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GM : XIA (준수) - 11시 그 적당함
Ⅰ |
「어제를 동여 맨 편지를 받았다.」
두꺼운 커튼 사이로 드문드문 들어오는 빛이 어두운 거실을 밝혔다. 끊어질 듯 말듯 조금씩 들어오는 햇살이 한쪽 벽에 자리 잡은 소파에 불편한 자세로 누워있던 우현에게도 가느다랗게 닿아왔다. 삼일 밤낮을 새고는 겨우 청하는 달콤한 잠에 빠져있던 우현이 자신의 얼굴을 비추는 빛에 움찔거리며 눈을 천천히 떴다. 점점 또렷해지는 시야에 눈을 몇 번 끔벅이고는 몸을 일으켜 앉은 우현이 부족한 잠에 살짝 아파오는 머리를 한 손으로 꾹 눌렀다. 조금 괜찮아지는 듯 한 기분에 한숨을 쉰 우현이 그제야 제 주변을 둘러보았다.
어젯밤, 졸음에 못 이겨 차마 정리하지 못한 짐들과 아직 제가 입고 있는 검은색 정장이 눈에 띠었다. 그렇게 까지 정신이 없었나. 앞으로 제가 치울 물건들에 다시 머리가 아파오는 듯 해 인상을 찌푸린 우현이 어젯밤, 초인적인 정신력으로 겨우 졸음을 참아가며 운전해왔던 제 모습을 떠올리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가만히 앉아 있자니 몰려오는 졸음에 시야가 흐릿해지는 걸 느끼고는 제 볼을 두어 번 짝짝, 친 우현이 불편한 옷이라도 갈아입기 위해 제 방 쪽으로 걸어갔다.
딩동-
막 방문을 연 찰나 울리는 초인종에 현관문 쪽으로 고개를 돌린 우현이 인터폰에 나타나는 사람을 보았다. 못 보던 사람인데. 문을 열어야 할지 잠시 고민하던 우현이 다시 한 번 울리는 초인종 소리에 현관문을 열었다.
"누구세요?" "아, 택배 왔습니다. 남우현씨, 맞으신가요?" "아, 네……." "여기 사인해주시고요, 물건 받으세요."
남자가 건네주는 묵직한 상자를 바닥에 내려놓은 우현이 사인을 하고는 현관문을 닫았다. 누굴까, 난 최근에 시킨 택배가 없는데. 여전히 무게 있는 상자를 들고 소파에 앉은 우현이 테이블 위에 상자를 내려놨다. 보낸 사람의 이름을 보려했지만 조금 어두운 시야에 글씨가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결국 자리에서 일어나 두껍게 쳐있던 커튼을 활짝 걷은 우현이 밝게 들어오는 햇빛에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오늘 따라 유난히 맑은 듯 한 하늘을 잠시 바라보던 우현이 다시 몸을 돌려 상자 앞으로 다가왔다. 그때 까지 걸치고 있던 정장 재킷을 벗어 소파 팔걸이에 걸쳐놓은 우현은 상자 위에 적힌 이름을 보고는 몸을 굳힐 수밖에 없었다.
"…보낸 사람, 김…성규……."
손끝이 떨려왔다. 떨리는 손으로 적혀있는 이름을 더듬은 우현이 천천히 상자 입구를 막고 있던 테이프를 뜯었다. 상자를 열어 모습을 드러낸 물건들에 우현은 입술을 꾹, 깨물었다.
전부, 성규의 물건들이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제가 성규에게 사준, 혹은 둘이 같이 나눈 물건들. 울컥 치솟는 눈물에 잠시 눈을 감았다 뜬 우현이 천천히 안에 있는 물건들을 하나씩 집어 들었다.
오질나게도 하늘색을 좋아했었다, 김성규는. 그런 성규에게 다른 색의 옷들을 사준 것은 우현, 자신이었다. 그럴 때마다 고맙다며 받아들고 잘 입고 다니기도 했지만, 참 웃기게도 성규 자신이 무의식적으로 집은 모든 물건은 모두 하늘색, 아니면 파란계통의 색을 띠고 있었다. 그런 성규에게 장난이라도 나무라면 입을 삐죽이며 어쩔 수 없이 버릇이 되어버렸다고 투덜대곤 했다. 그런 성규의 모습이 귀여워 툭, 튀어나온 입에 우현이 입을 맞춘 건 당연한 일이었고.
상자 속에서 줄줄이 나오는 푸른색의 물건들에 익숙한 성규의 얼굴이 떠올라 우현은 피식, 웃어버릴 수밖에 없었다.
"하여튼, 못 말리는 고집쟁이 같으니라고."
다시 또 흐려지는 듯 한 시야에 한숨을 쉬고는 상자 밖으로 꺼낸 물건들을 하나씩 옆에 쌓아놓은 우현이 맨 마지막에 깔린 꽤 두꺼운 앨범을 집었다. '우현이에게'. 익숙한 성규의 필체로 쓰인 제목을 잠시 쓰다듬고는 앨범의 표지를 넘겼다. 웃고 있는 저와 성규의 사진들로 꽉 찬 앨범. 꼼꼼하게 날짜도 적어 놓은 성규에 작게 웃은 우현이 지난 5년간의 추억이 담긴 앨범을 한 장, 한 장 넘겼다. 병원복을 입은 성규의 웃는 얼굴로 끝난 앨범의 마지막 장을 넘기던 우현의 발치로 무언가가 툭, 하고 떨어졌다.
분홍색의 편지봉투. 다른 물건은 모두 파란색으로 통일해도 편지만은 제 마음을 전해야한다며 꼭 분홍색으로 고르곤 했던 성규의 모습이 떠올랐다. 곁에 아무것도 쓰여 있지 않은 편지 봉투를 열어 안에 들어있던 편지를 꺼냈다. 작게 떨리는 손으로 곱게 접힌 편지를 편 우현이 성규의 글씨체로 쓰여 있는 편지를 읽어 내려갔다.
「우현이에게. 우현아, 안녕?
항상 어떤 말이든지 얼굴을 보고 말했던 우린데, 편지로 내말을 담으려니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머릿속이 하얗게 되는 기분이야. 그래도, 이 편지는 내가 너의 곁에 없을 때 너에게 읽혀질 테니까…….
지난 5년 간 우리사이에 참 많은 일이 있었던 것 같아. 그냥 평범했던 우리인데, 돌이켜보니, 우리처럼 별일을 다 겪어본 사람들이 어디 있겠어. 시작부터 평범하지 않았던 데다가 부모님께 커밍아웃도 해보고, 헤어질 뻔도 하고……. 별거 다 해봤잖아? 그래서, 우현아. 나, 미련 같은 거 없어. 왠지 너라면 내게 못 해준 것만 생각하면서 미안해 할 것 같아서. 걱정 마. 난 네가 있어서 최고의 삶을 살았으니까. 오히려 고마워. 너무 고마워. 그래서 미안해. 그리고 나만 보며 네가 평생을 살아갈까, 걱정된다. 정말로. 근데, 그러지 말아줬으면 좋겠어. 난, 소소하게 네 추억 중 일부만을 차지한 걸로 족해. 그랬으면 좋겠어. 그래서, 네가 날 직접 정리해 주길 바라서…이렇게 내 물건들을 보내. 어떻게 하든, 네 마음이야. 그런데, 네 옆에 꼭 끌어안고 있는 것 보다는 멀리 버려 버렸으면 좋겠다. 그러면…좋겠다. 그리고, 너의 삶을 살아줘. 내 마지막 부탁이야. 야, 이제 할 말이 다 끝났다. 쓰다 보니 말이 길어진 것 같네. 이젠 끝을 맺어야 할 것 같아.
우현아, 내 끝에서 함께 있어줘서 고마워. 이기적인 나라 끝까지 널 쥐고 있어서 미안해. 그래도, 사랑해. 사랑해, 우현아.
…그럼, 이제, 안녕.
성규가.」
"…시발."
어느새 눈에 고인 눈물이 우현의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몇 시간 전, 장례식장에서 봤던 성규의 영안사진이 눈앞에 어른거렸다.
"시발, 김성규……."
끝까지 현실적인 너. 우현의 손끝에서 성규의 편지가 구겨졌다. 제게 모진 말을 하는 성규가 미워졌다. 아니, 사실 중간 중간 성규의 눈물에 젖어 매끄럽지 못한 종이 표면과 번져버린 글자들에 마음이 아파왔다. 미련한 제 연인은 저의 걱정에 마음에 없는 거짓말을 하고 울면서 떠나갔다.
"대체……. 대체, 이렇게 하면, 나보고 어쩌라고!"
한 손으로 아려오는 제 가슴을 쥐며 펑펑, 우현은 하루 종일 멈추지 않는 눈물을 밖으로 흘려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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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셨어요, 담녀에요. 겹경사로 시험이 겹쳐서 잠깐 글 쓰는 것을 손에 놓고 있다가 이제야 들어오네요. 흑흑. FM 많이 기다리실 텐데, 뜬금 단편(은 무슨 사실 다섯편이나 돼...)으로 찾아와서 죄송해요. 뉴뉴. 그래도 그대들 나 좀만 더 기다려 달라고... 뇌물...♡ 히히. 최대한 빠르게 써서 이번 달 안으로는 메일링을 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오랜만이여서 반가웠어요. 나중에 다시 봐요. 오랜만에 내 사랑들 콩/강냉이/새우깡/모카/삼동이/우유/텐더/미옹/사인/써니텐/감성/빙구레/단비/레몬 이노미/몽림/케헹/키요/내사랑 울보 동우/규밍/꿀꿀이/샐러드/사랑해/봄/샌드위치/야호/모모/노랑규/라엘/님느/롱롱