴 편지를 받았어. 미안하단 말이 한가득하네. 언니, 언니는 내게 평생 미안해해도 모자라. 내게 거짓말을 했고, 날 배신했고, 날 버렸어! 그게 언니야. 난 언니를 믿었지만 언니는 날 버렸어! 수정이에게 기댈 수밖에 없었어. 하지만 그 것도 잠시였지. 난 언니를 다시 그리워했고, 틈만 나면 수정이 앞에서 언니를 불렀어. 수정이는 그게 질린 거고, 결국은 다른 남자를 택했지. 난 나 자신이 원망스러워. 분홍도 초록도 그 무엇도 선택 할 수 없으니까. 그게 모두 언니 때문이야. 모두 그 망할 초록 때문이라구! 마음 같아선 당신과 당신 남편, 그리고 당신 아이들까지 갈기갈기 찢어 죽이고 싶어! 하지만 당신이라서 차마 그럴 수가 없어…

 

15. 당신에게

 

마지막이야. 당신이 주었던 목걸이, 반지, 옷, 핸드폰, MP3 등등 모두다 이 상자에 넣어놨어. 이건 유서가 될 거야. 당신이 내게 했던 것처럼 나도 그렇게 죽을 생각이야. 내가 더 이상 답장이 없으면 여기 들어있는 열쇠로 우리 집에 들어와. 그리고 내 마지막을 봐 줘. 얼마나 아름답게 죽어있는지. 당신이 후회할 만큼 아름답게 죽을 거야. 당신이 사랑했던 그 모든 것보다 아름답게 말이야. 누군가 내게 어울린다 말해주었던 붉은색으로 뒤덮인 체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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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ㄷㄷㄷㄷ 무섭다... 누굴까...
12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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