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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따이92 전체글ll조회 610l

  

  

안녕하세요. 종대92 돌아온 종따이92입니다.  

제가 거의 일년만에 재가입해서 그때 완결 못내었던 이야기 뒷부분 추가해서 올립니다. 

기억하시는 분 아예 없을 듯.....ㅎㅎ휴ㅠㅠ 

사실 아직도 완결이 안났어요ㅎㅎㅎㅎㅎ 쓰다보니 막히고 까먹게 돼서.....ㅎㅎㅎ 

그때 긴 댓글 남겨주신 분 아직도 감사해요. 스토리짜는데 생각 많이 하게 되더라구요.  

만약에 그 분이 이 글을 보고 실망하시면 어쩌나 하는 마음이 듭니다.... 하지만 이쁘게 봐주셨으면 하는 마음이 더 커요   

완결은 조만간 내겠습니다. 이번처럼 일년 만에 오는 일은 없을 거에요. 적어도ㅎㅎ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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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조 2년 1456년 5월 


한 남자가 도포자락을 휘날리며 급히 누추한 주막으로 들어섰다. 얼핏 보아도 훤칠한 키에 곧게 뻗은 등, 뚜렷한 얼굴선이 그가 보통이 아닌 자임을 알게 했다. 얼굴이 어린 티가 남에도 그의 기품은 전혀 어리지 않았다. 어디서부터 얼마나 쉼 없이 달려왔는지 그의 높게 솟은 콧대 사이로 땀이 흘러내렸다. 잠시 주위를 살핀 후 주모에게 다가간 그는 시끄러운 주막 속에 묻혀 짧은 대화를 나눴다. 대화를 주고받은 남자의 얼굴엔 왠지 모를 긴장감이 보였다. 남자는 주막 뒤편에 마련된 방으로 조심스레 들어갔다. 방 문 앞, 가지런히 놓인 여러 켤레의 신 위로 그의 신이 어지러이 놓였다.  

  

  

좁은 방안엔 여러 명의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그들의 얼굴엔 하나같이 긴장이 서려있었다. 그 곳엔 이미 엄숙함이 깊게 자리해있었다. 덜컥. 엄숙했던 공간을 무너뜨리며 찬열이 방 안으로 들어섰다. 그를 소리 내어 맞이하는 이는 없었다. 간혹 눈인사만을 전하며 그의 등장을 반기는 이가 있을 뿐이었다. 찬열이 문 옆으로 자리를 잡고 앉자 그의 반대편에 앉은 남자가 헛기침을 하며 침묵을 깼다.  

  

  

“다 모인 것 같으니 이야기하겠소.”  

  

  

찬열의 반대편, 정 가운데 앉아 모임의 우두머리로 보이는 남자는 결코 쉽게 열 것 같지 않던 두 입술을 떼었다.    

  

  

“6월 1일 연회장의 운검(雲劒)으로 벽량이 임명되었다는 건 다들 알거라 믿소. 이날 연회가 시작되면 바로 거사를 치를 것이오. 우선 성문을 닫고 세조와 그 오른팔들을 죽이면, 상왕을 복위하기는 손바닥 뒤집는 것과 같을 것이라 생각하오.” 

  

  

중후한 목소리가 방안을 채웠다. 누추한 방에서 낮게 퍼지는 그의 말은 전혀 가볍지 않은, 오히려 대단히 위험한 말이었다. 하지만 그의 말에 반기를 드는 자는 그 누구도 없었다. 그리고 없어야만 했다. 성삼문, 박팽년, 이개, 하위지 등이 모인 이 자리는 단종의 복위를 도모하는 자리였다. 삼문이 입을 닫자 잠시 침묵이 흐르고 뒤로 팽년이 입을 열었다. 그의 시선은 찬열에 닿아 있었다. 

  

  

“자네가 맡은 바가 크네.”  


“알고 있습니다.” 

  

  

찬열의 짙은 눈동자가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팽년을 향했다. 그의 목소리는 굳은 결의를 보이듯 낮고도 무겁게 깔렸다. 벽량은 찬열의 호였다. 벽량 박찬열. 그는 명나라 사신을 위한 연회장에서 세조를 보좌하는 별운검을 맡게 되어 거사의 가장 중요한 위치에 서있었다. 세조를 향할 날카로운 칼끝이 그의 앞날을 좌우했다. 그의 품안에서 조용히 거사를 기다리는 칼이 그의 어깨를 짓눌렀다. 하지만 결코 무를 수 없는, 물러서도 안 되는 그 자리가 그에게 작은 흥분감을 가져다주었다. 나의 어린 왕을, 도경수를 내 두 손으로 복위시킨다. 찬열이 조심스레 자신의 허리춤에 있는 검 손잡이를 매만졌다. 그의 손엔 벌써부터 땀이 차기 시작했다.           

  

   
몇 번의 대화가 더 오고간 후 삼문은 자리를 급히 마무리 지었다. 누구에게 보여 좋을 자리는 아니었기에 사사로운 대화는 필요치 않았다. 모인 중신들은 밖의 시선을 의식하여 무리 짓지 않고 한명씩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지만 자리의 끝과 끝, 삼문과 찬열은 마지막까지 일어나지 않고 자리를 지켰다. 모인 이들이 모두 흩어지자 둘만이 남은 방은 아까완 다르게 휑해 보였다. 적막함 속에서 삼문이 먼저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삼문이 방문 옆에 자리한 찬열과 가까워 질 때 쯤 찬열의 목소리가 삼문의 귀에 박혔다. 

  

  

“이 일이 대감의 욕심이, 소인의 욕심이 아니었으면 합니다.”
  

  


삼문이 자리에 그대로 섰다. 이 일이 내가 권력을 갖기 위함이라고 보는가. 아까와는 다른 차가운 목소리가 넓은 방안을 메웠다.  

  

  

“아닙니다. 그저 상왕의 마음이 무엇에 닿아있는지, 혹여 이 일이 상왕을 더욱 불편하게 하는 일은 아닐는지 헤아리고자 합니다.”  


“벽량. 자네가 어린 왕을 위한다면 이 일은 분명 옳은 걸세.”  

  

  

삼문이 찬열의 옆을 지나며 그의 어깨에 손을 짚었다. 잘 해줄 거라고 믿네. 단호한 말을 끝으로 삼문이 방을 나섰다. 방문이 열린 새로 아까와는 달리 차가워진 밤바람이 찬열의 머릿칼을 간질였다. 그 찰나의 밤바람은 오늘도 궁에서 홀로 잠들 자신의 어린 왕을 잊지 못하게 했다. 그가 걱정됐다. 이 일의 끝에 상왕의 복위가 있다면 관료들의 권력다툼 속에서 허수아비 왕이 되진 않을는지, 이 일의 끝에 실패가 있다면 그를 따르던 많은 신하들이 죽어나가 홀로 외롭진 않을는지. 이러 저러한 생각들이 찬열을 밤새 끊임없이 괴롭혔다.       

  

    

  


 * 

  

  

  

  


세조가 즉위함과 동시에 폐위된 단종은 궁궐 가장 깊은 곳으로 숨어버렸다. 불행 중 다행인지는 모르겠지만 세조는 자신의 어린 조카를 불쌍히 여겼다. 여럿 신하의 목숨을 앗아가 무력으로 그 자리에 오른 그였지만 조카에게 박하게 대할 생각은 없었다. 궁궐의 가장 깊은 곳으로 거취를 마련해준 건 세조였지만 그 이후로 그는 단종에게 별다른 해를 끼치려 하지 않았다. 그 덕분에 단종의 궁 안엔 그의 사람들로만 이루어져 있었다. 찬열이 단종의 궁에 자유로이 드나들 수 있는 것도 그 이유에서였다. 

  


 
보름달이 중천으로 서서히 떠오를 무렵 찬열이 궐복을 갖춰 입고 경수의 궁을 찾았다. 어둠이 깔린 궐 안은 어느 누구의 기척도 없었다. 찬열이 걸으면서 나는 옷자락 스치는 소리만이 궐 안을 채웠다. 긴 복도의 끝, 경수의 방문 앞에 선 찬열이 헛기침을 두어 번 냈다. 

  

  

“들어오세요.” 

  

  

경수의 작은 목소리가 문 밖으로 새 나오자 찬열이 조심스레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찬열이 마주한 경수는 잘 준비를 마친 채 요 위에 앉아있었다. 찬열을 보자 경수의 얼굴 위로 미소가 번졌다. 앉으세요. 짧은 말 뒤로 찬열이 경수의 맞은편에 앉았다. 

  

  

“많이 보고 싶었습니다. 벽량.” 


“전하, 어제도 보고 그제도 보았습니다. 이보다 더 오래 못 볼 때는 어찌하려고 이러십니까.” 

  

  

찬열이 보고 싶었단 말을 전하며 울상을 짓는 경수를 보며 작은 웃음을 내었다. 이에 경수가 뾰로통하게 찬열을 흘겼다. 어린 왕은 오늘 하루 동안 궁 안의 어느 누구에도 보이지 않던 모습을 이제야 나타냈다. 오로지 찬열과 있을 때만 상왕은 정말 어린애가 됐다. 찬열도 이를 잘 알고 있었기에 그를 잘 헤아렸다.  

  

  

“벽량은 이제 더 이상 소인이 보고 싶지 않은게지요.” 


“어찌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저 또한 전하가 많이 보고 싶었습니다.” 

  

  

경수가 진심으로 실망한 듯 보이자 찬열이 당황하여 눈썹을 축 내린 채 답했다. 꼭 똥마려운 강아지처럼 앉아 어쩔 줄 몰라 하는 찬열이 경수의 눈엔 퍽 귀여워 보였다. 그의 진심어린 표현에 경수는 심통이 난 마음이 눈 녹듯 사르르 녹아내렸다. 살짝 돌렸던 몸을 찬열을 향해 다시 고쳐 앉은 경수는 살며시 찬열의 손을 잡았다.   

  

  

“어디 가시면 아니 됩니다. 내일도, 그 다음날도, 또 그 다음날도 꼭 이렇게 찾아 와주셔야 합니다.”  

  

  

찬열이 경수가 잡은 손에 힘을 주어 다시 맞잡았다. 하지만 경수의 말에 확답을 줄 수 없는 그는 차마 떨군 고개를 들 수 없었다. 거사의 끝에 자신의 죽음이 있을지 그 죽음 뒤에 자신의 어린 왕이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릴지 헤아릴 수 없었다. 반대의 경우라면 좋겠지만 장담할 수 없는 일인지라 마음이 쓰일 수밖에 없었다.  

  

  

“소인의 욕심입니까?”  

  

  

경수가 찬열이 들지 못하는 고개를 살피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큰 눈동자에는 불안함이 서려있었다. 

  

  

“...왕이 되셔야 합니다.” 


“아...아닙니다. 아닙니다, 벽량. 소인은 그럴 자격이 없는 자입니다. 제가 몇 번이고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저 때문에, 저 하나 때문에 이미 너무나도 많은 피가 흘렀습니다. 저는 왕이 될 수 없습니다.” 


“전하, 전하는 이미 저에게 하나뿐인 군주시지만 백성들에게도, 많은 신하들에게도 전하가 필요합니다.” 


“소인은 벽량에게 그런 존재라는 것만으로도 행복합니다. 누구보다, 그 누구보다 벽량의 피가 흘러야 하는 일이라면 저는 그 일을 감당할 수 없을 겁니다.” 

    

  


경수의 떨리는 목소리가 찬열의 온몸에 전율이 되어 흘렀다. 찬열이 답답한 마음에 아랫입술을 깨물어 짓이겼다. 무릎을 꿇어 바닥에 댄 한 손에 무겁게 힘이 들어갔다. 

  

  

“왜 이리도 소인의 마음을 몰라주신답니까. 저는 그저 한 사람의 마음만을 바랄 뿐입니다.” 

  

  

경수가 찬열의 잡은 손을 자신의 가슴께로 가져다 댔다. 경수의 눈엔 벌써 눈물이 몽울져 하나 둘씩 아래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찬열의 한번 고꾸라진 고개는 다시 들 줄 몰랐다. 경수의 가슴에 가있는 손 위로 그의 뜨거운 눈물이 떨어졌지만 찬열은 그마저도 바라볼 수 없었다. 

  

  

“약속해주세요. 벽량. 그냥 제 옆에만 있겠다고.” 


“전하……” 


“하. 전하. 전하. 전하! 그 놈의 전하 소리 좀 집어 치우세요. 이 일이 그리도 어려운 일입니까. 도대체 소인이 바랄 수 있는 건 무어랍니까. 네? 대답해보세요, 벽량.”  

  

  

처음엔 그저 떨리는 목소리였지만 이젠 거의 울먹임으로 바뀌어있었다. 경수는 더 이상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했다. 경수는 속이 답답해 찬열과 맞잡은 손으로 자신의 가슴을 세게 때려댔다. 찬열이 놀라 저지하자 경수는 어린아이처럼 울었다. 그가 찬열의 앞에서 이토록 목 놓아 우는 일은 처음이었다. 가장 어린나이에 누구보다 어른인 척 해야 했던 경수는 절대 남 앞에서 눈물을 보이는 일이 없었다. 어렸을 때부터 어서 어른이 되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남들 앞에서 감정표현을 늘 숨겨왔었다. 그런 그가 찬열의 앞에서 정말 어린아이라도 된 듯 슬프게 울었다. 찬열 또한 마음이 심히 저려 그런 그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팔을 뻗어 안고 싶지만, 안아서 달래주고 싶지만 그렇게 할 수 없었다.  

  

  

“이만 나가보겠습니다.”  

  

  

찬열이 손수건을 경수의 앞에 놔두고 조용히 방 밖으로 나섰다. 방문을 닫고 몇 발자국 가던 찬열은 복도에 그대로 주저앉았다. 경수의 울음소리가 복도에서도 생생하게 울려 퍼졌다. 가슴이 찢어질 것 같이 아파왔다. 나의 주군, 나의 어린 왕, 나의 정인, 도경수. 그의 이름 석 자가 가슴을 후벼 파는 것 같았다. 찬열이 가슴을 움켜쥐었다.  

  

  

‘벽량. 자네가 어린 왕을 위한다면 이 일은 분명 옳은 걸세.’ 

  

  

전날 만났던 삼문의 말이 찬열의 귓속에서 맴돌았다. 진정 왕을 위함이 무엇일까. 무엇이 옳은 것일까. 찬열의 생각에 확신을 주는 것은 정녕 아무것도 없었다.       

  

  

  

  


* 

  

  

  

  


찬열이 과거에 급제하고 1년이 채 지나지 않았을 때, 그 시절 세자였던 문종이 찬열을 따로 불러 낸 일이 있었다. 무슨 일인고 하니 세손의 담당 스승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세자가 찬열을 콕 집어서 적임자라 생각한다 하여 찬열은 그의 부탁을 거절할 수 없었다. 이 말고도 찬열이 세자의 부탁을 거절 할 수 없었던 이유는 세자가 어린 찬열에게 깨나 관심을 쏟으며 예뻐해 주었기 때문이었다. 찬열이 열여섯이라는 어린 나이에 접한 궁은 그의 생각보다 훨씬 어려운 곳이었는데, 나이 지긋한 대신부터 말단 관료까지 찬열에게 잘해주는 사람은 단 한명도 없었다. 그런 찬열에게 세자는 한줄기 빛과도 같은 분이었다.  

  

  

이런 연유로 찬열은 경수의 스승이 되었는데 고것 참 어려운 일이었다. 찬열이 경수를 처음 마주한 날에 경수는 참으로 심통이 나있었다. 글공부가 하기 싫다하여 아비에게 혼이라도 난 건가 하였는데 찬열이 세자에게 물으니 그런 이유는 아니라 하였다. 세자도 경수가 낯을 가리긴 하지만 이런 모습까진 처음 본다며 찬열에게 왜 그런지는 오리무중이라 하였다. 세손궁에 경수와 찬열, 둘만 남아 이야기를 나눌 적에 찬열이 경수의 심통을 풀어보려 하였다만 그리 쉽게 되는 일이 아니었다. 혹시 기분이 안 좋은 일이 있어서 그런가하여 찬열이 다음날엔 살짝 기대하는 마음으로 세손궁을 찾아갔지만 역시 경수는 심통이 나있었다.  

  

  

세 달을 넘기어도 찬열을 마주하는 경수의 표정은 뾰루퉁했다. 찬열은 경수가 그러함이 초반에는 낯가림이라 치부했는데 날이 이렇게 지나니 그냥 자신이 마음에 안 드는 것 같았다. 찬열은 무예든 궁술이든 논어든 뭐가 됐든 사력을 다해 가르치고 있었다. 하지만 경수의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참으로 힘이 빠질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앞에서 말 한마디 없이 한자 연습을 하는 경수를 보니 찬열은 자신의 처지가 서글퍼졌다. 

  

  


“소인을 미워하십니까.” 


“아닙니다.” 

  

  

찬열이 용기를 내어 자신이 밉냐 물었더니 경수의 조막만한 입에서 아니라는 말이 빠르게 튀어나왔다. 찬열에겐 오랜만에 듣는 경수의 목소리였다. 찬열은 조금 의외였지만 대놓고 싫다 말하실 분은 아니란 생각에 마음이 누그러들진 않았다. 

  

  

“싫으시면 싫다 하셔도 좋습니다. 다른 스승을 원하신다면 세자저하께 언질을 해보겠습니다.” 

 
“싫지 않다 말하였습니다.” 


“헌데 소인을 마주하시면 기분이 안 좋아지시는 것 같습니다.” 

  

  

경수가 고사리 같은 손으로 힘주어 잡은 붓이 멈춰 섰다. 붓이 멈춰선 자리는 경수의 말을 기다리는 찬열의 마음처럼 먹으로 까맣게 물들어 갔다. 경수가 한참 뜸을 들이더니 경수의 입술이 오밀조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좋았습니다. 스승님이 좋아서 그러하였습니다. 그러니 다시는 다른 스승이란 말은 입에 담지 아니하셨으면 합니다.” 

  

  

어린 경수의 입에서 뜻밖의 말이 들렸다. 분명 자신을 싫어하는 듯 보였는데 좋다 하는 그 말이 찬열에겐 의외였다. 찬열이 듣기에 그 말이 어찌나 달콤한지 살짝 설레서 헛웃음이 나올 지경이었다. 커서 여자들 깨나 홀리시겠습니다. 찬열이 목구멍까지 차오르는 말을 속으로 삼킨 채 고개를 숙였다. 꾹 다문 입술로 웃음이 새어 나올 것 같아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송구하옵니다, 마마. 앞으로는 조심하겠사옵니다.”  

  

  

경수가 멈췄던 붓을 먹 위에 올려놓고 지저분해진 종이를 구겨 한쪽으로 치웠다. 그리고는 새 종이를 상에 반듯하게 깔았다. 하지만 자신의 몸 보다 큰 상과 큰 종이에 살짝 주춤하는 모습은 영락없는 어린 아이와 같았다. 경수가 자리를 고쳐 앉으며 고개를 숙인 찬열을 힐끔 보았다. 다시 붓을 잡아 글을 써내려가는 경수의 얼굴엔 살짝 홍조가 돌았다. 

  

  

이후 찬열이 경수의 웃는 낯을 볼 때 까진 얼마 걸리지 않았다. 무심한 듯 감정을 구태여 표현하지 않는 건 변하지 않았지만 간혹 마음이 동하면 그 나이에 맞게 웃어보였다. 찬열이 보기에 경수는 아주 어린 날부터 감정을 숨기는 연습을 해온 듯했다. 그러지 않고서는 열 살도 채 되지 않은 아이가 이럴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자신에겐 남들보다 늦게 마음을 연 것이라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수는 너무나도 어른스러웠다. 어쩔 수 없이 세손이라는 틀에 갇혀서 자라온 경수가 찬열은 너무나 안쓰럽게 느껴졌다.  

  

  

* 

  

  

단종이 즉위하고 이년 즈음 지났을 때 찬열이 크게 앓았던 적이 있었다. 개도 안 걸린다는 여름 고뿔에 걸린 것이었다. 찬열은 자신의 고뿔기운이 심상치 않다고 생각이 들어 하루 이틀 정도 궐에 못 나올 것이라 경수의 내관에게 얘기 해두었다. 특별히 내관에게 주상에겐 자신이 아프단 말을 하지 말라고도 일러두어 별 걱정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상태는 심각해져 여러 날을 앓게 된 것이었다. 어머니를 지극정성으로 모시고 살던 찬열은 어머니를 여의고 난 뒤 처를 두지 않고 홀로 지냈었다. 딱한 사정을 알던 내관은 의원을 보내어 찬열을 보살피게 했다.  

  

  

찬열이 앓은 지 육 일째 되던 날 밤, 달빛이 비추던 방문에 사람 그림자가 드리웠다. 찬열은 기척을 느꼈지만 기운이 없어 일어 날 수 없었다. 끼익. 앞에서 서성거리던 사람이 찬열의 방 안으로 들어왔다. 남자는 바람이 들어오지 않도록 방문을 잘 맞추어 닫고 찬열의 옆에 앉았다. 찬열이 눈을 들어 남자가 누구인지 보았다. 찬열의 옆에는 경수가 촉촉해진 눈으로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전하…… 어찌 이 누추한 곳까지 오셨습니까.” 

  

  

찬열이 경수를 맞이하려 자리에서 일어나는 시늉을 하자 경수가 그를 급히 제지했다. 찬열을 다시 뉘여 덮은 이불을 손수 정리한 경수가 손을 들어 찬열의 이마를 짚었다. 불덩이 같은 이마에 놀란 손이 닿자마자 급히 떨어졌다. 경수가 찬열을 다그치며 말하였다.  

  

  

“이렇게 앓고 계시는데 어찌 말 한마디 없을 수 있답니까!”     

 
“걱정하실까봐 그러하였습니다.” 

  

  

찬열이 조심했던 이유는 경수가 남들보다 앓음에 민감하단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찬열은 태어남과 동시에 어미를 잃고, 몸이 병약했던 제 아비를 1년 전에 여읜 경수에게 걱정거리가 되고 싶지 않았다.  

  

  

“제 아비처럼 소인을 떠나시면 아니 되옵니다, 벽량.” 


“전하, 단순한 고뿔이옵니다. 걱정하지 마시옵소서.” 


“단순한 고뿔이 이렇게나 오래 간단 말입니까.”  

  

  

촉촉했던 경수의 눈동자에 곧 방울이 맺혔다. 찬열이 팔을 들어 경수의 얼굴을 어루만져 눈물을 닦아내었다.   

  

  

“선왕께서 승하하셨을 때도 눈물을 보이지 않던 분이 미천한 신하 한 명이 고뿔에 걸리니 이렇게 쉬이 눈물을 보이십니까. 기뻐해야 할지, 슬퍼해야 할지 참 기분이 묘합니다.” 

  

  

경수가 눈물을 닦아 낸 찬열의 손을 두 손으로 잡아 내렸다. 고개를 내려 시선을 아래로 두고 입술은 어찌할 바 모르고 달싹거렸다. 경수의 도톰한 입술이 금세 붉어졌다.  

  

  

“그대가 좋다하면 나이 어린 주상의 어린 마음이라 치부하실 겁니까.”  


“...” 


“아무렴 좋습니다.” 

  

  

둘은 한 동안 말이 없었다. 경수가 잡고 있던 찬열의 손을 슬그머니 놓았다. 그대로 또 한참을 적막함 속에 쌓여 있었다. 얼른 털고 일어나세요. 경수가 자리에서 일어나 방을 나서며 말했다. 그의 떨리는 목소리는 진동이 되어 찬열의 머리를 더욱 아프게 했다.   

  

  

* 

  

  

축시를 넘긴 시간이었다. 한양의 저잣거리는 어둠이 깊게 깔려 보름달빛만이 고스란히 길을 밝혀 주고 있었다. 궁궐의 나가는 문은 모두 닫혀 찬열은 조심스레 담을 넘었다. 자신의 집을 향해 털레털레 걷는 찬열의 뒷모습에서 그가 감당하고 있는 무게가 어느 정도인지를 가늠케 했다. 늘 기개가 넘치는 단단하고 넓은 어깨는 굽어지는 법이 없었지만 지금만큼은 아니었다. 그의 어깨는 버선발이 올라앉은 듯 축 처져 상한 마음을 내비췄다.  

*축시 - 오전 1시~3시 

  

크게 울던 경수를 보니 옛 생각들이 나, 그것들이 날카로운 창이 되어 찬열의 마음을 퍽퍽 쑤셔댔다. 경수가 세손이었을 때, 세자였을 때, 왕이었을 때, 그리고 지금. 찬열은 생각했다. 경수의 자리는 어디가 옳은 것인지. 칼은 찬열 자신의 손에 쥐어져 있었다. 그 누구도 아닌 바로 자신의 허리춤에 경수의 자리가 달려 있었다. 찬열이 자신의 허리춤에 있는 칼집을 한번 슥 만졌다. 손잡이를 부드럽게 쥔 찬열이 칼집의 칼을 살짝 빼었다 넣었다. 순간 은빛 칼날이 달빛을 받아 반짝였다. 사람의 마음이란 것은 변하기 마련이다. 그렇듯 경수의 마음은 쉬이 변할 수 있는 것이지만 경수의 자리는 변할 수 없는, 변해선 안 되는 자리라고 찬열은 그렇게 결론을 내었다.  

  

  

마음을 굳건히 먹었건만 그의 한번 무거워진 발걸음은 다시 가벼워질 줄을 몰랐다.  

  

  

“마음이 변한다라. 그렇다면 내 아린 마음은 주군의 마음이 저물었을 때, 그때서야 비로소 아물겠구나.”  

  

  

은은한 달빛 아래, 찬열의 얼굴은 씁쓸함을 감추지 못했다.  

  

  

  

* 

  

  

  

  


1456년 6월 1일 세조2년 

  

  

아침부터 창덕궁은 연회 준비로 분주 했다. 예년보다 덜 더워서 그런지 창덕궁의 정원은 벚꽃과 매화가 아직까지 만발해 있었다. 바람이 불자 벚꽃 잎이 날리며 연회장을 분홍빛으로 수놓았다. 찬열은 그런 흐드러진 꽃들을 보며 후원을 거닐고 있었다. 꽃비가 내리는 후원은 경수를 떠올리게 했다. 경수를 처음 보았던 날도 이맘 때 쯤이라. 생각했다. 

  

  

“벽량, 잠깐 나 좀 보세.” 

  

  

연회를 총괄하던 삼문이 살짝 빠져나와 벽량을 불렀다. 삼문은 벽량을 데리고 궁 안으로 들어가 사람이 출입하지 않는 곳에 멈췄다. 그곳엔 이미 팽년이 먼저 와 둘을 기다리고 있었다. 찬열은 둘의 표정이 심상치 않음을 보고 문제가 생겼음을 직감했다. 삼문이 입을 열었다.  

  

  

“주상이 운검을 세우지 말라 하셨네.” 

 
“...문제가 될 건 없다고 봅니다. 운검이 아니더라도 왕의 목은 칠 수 있는 것이 아닙니까.”
  

  


삼문이 입 밖으로 뱉은 말은 큰 문제가 될 건 아니었다. 찬열이 생각하기에 운검이란 자리가 없어도 자신은 충분히 그 위치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삼문과 팽년의 생각은 달랐다. 세자도 질병으로 연회장에 나오지 않는 다는 이유를 들어 거사를 뒤로 미루기를 원하고 있었다. 

  

  

“지금 세자가 경복궁에 있고, 운검을 세우지 아니한 것은 하늘의 뜻이네, 만약 거사하더라도 세자가 경복궁에서 군사들을 데리고 나온다면 일의 성패를 쉬이 가늠할 수 없지 않는가.” 


“이런 일은 빨리 할수록 좋습니다. 늦춰진다 하면 누설될까 염려되옵니다.” 


“그런 일은 없을 걸세.” 


“비록 이곳에 세자는 오지 않았지만 왕의 신하들은 모두 모일 것이니 오늘 그들을 모두 죽이고 상왕을 호위하고서 호령한다면 천재일시의 좋은 기회가 아닙니까. 이런 기회를 놓쳐서는 아니 됩니다.” 

  


찬열은 두 대감이 너무나도 답답했다. 조금이라도 늦춰진다면 어느 누가 조급함에 발설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찬열이 답답한 마음에 열을 내어 말하였지만 두 대감은 떨떠름하여 했다. 팽년이 괜히 수염을 만지며 단호하게 말했다. 

  


“이건 만전의 계책이 아니지 않는가. 두고 보면 좋은 기회가 있을 걸세.” 


“하오나, 대감. 그건……” 


“어허- 그렇게 알고 있게, 그럼 난 이만 먼저 나가보겠네.” 

  

  

거사가 엎어졌다. 바쁘다는 핑계로 나간 팽년 뒤로 삼문도 사라져버렸다. 찬열의 허망한 눈동자는 허공을 응시했다. 다리에 힘이 빠져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허. 찬열이 어이없음에 헛웃음을 내었다. 틀어져도 단단히 틀어졌다고 생각했다. 정말 더 좋은 기회가 있을 수 있다. 발설하는 이가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찬열은 느낌이 좋지 않았다. 막연한 불안감에 휩싸인 그는 방에서 나와 빠른 걸음으로 연회장을 빠져 나왔다.  

  

  

시끄러운 연회장을 빠져나오자 찬열의 걸음걸이는 더욱 빨라져 곧 뜀박질이 되었다. 불안한 마음은 누군가를 향한 애달픔이 되었다. 얼마나 달려왔을까 찬열은 숨이 제법 찼는지 잠시 멈춰서 숨을 골랐다. 그의 앞으로는 경수의 궁이 보였다. 가쁘게 쉬던 숨은 제 호흡을 찾았다.  찬열이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았다. 해의 위치를 보니 사시의 끝 무렵이었다. 시끄러운 연회가 시작됐을 법 한데 경수의 궁은 조용했다. 마치 다른 세계에 와 있는 것같이 느껴졌다. 찬열이 천천히 고개를 내리자 그의 시선이 한 곳에 닿았다. 창덕궁보다 화사한 풍경이 이곳에 있었다. 만개한 벚꽃이 흩날리는 길에 경수가 가만히 서있었다.     

*사시 - 오전 9시~11시 

  

* 

  

  

경수는 궁 밖을 나가지 않았다. 못했다는 표현이 차라리 어울릴 것이다. 연회란 것은 거의 죽은 체 살아가는 경수와 전혀 상관이 없는 이야기였다. 경수의 궁은 그 어느 때보다 조용했다. 경수의 지시로 몇 없는 궁녀들은 연회를 준비하러 혹은 구경하러 나가고 없었고 신하들에겐 휴가가 내려졌다. 경수는 방 안에서 책을 읽다가 답답함에 못 이겨 정원을 거닐었다. 유독 경수의 궁엔 꽃나무가 많았다. 머리위로 흔들리는 벚꽃 나무는 자신이 품고 있던 많은 꽃잎들을 내려 보냈다. 경수가 작은 손을 내밀어 떨어지는 벚꽃잎을 잡으려 했다. 하지만 바람에 날리는 분홍색 꽃잎은 그의 손아귀에 쉽게 잡혀주지 않았다. 꽃잎들은 경수를 놀리려고 작정이라도 한 듯 느리게 내려오다 그가 손을 굳게 쥐려하면 바람을 타고 금세 빠져나가 버렸다. 경수는 속상함에 한숨을 푹 내쉬었다. 잡히지 않는 꽃잎은 누군갈 생각나게 했다.  

  

  

“한숨을 땅이 꺼지라 쉬십니다.” 

  

  

갑작스런 찬열의 등장에 경수의 까만 눈동자가 제 크기를 더했다. 찬열이 제 손에 있던 벚꽃잎을 경수의 손에 쥐어주었다. 경수는 벚꽃잎이 바람에 날아갈새라 혹여 으그러질까 제 손을 동그랗게 말아 쥐었다. 


 
   

“벚꽃잎을 보며 그대와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어찌 그리 생각하셨습니까.” 


“손에 쥘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였는데, 그럴 수가 없었습니다.” 

  

  

경수가 벚꽃을 쥐고 있던 손을 펼쳤다. 손 위의 꽃잎이 살살 흔들리더니 이내 바람이 그것을 데리고 달아나버렸다. 경수는 그것을 무덤덤하게 쳐다보다가 쓴웃음을 살짝 지었다. 무심하기만한 바람이 경수의 머릿칼을 흔들었다. 부드러운 머릿결은 바람이 흔드는 대로 힘없이 날렸다. 찬열이 그런 경수의 머릿칼을 살짝 쥐다가 가만히 그를 안았다.  

  


 
“이미 제 마음은 전하의 손에 쥐어져 있습니다. 전하가 손을 피시지 않는 이상 날아갈 일은 없을 겁니다.” 


“벽량.” 


“네, 전하.” 


“저는 왕의 자리도 권력도 갖고 싶다 생각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허나 벽량이 소인에게 왕이 되라 하신다면 그리 되는 게 맞는 거겠지요.” 


  


경수가 찬열의 품을 벗어나 한 발자국 떨어져 찬열의 두 손을 잡았다. 그의 크고 진한 눈동자는 흔들림 없이 찬열을 바라보았다. 

  

  

“소인을 왕으로 만들어주세요.” 

  

  

찬열은 대답대신 경수의 앞에 무릎을 꿇으며 머리를 숙였다. 멀리서부터 바람을 타고 연회의 노랫소리가 나지막이 들려 왔다. 

  


 
* 

  

  

명나라의 사신을 맞는 연회가 끝나고 며칠이 지났을 무렵 세훈의 방 밖으로 누군가의 다급한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발걸음 소리는 자신의 방 앞에서 멈춰서 뜸을 들였다. 세훈의 내관이 그의 출입을 알렸다. 들라 하는 세훈의 말에 남자가 고개를 숙이며 세훈의 앞에 나아왔다. 

  

  

“무슨 일입니까.” 

  

  

남자는 쉽게 입을 열지 못했다. 한참을 우물거리던 남자는 세훈의 표정이 좋지 않은 것을 보고 힘겹게 입을 열었다. 

  


“전하, 반역을…… 반역을 꾀하는 자들이 있사옵니다.”
“…자세하게 말해 보거라.” 

  

  

세훈이 놀란 기색을 감추며 말했다. 예상치 못한 일은 아니었다. 무력으로 빼앗은 왕좌였기에 쉽게 안정될 자리는 아니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예상보다 일찍 시작된 움직임에 마음은 무거웠다. 남자가 반역을 꾀한 자들의 이름을 낱낱이 밝혔다. 이름이 하나씩 나열 될수록 세훈의 표정은 굳어갔다. 총 여섯명의 이름이 불리고 남자는 머리를 조아렸다. 소인을 죽여주시옵소서. 남자는 맘에도 없는 소리를 지껄이는 게 분명했다. 죽기 싫어서 배신한 주제에. 세훈이 속으로 혀를 끌끌 찼다.  

  

  

나가보아라. 세훈의 뜻밖의 말에 남자는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나가라 말하였다. 세훈의 단호한 명에 남자는 혼이 빠진 듯 사라졌다. 세훈이 내관을 불러 날이 밝으면 은밀하게 움직이라 일렀다. 벌써부터 피 냄새가 역하게 올라오는 듯 했다. 피바람이 불 것이라. 세훈의 미간은 단단하게 구겨져 필 줄을 몰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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