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현 시점)
하루가 넘어가는, 거의 자정에 가까운 새벽이었다.
"출소하시겠습니다"
쇳소리가 내 귀를 찔렀다.
너에게서 멀어진지도 20년, 목도리는 이미 완성한지 오래다.
유일하게 너의 체취를 느낄 수 있는 매개체라 어루만지고 또 어루어만져서 손때가 묻어버렸다.
네가 과연 좋아해 주려나… 물론 그 집에서 나를 기다려주고있어야만 해당되는 걱정이지만.
만약 기다려줬다면…그렇다면 난 그 자리에서 펑펑 울어버릴지도 몰랐다.
교도관에게 들었는데, 내 사건은 사망자가 없기 때문인지
매스컴에서 크게 다뤄지지 않아 형량이 어느정도인지, 무슨 교도소에 있는지조차 알아내기 힘들거라 했다.
손에는 오직 손때묻은 목도리와, 너와 내가 하나씩 가지고 있는 집 열쇠 두 가지 뿐이었다.
긴장탓으로 다리가 떨렸다.
20대 초반에 만났던 우리는 이미 사십대에 접어들었는데,
얼마나 변해있을지 상상조차 가지 않았다.
택시를 타고 가면서도 계속 다리를 떨어대자 보다못한 택시 기사분이 말을 거셨다.
"출소하시나보네요"
"누구를 보러 가시길래 그렇게 떠세요?"
"사랑하는 사람이요…아주 많이"
"...만약에 그 분이 계속 손님을 기다리고 계셨다면, 꼭 안아주세요"
"많이 외로우셨을 거에요"
"지인 중에 출소하신 분이 계시나봐요?"
"제 아들놈이…허허 많이 외롭고 힘들었죠"
"아무것도 못하고 기다린다는게 참 힘든 일이더라구요"
기사님의 씁쓸한 웃음에 나도 쓰게 웃었다.
잘 웃진 않았지만 한번 웃을때마다 주위까지 반짝반짝해지는
너도 과연 저런 표정을 지었을까. 착잡해졌다.
백미러로 그런 내 표정을 본 기사님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런 착잡한 표정 짓지 않으셔도 됩니다"
"외롭지만 다시 볼수 있다는 희망에 금세 일어서게되니까요"
교도소가 지방에 있어 택시로 고속버스 터미널까지 간 후에 버스에 몸을 실었다.
덜컹거리는 버스를 따라 내 마음도 덜컹거리는 듯 했다.
사람들이 움직이기 시작하는 아침이 되어서야 도착했다.
급하게 계약했을 때는 최신식 아파트였는데, 세월의 무게는 역시 이길 것이 못 되었다.
떨리는 손으로 동 수를 세어가며 열쇠에 쓰여있는 동으로 들어갔다.
호수까지 찾아냈을 때의 그 기분이란 말로도, 글로도, 영상으로도 표현할수 없는 그런 것이었다.
그렇게 열쇠로 문을 열려하는데 방음이 잘 되지 않는 문 너머로 그토록 그리던 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래~잘 다녀오고"
"사랑해"
나는 한번도 들어보지 못한 말투였다. 응, 나도. 라고 대답한 사람은 젊은 남자인듯 싶었다.
이상한 감정이 솟구쳐 올라왔다.
곧이어 문이 열렸고 나는 망부석처럼 열쇠와 목도리를 들고는 동그마니 서 있었다.
네가 틀림없었다. 기억하지 못할 리가 없었다.
주먹을 꽉 쥐고는 놀란듯한 너에게 따지려고 했다. 분명히.
넌 왜 내가 나를 기다리라 준 집에서 다른 사람과의 추억을 품고 있냐고.
하지만 그건 시도로만 그쳐 버릴 듯 싶었다.
네가 나에게로 뛰어 안겨든 것이다. 언뜻 본 눈가에 이슬이 맺혀있었다.
그래, 네가 누구와 살고 있던, 무엇이 되어 있건 난 너를 사랑해.
그렇게 한참을 안고있었을까, 눈을 떠 본 너의 모습은
이십년 전과 다를 바 없었다. 아직 주름도 지지 않았고
앳되던 그 모습에 여인의 향기와 몇몇 새치만 자리잡고 있었을 뿐이다.
그 순간만큼은 옆에 벙쪄있던 젊은 남자조차도 신경쓰이지 않았다
그런데 그 남자가 너에게 말을 걸었다
"엄마...? 혹시 저 분이..."
엄마라. 엄마. 네가 어떻게 살고 있던 충격받지 않기로 했던
나는 정말 놀라버렸다.
동거남이라도 놀라지 않았을 것이었지만 엄마라니.
아마 얼굴에 다 드러났을 거다.
그런 내 모습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너는 나를 식탁으로 이끌었다.
꽃차를 내오면서 한다는 말이
"보고싶었어, 백현아"
"하나도 변한게 없네"
내가 보고싶었다면서 이미 대학생이 되어버린 네 아이는 뭐란 말인가.
입속으로 되뇌었지만 결코 입 밖으로 꺼낼 수는 없었다.
그저 소심하게 물어봤을 뿐이다.
"저 애는..."
그렇게 운을 띄우자 너의 눈이 동그래졌다.
세월따라 너도 많이 변했구나. 표정 참 보기 좋다.
일말의 기대를 가졌던 내가 초라해졌다.
그래, 너만 행복하면 되었다.
이만 가 볼게. 옛날 생각 나서 좋았어
아들 잘 키우고.
그렇게 미련 없는 척, 쿨한 척 돌아서려는데
네가 내 손목을 잡았다.
"내 아들 이름 변유현인데"
"성이 변씨라고, 백현아"
"나랑 네 아이라고"
처음과는 다른 의미로 손이 떨렸다.
너와 네 아이.
우리 아이.
우리라는 수식어가 이렇게 벅찼었던가
얼굴을 마주했을 때도 참았던 눈물이 터져나왔다.
무릎걸음으로 기어서
너에게로 향하며 내 감정의 소용돌이에
나 자신이 휩쓸려버렸다.
20년동안 혼자 나와 네 아이를 키우며
넌 무슨 생각을 했을까
나와 이름이 비슷한, 이제 생각하니 얼굴도 닮은 아이를
얼마나 많은 정성으로 키웠는지
'너의 아버지는 감옥에 가 있어'
이 사실을 알리기 위해 얼마나 밤마다 많은 고민을 했을지-
손에 꼭 쥐고만 있던 목도리를 눈물 젖은 얼굴로 지금에서야 전해주었다
사랑했고, 사랑하고, 또 앞으로도 사랑할 너.
성이름
철부지 어린아이었던 나를 바꾸어준 너인데
또 이렇게 힘들게 나를 기다려줘서 고마워
성이름,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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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호닉은 제가 쓸 여건이 안되서ㅠㅠ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