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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준비는 다 하였느냐? "
" 예, 스승님… "
" 그럼 가자꾸나. "
해가 뜨기 전 아침 일찍 일어나 윤기와 함께 빈국을 떠날 준비를 했다. 어젯밤 태형의 정체를 알게 된 나는 잠자리에서 한참을 뒤척이다 결국 눈 한번 제대로 붙이지 못한 채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게 되었다. 밤을 지새운 건 나뿐만이 아닌 듯싶었다. 윤기의 눈에 졸음이 잔뜩 묻은 모습이 확연히 보였기에. 하지만 잠을 제대로 청하지 못한 건 우리 둘 뿐만이 아니었다. 환국으로 함께 가는 동행인 태형의 눈도 붉게 충혈되어있었다. 두 사람의 그런 모습에 내가 알면 안 될걸 괜히 알아버렸나, 싶은 생각이 뒤늦게 들었다. 미안함에 고개를 숙여 땅만 쳐다보는데 어느새 내 곁으로 온 태형이 말을 걸어왔다.
" 어젯밤 잠시라도 눈을 못 붙인 듯 보입니다. "
" 아, 예. 조금 놀란 마음이 꽤 오랫동안 진정되지 않았기에… "
" 환국으로 가는 동안 마차 안에서 좀 쉬도록 하십시오. "
" …저보단 전하께서 숙면이 필요해 보입니다. "
" 전 이래 봬도 사내이기에 아직은 거뜬합니다. "
" …저는 사내가 아니랍니까? "
나의 물음에 아… 라며 말을 잇지 못하더니 이내 하하 거리며 웃음을 지어 보이는 태형이다.
" 그런 뜻이 아니었는데… "
뭐라 말을 더 하려던 태형의 말은 윤기의 등장으로 인해 묻히게 되었다.
" 준비는 다 되셨습니까? "
" 난 이미 다 되었다네. 두 사람의 물건은 다 챙긴 것인가? "
" 예. "
" 알았네. "
나한테는 존댓말 하면서 민윤기한테는 하대라니…
뭔가 기분이 산란했다.
" 그럼 그만 출발할까요? "
" 아. 잠시만 민화백. "
" 예. "
" 내 누구 좀 만났다 와야 할 것 같은데 발하는 시각을 조금 늦추면 안 되나? "
" 아… 그러십니까? "
" 많이 늦지는 않을 걸세. 말 한 필 빌리면 일각 정도? "
" 기다리겠습니다. 다녀오십시오. "
윤기의 대답에 시선을 다시 내 쪽으로 돌린 태형은 씩 웃으며 농담을 던져왔다.
" 저 없는 틈에 먼저 가시면 아니 됩니다? "
" 제가 어찌 감히 그럴 일을…! "
농담이라지만 내게 있어선 감히 엄두도 날 수 없는 행동이었기에 화들짝 놀라며 대답하자 태형은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그리고 곧 급하게 한 마리의 말위에 올라타더니 우리가 가야 할 방향 반대쪽을 향해 갔다. 그런 태형을 보고 있던 나는 마차에 올라가라는 윤기의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 잠시만요 스승님! "
" 왜 그러느냐. "
" 저도 잠시만 어디, 좀… 다… "
잠깐 지민을 만나러 갔다 오려 했던 나는 점점 굳어가는 윤기의 표정에 더는 말을 꺼내지 못했다.
" 어디를? "
" …그것이… 뒷간… "
결국 나는 핑계를 댈 수밖에 없었다. 나의 대답에 석연치 않은 표정을 짓던 윤기는 갔다 오라며 뒤로 돌아섰다. 그런 윤기의 뒷모습을 보다가 뒷간에 가는 척하다 주막에 들어가 객정의 주인장에게 다가갔다.
" 저기요… "
" 예, 화공 나리. 어쩐 일이옵니까? "
" 부탁이 있습니다. "
" 말씀만 하십시오. "
주인장의 말에 윤기의 눈치를 보던 나는 품 속에 넣어뒀던 돌돌 말린 도화지를 건네주었다.
" 혹시 이곳에 어떤 나리가 오시게 된다면, 꼭 좀 전해주세요. "
" 어떻게 생기신 나리입니까? "
" 그… 귀엽게 생겼다고 해야하나…? 이름은 지민이에요. "
지민이라는 말에 갑자기 두 눈이 커지는 주인장이었고, 그런 주인장의 행동에 왜 그러냐고 물었다.
" 아, 아니… 아니 옵니다… 이 도화지를 그 나리께 전해주기만 하면 됩니까? "
" 꼭 좀 부탁드립니다. "
" 알겠습니다. "
주인장의 말에 고맙다는 말을 끝으로 뒤로 돌아 다시 윤기에게로 갔다.
그런 그녀의 뒷모습을 보고 있던 주인장은 중얼거렸다.
" 설마… 전하는 아니겠지… 그냥 동명이인이겄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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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화나무 밑에 홀로 서있는 지민. 그런 지민의 곁으로 그의 호위무사가 다가왔다.
" 전하. "
" 무슨 일이냐. "
" 환국의 6황자님께서 찾아오셨습니다. "
태형이 찾아왔다는 말에 지민은 뒤로 돌았고, 그의 뒤에 있었던 태형의 모습을 발견한 지민은 살며시 웃어 보였다.
" 여기 있을 줄 알았어. "
웃으며 다가오는 태형을 보던 지민은 고개를 돌려 다시 매화나무를 올려다봤다.
" 여전히 매화나무는 향이 좋네. "
" 네가 이곳으로 곧바로 찾아왔다는 건 이제 떠날 시간이 됐다 이건가? "
" 귀신같이 알아맞히네. "
지민의 등을 토닥이며 기특하다는 듯이 웃는 태형. 그런 태형을 올려다보며 묻는 지민이다.
" 환국으로 돌아가면 뭐 할 거야? "
" … "
" 폐하를 찾아뵐 거야? "
" 폐하라… "
홀로 중얼거리던 태형은 지민을 내려다보다 고개를 들어 매화나무를 올려다봤다.
" 그럴까 말까 고민 중이야. 내가 먼저 찾아뵙지 않는 한 영원히 모르시고 계실 걸. "
" 고민은 무슨. 바로 찾아뵈어야지. "
" … 너는 원망스럽지도 않냐? "
" 원망스러울게 뭐 있어. "
" 환국이 이국을 멸하게 만들었잖아. "
" 우리가 힘이 부족한 것도 있고, 당시에는 방심하고 있었잖아. "
" 쓸데없이 착한 것. "
태형의 말에 지민은 씩 웃었고 그런 그를 보던 태형은 조심스럽게 물었다.
" 혼인… 할 거냐? "
" … "
" 아니면 아직도… 그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어? "
여전히 조심스러운 태형의 물음에 지민은 피식 웃었다.
" 응. 기다리고 있어. "
" … 이만큼 기다렸으면 소용없는 거 아, "
" 드디어 만났어. "
" 어? 뭐라고? "
지민의 대답에 전혀 예상치 못했다는 듯이 당황스러움이 역력한 모습의 태형이었다.
" 만났다고? 어디서, 어떻게? 언제? "
" 진정해 좀. 다 얘기해줄 테니까. "
" … "
" 만난 건 얼마 안 돼. 며칠 전에 그 애가 머물고 있는 집에서 만나게 되었어. "
" 진짜… 그 애야…? "
" 응. 똑같이 생겼어. "
" 그럼 그 애와 혼인할 거야? "
혼인할 거냐는 태형의 질문에 금세 얼굴이 어두워지는 지민이다.
" 혼인하기는… 아직 이른 것 같아. 그리고… "
" … "
" 이 상태로 유지된다면 혼인 자체가 힘들 것 같고. "
씁쓸하게 말하는 지민의 모습에 태형은 아무 말도 못했다. 그런 태형의 모습을 확인한 지민이 화제를 전환시켰다.
" 그나저나 너의 그 초련은 어떻게 됐어? "
" 응? 초련? "
" 전에 찾을 사람이 있다고 했잖아. 그게 초련일지도 모르겠다고 했고. "
" 어, 음. 일단 만나기는 했어. "
태형의 말에 지민은 누구보다도 기쁜 모습을 내보였다.
" 만났어? 언제 만났어? 어떻게? "
태형은 그전에 느꼈던 비슷한 상황에 웃음을 터트렸다.
" 너나 나나 똑같네. "
" 그런 거 말할 때야? 초련이랑 어떻게 된 건데? "
" 만난 건 꽤 됐어. 장국에서 보게 됐거든. 근데 그 사람이 초련일지 아닐지 긴가민가했는데 이번에 다시 보게보니까 깨닫게 되더라. "
" 초련이 맞았구나? "
" 응. 근데 상대가 조금 힘들어. "
" 천하의 김태형도 초련을 상대로는 얻기 힘들구나? "
" 웃기지도 않은 소리 마. 아직 시작을 못하고 있을 뿐이야. 그리고 누가 들으면 내가 천하의 여자를 다 꼬시는 놈인 줄 알겠어? "
" 농이다 농. "
서로의 대화에 웃음을 잃지 않던 태형이 급하게 뭔가 떠오른 듯 말했다.
" 아차, 나 이제 가야겠다. "
" 벌써? 아직 일출 전인데? "
" 함께 가는 동행인이 있어. 일각 안에 돌아가겠다고 약조했거든. "
" 그럼 가야겠네. 근데 누구와 가는데? "
" 장국의 아주 유명한 화백과 그의 제자. "
" 아. 그 민윤기라던가? 어떻게 생긴 자인지 궁금하구만… "
" 다음에 내가 서로 소개해줄게. 그때 친해져. "
" 그래. 오래 기다리고 있지 않을 거야. "
" 오랜만에 봐서 즐거웠다. "
" 나도 즐거웠어. "
서로 인사를 나눈 지민과 태형은 손인사를 마지막으로 등을 보였다. 그런 태형의 뒷모습을 지켜보던 지민은 제일 먼저 그녀를 떠올렸다.
" 아직 가진 않았겠지… "
걱정이 쌓인 지민은 그녀가 머물고 있는 집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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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머물고 있는 객정으로 온 지민. 꽤 먼 거리에 있던 탓에 그가 걸어오는 길에 보이지 않았던 해는 어느새 조금씩 얼굴을 비추고 있었다. 객정 바로 앞에 오니 자신이 너무 일찍 온 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미쳐있던 찰나.
" 뉘십니까? "
주막에서 막 나오던 주인장이 지민을 발견하였다. 누구냐는 주인장의 말에 지민은 몸을 살짝 돌리며 자신의 정체를 숨겼다. 그런 지민의 모습에 뭔가 이상함을 느끼던 주인장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 혹시… 여기 머물고 계셨던 화백님들을 찾아오셨습니까? "
" 화시… 안에 있습니까? "
" 화시? 그게 누군지는 모르겠고… 여하튼 간에 여기 머물고 계셨던 두 분께서는 아침 일찍 해뜨기 전에 떠나셨습니다. "
주인장의 말에 지민은 두 눈을 크게 뜨며 되물었다.
" 떠나? 떠나다니, 언제 떠났는가! "
" 말씀드렸잖습니까… 해 뜨기 전에 떠나셨다고… "
갑자기 달라진 지민의 태도에 주인장은 지레 겁을 먹고 목소리가 점점 낮아졌다. 주인장의 말에 지민은 할 말을 잃었다. 오늘 떠날 거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설마 그녀가 이렇게 이른 아침에 떠날 줄은 몰랐던 지민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자신을 한 번이라도 만나주고 떠날 줄 알았는데 그녀는 그와 만나기로 한 전날 밤에도 나타나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지민은 가슴이 아려왔다.
" 저기… 혹시 여기서 머물던 화백님들 중 어린 화백님을 찾아오신 겝니까? "
" … 그렇소. "
" 그럼, 실례지만 성함을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
주인장의 모습에 지민은 신경을 세워 경계해 보였다.
" 그건 왜 물어보시나. "
" 그것이… 사실 그 어린 화백님께서 제게 물건을 맡기셨습니다. 혹여 이곳에 어떤 분이 찾아오시게 된다면 전해주시라고… "
주인장의 말에 뭔가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느낌을 받은 지민이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주인장에게만 들릴 정도로 말했다.
" 혹시, 이곳에 찾아오는 자의 이름이 무엇인지 물어봐도 되겠는가? "
" 그것이… "
" 말하게. "
" …지민님이라 하셨습니다. "
" ……그 지민이라는 자가 바로 나네. "
" 예…? "
" 화백이 전해주라는 게 뭔가? "
" … "
지민의 말에 마른침을 삼키던 주인장은 조금 켕겼지만 이내 뒤돌아 자신을 따라오라고 했다. 주인장의 뒤를 따라 방으로 들어가니 서랍장에서 돌돌 말린 도화지를 꺼내 지민에게 건네는 그녀였다. 그리고 곧 그녀가 방을 나가고 지민은 말린 도화지를 조심스럽게 펼쳐보았다. 펼친 도화지에는 매화나무가 그려져있었고 그 옆에는 짧은 글귀가 남겨져있었다.
' 우 신 연 조 (遇信連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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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국을 떠난 지 어느덧 엿새가 지나고 이레를 앞두고 있었다.
환국이 생각보다 멀구나… 멀어도 이렇게 멀 줄은 생각지도 못했는데… 긴 여정에 지친 나는 그만… 멀미가 났다.
지친 기색으로 마차 안에 눕다시피 벽에 기대어있는데 그런 내게 걱정기가 묻은 윤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괜찮은 것이냐? "
윤기의 물음에 제대로 대답할 기력이 없어 신음 비슷한 괴상한 소리를 냈다.
" 이예에에에에…… "
내 대답에 아무 말 없이 앉아있던 태형이 움직이고 있던 마차를 세우게 했다.
" 잠시 여기서 쉬다 갑시다. "
" 어으… 안 그러셔도… 되는데… 저는 괜찮… 습니…다아…… "
" ……전혀 괜찮지 않아 보입니다. "
" 아뇨 괜찮, 우욱…! "
괜찮다는 말과는 상반되게 급하게 마차에서 내려 조금 떨어진 곳에서 속을 게워냈다. 별로 먹은 것도 없던 탓에 나온 건 쓰린 위액뿐이었다.
" 으으읅… 여기서까지 멀미냐… 이런 웬수 같은… "
주변에 있던 풀을 조금씩 뜯어 토해낸 위액을 덮으며 홀로 욕을 씹어댔다. 그런 내 쪽으로 오려는 태형과 윤기의 목소리가 들렸다. 괜히 민망한 모습 보여주기 싫어서 자리에서 일어나 입을 가리며 그들 곁으로 걸어갔다.
" 괜찮으냐? 속이 많이 좋지 않은 것이냐? "
" 여기서 조금만 더 가면 주변에 약방이 있는데 힘낼 수 있겠습니까? "
걱정기 가득한 모습의 두 사람을 보다가 입을 가리고 있던 손을 스륵 내리며 살짝 웃어 보였다.
" 괜찮습니다. 속 한번 게워내니 한결 나은듯합니다. "
내 말에 한숨을 내쉬는 윤기. 그런 윤기에게 눈길이 갔다.
날 걱정해주는 건가?
그런 생각에 괜스레 기분이 좋아졌다. 그때 어디선가 물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에 귀가 쫑긋해지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낯선 내 행동에 왜 그러냐며 태형이 물어왔고 나는 그런 둘을 무시한 채 물소리가 들리는 곳을 찾기 시작했다. 물소리라기엔 소리가 조금 거센 듯했다. 폭포?
마차가 세워진 곳과는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위험한 낭떠러지가 보였고 그 밑으로 폭포수가 시원하게 쏟아지고 있었다. 그 모습이 괜한 장관이 아니어서 언제 속이 안 좋았냐는 듯이 울렁거림이 확 사라졌다. 서둘러 윤기와 태형이 있는 곳을 향해 다급하게 외쳤다.
" 전하, 스승님! 여기 밑에 폭포가 있습니다! 되게 예쁩니다!! "
신난 내 모습에 태형과 윤기가 서로 바라봤고, 다시 날 쳐다본 윤기가 살포시 웃었다.
" 저 녀석 또 시작인가 보군요. "
" 어째 신난 모습인데? "
" 저 모자란 제자는 한번 꽂힌 것이 있다 하면 그전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다 무시하고 곧장 저런 모습을 보이곤 하지요. "
" 좀 전과는 상당히 상반된 모습이구나. "
" 이하 동문이옵니다. "
걱정했던 자신들의 모습이 한심하다고 생각하며 멀리서 그저 쳐다보고 있는 윤기와 태형. 그런 두 사람을 무시한 채 폭포수를 더 가까이 보고 싶어 서둘러 자리를 옮겨 뛰어다녔다. 낭떠러지에서 뛰어다니는 날 보며 깜짝 놀라 외치는 윤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뛰지 말거라! 그러다 떨어진다! "
" 괜찮습니다 스승님! 조심하고 있습니다! "
위태로운 내 행동에 멀리서 지켜보고 있던 두 사람의 얼굴은 금세 다시 또 걱정기가 묻은 얼굴이었고, 그런 두 사람을 무시한 채 나는 그저 폭포 쪽만을 향해 뛰어갔다.
" 진짜 예쁘다! 여길 그리고 장국으로 돌아가면 정국이한테 선물로 줘야겠, "
미소를 띤 채 폭포 쪽으로 뛰어가던 나는 자리에서 멈췄다.
정국? 갑자기 왜 정국이 생각난 거지?
갑자기 왜 정국이 생각난 건지 나 스스로도 궁금해 한참을 생각했다. 그러다 고개를 돌려 태형과 윤기가 있는 방향을 보는데, 그 순간 말이 서있는 가까운 곳으로 뭔가가 툭! 하고 꽂혔고 갑자기 날아온 물건에 의해 놀란 말이 자리에서 날뛰어 그대로 내가 있는 곳을 향해 달려왔다. 마부는 말의 먹이를 구하러 조금 떨어진 곳으로 간 탓에 없었고, 내가 있는 쪽으로 달려오는 말의 뒤로 바닥에 꽂힌 무언가를 봤다. 바닥에 꽂힌 것에 대해 파악한 순간 어느새 말은 내가 있는 쪽으로 달려왔고, 말에 치인 나는 그대로 낭떠러지 너머로 떨어졌다. 머릿속이 하얘진 나는 바닥에 꽂힌 '화살'만이 떠올랐고, 윤기와 태형의 외침이 들리려는 순간 나는 그대로 깊은 물속에 빠져 잠기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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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의 옆으로 화살이 박혀 놀란 말이 날뛰기 시작할 때부터 윤기는 곧바로 그녀를 향해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소리를 지르기에는 너무 늦었고, 아무런 미동도 하지 않은 그녀의 모습 때문에 윤기는 다급하게 뛰어갔다. 하지만 그녀에게 가기에는 거리가 멀었고, 그녀는 이미 말에 치여 낭떠러지 밑으로 떨어졌다. 순식간에 일어난 상황에 윤기는 그대로 몸이 굳었고, 그런 그의 옆으로 태형이 뛰어가 그대로 낭떠러지 밑으로 떨어지려 했다. 자신의 신분을 망각한 채 행동하려는 태형을 윤기는 다급하게 막아섰고 그런 윤기의 행동에 태형이 소리를 질렀다.
" 이거 놓거라!! "
" 아니되옵니다! 이성을 놓지 마십시오!! "
" 안된다! 저 아이를 구해야 한다!! "
" 고정하시옵소서 전하! 여기서 전하까지 잘못된다면 어찌하란 말입니까! "
" 놔라! 당장 저 아이를…! "
" 전하!! 전하는 일국의 황자시옵니다! 부디 옥체를… "
윤기의 말에 화가 난 태형은 행동을 멈추더니 그대로 윤기의 몸을 밀쳐냈다.
" 저 아이보다 내가 더 중요하단말이냐! 지금 너의 제자가 저 밑으로 떨어졌다! 당장 구하러 가야 한단 말이다!! "
" 이곳은 낭떠러지입니다! 전하께서 떨어지면 전하의 목숨도 보장 못 한단 말입니다! "
" 내 목숨은 중대하고 저 아이의 목숨은 중대하지 않단 말이냐? "
" 그것이 아닙니다! 설마 전하의 신분을 잊으신 겁니까? "
" 알고 있다! 하나 지금 그게 무슨 소용이 있냔 말이다!! "
" 부디 고정하시옵소서… 낭떠러지긴 하나 그 아이라면 분명 무사할 것입니다! "
" 무사? 무사라 했느냐? 그걸 네가 어찌 장담한단 말이냐! "
" 그 아이는 그래 보여도 강합니다. 아무리 그래도 사내이지 않습니까? 설마 그 아이가 겨우 이 높이에서 떨어져 목숨을 잃기라도 하겠냔 말입, "
윤기는 제 말을 끝까지 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태형 그가 윤기를 향해 주먹을 있는 힘껏 날렸기 때문이다. 태형의 주먹다짐에 윤기는 자리에 쓰러졌고, 쓰러진 윤기는 태형의 얼굴을 올려다봤다. 그런 윤기를 내려다보는 태형의 얼굴은 분노가 가득 서려있었고 이성을 제대로 잡지 못한 태형은 윤기를 향해 그녀가 감춰온 비밀을 폭로하게 되었다.
" 그 아이는 사내가 아니다! "
" … "
" 너는 알고 있는 것이 아니었느냐? 그 아이가 어떤 몸인 줄 몰랐던 것이냐!! "
태형의 말에 윤기의 눈이 커졌고, 동시에 그의 머릿속이 복잡하게 얽혀져갔다. 자신의 제자가 사내가 아니다? 사내가 아니라면 뭐란 말이다. 설마…
머릿속으로 설마거리며 끝까지 인정하지 않으려고 했던 것들을 태형이 윤기 그를 향해 다시 한번 그녀에 대한 정체를 확실히 알려주었다.
" 그 아이는!! "
" … "
" 여인이란 말이다!! "
인정하지 않으려고 했던 부분을 확실하게 말하는 태형의 말에 윤기는 순식간에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그럴리가 없다, 그 애는 사내다. 여인일 수 없다. 여인이라면 결코 전하가 친히 내게 그 아이를 붙여주시지 않았으셨겠지. 윤기 그의 머릿속으로 스쳐 지나가는 수많은 그녀가 존재했던 시간들.
" 이건 내가 가져가마. 너는 다시 그림을 그리거라. 이런 그림은 죄가 된다는 것을 아직도 모른단 말이냐! "
" 죄, 죄요…? "
" 쯔쯧. 평범한 여인을 그린 것도 아니고, 이렇게 기생들이 득실거리는 그림을 그리고. 거기다 모자라서 기생의 중심에 이런 사내를 그려? "
" 그, 그게 아닙니다 스승님! "
" 닥치지 못할까! 내, 너를 그리 보지 않았거늘. 이리 내게 실망을 주다니! 이 그림은 내가 태워버릴 것이니 너는 다시 그림을 그리거라. "
" 불취비녀(不取悲女). "
(가질 수 없는 슬픈 여인)
" 단순하게 본다면 그저 그림 속의 광대가 줄타는 것이라고 해석합니다. 하지만 깊게 본다고 한다면 해석은 이러합니다.
그림 속에 그려진 광대는 백성들을 뜻합니다. 그리고 여기에 써놓은 광대는 말 그대로 넓고 큰 천하를 뜻하는 것이고요.
비상은 아무런 구속 없이 하늘 위를 마음껏 날아다니는 새를 연상시키며 그 뜻은 자유라고 해석했습니다.
그리하여 통틀어 쉽게 해석한다면 이 세상에서 살고 있는 백성들은 행복하고 자유로운 삶을 살고 있다.라고 보시면 됩니다. "
" 스승님! 밖에 날씨가 너무 좋습니다! "
" 그리도 좋은 게냐? "
" 네! 스승님, 오늘만이라도 좋으니 같이 산책이라도 합시다! 그림도 잘 그려질 것 같아요! 왠지 모르게 어떠한 풍경이 머릿속에서 계속 그려지고 있습니다! 오늘이야말로 환국의 황태자 마마께 좋은 그림 선물을 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
" 스, 스승님… 갑자기 왜 이러십니까… "
" 기다리거라. "
" 내 제자에게 오랜만에 성의를 풀겠다는데 불만인 게냐? "
" … "
" 허어, 정녕 그런 것이냐? "
" …아, 아니요… "
" 자, 그럼 그림도 다 그렸겠다. 이만 돌아가자꾸나. "
" 그것이 아닙니다 스승님! 그 자는 결코 그리 나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오해는 다 풀렸습니다, 사과도 이미 받아냈습니다!
저는 절대로 스승님의 뜻을 거역하고자 했던 행동이 아니었습니다! 믿어주십시오, 스승님! "
" 머리에 물기는 왜 말리고 오지 않은 것이냐. "
" 아… 그게… 머리 말릴 천을 안 가져와서… "
" 쯧. 꼴 하고는. 이리 내 앞에 와 앉거라. "
" 예? 어쩌시려고요… "
" 내 친히 말려줄 터이니 이라와 앉거라. "
" 예?? 스, 스승님이요? "
" 뭘 그리 화들짝 놀라는 게냐. "
" 그, 그게… "
마지막에 떠오른 기억에 윤기는 어지러운 머릿속을 정리해보려고 노력했다. 그러자 2일 전 밤에 있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 스, 스승님…"
" 나는 그날 네가 내 말을 따라 그자를 무시할 것이라 생각했었다. 그런데 나를 속이고 그자와 계속 만남을 가졌던 것이냐! "
" 아, 아닙니다… 그것이 아닙니다 스승님! 뭔가 큰 오해가… "
" 네게는 내 경고가 그리도 가볍게 여겨졌던 것이냐! "
" 아닙니다 스승님!! "
나의 분노에 커진 두 눈에 점점 고이던 눈물. 끝내 그 눈물은 무게에 무게를 더해 무겁게 볼을 타고 바닥을 향해 떨어졌고 동시에 고개를 떨구던 그녀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 순간 윤기는 가슴이 막히는 듯한 원인 모를 느낌을 받았었다. 하지만 그는 굳이 자신의 마음을 헤아리려 하지 않았다. 그냥 올바르지 못한 길을 나가는 제자를 바로잡으려고만 했었다. 자신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다. 결코 자신의 제자가 여자일 리 없다고. 불순한 마음 따윈 가질 수 없는 것이다. 순수하게 제자로만 바라볼 것이다. 착각에 놀아나지 않을 것이다. 제 스스로 바로잡으려고 노력했던 윤기다. 그녀가 여자일 것이라고 생각 들었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자신이 만든 상상일 뿐이라며 곧 내치려고만 했다. 하지만 그동안의 사건들을 차근차근 생각해보면 가끔 보이는 여성스러운 행동이며 여성향을 띈 그림들은 꽤 많았다. 아무것도 모르던 윤기는 그저 그리면 안 될 그림을 그렸다며 늘 혼을 내기에만 바빴다. 하지만 사실 그녀는 딱히 죄가 없었다. 그저 매번 순수하게 그림으로 그려냈을 뿐. 그런 생각이 미치자 윤기는 뒤늦게 미안해짐과 함께 그동안 그녀는 무일했었다는 것을 느꼈다.
" 정신 차려 민윤기. "
그녀가 사실은 여자라는 충격에 조금씩 넋을 잃어가던 윤기는 태형의 말 한마디에 다시금 정신이 들었다.
" 여기서 조금만 내려가면 저 밑이다. 네가 말을 타고 저 밑으로 내려가서 그 아이를 찾거라. 나는 저 화살을 쏜 자를 찾아낼 것이니. "
" … "
" 그 아이를 살려낼 사람은 너밖에 없다. "
태형의 말에 윤기는 제대로 정신을 차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 알겠습니다. "
" 반드시 찾아내야 한다. "
그 말을 끝으로 윤기와 태형은 서로 다른 길을 향해 달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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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신연조.
상봉을 믿으며 인연을 아로새기네…
" 하아… "
그녀가 떠나간 지 여드레째. 지민은 그녀가 머물렀던 객정과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또 다른 초막집에서 홀로 쓸쓸히 술을 마시고 있었다. 비어있는 술잔 안에 비춰 보이는 그녀의 얼굴에 지민은 눈을 감고 다시 한번 가슴이 아려 옴을 느꼈다.
" 그리 말도 없이 갑작스럽게 떠나야만 했던 것입니까… "
술잔을 내려다보던 지민의 눈가에 점점 눈물이 차오르는 것이 술잔에 비추어 보였다. 홀로 중얼거리던 지민은 술잔을 들어 내려다보다가 허탈하다는 듯이 피식 웃어 보였다.
" 인연을 아로새기겠다니… "
그 말과 함께 술을 목구멍으로 넘겼고 그와 함께 그의 눈가에선 눈물이 흘러내렸다. 술상 위에 술잔을 내려놓은 지민은 고개를 숙여 그녀의 얼굴을 떠올려보았다.
" 만약 그 우리가 다시 만날 수가 없다면… 전 어떡해야만 하는 것입니까… "
비어있는 술잔을 내려다보던 지민은 목이 메어왔고, 다시 술병을 들어 술잔에 술을 채워 넣으려는 순간 문 너머로 호위무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전하. "
" 물러가라. "
그의 얼굴을 마주할 수 없던 지민은 그에게 물러가라고 했다. 평소라면 말없이 물러났을 그였지만 이번에는 쉽게 물러서지 않은 호위무사였다.
" 잠시, 나와보십시오. "
" 물러가라 하지 않았느냐. "
평소에는 그의 말을 한 번도 거역한 적이 없었던 호위무사가 이번에는 쉽게 물러서지 않자 슬픔에 잠겼던 지민은 분노가 조금 올라왔다. 하지만 호위무사는 물러서지 않고 다시 한번 지민을 부르자 지민은 눈빛이 날카로워지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방문을 열어젖혔다.
" 네가 정녕 정신을 놓은 게, "
언성이 살짝 높아진 지민은 문을 열고 나와 호위무사를 보는 순간 그대로 굳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호위무사 그가 안고 있는 그녀를 보는 순간 굳은 것이다. 어찌 된 영문인지 파악이 되지 않았지만 지민의 눈에 보이는 건 자신의 겉옷을 덮은 그녀를 안고 있는 호위무사와, 기절한 듯 그의 품에 안겨 축 늘어진 그녀의 모습이었다. 둘 중 시선이 먼저 간 곳은 그녀의 얼굴이었고, 지민은 그저 그녀의 얼굴을 내려다보고 있었다.설마 저 여자가 환영인가, 아닌가.
아니면 다른 사람인가, 정말 그녀인가, 헷갈려서.
" 전하… "
" 이게… 어떻게 된 것이냐… "
" … 소인을 사하여 주십시오. "
" 그게 무슨 소리냐… "
" 소인이 감히 하면 안 될 짓을 저질러 버렸습니다. "
" 뭐? "
아직 상황 파악이 제대로 되지 않았던 지민은 그의 말을 간략하게 듣기로 했다. 그의 말을 들어본즉슨 상황은 이러했다. 자신의 주인이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기 싫어 그만 그가 그녀가 타고 있던 마차를 뒤쫓아갔었다. 그리고 잠시 쉬는 틈을 타 쉬고 있던 말을 향해 활을 쏘았고 놀란 말이 그녀를 낭떠러지로 떨어트리게 했다. 목숨이 위험하지는 않은 높이였기에 그는 목숨 걸고 그런 상황을 만들었고, 폭포 속으로 떨어진 그녀를 재빨리 데려온 호위무사였다. 호위무사의 말을 들은 지민은 재빨리 그녀를 안아들어 자신이 있던 방 안으로 데려갔다. 방으로 데려가자마자 그녀의 건강을 확인했고 다행히도 목숨에는 지장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지민은 그녀의 몸 위로 두꺼운 이불을 덮어주고 다시 밖으로 나왔다. 밖으로 나온 지민은 곧바로 호위무사의 허리춤에 꽂혀있던 칼을 빼들었고 그의 목을 향해 겨누었다.
" 네가 정녕 미친 것이냐? "
" … "
" 자칫 잘못했으면 저 여인은 정말 죽었다! "
화가 머리끝까지 난 지민의 모습을 알아차린 호위무사는 그 자리에 무릎 꿇고 앉아 자신의 목을 내어줬다.
" 사하여 주십시오. "
한치의 흐트러짐 없는 호위무사의 모습에 지민은 칼을 쥐고 있던 손이 부들부들 떨리는 것이 느껴졌다.
" 그저 저는 전하만을 위하여 그런 것입니다. "
호위무사의 말에 지민은 떨리는 손을 애써 진정시키려 하며 그를 향해 물었다.
" 어찌하여 그런 위험천만한 짓을 벌인 것이냐? "
" … "
" 왜 나 때문에 그런 짓을 벌인 것이냐 물었다! "
" 전하는. "
" … "
" 제게 있어 은인이십니다. "
" … "
" 그런 분에게 있어 항상 뭔가를 보답하고 싶었습니다. "
" … 그 답이 바로 저 여인이란 소리냐…? "
지민의 말에 더는 대답 안 하는 호위무사였고 그런 호위무사를 내려다보던 지민은 칼을 쥐고 있던 떨리는 손을 그대로 놓아버렸다. 챙, 하고 날카로운 소리가 바닥과 함께 부딪히며 주변을 울렸고 지민은 뒤로 돌아 등을 보였다.
" 저 여인이 무사히 눈을 뜨게 된다면 너도 살 것이고. "
" … "
" 그렇지 않다면 네놈은, "
" … "
" 영영 내 곁에서 멀어질 줄 알거라. "
" … "
그대로 그녀가 있는 곳으로 걸어가던 지민이 자리에 우뚝 멈춰 섰다. 그러더니 잠시 침묵을 지키던 지민이 작게 한숨을 내뱉으며 밤하늘을 향해 고개를 젖혔다.
" 그래도… "
" 고맙구나, 율아… "
꽃을 그리는 세상, 미인도(美人圖)
* * *
아니, 왜 전보다 줄간격이 짧아진 것 같지..?
여러분 2019년도.. 얼마 안남았네요...
사흘만 지나면 벌써 2020년.....
그렇게 우린 한살을 더 먹어가려고 준비중이라고 한다....주륵..
20살을 준비중인 여러분은 기대하고 있겠지..? 나도 20살로 돌아가고 싶다...
여러분 남은 사흘 알차게 보내세용ㅎㅎㅎ
윤기야.. 있을 때 잘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