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번 차학연
고등학교 시절을 쭉 함께한 삼 년 지기임. 맨날 이상한 성대모사하고 귀여운 척 하면서 나 웃겨 줌. 가끔 아줌마 인척 하는데 그럴 땐 진심으로 우리 엄마 같음.
학교 야자 시간에 지도 나랑 같이 신나게 떠들어 놓고 쫓겨나면 맨날 내 탓이라고 짜증냄...
어쨌든 서로 만났다 하면 장난질뿐이라 사실 아직까진 이성으로 크게 설레어 본 적은 없는 것 같음.
까맣다는 말에 상당히 민감하게 반응해서 사진 찍을 땐 무조건 내가 어둡게 나오길 바람.
화날 땐 정색하면서 내가 뭘 잘못했는지 요목 조목 짚어서 상대방이 할 말 없게 함.
어차피 몇 개월 후면 성인이라 진짜 가끔 술 먹고 주정 부리면서 전화하면「이 기지배가!」부터 시작해서 폭풍 잔소리 하는데
전화 안 끊고 말도 없이 나 데리러 와서 등짝에 강스파이크 후갈기곤 집 바래다 줄 때 까지 계속 쫑알거림.
내가 니 셔틀이야, 엄마야?! 하면서 겉옷도 입혀 주고 편의점에서 음료수도 사주고... 뭐 그럼.
근데 아직까지 여자 친구 사귀는 건 본적이 없음. 사실 주변에 여자 후배부터 선배까지 좀 꼬이긴 하는데 학연이는 팬서비스라면서 늘 웃는 얼굴로 생글생글 받아 줌.
그렇게 꼬이면서 왜 여자 친구 안 사귀냐고 물어보면 아직 누구 사귀기는 좀 이른 것 같다고 그냥 웃어넘김.
연애 잘하는 카사노바 타입도, 홍당무 쑥맥 타입도 아닌 것 같은데 왜 안 사귀는지 자세한 건 나도 잘 모름.
친구들한테 물어보면 날 좋아해서 그러는 거라고 하는데 솔직히 내가 차학연이랑 사귀는 건 상상만 해도 오글거리고... 이상함.
학연이는 남사친으로 제격인 스타일. 가끔씩 남성스러움. 어린 아빠 같은데 또 친구 같기도 하고. 보면 볼수록 매력 있는 친구.
학연이랑 카페에서 |
“야. 자꾸 까맣다고 할래? 어?” “아니, 까만걸 까맣다구 하지. 뭐라고 하냐?” “아, 진짜. 내가 너 때문에 스트레스 받아서 더 까매져. 알아?” 핸드폰 액정으로 자신의 얼굴을 비춰 보며 앞머리를 정리하던 학연이 나를 노려본다. 아이구, 무서워라. 우리 학연이 삐쳤어? 귀여운 척을 하며 학연이의 팔에 매달려 볼을 살짝 꼬집으니 미친 거 아니야? 라며 정색을 하곤 내 손을 떼내더니 농담이야 하며 활짝 웃어 보인다. “야. 우리 사진 찍자.” “좋아. 자, 찍어.” “하나, 두울, 세엣.” “왜 안 찍어?” “자꾸 고개 뒤로 뺄래?” “아, 들켰다.” 어떻게든 학연이 머리통보다 작게 보이려고 얼굴을 뒤로 내빼다 학연이에게 딱, 걸렸다. 민망하기도 하고 진짜 웃겨서 학연의 팔을 팡팡, 내려치며 호탕하게 웃자, 학연이 못 말린다며 어깨동무를 하듯 내 어깨에 팔을 걸쳐 내 머리를 제 볼로 끌어당겨 얼굴을 맞대고는 활짝 웃으며 사진을 찍는다. 한 장, 두 장. 또 찍자. 웃어 봐. 김치~ |
2번 우지호
올해 고등학교 이 학년이 되면서 처음으로 알게 됐음. 작년에는 소문만 들어서 잘 몰랐는데 보기보다 나쁜 애는 아닌 것 같음.
학교에 잘 안 오긴 해도 담배나 술 같은 건 절대 안 함. 일진설부터 온갖 루머가 다 도는데 가까이서 보면 진짜 모자란 애 같음...
나보고 맨날 허벅지 두껍다고 놀려서 살 뺄 거라고 짜증내면 아니라고 장난이라고 우쭈쭈, 거리면서 폭풍 달래 줌. 당근과 채찍을 적절히 씀.
지호는 학생인데 꿈이 랩퍼라고 함. 작년 축제 때 랩하는 걸 잠깐 본적이 있는데 확실히 잘 하는 것 같음.
얼굴도 반반하고 랩 실력도 꽤 있는 편이라 지가 믹스 테이프 내면 기획사에서 러브 콜 좀 온다고 자랑질 함.
그럼 데뷔 하라고 하는데 나 때문에 못 하겠다고 함. 무슨 논리인지는 몰라도 어쨌든 나 때문에 성인되면 데뷔할 거라고 그랬음.
정말 생긴 것과 똑같이 화나면 정말 무서움. 매우 무서움. 나도 말리기 어려울 정도로 사나워짐.
근데 어지간하면 화는 잘 안냄. 대신 주변 지인들 건드리 것 굉장히 싫어해서 주변 사람들에 대한 애착이 있음.
놀기보단 일이고, 아직 여자에도 관심 없어 함. 일 아니면 곡 쓰기가 인생의 전부인 모양임.
하지만 화내면 무서운 만큼 재밌을 땐 진짜 재밌음. 말이 거칠긴 해도 개드립 최강자. 속사포 랩이 특기라 말 빠르게 하면서 나 디스 하는데 그땐 정말 한 대 치고 싶음.
어떻게 친해졌는지 잘 기억은 안 나는데 지호가 먼저 말 걸어서 친해진 걸로 기억하고 있음.
남자친구로 사귀기엔 무언가 부족하고 어설픈 경향이 있음. 이거다! 하고 얘기할 순 없지만 어쨌든 부족함.
지호 주변에는 동급생보다 누나들이나 동생들이 더 꼬이는 편.
지호랑 학교에서 |
“아! 공책 줘!” 숙제를 해야하는데 공책을 가지고 가서 도통 돌려줄 생각을 안 하는 반 친구 녀석 때문에 쉬는 시간 내내 교실이며 복도며 할 것 없이 뛰어다녔다. 건장한 열여덟 남고딩 답게 어찌나 발이 빠른지 아무리 전력질주를 해도 모자랐다. 교실은 사 층인데 이 층까지 내려와 뛰어다니다보니 숙제는 커녕 공책도 돌려받지 못하고 결국 종이 쳤다. 우울한 얼굴로 계단을 올라가다가 누군가와 부딪혀 버렸는데 사과할 기력도 없어 고개만 까딱이자 팔뚝을 잡고 당긴다. “왜 사과 안 하세요?” “아, 죄송합…. 어? 우지호?” “뭐야. 야. 정신 차려. 근데 종은 아까 쳤구만 왜 지금 올라가?” “그, 그냥. 넌 이제 와?” 지호가 이상하다는 얼굴로 갸웃거리길래 손목을 비틀어 빼내고 먼저 올라간다고 발을 떼는데 저 만치서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야, 공책 안 가져가냐? 아까 그 녀석이 공책을 팔랑이며 웃고 있다. 지호가 친구의 얼굴로 시선을 옮기더니 터덜터덜 내려가 손에 들린 공책을 휙, 빼앗았다. 친구의 얼굴이 당황스러움으로 물들었다. “왜 괴롭히는데?” “예, 예?” 그 상황을 계단에 서서 멍하니 지켜보던 내 팔목을 갑자기 끌어 제 품으로 당겨 안더니 어깨에 손을 올리고 거만한 자세로 재차 묻는다. 왜 괴롭히냐니까? 그, 그게요. 장난으로. 친구가 더듬거리며 대답하자 지호가 어이 없다는 듯 웃으며 친구의 어깨를 두어번 내려 친다. “적당히 하고 갈 길 가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