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윤태현]한 겨울에 무더위 01
나른한 눈으로 티비를 응시하는 태현의 옆태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승윤은 이내 한숨을 푹 내쉰다.
태현아….
식탁위엔 태현이 학교에서 자기가 직접만들었다면 자랑을 하던, 조금 삐뚫어진 탁상시계의 초침이 삐걱소리를 내며 쉴새없이 움직인다.
태현아,형이….
〃 형, 물 좀줘. 〃
갑자기 마주친 시선에 승윤의 시선은 갈피를 못잡고 우왕좌왕한다. 하지만, 별 관심이 없는듯 한 태현은 마른입술을
혀로 축이며 승윤에게 물을 요구했다. 그래, 물 줄게. 컵, 컵이 … 태현아, 근데….
〃 고마워. 〃
덜덜 떨리는 손으로 물컵을 건낸 승윤을 이상하게 여기지도 않는지, 태현은 태연하게 물을 마시고는 티비로 다시
시선을 거둔다. 그 모습에 승윤은 또 다시 안절부절 이제는 평소 물어뜯지도 않던 손톱을 잘근잘근 씹기 시작했다.
입에 세균들어가는데…. 그렇게 생각한 승윤은 다시 손을 내려놓고 뭐 마려운 강아지처럼 온몸을 베베꼬기 시작했다.
〃 저, 태현아. 〃
〃 ... 〃
〃 태현아. 〃
〃 왜? 〃
한참 어깨를 들썩 거리며 승윤이 안중에도 없던 태현이 승윤의 나지막하게 부르는 소리에 약간의 귀찮은 표정으로 몸을 살짝 틀어 승윤을 응시했다. 그 사이 승윤의 시선은 태현의 풀어헤친 교복와이셔츠 틈으로 보이는 하얀살결을 본능적으로 쫓았다.
〃 미쳤어! 〃
승윤은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 형? ' 하고 뭐냐는듯한 표정을 짓는 태현을 보고 승윤은 ' 이러지 말자, 안되는거잖아 강승윤. ' 하곤, 마음속으로 열번. 아니 백번도 더 연습한 말을 꺼내기위해 입을 움직였다.
〃 나 내일 … 〃
〃 어어 ‥형, 미안한데 여자친구한테 연락이와서 나가봐야 할 것 같아. 중요한 이야기야? 〃
휴대폰액정을 초조한 시선으로 흘끔거리는 태현을 붙잡기엔 승윤은 생각보다 조금 많이 겁이많았다.
〃 아니, 나중에 이야기하자. 태현아. 〃
〃 미안해, 형. 연락할게. 〃
와이셔츠를 여민 태현이 백팩을 어깨에 대충 걸친채로 쏜살같이 승윤의 집을 나섰다. 순식간의 일이였다.
태현이 딱히 말이 많은편이 아니여서 집안에 정적이 맴도는건 아무렇지 않았지만, 쇼파부근에 아직 태현의 온기가 남아있는건 승윤을 조금 쓸쓸하게 했다. 승윤은 태현이 앉아있던 쇼파부근을 하얗다 못해 창백한 손끝으로 쇼파를 쓸어 내렸다. 태현아, 형 내일 미국으로 가는데.
승윤의 갈색눈동자가 테라스에 있는 조명에 반사되어 일렁거렸다. 승윤은 오히려 잘된일이라고 생각했다.
차라리 태현이가 모르게 이곳을 떠나버리면….
승윤은 자신의 방안으로 들어가 떠나기로 결심한 날 이후로 틈틈히 챙겨놓은 캐리어를 신발장 곁으로 끌고 나왔다. 내일 아홉시니깐,
적어도 새벽일찍 출발해야했다. 내가 갑자기 미국으로 갔다는 소식을 들은 태현이는 어떨까.한동안은 갑자기 사라진 사촌형을 조금은 그리워하겠지? 어쩌면, 그냥 학원 땡땡이치고 몸을 녹일 은신처가 사라졌다는 생각에 내게 앙심을 품을지도 모르는 일이며, 최악의 경우는 여자친구와의 달달한 연애를 하느라 나 따위는 신경도 안쓸 수도 있다.
승윤은 괜한 생각까지한 자신을 책망하며 내일 입을 옷을 침대 옆 간이탁자에 올려두었다.
그동안 목표한 대학에 진학하여 꾸준히 유지한 성적이 조금 아쉽긴 했지만 그래도, 난 더이상 이곳에 있을 수 없다.
승윤은 휴대폰 홀드버튼을 눌러 익숙한 손짓으로 사진첩을 들어갔다. 몇안되는 사진은 온통 태현과 찍은 추억이 담겨져 있었다.
자신도 모르게 올라가있는 입꼬리를 억지로 끌어내리며 화면속 태현을 바라본다. 어쩌면, 내가 널 한참이나 그리워 할것이다. 어쩌면이 아니고, 난 벌써 널 그리워 하고있는거 같다.
승윤은 휴대폰을 내려놓고 이 혼란스러운 일의 시발점이 된 한달전을 회상했다.
그 날은 초 겨울치고 한 여름처럼 햇빛이 강하게 내리쬐던 이른 오후였다. 변덕스러운 날씨에 승윤은 예민한 상태였다.
그걸 알리가없는 태현은 오늘도 학원 땡땡이 쳤다며 개구지게 웃으며 능글맞게 승윤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그런 태현의 뒷통수를 아프지 않을정도의 세기로 내려친 승윤이 태현의 백팩을 쇼파옆에 내려두며 말했다.
' 너 자꾸 이러면 이제 정말로 고모한테 다 말할꺼야. '
평소같았으면 학원을 땡땡이 친것에 대해 언급도 안하던 승윤은 괜히 태현에게 날씨에 대한 화풀이를 했다.
〃 에이, 형. 진심아니지? 〃
〃 진심이야. 〃
〃 혀엉…. 〃
축쳐진 눈썹으로 잔뜩 울상짓는 말간 얼굴에 그제서야 태현이 중학생인걸 실감나게 해주었다. 또래에 비해 큰 키, 범접할 수 없는 특유의 분위기로 성숙함을 물씬 풍기던 모습은 온데간데 없는 태현을 바라보던 승윤은 아직 애긴 애구나, 라는 실없는 생각을했다.
너 그렇게 울상 지어봤자 하나도 안불쌍해, 저리가.
오늘따라 저기압인 승윤을 그제서야 눈치챈 태현이 얌전히 쇼파에 앉았다. 승윤은 고개를 비스듬히 돌려 태현을
내려다 보았다. 저 머릿속에서 무엇을 생각하는지 안봐도 뻔했다. 승윤을 어떻게 설득시킬지 고민하는게 틀림없으리라.
〃 미안, 오늘 날씨때문에 조금 예민해져서 그런거야. 말씀안드릴게, 그래도 너무 자주 빼먹지는마. 〃
결국, 아직 어린 태현을 위해 승윤은 먼저 사과의 손길을 내밀었다. 태현은 그제서야 꾹다물었던 입술을
벌리며 승윤을 장난식으로 원망했다. 근데, 형. 솔직히 방금 화냈을때 그표정 화나도 안무서웠 ‥ 아! 때리지마, 잘못했어.
티비에서는 한참전에 방영한 드라마를 재방송하고 있었다. 딱히 볼 것이 없는 평일 오후였기 때문에 태현과 승윤은
말없이 드라마를 보고있었다. 자신을 배신한 줄 알았던 연인이 자신을 위해 힘든 생활을 하고있었다는것을 알게된 남자가
여자의 여린어깨를 말없이 껴안았다. 그러자 여자는 그동안 참아온 울분을 참지못하고 아이처럼 울었다. 한참이나
울던 여자와 남자의 눈이 마주치고 미묘한 분위기속에 둘은 입을 맞추었다.
아아, 진부해 ‥.
승윤은 속으로 생각했다.
〃 형. 〃
〃 응? 〃
〃 ..키스 해봤어? 〃
갑작스러운 태현의 질문에 승윤은 집어먹던 과자를 괴롭다는듯 입에서 뱉어냈다. 태현은 다급하게 승윤의 등을
두드려주었다. 야, 너 질문이 뭐 그래..!
〃 궁금해서, 난 안해봤거든. 〃
정말 궁금한지 태현의 까만 눈동자가 흑요석처럼 반짝였다. 호기심 왕성한 중학생이여서 그런가 … .
부끄럽게도 승윤은 첫키스는 무슨, 첫 뽀뽀도 해본적이 없었다. 준수한 외모를 가진 승윤은 여자들의 최고의 관심사였지만,
애석하게도 승윤은 여자에게 별 관심이 없었다. 그래도, 쪽팔리게 안해봤다고는 못하겠다.
〃 해봤지. 〃
〃 정말? 어떤 느낌이야? 〃
〃 별 느낌 없어. 〃
〃 아아 … 〃
태현은 실망한듯 승윤을 바라보던 시선을 거두었다. 그 틈을타 승윤은 태현몰래 한숨을 내쉬었다.
한참이나 이미 끝난 드라마의 예고편을 보던 태현이 갑자기 짝소리나게 박수를 쳤다.
〃 그럼 나 한번만 해보자. 〃
〃 뭘? 〃
〃 키스. 〃
뭐? 누구랑? 이라는 소리도 하기전에 승윤은 태현의 말랑한 입술에 자신의 입술이 먹혀버렸다는걸 깨달았다.
깜짝놀란 승윤은 온몸이 굳어서 아무행동도 취할 수 없었다. 내가 지금 태현이랑, 태현이랑?
한번도 키스를 안해봤다는 태현의 말은 거짓이였는지 태현은 승윤의 혼이 나갈정도로 능숙하게 혀를 굴렸다.
승윤도 태현을 체념하고 어색하게 허공에서 흔들거리는 자신의 손을 꽉쥐었다. 절대 멈추지 않을것같던 기나긴
키스는 태현의 휴대폰 벨이 울림으로서 끝을 맺었다. 태현은 승윤을 묘한 눈으로 바라보더니 전화를 받지도않고
밖으로 뛰쳐나갔다. 순식간에 일어난 상황에 승윤은 어지러움을 느끼며 바닥에 드러누웠다. 상기된 볼의 열이
온몸에 퍼지는듯 했다.
〃 씨발 …. 〃
어색한 욕짓거리가 승윤의 입에서 뱉어져나왔다. 씨발, 정말 씨발!
태현을 향한 욕이아니였다. 갑자기 자신의 입술을 먹어버린 사촌동생에게 하는 욕이아니였다.
승윤은 급한 걸음으로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곤 헐렁한 바지자락을 내렸다. 승윤의 하얀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흥분했다. 여자의 풍만한 가슴을 보아서도 아니고 오직 태현의 키스때문에.
솔직히 딱 죽을만큼 황홀했다. 녀석의 혀가 내 입천장을 쓸어내릴때 짜릿함은 아직도 생생하게 느껴지는 것만 같았다.
승윤은 그날 밤 혼란스러운 자신의 마음과 생각을 정리하며 자기위로를 했다. 새벽 5시즈음, 승윤은 피곤한 눈을 감으며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하루아침의 일이 아니였다. 승윤은 꽤 예전부터 태현을 좋아해왔다는걸 깨달았다. 그동안 간간히 스킨십을 하며 이유없이 가슴이 떨렸던 이유를 드디어 깨닫게 되었다. 그럼,혹시 ‥
태현이도 날 좋아하고 있는건 아닐까? 그래서 내게 키스한 걸지도 몰라.
마침, 다음날이 공강이였던지라 승윤은 여전히 방안에서 태현을 생각하고 있었다. 좋아한다.사촌동생을.
죄책감이 가장 컸다. 남자를 좋아하는것도 비정상인데 가족을 좋아한다는건 있을 수 없는 일이였다. 그래도,
어제의 키스로 확실해진 자신의 마음을 접어버리기엔 너무 컸다. 마른세수를 하던 승윤이 도어락이 열리는
소리에 몸을 살짝 떨었다. 분명 태현일 것이다.
〃 형 ‥. 〃
〃 ... 〃
〃 어제 고마웠어. 〃
고마웠다니? 뜬금없는 말이였다. 미안해, 좋아해도아닌 고마웠다라니 …
승윤의 눈이 의아한듯 동그랗게 떠졌다. 태현은 승윤이 앉아있는 침대에 빠른걸음으로 걸어왔다.
〃 키스했어. 〃
〃 어? 〃
태현이 웃었다. 승윤이 가장 좋아하는 예쁜 미소로. 차가워보이던 인상이 어린아이마냥 사랑스러워보이는 그 미소.
그리고, 그 입술이 코랄 빛을 띠고 있다는것을 깨달은 순간, 승윤은 울컥차오르는 눈물을 참아야했다. 이름 모를 여자의 립스틱 자욱이 분명했다.
〃 미안해, 기분 많이나빴지? 근데 무작정 걔 한테 키스해서 못하면 쪽팔리잖아. 〃
〃 ... 〃
〃 형 키스해도 아무느낌 없다고했잖아. 그냥 벌레가 붙었다가 떨어졌다고 생각해, 아 ‥그건 더 싫은가? 〃
결론은 어제 그 키스가 여자에게 키스하기위해 했던 연습이였다는 것이였다. 결코 태현은 날 사촌형 이상으로 생각하지않는다.
가슴이 미어졌다. 호흡이 가파르게 뱉어졌다. 태현을 보는게 괴로워졌다.
〃 형, 고마워. 〃
그래 ‥.
뺨이라도 내려치고 싶었지만, 사랑스러운 사촌동생을 내려칠 수 있을리 없었다.
나 데이트 있어서, 간다. 형 기분나빴다면 정말 미안해 !
힘차게 나가는 태현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승윤은 그날 하루종일 배게맡에 머리를 파뭍고 소리없이 울었다.
그리고 결심했다. 더 깊은 감정이 생기기전에 한국을 떠나기로.
* * *
출입구에 달아놓은 일본식 풍경이 아기자기한 소리를 내며 문이열렸다가 닫힘을 알렸다. 가벼우면서 촐랑거리듯 걷는 이 발소리는 승훈의 발소리였다. 승윤은 고개를 숙이고 살짝 웃었다. 곧 그 발걸음은 승윤의 자리에서 멈추었다. 아, 오늘도 가져왔는가보다.
" 윤, 오늘도 베이컨을 안넣은 샌드위치에요. "
" 신경써줘서 늘 고마워요, 승훈씨. "
승훈은 승윤의 반응이 탐탁치않았다. 베이컨없는 샌드위치는 먹을것도없이 맛없을 텐데, 승윤은 아무말 없이 고맙다며 잘도 먹었다. 저런 착하고 멍청한 인간같으니라고, 더 괴롭히고 싶어진 승훈은 눈썹을 일그러트렸다.
〃 윤,그 맛도없는걸 왜 먹고그래요? 이승훈 너도 진짜 못되먹어서는! 〃
〃 맛있어요, 진우씨도 먹을래요? 〃
〃 보기만해도 토나올것 같아요. 윤이나 먹어요. 〃
진우는 그닥 위협적이지 않은 눈초리로 승훈을 노려보았다. 내가 뭘? 어깨를 들썩이던 승훈이 자신의 자리로가 앉았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승윤은 퍽퍽하기 짝이없는 샌드위치를 크게 한입물었다. 진우의 말대로 더럽게 맛이없었다.
그래도, 저사람 아침마다 이렇게 샌드위치를 챙겨와 주는걸보면 자신을 좋아하진 않더라도 싫어하지도 않을거다. 승윤은 좋게 생각하기로 했다.
한국을 떠난지 5년이 지났다. 충동적으로 결정한 미국생활이 물론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언어적 문화적 벽이 생각보다 꽤높았지만, 명석한 승윤은 금방 적응하여 대학졸업과 동시에 근처에있는 의류업체의 마켓팅부서에 취직하게되었다. 어찌보면, 승윤은 참 운이 좋은 사람이였다.
태현을 잊었다고 하면 거짓말이였다. 5년이 지난 태현은 어떻게 변했을지 모르겠지만, 이따금씩 승윤의 꿈속에서는 여전히 중학생인 태현이 웃으면서 승윤에게 진하게 입을 맞추고는 사라졌다. 그 꿈에서 깨어나면 승윤은 아직도 약해빠진 자신의 마음을 접어보려 애를썼다. 보고싶었다, 5년이 지난 태현의 모습이 궁금했다. 하지만, 녀석을 다시 마주하게 된다면‥자신이없었다. 좋아하지 않을 자신이 승윤에겐 없었다.
〃 윤, 인사과에서 당신을 찾고 있어요. 〃
〃 네? 인사과요? 〃
인사과에서 날 찾을 일이라, 설마 나 잘리는건가?
나 아직, 저번달에 구입한 롤렉스시계 할부금이 남았는데!
승윤의 갈색눈동자가 불안한듯 흔들렸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진우가 작게 웃으며 승윤의 어깨를 토닥였다.
〃 내 생각엔, 인사과에서 당신에게 부탁할 일이 있는거 같더군요. 〃
〃 부탁할 일이요? 〃
의아한듯 진우를 바라보자 진우의 눈꼬리가 곱상하게 접히며 승윤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 이번에 한국인 신입사원이 들어왔다고 들었어요. 영어를 못하지는 않지만, 아직 회사환경에 서툴러해서 당신이
도와줬으면 하는거 같아요. 〃
그제서야 안심이된 승윤이 살짝 기대감에 부푼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입사한지 3년만에 후배가 생긴다는것 자체가 설레였다. 그것도 한국인이라니.
잘해줘야겠다고 승윤은 생각했다.
* * *
〃 반갑습니다. 마켓팅부서 강승윤이라고 합니다. 〃
〃 처음뵙겠습니다. 신입사원 송민호라고 합니다. 〃
훤칠하고 남자답게 잘생긴 민호의 외모에 승윤은 감탄을 금치못했다. 같은 남자가봐도 정말 잘생겼다. 회사에 적응하기위한 한달동안 민호를 도와줄수 있겠냐는 인사과 부장의 말에 승윤은 고민할것도 없이 위아래로 고개를 끄덕였다. 승윤은 사람좋게 웃어보이는 민호를 마주하고 같이 웃어보였다.
살짝 구리빛이 도는 피부와, 까만 눈동자와 까만머릿결. 승윤의 하얀 얼굴이 살짝 상기되었다. 민호는 생각보다 훨씬 재밌고 편안한 사람이였다. 그리고 상황판단이 빨라서 한번 가르쳐준일도 능숙하게 해냈다.
민호와 돌아다니다가 여유가 생기면 한국이야기를 하곤했다. 민호는 한국에서 알아주는 대기업의 둘째아들이였다. 처음 승윤은 그소리를 듣고 너무 놀래서 먹고있던 버블티를 뿜고말았다. 알알이 떨어진 타피오카 열매를 보며 승윤은 쥐구멍에 숨고싶어졌다. 그모습을 보던 민호가 자신에게 귀엽다고 하자 승윤은 더욱 창피해졌다. 민호는 부모님의 반대를 무릎쓰고 자신이 원하는 패션계 계열의 회사에 취업하기위해 엄청나게 노력했다고 한다. 집안배경에 휘둘리지않고 자신의 꿈을 위해 노력한 민호를 멋있는 사람이라고 승윤은 생각했다.
〃 승윤씨는 어떻게 미국까지 오게됬어요? 〃
보통 회사사람들은 승윤을 윤이라고 부르지만, 민호는 제외였다. 승윤이라고 불러주는 사람이 오랜만이라 승윤은 민호가 자신의 이름을 불러주는것을 꽤 좋아했다.
저는….
사촌동생을 좋아하게 되서 도망치다시피 미국으로 왔으며, 패션계에 관심이 많지는 않았지만 자신의 적성과 맞는
마케팅부서로 오게되었다고는 차마 민호에게 말 할 수없었다. 승윤은 문득, 꿈이 없는 자신이 창피해졌다.
〃 승윤씨 전화온거 같은데 ‥ 〃
〃 아, 죄송해요. 잠시만 실례할게요. 〃
진동을 못느꼈던 승윤이 민호의 말에 다급하게 자리에서 일어나서 전화를 받기위해 통화버튼을 누르려던 손동작을 멈칫했다. 국제전화였다. 평소 부모님은 국제전화가 아닌 인터넷 전화로 자신에게 연락해왔기 때문에 승윤은 미심쩍어졌다. 승윤은 망설이던 손을 움직여 통화버튼을 눌렀다. 부모님아니면 전화올 곳이없기 때문이기도 했다.
- 승윤이니?
〃 … 고모? 〃
승윤의 손이 저절로 입가에 머물었다. 손톱끝이 이미 못나게 갈라져있었다. 물어뜯으면 안돼는데.
- 승윤아, 잘 지내고 있는거지? 〃
〃네, 고모. 연락 못드려서 죄송해요. 〃
- 죄송은 무슨. 그나저나, 엄마한테 연락받았지? 〃
〃무슨 연락이요? 〃
- 어? 못받았니?
잠시만요.
승윤은 어젯밤 피곤해서 열어보지 않았던 엄마의 메세지를 확인하기위해 다급하게 손을 움직였다. 왠지모를 불안한 예감이 들었다. 손이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 내일 라구아디아 공항으로, 4시까지 태현이 픽업좀 해줘. 태현이가 그쪽에 있는 대학에 다니게 됬어.
아직 살 집도 못 구했다고 하니깐, 당분간 니가 좀 보살펴 주고. 전화 안받길래 문자 남길게 승윤아.
밥 잘챙겨먹고 조만간 엄마도 들릴게. ]
승윤은 하마터면 떨어트릴뻔한 휴대전화를 간신히 붙잡았다. 그런 승윤을 약간 불안하다는 듯이 민호가 바라보았다.
〃 ‥고모, 태현이. 〃
승윤은 아직 새 것의 티를 벗지못한 손목시계로 시간을 확인했다. 3시32분. 30분가량 남았다. 라구아디아 공항까지
적어도 40분은 걸렸다. 승윤의 마음이 다급해졌다.
- 연락 이제 받은거야? 미안해서 어떡하지.. 근데 태현이가 길을 아예몰라서, 승윤아 부탁좀할게. 〃
〃저, 고모. 〃
- 태현이 번호 문자로 보내줄테니깐 잘 좀 부탁할게. 생활비는 내가 통장으로 붙여줄테니깐 걱정말고.
무어라 승윤이 말하기도전에 전화가 다급하게 끊겨졌다. 승윤은 이미 초기의 바탕화면으로 돌아온 휴대폰을 바라보며 공황상태에 빠졌다. 민호가 그런 승윤의 모습이 걱정이됬는지 빠른걸음으로 승윤에게 다가왔다. 무슨 일 있어요? 승윤씨, 승윤씨!
민호씨 어떡해요.
그 아이가, 도망치면 괜찮아 질 줄 알았는데, 그 아이가 …
승윤은 하얀 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감쌌다. 이젠, 승윤도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일이였다.
민호에게 대충 상황을 말한 뒤 승윤은 급하게 떠날 채비를하고 차에 올라탔다. 일단, 낯선 타지에서 태현을 책임져야했다. 공항으로 가는내내 승윤은 유턴을 할 생각을 수십번도 더 했지만 결국 공항에 도착했다. 떨어지지 않는 걸음으로 승윤은 수많은 사람들이 정신없이 움직이는 공항내부에서 태현을 찾아다녔다. 지금쯤이면, 도착하고도 남았을텐데. 태현을 닮은 사람을 찾을 수가 없었다. 121번 게이트라고 했는데.
〃 승윤이 형? 〃
순간 뒤에서 들리는 미성에 승윤의 몸이 굳었다. 웅성거리는 소음속에서도 또렷히 들리는 그 익숙한 미성은 태현일 것이라, 승윤은 고개를 돌리는게 겁이났다. 그런 승윤을 모르는 태현은 승윤이 아무런 행동없이 굳어있자 승윤의 앞으로 걸어왔다.
태현의 발만 물끄러미 바라보던 승윤이 고개를 들었다. 검은 눈동자가 승윤을 향해 있었다. 꿈이 아니였다. 태현이 미국에 왔다.
〃 오랜만이네, 형. 보고싶었어. 〃
중학생때보다 말 할 수없을만큼 어른스러워지고, 지나가던 사람들도 한번씩 다시 뒤돌아서 보게 될 정도로 치명적인 아우라를 가진 태현이승윤의 품에 안기듯 기대었다. 그 찰나, 승윤은 태현 몰래 눈물을 떨구었다. 아직도 가시지 않은 죄책감의 눈물이였다.
태현아, 형이 널 아직도 많이 좋아하나봐.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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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한 공 강승윤이 급 쓰고싶어져서 써내려간 근본없는 글 (ㅠㅠㅠㅠ)뜬금없는 시간에 연재하던 글 다 내버려두고 뜬금없는 글을 올렸습니다. 연재글도 간간히 적고있으니 연중은 걱정마세요!(작가의 게으름이 문젭니다. 글 흐름이 어색하거나 오타는 차차 수정하겠습니다 :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