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가 차다. 차다 못해 숨을 들이마시는 폐가 얼어붙는 느낌이다. 입을 열 때마다 뿌연 김이 안개처럼 뿜어지는 추운 날, 기현은 붉은 목도리를 하고 검정 컨버스를 신고 행여나 넘어질까 잰걸음으로 정류장을 향한다. 스물 다섯 먹은 남자치고 비교적 짧고 통통한 손가락에는 빵봉다리가 덜렁덜렁 끼여 기현을 쫓는다. "아 씨 되게 춥네..." 정류장에 다다라 남은 버스 시간을 확인하는 기현. 기현의 자취방으로 가려면 67번을 타야 하는데, 워낙 후미진 곳에 위치한 탓에 배차 간격이 긴지라 시간을 잘못 맞추면 한참 기다리기 일쑤다. 오늘은 운이 좋았던 건지, 기현이 애써 걸었던 건지 13분만 기다리면 된다. 긴 대기 의자에 털썩 앉아 양 다리를 달달 떨며 입김을 내뿜는 기현. '3월까진 추울텐데...'하고 생각한다. 휴대폰을 꺼내 시간을 슬쩍 확인하니 벌써 6시 32분이다. 집에 가봤자 반기는 이는 아무도 없지만, 찬 방바닥과 빈 냉장고만이 기현을 반길 뿐이지만 그래도 왠지 일찍 퇴근하는 날은 기분이 더 좋다. 플라스틱 창에 살짝 기대 휴대폰을 두어번 만지작거리는 기현. 온 몸이 꽁꽁 얼고 손끝엔 붉은 기가 도는데도 기현은 별 상관없다는 듯 휴대폰을 양손에 꼭 쥐고 화면만을 뚫어지게 쳐다본다. 언뜻 보이는 화면엔 기현과 한 남자가 어깨동무하며 찍은 사진이 띄워져있다. 학생 때 사진인지 기현의 가슴팍에 달린 명찰이 눈에 띈다. '유기현' 세 글자가 적힌 노란 플라스틱 명찰. 기현은 사진을 한참 쳐다보다가 눈이 시린지 눈을 슬쩍 비비고는 주머니를 뒤적이다 포장이 약간 벗겨진 홍삼캔디 하나를 꺼내어 감각이 무뎌진 손가락으로 사탕을 꺼내 입에 쏙 넣는다. 특유의 녹진한 맛이 혀에 퍼지고 기현은 입을 오물대며 사탕을 음미한다. 사탕이 절반 정도 녹을 즈음 67번 버스가 밝은 빛을 내며 기현의 시야에 들어온다. 버스는 오늘도 비어있다. 기현은 가장 좋아하는 2인석 창가 자리에 앉아 빵봉다리를 옆자리에 내려두고 다시 주머니를 뒤적여 마구 엉켜버린 이어폰을 꺼낸다. 항상 줄을 정리해 주머니에 넣어두는 기현인데, 조금 억울한 마음이 들어 '이어폰을 왜 맨날 엉켜있는 걸까' 생각하며 2분가량 낑낑대니 여전히 구불구불하지만 그래도 귀에 꽂을 수는 있는 이어폰이 되었다. 귀에 대충 꽂고 눈을 감은 채 음악을 감상한다. 잠깐 눈만 감고 있는다는 것이 깜빡 잠이 들어 원래 내려야 할 정류장을 두 개나 지나쳤다. '오늘 웬일로 집에 빨리 가겠구나 했더니...' 불만에 가득찬 입을 앙 다물고 종종걸음으로 집을 향한다. 횡단보도 세 개를 건너고, 좁은 골목 다섯 개를 지나고, 꽤나 가파른 계단 두 개를 오르면 기현의 집이 눈에 보인다. 그런데 익숙치 않은 뒷통수도 함께 보인다. 반지하인 기현의 집 계단에 뭔가가 웅크려 앉아있다. 술 취한 노숙자들이 기현의 집 앞에서 추위를 피하는 일이 잦았기에 이번에도 노숙자인가 싶어 건드리기 꺼려지는 기현. 이걸 건드려 말어 생각하다가 용기내어 발로 톡 쳐본다. "저기요...." "....." "저기요 여기서 자면 입 돌아가는데요..." 두어번 더 발로 건들자 미동 없던 몸이 살짝 흔들리는 듯하더니 그 '뭔가'가 기현쪽으로 고개를 돌려 미간을 살짝 찡그린 채 기현을 응시한다. 낯익은 얼굴이다. 기현이 버스 정류장에서 뚫어져라 쳐다보던, 그 남자다. 사진 속 기현의 옆에서 어깨동무 한 채 개구지게 웃던, 그 남자다. 기현과 같은 노란 플라스틱 명찰에 '이민혁'이라고 쓰여있던, 그 남자다. "야 너..." 기현이 무언가 말을 하려다가 소리를 그대로 삼키고는 얼굴이 하얗게 질려 놀란 눈으로 남자를 쳐다본다. 남자는 덜 떠진 눈으로 놀란 기현을 응시하다 배시시 웃고는 낮고 거친 목소리로 입을 연다. "기현아, 왜 이제 와."
----------------------------------------------- 안녕하세요 오늘부터 글 써볼 조갱입니다. 댕햄이구요 청춘물입니다. 재밌게 봐주세요. 댓글 달아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