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서준] 나는 낙오자입니다
w.1억
"야 한달후."
한 남자가 내 이름을 불렀고, 나는 무심하게 고갤 돌린다. 그럼 남자는 손에 들린 작은 생크림 케이크를 내 머리에 내리 꽂는다.
교복을 입은 남자와 여자들은 모두 나를 보고 웃으며 동영상을 찍는다.
주먹을 꽉 쥔 채 가만히 고개만 숙이고 있을 뿐, 나는 어느 행동도 하지 못 했다.
"한달후는 고개를 한달 후에나 들을 건가봐."
하필이면 이름도 재수없게 지었다. 우리 엄마, 아빠는.
내가 이렇게 된 이유는 따로 있다. 내가 중학교 3학년 때 아빠가 살인을 저질러 감옥에 들어갔고, 엄마는 자살을 했다.
나는 살인자의 딸이라며 애들에게 미움을 받기 시작했고, 애들의 샌드백이 되기도 했다.
지금은 고3.. 애들을 피해 옆 지역으로 전학을 왔는데 어느새 또 소문이 퍼져서 전학 첫날부터 나는 또 왕따를 당한다.
"야 한달후 너네 아빠가 한명만 죽인 거 아니지? 너네 엄마도 자살 아니고, 아빠가 죽인 거 아니냐?"
참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저 일진 무리들을 뚫고 교실에서 뛰쳐 나갈 용기는 없었다.
이 곳엔, 내 옆엔 내 편이 하나도 없었으니. 또 잡힐 걸 생각하고 나는 아직 고개를 들지도 못 한 채 입술만 꽉 문다.
"옆에 앉아도 되지?"
갑자기 내 옆에서 들려오는 중저음의 목소리에 나는 그제서야 고갤 들고 얼굴을 확인했다.
선한 얼굴을 가지고, 키도 컸다. 이 무리 중에서도 제일 서열이 높은 놈인지 애들은 남자를 보고도 아무 소리도 하지 못 한다.
오히려 더러운 내 옆자리에 앉는 것에 대해 놀라운지 애들이 입을 떡 벌린 채 남자를 바라본다.
어느새 내 옆자리에 앉은 남자가 날 보며 웃어준다.
"……."
다 쓴 콘돔을 변기에 툭- 던져버린 서준이는 속옷을 입고선 담배를 입에 문 채
침대에 앉아있는 내 옆에 아닌.. 조금 더 떨어진 곳에 앉아서 담배를 피는데 담배 연기가 내 쪽으로 온다.
냄새가 너무 역해서 기침을 하니, 서준이는 나를 힐끗 볼 뿐 별 말이 없다.
혹시나 같이 밥 먹자는 말이라도 할까봐 기대하는 눈으로 서준이를 바라보니, 서준이가 차가운 얼굴을 하고선 내게 말한다.
"옷 입고 빨리 나가."
"…왜?"
"박혜지 오기로 했어."
"걔랑도.. 자려고..?"
"뭐라고? 좀 크게 말해. 안 들리니까."
"걔랑도 자려고? 너 어제는 현아랑 잤잖아."
"왜."
"……."
"너 말고 다른 애들이랑 자서 기분 더러워?"
"……"
"좆같으면 꺼지던가. 난 너 말고 다른 애들 널렸으니까."
"아, 아니야!"
"그리고 혜지랑 사귀기로 했어. 그러니까 앞으로 티 안 나게 행동 잘 해."
"…알겠어."
서준이의 오피스텔은 참 깨끗했다. 하지만 나는 깨끗하지 못하다. 여러모로, 아주 깊은 뜻에서.
서준이는 핸드폰을 보며 담배를 피고 있고, 나는 바닥에 널브러진 옷가지들을 하나씩 주워서 입기 시작한다.
내가 옷을 입던, 말던.. 신경 쓰지도 않고 핸드폰을 보고 있는 박서준은 웃고있다.
서준이는 나한테만 빼고 모두에게 친절하고, 웃음이 많다.
서준이는 나 말고 섹스 할 수 있는 여자들이 널리고, 널렸다.
서준이는 나에게 모든 표현을 한다. 화를 내던지, 욕을 하던지. 그래서 난 서준이를 사랑한다.
나한테만 저런 모습을 보여준다는 건, 내가 편하고 좋다는 거니까.
옷을 다 입고 나가려는데 나는 힐끔 서준이를 보았다. 담배를 다 피고 또 하나 입에 무는 서준이는 내가 나가던 말던 신경도 안 쓴다.
그럼 난 무시 당할 걸 알면서도 너에게 목소리를 낸다.
"서준아 혹시 내일 나랑 저녁 먹을래?"
"내가 너랑 저녁을 왜 먹냐. 밥 먹다 체할 일 있나."
"……."
"그리고 네가 돈이 어딨어. 설마 훔쳤냐."
"…아니. 어제 하루 알바 했는데. 돈 받았거든..! 사장님이 나 일 잘 한다고 돈 더 주셨어."
"네가 일을 잘 한다고? 그 사장이랑 잤냐."
핸드폰을 보며 무심하게 내뱉은 말이었다. 나를 보고있지 않음에도 나는 고개를 저으며 살짝 웃고선 말한다.
"아니, 내가 사장님이랑 왜 자! 난 너 뿐인데.. 그냥 내가 어제 일을 좀 빨리 해서 그런가.. 이만원 정도 더 주셨는데.."
"그거 너랑 섹스 하고싶어서 기회 노리는 거잖아. 네가 잘하는 게 뭐 있기는 하나."
"……."
"네가 어지간히 쉬워보여야지."
"나.. 안 쉬운데."
"존나 쉬워, 너. 시골에 사는 기지배같아."
"…그래?"
"……."
"갈게. 내일 봐, 서준아."
"오늘 문자 보내지 마. 괜히 너한테 문자 오면 여친한테 혼난다."
"…응."
나는 여자친구도, 뭣도 아니다. 서준이는 나랑 잠을 잔다. 하지만 서준이는 애인이 자주 바뀐다.
사람들은 모른다. 내가 서준이와 뒤에서 잠을 잘 것이라고. 나랑 서준이만 아는 비밀.
오피스텔에서 나오자 익숙한 얼굴이 로비에 서있다. 박서준의 어렸을 적부터 친했던 절친 윤박이다.
서준이나 윤박이나 학교에선 제일 인기가 많다. 돈 많은 회장님 아들에, 공부도 못 하진 않고, 키도 크고 잘생긴 둘을 어찌 미워하리.
서준이를 제외한 다른 사람에겐 인사도 하고 싶지 않고, 대화도 나누기 싫었다.
사실은 서준이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내가 다른 사람과 눈만 마주쳐도 나에게 욕을 한다.
윤박을 지나쳐 걸으려고 하는데 윤박이 나를 부른다. '안녕 달후야'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윤박을 지나쳐 걷는다.
"서준이 여자친구 생겼던데, 봤어? 박혜지 라..ㄱ..."
"……."
나도 모르게 멈춰 서서 뒤돌아 윤박을 째려보게 되었다.
남에겐 더 듣기 싫은 말. 무슨 우리 사이를 다 알기라도 하는 것 처럼 행동하는 네가 싫었다.
그래서 윤박 너를 경계하게 되었다. 서준이를 제일 잘 아는 너일 텐데도 나는 너를 경계하게 된다.
"아..니 기분 나쁘라고 한 소린 아니었는데. 혹시라도 모를까 싶어서.."
"……"
"하긴.. 몰랐을리가 없겠네. 너 서준이랑 제일 친하잖아. 10년 친구인 나보다 더."
"……"
"도대체 너네 사이는 뭐야? 학교에선 대화도 별로 안 하는데.. 학교가 끝나면 서준이 오피스텔에 같이 들어간다.. 그리고 너만 나오고..."
"……."
입술까지 삐죽 튀어나와 버렸다. 다 알면서 놀리는 것 같아서 기분이 나빴다.
기분이 너무 나빠서 너를 보고 있기가 힘들어 나는 다시 앞을 보고 빠른 걸음으로 걸었고.. 너는 내게 소리친다.
"너 맨날 정색만 하다가 그런 표정 지으니까 재밌는데!? 다음엔 내 인사 받아줄 거지?"
"달후야!"
달후야!.. 몇 번이고 윤박이 나를 부르고, 인사를 한다.
평소엔 인사만 하고, 씹히면 씹히는 대로 웃어주던 너는 어디 가고.. 갑자기 저돌적인 모습을 보인다.
혹시라도 서준이가 보고 이상하게 생각할까봐 대답도 안 하고 그냥 무시했더니 음악실까지 와서 내게 말을 건다.
아직 음악실엔 아무도 없었고, 나랑 윤박만 있는 상태다. 피아노 의자에 앉아서 피아노를 띵- 띵- 장난으로 건드리던 윤박이 나를 보며 말한다.
"생각해보니까 나 네 목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는 것 같아."
"……"
"가끔 서준이가 뭐 물어보면 '응' 이러기만 하고.. 다른 목소리는 들어본 적이 없는 것 같네.
지금 벌써 11월 달인데.. 우리 안지 꽤 됐는데.. 목소리는 됐으니까 인사라도 좀 받아주지."
"……."
"내가 싫은 거야?"
"……."
"그럴 수도 있겠다."
갑자기 그럴 수도 있겠다며 풀이 죽는 너를 보니 갑자기 측은해졌다. 뭔 생각을 그리 하는지 한참 생각에 빠진 듯한 표정을 지은 너는 또 피아노를 띵- 누르며 말한다.
"나 사실은 집에서 미움 받아. 나는 대학도 다니고.. 쉐프가 되는 게 내 목표인데. 아버지는 회사를 물려 받으래."
"……."
"언제는 나보고 호적에서 판다고 그랬었는데. 그냥 그러라고 했어. 내 의견 따윈 필요 없다는 아버지가 너무 미워서.. 차라리 그냥 가족이 없어도 되겠다 싶었거든."
"……."
"그냥 이런 말 누구한테 한 번도 한 적 없는데. 우리 별로 친하지도 않은데 이런 말 하는 게 웃기지?"
"……."
"네가 내 말에 대꾸도 안 하고 듣는 척도 안 하니까. 그냥 안식처라 생각하고 한풀이 하는 거야. 그러니까 신경 쓰지 마."
윤박은 평소에 말이 별로 없었다. 그냥 내게 웃어주며 인사만 해줬을 뿐.. 그 이상은 아무것도 없던 녀석이.
이렇게 사연 있는 표정으로 한풀이를 하는 게 너무 안타까웠다. 위로를 해주고 싶었다.
"서준이도 알아?"
"어??"
내 말에 되게 많이 놀란 것 같았다. 어? 하고 벙찐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윤박은 자기도 모르게 건반을 꾹 눌렀고.. 멍청하게 울리는 소리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갑자기 그렇게 나한테 말을 걸어준다고?"
"……."
"방금 분명 웃기까지 한 것 같은데.. 내가 잘못 본 건가?"
"……"
"와아.. 너 웃다가 정색 하는 거 진짜 잘한다아. 너 이 기회에 진로를 연기자로 바꾸는 건 어때? 진짜 잘 어울릴 것 같은데."
"……."
"아, 아니다.. 그러기엔 얼굴이 너무.."
"……???"
"농담이야 ㅎㅎ."
농담이라며 웃는데 나까지 웃음이 나왔다. 피아노 의자에 앉아있던 윤박이 내게 천천히 다가오더니 곧 내 머리 위에 있는 무언갈 떼어준다.
'먼지'하고 떼어준 윤박이 갑자기 내게 더 가까이 다가온다. 너무 부담스럽고, 서준이 말고 다른 사람이 가깝게 다가 온 건 처음이라 당황스러워서 눈을 감고 흠칫- 눌라니
윤박이 푸흐.. 바람 빠지는 듯 웃음 소리를 내며 귓속말로 말한다.
"웃으면 못생겼어. 정색하고 다니는 이유를 알겠다."
"……."
나름 짜증내는 표정으로 윤박을 바라보니, 윤박이 푸하하- 웃으며 뒷걸음질을 친다.
학교가 끝나고 서준이가 교과서에 '체육관으로 와'라고 쓰고 사라지기에 나는 체육관으로 들어섰다.
체육관에 키가 한참 큰 서준이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고, 나는 서준이에게 총총 달려가 웃는다.
"왜 체육관으로 오라고 한 거야?"
"여기서 하려고."
"어?"
"여기서 섹스 하자고."
"…여기는.."
"싫어?"
"좀 그런데.."
"왜 싫은데."
"…혹시라도 사람들이 들어오면.."
"너 나 좋아한다며."
"…그건 당연한 건데.."
"좋아한다면서 이런 곳에서 한 번 못 해줘?"
어딘가 많이 화나보였다. 왜 화가 난 걸까.. 평소와는 더 무서운 표정으로 나를 내려다보기에, 나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할 수 있어, 하자."
"벗어 그럼."
"어?"
"알아 들었으면서 또 물어 보지 마."
"……."
"밑에만 벗어."
"…아, 응."
더 뜸 들였다간 서준이가 화가 나서 나가버릴 것만 같아서 나는 고갤 끄덕이며 치마를 벗으려고 했고.. 갑자기 서준이가 내게 다가와 입을 맞춘다.
너무 급하게, 격하게 입을 맞추는 서준이에 무서워서 고개를 옆으로 돌리니 서준이가 내 머리채를 잡아 그대로 다시 입을 맞춘다.
무서웠다. 너무 무서워서 눈물이 다 나오기 시작했다. 무서워서 서준이의 가슴팍을 밀어내자, 서준이가 체념한 듯한 표정을 하고서 나를 한참 내려다보더니 나를 지나쳐 체육관에서 나간다.
서준이가 내게 막말도 많이 하고, 막 대한 것도 많았지만 이렇게 무섭게 키스를 한 건 처음이라 눈물이 흘렀다.
서준이가 가고 얼마 안 있어 서준이보다 아래인, 전학 첫 날에 내게 케이크를 뒤집어 쓰게 한 남자애가 들어오더니 웃으며 내게 다가와 내 가슴을 움켜쥐며 강제로 키스를 한다.
치마를 위로 올리고, 스타킹을 찢는 남자에 나는 싫다며 소리를 지르면서 발로 남자를 쳤고.. 나는 추하게 울면서 강간이라는 걸 당하는 것 같았다.
저항하면 저항할 수록 남자는 나를 때렸다. 뺨도 떄리고.. 머리채도 잡고 배도 주먹으로 때리고 나는 너무 힘들었다.
눈물이 너무 많이 흘러서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체육관 문이 열리고 누군가 달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서준이이길 바랬다.
하지만.. 서준이가 아닌 다른 누군가 내 위에 올라탄 남자를 발로 차고서 소리지른다.
"미친새끼야 안 꺼져!?"
남자는 허겁지겁 체육관에서 나갔고, 들어 와 나를 구해준 남자는 윤박이었다. 윤박은 걱정스런 눈으로 나를 살펴주었다.
"달후야 괜찮아?"
윤박이 내게 무언가 더 말을 건네지만,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천천히 눈이 감겼다. 아마도 나는 지금 정신을 잃는 중인 것 같았다.
그리고 다음 날 학교에 간 나는 담임으로부터 이상한 말을 들었다.
'퇴학'이었다. 아무 잘못도 하지 않은 나는 퇴학을 당해 다시 집으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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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놨던 거 내긔~!!!!! 후후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