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미소를 좋아했어요.
무표정한 얼굴도 매력 있지만
환하게 웃을 땐 특히 더 예쁘다고 생각했어요.
음, 사실 잘 모르겠어요.
그냥 그 웃음을 갖고 싶다고,
그렇게 생각한 것 같아요.
짝사랑 회고록
생각해 보면 나는 언제나 평범한 사람이었다. 평범한 가정에서 자라나 평범한 학교에 다니는, 딱히 부족한 건 없지만 그렇다고 특출난 것도 없는 평범한 사람. 그럼에도 나는 꽤 행복한 삶을 살아왔다고 자부한다. 나는 내가 가진 평범함을 단점으로 삼지 않으며 나에게 주어진 것들에 최소한의 감사함 정도는 지니고 살아가기 때문이다. 나는 평범한 환경에서 살아가는 평범한 나 자신을 사랑하는 평범한 사람이었다. 그 무엇도 나를 평범 이하의 하찮은 존재로 끌어내리지 못할 것이라 생각하던 날들이 있었다.
그러던 나의 평범한 일상에 작은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처음 겪는 일은 아니었지만, 뭔가 그 성격이 조금 달랐달까. 그렇다. 나는 당신을 좋아한다. 당신을 좋아했다. 그것도 꽤 많이, 꽤 긴 시간 동안이나. 당신은 좋아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었다. 당신이 가진 많은 것들이 평범한 나를 자꾸만 부족한 사람으로 만들어 버리곤 했지만, 그것이 내가 당신을 포기하도록 하지는 못했다. 당신이 다른 시간, 다른 장소에서 다른 모습으로 내 앞에 나타났더라도 나는 분명 당신을 사랑하게 되었을 것이다.
짝사랑은 이전에도 몇 번 해본 경험이 있지만, 누군가에게 첫눈에 반한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엄밀히 말하면 첫눈에 반했다기보단 처음 만난 날부터 마음이 갔다는 게 맞는 표현일지도 모르겠다. 당신은 정말이지 완벽한 사람이다. 솔직히 당신을 처음 본 순간부터 이런 생각을 하지는 않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당신의 완벽함에 대한 나의 조심스러운 예측에 무게가 실리기 시작했다. 물론 그게 내가 당신을 좋아하게 된 이유의 전부는 아니지만 말이다. 당신은 객관적으로도, 주관적으로는 특히나 더 완벽한 사람이다. 누구나 인정하는 훌륭한 학벌에 준수한 외모, 또 모난 데 없는 성격과 누구나 한 번쯤 곱씹어보게 할만한 은근한 매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나는 호감형인 당신의 외모를 좋아한다. 외모가 사람의 가치를 매기는 좋은 잣대가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당신의 미소를 보고 있으면 괜스레 좋아지는 기분을 부정할 수는 없는 일이다. 당신을 처음 본 순간, 그 미소에 반한 뒤로 당신에 대한 모든 게 좋아지기 시작했다. 순한 성격과 본인의 일에 대한 자부심, 그리고 이따금씩 손톱을 물어뜯는다든가 하는 사소하지만 나쁜 버릇들까지도.
그러나 여러 장점들 중에서도 나는 당신의 매력을 가장 좋아한다. 당신은 너무나 매력적인 사람이다. 당신의 학벌이나 외모, 그리고 매력은 그 앞에서 명함도 못 꺼낼 만큼. 매일을 전쟁같이 살기에 하늘 한 번 올려다볼 여유조차 없을 것 같은 당신은 의외로 음악을 좋아한다. 음악 취향 확고하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나는 어느 순간 당신이 좋아한다고 말한 음악들로만 플레이리스트를 채우게 되었다. 또 고급스러운 레스토랑에서 예쁘게 세팅되어 나오는 비싼 요리들만 사 먹을 것 같은 당신은 소박한 시장 음식을 자주 먹는다. 그 외에도 소중한 사람에게 주고 싶은 선물로 먹고 나면 사라지는 음식 대신 오래 간직할 수 있는 물건들, 예를 들면 책이나 그림 같은 걸 꼽는 당신은 평범한 나의 마음에 들어오기 충분한 사람이었다. 당신도 어쩌면 나만큼이나 평범한 사람일지 모르겠다는 말도 안 되는 착각을 불러일으키기도 하던 사람이었다.
나는 객관적으로 봤을 때 평범한 사람임이 틀림없지만, 적어도 나를 세상에 하나뿐인 특별한 존재로 여길 수 있는 자존감을 지닌 사람이었다. 나보다 대단하고 멋진 사람을 봐도 크게 부러워진 적이 없었고, 내가 그들보다 특별히 못나다는 생각 또한 하지 않았다. 그러나 당신을 좋아하면서부터 나 스스로를 못난 사람이라 생각하기 시작했다. 당신의 주변에 있는 당신만큼이나 멋진 사람들을 보면서, 나는 왜 저들처럼 화려하지 못할까, 왜 나에게는 저들이 가진 세련됨이 없을까를 고민하는 날들이 이어졌다. 그들이 가진 화려함과 세련됨은 내가 일평생 꿈꿔온 것들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런 바보 같은 생각들이 피어오르기 시작한 이후로 내가 하는 외사랑은 더 이상 순수하지도, 아름답지도 않은 것이 되어 버렸다. 나는 당신을 좋아한다. 분명 당신의 그 소박함이, 당신의 진실성과 뜻밖의 여림이 좋아 시작한 사랑이었는데, 어느 순간 나는 당신의 화려함과 강한 외면만을 동경하고 있었다. 나는 과연 당신을 좋아한 걸까? 정말로 당신의 학벌이나 외모, 인기나 평판이 아닌 당신이라는 사람 그 자체를 좋아한 게 맞았던 걸까. 당신에게 마음을 준 직후엔 절대 그럴 리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은, 솔직히 잘 모르겠다. 나는 당신의 조건을 좋아한 것일지도. 그저 평범하기 그지없는 내가, 보기 드물게 특별한 당신을 욕심내고 있다는 사실이 좋았던 것일지도.
더 이상 내가 하는 사랑이 건강하지 않다는 걸 깨달은 이상, 나는 당신에 대한 이기적인 마음을 정리해 가기로 했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1년의 짝사랑이 내게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를 생각해 보았다. 당신 덕분에 나는 인간이 어느 정도까지 옹졸해질 수 있는지, 스스로를 얼마나 작게 평가할 수 있으며 좋아하는 사람은 또 얼마나 큰 존재로 바라볼 수 있는지를 새로이 알게 되었다. 당신을 좋아하기 시작하면서 참 많이도 아팠지만 하루하루에 최선을 다하는 당신을 보며 나 또한 마음을 다잡던 순간들이 있었고, 언제나 멋지고 대단하기만 한 당신에게 어울리는 사람이 되고 싶어 발버둥 치던 날들이 있었으니 난 그걸로 만족하려 한다.
나를 자꾸만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게 한 당신을, 부끄럽지 않은 인연이 되기 위해 애쓰도록 한 당신을 지독히도 많이 좋아했다. 아까 말했는지 모르겠지만, 우리가 언제 어디서 어떤 모습으로 만났어도 난 당신을 좋아하게 되었을 것이다.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고, 끝내 당신은 돌아보지 않았지만 내가 나의 사랑을 이렇게나마 간직하게 되었으니 됐다. 미소가 예쁜 사람아, 언제나 반짝이는 모습 그대로, 내내 행복하기만 하길. 안녕.
아 참, 한 가지를 빼먹었네. 언젠가 당신에게 내 마음을 고백할 기회가 생긴다면, 당신에 대한 생각으로 벅차 잠못 이루던 어느 밤에 써 두었던 쪽지가 하나 있었다. 이제는 당신에게 전달할 수 없는 종이 쪼가리가 되었으니, 이렇게나마 놓고 가려 한다.
당신의 미소를 좋아했어요.
무표정한 얼굴도 매력 있지만
환하게 웃을 땐 특히 더 예쁘다고 생각했어요.
음, 사실 잘 모르겠어요.
그냥 그 웃음을 갖고 싶다고,
그렇게 생각한 것 같아요.
2019. 7. 21
토요일에서 일요일로 넘어가는 새벽에
Fin.
안녕하세요, 꽃노을입니다...! 늘 독자로서 읽기만 하다 처음으로 인사드립니다. 재미있는 글보다는, 쓰고 싶은 글을 써요. 담담하고 잔잔한, 가끔은 오글거릴지라도 솔직한 이야기를 담아내고 싶습니다. 혹여 저와 취향이 맞는 분들이 계시다면 오래 지켜봐 주셨으면 좋겠어요.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잘 부탁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