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장미새
낙엽이 떨어지고 코끝이 점점 시려워 지던 그 계절. 우리는 풋풋한 모습으로 마주했고 수줍게 손을 잡으며 웃었다.
그 날 잡았던 너의 손, 그 온기를 나는 아직 잊지 못해. 그리고 귀 끝이 빨개져 고개를 숙인 채 말하던 너의 목소리까지.
"좋아해.좋아해 여주야."
***
"재환아, 우리 오랜만에 만났는데 계속 핸드폰만 할거야? 너 파스타 먹고 싶댔잖아. 좀 먹어봐~"
"내가 알아서 먹을게."
재환이의 접시에 파스타를 덜어주려 뻗은 손을 거두었다. 우리 2주만에 만난건데...조금 날이 서 보이는 재환이 모습에 그저 눈치만 봤다.
"너 파스타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풀이 잔뜩 죽어있는 내 모습을 슬쩍 바라보던 재환이가 한마디 던졌다. 잔뜩 내려가 있던 눈꼬리가 기분좋게 올라가는게 느껴지며 베시시 웃음이 났다. 그런 내 얼굴을 잠시 바라보던 재환이의 눈은 창 밖을 향했다. 주말이라 그런가. 사람 참 많아.
"안 잊었구나? 그래도 니가 좋아하는거니까 재환아!나는 너 먹는것만 봐도 행복해."
까먹었을리가 있냐- 4년을 만났는데. 그래 4년. 재환이와 나는 4년을 만났다. 같은 고등학교를 다니며 수능이 끝나던 가을과 겨울. 그 애매한 경계쯤부터 마주해 지금까지 4년이다. 비록 과는 다르지만 같은 대학교 진학까지 성공했고 주변의 부러움을 사며 CC생활을 했다.
봄에는 핑크빛 가득한 꽃놀이를, 여름에는 더위를 피하기 위해 바다와 계곡을, 가을에는 붉게 물들어 있는 단풍길을, 겨울에는 흰 눈이 쌓여있는 메타세콰이어 숲을. 그렇게 우린 사계절을, 매 추억을 함께 쌓았다.
그런데 언제부터였을까. 같은 곳을 바라보며 모든 순간을 함께 했던 우리의 시선이 점점 틀어지고 내가 너의 등만 바라보게 되었던게. 우린 왜 이렇게 된걸까. 나는 너와 처음 마주했던 그 순간부터 지금까지 단 한번도 설레지 않았던 적이 없었는데. 너는 이제 아닌걸까.
지금 이 순간도 나는 너를, 너는 창 밖을. 엇갈려 버린 이 시선처럼.둘이 제대로 시간을 보낸게 언제였더라...차분하고 수줍음이 많아 가깝게 지내는 동기들도 몇 없는 나와 정반대로 재환인 외향적이고 사람들을 늘 즐겁게 해주는 매력이 넘쳤다. 동기들에게는 몰론이거니와 선배에게 예쁨을, 후배들에게는 존경받는 존재였고 사람들은 그런 재환이를 늘 불러댔지만 그에게 있어 1순위는 나였다.
동기들과 술을 마시다가도, 친한 선배와 피씨방에서 게임을 하다가도, 과 사람들과 곡 작업을 하다가도 내 연락 하나에는 망설임 없이 바로 자리를 박차 뛰쳐나갔으니까. 오죽했으면 동기들 사이 재환이 별명은 '3초남'이었다.
외투, 소지품 모든걸 챙기고 문을 나가는게 딱 3초라고. 하지만 지금은,
"재환아, 그래서 넌 액션? 아니면 멜로?"
"....."
"오랜만에 달달한 멜로 볼까?"
"....재환아."
"어.듣고 있어. 잠깐만."
볼에 홍조를 띈 채 조잘조잘 말을 건네는 나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던 너는 핸드폰만 바라보고 있었다.차갑도록 웃음기 없는 얼굴과는 달리 바쁘게 움직이는 너의 손.대체 누구랑 연락하길래 저리도 집중하는걸까.
"미안한데, 나 오늘 영화 못 볼 것 같은데."
"어....?"
"윤성이 휴가 나왔대. 그래서 동기들 모이기로 했어."
"아..응...어쩔 수 없지!잘 다녀와! 연락 꼭 틈틈히 주고!"
재환이는 나를 잠시 바라보다 내 머리를 쓰다듬어 줬다. 아무런 표정도 없는 얼굴과는 달리 너의 손길은 너무나도 다정해서 이질적인 느낌이 들었다.
이런 상황이 최근 잦을때마다 속으로는 수십번 외친다. 가지말라고 오늘 나랑 있어달라고. 하지만 그 외침은 늘 가슴 속에서만 이리저리 부딪혀 상처를 낼 뿐 입 밖으로 나오지 못한채 부서진다. 혹여 질려할까봐. 그렇게 되면 나를 정말로 떠나버릴까봐. 마음이 조금 아프더라도 사랑하는 이가 내게 이별을 고하는 것 보다는 몇만배 나은거라고.
스스로 위안을 삼으며 되뇌일때마다 한없이 내 스스로가 비겁하게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